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608)
제 609화
예상하지 못했다.
모든 것을 걸고 솔직하게 말한 거다. 나는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생각 정도는 했었다.
혹시 천하성에서 벌어지는 감찰관 살인 사건들은 동대륙을 독립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발현된 결과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이런 생각이 왜 들었냐면 감도 안 잡혔기 때문이다.
모순이긴 하지만 왜 감찰관을 죽이는지, 왜 굳이 서대륙까지 마수를 뻗쳐서 뇌물을 퍼트리는지.
이 모든 일들의 끝이 대체 무엇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기에 그냥 가장 비현실적인, 말 같지도 않은 결과를 상상했고 그중 하나가 독립이다.
내가 왜 독립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냐면, 내가 아는 아버지의 성정이라면 절대로 그것을 허락해줄 리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워낙 고집 자체가 매우 완강하신 분이다.
밀로스 제국은 동대륙과 서대륙이 합쳐진 단일 제국이다. 그렇게 탄생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독립? 그건 땅덩어리를 떼 준다는 뜻이다.
밀로스 제국이 동대륙에 손을 놓고 있었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래도 제국 안에 속해있는 땅이다.
이게 아 다르고 어 다른 것과 흡사하다고 해야 할까.
‘밀로스 제국의 동대륙’과 ‘밀로스 제국에서 분리된 새로운 국가’는 분명 다른 거다.
새로운 국가가 탄생한다는 것은 밀로스 제국의 권력이 약해진다는 뜻이고 그건 새로운 국면의 탄생이다.
독립을 허용하게 되면, 독립된 땅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뻔했다.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이득을 챙기러 서대륙에서 대거 파견된 상단들과 지부를 설립해 힘을 더 크게 만들고자 하는 여러 개의 단체들과 귀족들, 그리고 동대륙 내부에서 땅따먹기 싸움을 하고자 하는 수많은 무인들.
대혼돈의 시대가 열리는 거고 그건 어마어마한 인명의 피해를 야기시킬 것이다.
그냥 쉽게 말하면 의미가 없다.
“자네도, 아니지, 이런 자리가 만들어졌으니 말 편하게 하지. 너도 현상 유지가 맞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나?”
“예.”
단호하게 답하는 내게 류진은 나 못지않게 단호하게 답했다.
“그거야 네가 황태자니까 하는 소리고, 단 한 번이라도 동대륙의 주민들 입장에서 생각해봤나?”
“그들 입장에서도 밀로스 제국의 온전한 지배를 받고 있는 게 나을 겁니다.”
피식, 류진이 실소를 터트린다.
“그렇게 믿고 싶은 거겠지.”
“…….”
“황제가 그런 말은 안 하던가? 철 좀 들라고.”
와락 미간이 구겨졌다. 이건 무슨 개소리지.
“무슨 의미로 하는 소립니까.”
“무슨 의미긴, 정말 몰라서 묻는 거라면 실망인데.”
“…….”
“네가 인정받고자 하는 대상이 황제인지 여자인지 난 관심 없어. 그런데 황태자로서, 네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이 정말 그게 전부인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인정받는 게 인생 마지막 목표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군. 황태자에게는 주변 인물밖에 없나? 그럼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입을 다무는 게 맞았다. 정신이 들었으니까. 잊었던 것을 깨달은 기분이다.
“너보다 오래 살아온 사람으로서 충고 하나 하자면, 너무 앞만 보지 마라. 네 아비가 밀로스라는 국가를 가벼운 마음으로 건국한 건 아니니까.”
“…….”
“물론 너도 모르지는 않을 거야. 적어도 현 세상에서 황제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건 네 어미와 지금의 너, 두 명일 테니까. 하지만 이건 알아둬라. 네가 과거에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그딴 건 적어도 이 대륙 사람들한테는 무의미해. 넌 듣고 읽었을 뿐이지만 우린 직접 겪었거든.”
사실이다. 나는 그때 그 시절을 겪지 않았다. 그저, 글과 이야기로 배웠을 뿐이다.
“넌 분명 재능이 있어. 대단한 남자이기도 하지. 만약 내가 황제라면, 지금의 너한테는 세상 전부를 뒤져서라도 그 어떤 선물이든 전부 구해서 가져다주겠지.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국가만큼은 물려주진 않아.”
잠시 침묵이 자리한다. 나뿐만이 아니라 류진, 그리고 그의 옆에 있는 사혼제와 내 뒤쪽에 있는 영월과 용성운.
모두가 침묵했다.
나는 말없이 탁자에 놓인 술을 한 번 더 들이켰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는 전부 납득했다. 반박할 수 있는 내용도 있었고 군말 없이 받아들일 만한 이야기도 있었다.
종합적으로 말하면.
“매우 합리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일리도 있고요.”
