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604)
제 605화
Chapter 2
처형은 평원에서 이루어졌다.
묵묵히 주변을 둘러본 나는 깔끔하게 소감을 내뱉었다.
“구경꾼이 좀 많네.”
말 그대로였다.
임시 감찰청을 비롯해 근처에 있는 숲속, 그리고 천하성의 성벽까지.
그 모든 곳에 사람들이 있었다.
그 숫자가 최소 수천이 넘는다.
옆에 있던 영월이 말했다.
“이게, 천하성에서도 범죄자들을 따로 처벌하긴 합니다. 하지만 근 수십 년 동안 이렇게 많은 이들이 한 번에 처형당한 적은 없었습니다.”
오늘 죽게 될 이들의 숫자는 정확히 287명이다.
적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기존에는 정확히 459명이었다. 타노스와 나와의 싸움으로 인해 주변이 폐허가 되었고 도망치는 이들이 속출했다.
그 도망친 이들을 전부 잡아서 그 자리에서 즉결 처형했는데, 그렇게 해서 남은 게 287명인 거다.
나는 잠시 가슴팍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뭉툭한, 책자가 손에 잡힌다.
슬쩍 시선을 돌려 건너편에서 거대한 도를 양손에 쥐고 있는 용성운 순찰사를 바라보았다.
정확히 어제저녁.
용성운이 내게 와서 이렇게 말했다.
“청장님이 어떤 감찰관인지, 그리고 어떤 사람인지 확실하게는 모릅니다.”
그렇게 말하는 용성운의 표정은 매우 진지해 보였고 덩달아 나도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걸 알고자 제 밑으로 들어온 거 아니십니까?”
“맞습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저를 비롯한 사천의 순찰사들이 청장님의 밑으로 들어온 것은 대당주 남궁철영의 명령이었습니다.”
물끄러미 용성운을 바라보자 그가 말을 잇는다.
“하지만 그 전부터 청장님이 하시는 행동들을 보고 청장님에 대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순찰사가 되었고 청장님의 밑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청장님의 진의를 확인할 수 있는 물품을 구했습니다. 이걸, 청장님께 드리려 합니다.”
짐작 가는 게 없지는 않았다. 남궁철영이 와서 온갖 주접을 다 떨고 갔었고 지금 동대륙에 존재하는 5개의 노예 상점을 털었다.
솔직히 노예상들이 떳떳한 직업도 아니고 애초에 노예를 만들어서 사고파는 것은 ‘표면적’으로 전 대륙에서 금지된다.
즉, 만들어서 운영하는 이들이나 사용하는 이들이나 서로의 목에 칼을 겨눈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면서도 하는 이유는 약에 중독되는 것과 같은데, 사실 돈 많고 권력 있고, 나름 자기 위치에서 이룰 거 다 이룬 이들은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기 마련이다.
해 보지 않았던 것에 욕망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고 그걸 한번 접하게 되면 그제서야 느끼는 배덕감에 해방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그게, 중독이다.
상인들의 입장에서는 이용하는 이들이 언제 자신들의 목을 칠지 몰라 ‘명부’를 작성해야 할 것이고 이용하는 이들도 걸렸을 때의 불이익이 두려워 어떤 식으로든 빠져나가려 개구멍을 파 두는 경우가 있다.
이건 여담인데, 잡아 놨던 노예 상인들 모두에게 나는 협박을 하거나 고문을 하거나 하는 등의 행동을 일절 하지 않았다. 노예 시장 다섯 곳의 주인들은 일종의 ‘VIP’로 취급되는 이들의 이름을 전부 안다. 하지만 불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앞서 말했듯 협박을 하거나 고문하지 않았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해도 의미 없다. 그들이 최고위층이기 때문에.
나는 죄가 있는 이들만 잡아 왔다. 이들의 가족들 중 죄가 없는 이들은 전부 가만 놔두었지만, 그 VIP들이 나처럼 행동하라는 법은 없다.
두려웠기에 입을 다문 거다. 나와는 다르게 그들의 가족 모두 죽을 확률이 있으니까.
그리고 그들의 이름이 적힌 명부가.
“이겁니다. 청성에서 운영되던 노예 시장의 명부, 이곳에는 청장님도 익히 아는 이의 이름이 있습니다.”
받아서 펼쳐 보았다.
그리고, 어느 한 곳에서 멈췄다.