이 말에 류진의 눈썹이 살짝 꿈틀한다.
뻔했다.
지금 이 자리는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탐색하는 자리다. 류진은 나에 대해 자세하게 알지 못한다. 이 기회에 알아내려 했을 거고 지금 내가 한 대답은 류진이 나를 판단하는 데 충분한 도움이 될 만한 대사였다.
“내가 황태자께 누를 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핵심만 정리하면 동대륙의 천하성은 밀로스 제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준비하고 있었고 나는 그 방법을 모른다.
하지만 류진은 ‘확신’을 가지고 일을 진행하고 있었고 지금 나는 류진의 면전 앞에서 그 이야기를 듣는 중이다.
보자.
류진은 내가 황태자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나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왜 이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하고 있는 걸까. 그것도 내 앞에서.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이유가 뭡니까?”
“이유?”
“독립을 준비하신다는 건 ‘때’를 기다린다는 건데, 그걸 왜 저한테 이야기하시냐 이 말입니다. 황태자인 제가 독립을 지지할 거라고 생각하시지 않으셨을 텐데.”
등받이에 등을 기댄 뒤 팔짱을 낀 류진이 답했다.
“불확실했지.”
“그래요?”
“그래, 불확실했어. 솔직히 지금 대화를 나누면서도 확신이 들지가 않아. 다만 그래도 해야 하긴 했어.”
“왜죠?”
“나는 네 도움이 필요하고 너도 내 도움이 필요할 테니까.”
이제야 좀 대화 방향이 제대로 가고 있는 듯했다.
“중앙 감찰청이랑 사이가 좋지 않은 듯한데, 이참에 정보도 줄게. 중앙 감찰청의 칼 세이건이 너를 매우 탐탁치 않게 보고 있더라고.”
“칼 세이건 후작 말입니까?”
“못 들었나 보네. 얼마 전에 칼 세이건 공작이 됐어. 너도 짐작은 했겠지만 칼 세이건, 걔가 참 별종이거든.”
“…….”
“별종이긴 한데 공작이 됐으니 능력을 의심할 수는 없지. 걔는 판단했어. 너를 ‘반란분자’로.”
와락, 미간이 구겨진다.
“황태자인지 알고 그런 건지 모르고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알든 모르든 할 말은 없을걸. 너도 한 일이 있잖아.”
“범죄자를 잡아넣은 건데 그걸 못마땅하게 여긴 거라면 오히려 제가 문제가 아니라 저쪽이 문제 아닙니까?”
“그건 네 생각이고.”
“…….”
“솔직히 말해 보자. 네가 베크를 죽인 이후 남궁철영에게 접근한 이유는 동대륙에서 벌어지는 이 일련의 사건들에는 연관성이 있고 그 끝에는, 분명 ‘더 큰 이유’가 있을 거라는 확신 때문이었잖아. 아니야?”
“맞습니다.”
“그 생각을 너만 했을까?”
“…….”
“칼 세이건, 걔도 너랑 같아. 동대륙에 분명 어떤 비밀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놈도 베크를 조사하고 있었어. 중간에 끼어들어서 베크를 죽이고 동시에 천하성까지 건드려버린 너는 걔 입장에서 매우 거슬리는 존재였겠지.”
미간이 구겨진다.
“이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해두는 건데, 내가 독립을 준비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건 전 대륙에 나를 포함해 네 명밖에 없어. 원래는 다섯이었지만 한 명을 네가 죽여서 네 명이 됐지. 칼 세이건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그렇게 극소수만 알고 있는 비밀을 밝혀낼 수는 없어.”
류진이 빙긋 웃는다.
“너도 알겠지만 레이먼드 베크는 입이 무거워. 황제가 보았던 대로 신념이 있는 남자였지. 동대륙에는 밀로스 제국의 형식적인 감찰관이나 이딴 게 아닌 진정한 왕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적극적으로 동의했어. 그게 과연 단순히 자신을 위한 일이었을까?”
“…….”
“그는 황제의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느꼈지. 황제가 나이 들어 판단이 흐려졌거나 하는 그런 생각 같은 건 안 해. 나이가 들어봤자 회귀 전의 나이를 기준으로 오십 대, 현생의 나이로는 삼십 대 후반인데 뻔한 거지.”
무엇이 뻔하다는 걸까.
“황제는 동대륙이라는 거대한 무대를 ‘시험 장소’로 사용하고 있는 거야. 뭐라고 할 생각은 없어. 그리고 내가 없듯 황제도 없겠지. 이 모든 일은 동대륙에서 벌어지는 일이니까. 자, 이제 이야기해 보자고, 너의 궁극적인 목적이 뭐지?”
이해가 갔다. 류진이 어떤 목적을 지니고 있는지.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나서야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저와 대륙을 나눠서 가지자, 이겁니까?”
류진도 웃는다.