대문짝만 하게 써 있는 이름 하나가 내 시야에 꽂힌다.
남궁철영.
확실히 그가 와서 주접을 떤 이유가 있었다.
용성운에게 물었다.
“이걸 왜 저에게 주시는 겁니까?”
“청장님의 행동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행동력이요?”
“기준이 어떨지는 몰라도 누구나 납득할 만한 죄목이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수사하고 어떤 식으로든 벌을 내리셨잖습니까. 그게 어디까지 갈지, 저는 궁금합니다.”
묘한 표정을 지은 내게 용성운은 고개를 숙였다.
“이상입니다.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손발이 필요하시면 불러 주십시오.”
그렇게, 용성운은 자리를 비웠고 침묵하고 있는 내게 영월이 왔다.
영월이 부른다.
“회주님.”
“왜?”
“회동 준비가 전부 끝났다고 합니다.”
회동은 현재 회천교에서 나와 영월을 따르는 이들을 전부 불러오라고 했던, 그 일을 뜻했다. 잘 진행되고 있나 보다.
“장소는?”
“화월루입니다. 날짜는 다음 주 오늘.”
“참석 인원은?”
“전원입니다.”
확실히 잘 진행된 게 맞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고생했다고 말하는 내게 영월이 주제를 바꾼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손에 들린 장부를 들어 올렸다.
“이거 말하는 건가?”
“예. 안의 내용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용성운 순찰사와 회주님 간의 대화를 되짚어 보면 높은 확률로 그 안에 ‘남궁철영’의 이름이 있을 것 같습니다.”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영월도 알게 될 일이다. 나는 말없이 영월에게 장부를 건네주었다.
장부를 쭉 훑어본 영월이 내가 멈췄던 부분에서 똑같이 멈췄다.
“……명정가의 세 번째 여식과 안휘제일미라 불리던 소우연이 실종된 일이 있었는데 노예 시장에 납치되었던 것이군요.”
“남궁철영이 그 둘을 사 갔고.”
“……네. 그 외에도 아직 어린아이가……. 확실히 제 버릇 개 못 준다더니, 이건 좀…… 심하네요.”
그대로 눈을 감았다.
남궁철영, 그의 인성과 행실이 개판인 것과는 별개로 그는 써먹을 만한 존재였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일단 순찰사와 실원들을 지원해 주었으니까.
그리고 남궁철영을 시작으로 천하성의 세력을 파악하고 데려올 만한 이들은 데려오고 쳐낼 만한 이들은 쳐내려 했었다.
그런데.
나는 회천교라는 나만의 세력을 만들었다.
이제 남궁철영은 필요가 없다. 내부 사정을 파악하는 거? 다른 이들로 파악하면 된다.
눈을 뜨며 말했다.
“영월.”
“예. 회주님.”
“남궁철영,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
“……한솥밥을 먹기에는 우리가 져야 할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제가 감찰청법을 자세하게 알지는 못해도 남궁철영 정도면 삼대가 멸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의 중죄를 저지른 남자입니다. 저는, 회주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내 뜻은 하나밖에 없다.
그럼.
“죽여야겠군.”
“덫을 준비할까요?”
고개를 저었다.
“내일 처형식이 끝난 이후, 놈을 잡아 올 생각이다. 놈의 처형식은 즉결 처형일지 아니면 따로 준비할지는 그때 가서 결정하는 걸로 하지.”
영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이 대화들은 어제 있었던 대화들이다.
눈앞에 수백 명이 도열해 있다. 실원들과 순찰사들, 그들 모두가 같은 크기의 대검을 들고 있었다.
내 신호가 오는 즉시 저들은 저 대검을 휘둘러 죄인들을 처벌할 것이다.
나는 그대로 목소리에 마나를 입힌 뒤 외쳤다.
“황제 폐하께서 밀로스 제국을 건국하기 전, 가장 먼저 행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아는가.”
조용했다.
“노예 시장을 세상에서 없애 버리는 것이다. 건국을 하기 전과 후, 황제 폐하는 항상 노예 시장을 만드는 이들과 이용하는 이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즉결 처형해왔었지. 지금 이들은 모두 노예 시장을 운영한 이들과 이용한 이들이다.”
“…….”
“원래는 더 많았는데, 도망을 가더군. 그리고 그들은 저기, 보이는 대로 전부 효수되어 있지.”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에는 수백 개의 말뚝이 있었다.
그 말뚝에 수백의 목이 박혀 있었는데 저게, 어제 도망치다 잡힌 놈들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빈 말뚝이 정확히 ‘288’개 있었다.
“여기에 있는 이들 모두 저기에 박힐 것이다. 모두 알아두어라. 내가 동대륙에 감찰관으로 있는 한, 아니, 밀로스 제국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노예 시장은 없다. 만드는 놈도 죽을 것이고 이용하는 놈도 죽을 것이다. 세상 끝까지라도 찾아가서 죽일 테니 자신 있는 이들은 한번 해 보도록.”
당연히 대답은 없었다.
그대로 손을 들었다.
“죽여라.”
살려 달라는 절규가 울리기도 전이었다. 처형을 도맡은 무인들이 일제히 대검을 내려찍는다.
서걱-! 서걱-!!
쉴 새 없이, 목 잘리는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나는 조용히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죄인들의 목이 빈 말뚝에 전부 박혀서 효수되는 것까지 지켜본 나는, 구석에 있던 용성운에게 전음을 날렸다.
‘따라와라. 너의 선택지에 대한 결과를 보여 주지.’
피 묻은 대검을 든 용성운과 함께 나는, 천하성 내성으로 향했다.
* * *
처형식을 구경하는 이들이 모두 평범한 이들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모든 과정을 눈에 담고 있던 천하성주 류진이 한숨을 터트리며 말했다.
“이런 생각이 들어.”
류진의 옆에 있던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류진이 말을 잇는다.
“저놈은 대체 뭐 하는 새끼일까.”
류진의 옆에는 온통 검은색의 옷으로 몸 전체를 꽁꽁 둘러 싸맨 남자가 있었다.
이 남자가 보기에는 이래 보여도 직책은 남달랐다.
모두가 알다시피 천하성에는 두 명의 대당주가 있다.
한 명은 남궁철영.
두말할 필요 없이 천하성 내부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그는 전면에서 활동한다.
그리고, 전면에서 활동하는 남궁철영과는 다르게 거의 뒤에서만 활동하는 이가 있다.
그가 또 다른 대당주다. 이름은 사혼제.
지금 류진의 옆에서 류진의 말을 받고 있는 이 남자가 사혼제였다.
매우 과묵하기로 유명한 그가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여러 가지로 특이한 남자인 것 같습니다.”
“특이하지. 그런데, 그냥 특이한 거면 내가 뭐라고도 안 해. 저 새끼의 목표가 대체 뭔지 나는 감도 안 잡혀. 넌 아는 거 있냐?”
조용히 메론을 바라보던 사혼제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음지에서 활동하며 여러 가지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중에는 다음 주 오늘, 회천교의 새로운 회주가 회동을 연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그래?”
“예. 하지만 말이 소문이지, 정확한 시간, 위치, 모든 게 노출되었습니다. 보아하니 아직 내부 단결은 안 된 모양입니다.”
그 말에 류진은, 더없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뭐 하는 새끼일까. 감찰관 신분이면서 회천교의 세력을 흡수하고자 한다? 천하성이 지원해 주겠다는 병력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니니 거부한다는 건가? 아니면…….”
아니면.
“천하성과 선을 두고자 하는 걸까?”
사혼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밀수와 관련해서 감찰관의 전문적인 조언과 전문적인 판단이 없으면 곤란한 일이 많은데, 이거 정말 골 때리게 됐어.”
사혼제가 고개를 돌렸다. 류진이 빙긋 웃는다.
“저거, 지금이라도 죽여야 할까?”
“……주군.”
“왜?”
“이걸 말해야 할까 고민했습니다만, 아무래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류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사혼제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매우 드문 일인데.
그리고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 류진에게 사혼제는 매우 경악할 만한, 말을 꺼냈다.
“……미리 말씀드리면 이건 일단 소문입니다. 신빙성도 없고 증거도 없는.”
“대체 뭔데 그래?”
“현 동대륙 감찰청의 임시 청장인 저 남자가 사실은 밀로스 제국의 황태자라는, 그런 소문입니다.”
잘못 들었나.
류진은 귀를 의심했다.
이건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이렇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뭐라고?”
“저 메론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이름을 쓰는 저 남자의 본명이, ‘다니엘 밀로스’라는 소문입니다.”
콰직.
류진의 손에 잡혀 있던 성벽이 그 악력에 그대로 으스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