“확실히 이해가 빨라, 대답이 듣고 싶군, 내 제안이 어때?”
“나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서로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이게 진짜 본론이었다.
“간단해. 내가 너에 대해서 자세하게는 알지 못해도 네가 무엇을 하려는지는 대충 알아.”
“그게 뭡니까?”
“세력을 기르는 것.”
“…….”
“회천교를 휘하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런 이유겠지. 너는 적이 많아. 멀리 갈 것도 없이 중앙 감찰청의 칼 세이건은 너에게 적대적이지. 너의 신분이 황태자가 아니라면 독고다이처럼 혼자 움직이는 게 맞긴 해. 하지만 아니잖아.”
“…….”
“황태자로서 밀로스 제국의 차기 황제가 되려는 너에게 필요한 게 뭘까. 하나밖에 없지. 세력. 국가를 만들고 이끄는 게 개인으로 가능했다면 힘 있는 놈들이 왜 세력을 만들었겠나. 너는 세력이 필요하고 그 세력은 중앙 감찰청을 견제하는 데 큰 힘이 될 거고 너에게 반대하는 이들에게도 큰 위협이 되겠지. 마치, 현 황제가 밀로스 제국을 건국할 때 휘하에 거느리고 있던 ‘도관’처럼.”
류진이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너는 너만의 ‘도관’을 만들어. 나를 포함한 천하성은 절대 방해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물론 방해만 안 하는 게 아니라 도움도 줄 거야. 필요한 게 있음 바로 말해. 바로 지원해주지. 그 대가로 내가 원하는 건.”
“원하는 건?”
“운하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대해 ‘침묵’해줘.”
“그게 답니까?”
“다는 아니고, 밀수와 관련되어 여러 번 협조 요청이나 이런 게 있을 텐데, 거기에 감찰관으로서의 ‘합리적인 결론’이 필요해.”
“합리적인 결론?”
“뻔한 거잖아. 무죄, 혐의 없음, 이런 거.”
안 물어볼 수가 없었다.
“돈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내 질문에 류진과 사혼제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 이 질문은 중요했다.
운하에서 벌어들이는 돈은 분명 상상을 초월한다.
밀수를 담당하는 상단에 뇌물을 먹이고, 서대륙의 관리들에게도 뇌물을 먹이고.
등등등.
이 모든 게 과연 돈 때문일까.
돈이라는 건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밀수로 벌어들이는 돈들은 그 이상이다. 사방에서 밀수에 관련된 사안을 조사한다고 해도 그 모든 것을 무마할 정도의 돈이 천하성에 있는 것을 나는 안다.
그렇기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솔직히 감찰관으로서 할 일이 그렇게 많지도 않다.
이미 서대륙에 매수한 이들이 있고 밀수를 담당하는 상단들은 전부 천하성의 편이다.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의 원대한 목표를 내게 스스럼없이 이야기한다고? 그게 단순히 ‘돈’ 때문이다? 말도 안 된다.
류진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돈보다 중요한 게 있나? 너도 밑에 사람을 거느리게 되면 알게 될 거야.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거.”
물끄러미 류진을 바라보았다. 류진도 조용히 나를 바라보았다.
더 간단하다.
지금의 내게 류진의 제안은 쥐약인가, 아닌가.
쥐약이라면 먹어야 하는가, 먹지 말아야 하는가.
대화의 흐름을 보았을 때 내가 회천교를 전멸시키지 않았고 오히려 회천교를 휘하로 끌어들이려 한다는 것을 류진은 확실하게 알고 있다.
만약 중앙 감찰청의 칼 세이건이 이것을 알고 나를 압박하려 한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어떻게든 빠져나갈 수 있다. 회천교에 남은 이들을 모조리 몰살시키고 이 사안에 대해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들을 최대한 많이 죽이면 된다.
설령 아는 이들이 남는다 해도, 지금의 경우라면 눈앞의 류진 정도가 될 거다. 류진 정도가 알고 있다고 해도 증거가 없으면 전부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손에 묻혀야 하는 피는 너무나도 많을 것이다. 아직 무언가를 제대로 해보지도 않았는데 지레 겁먹고 엎어버리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멍청한 짓이다.
천천히 류진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류진의 제안은 쥐약이 맞다.
먹어야 하는 쥐약.
류진의 입장에서도 내 존재는 쥐약일 거다.
지금 내밀고 있는 류진의 저 손은 도전이다.
같이 쥐약을 먹고 먼저 뒤지는 쪽이 누구인지 가려 보자는 그런 쥐약.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대로 류진의 손을 잡았다.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운하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성주님의 뜻에 따라 해결될 겁니다.”
류진도 웃었다.
“청장님의 비밀은 지켜질 것이며 청장님은 동대륙에서 천하성에 버금가는, 어쩌면 천하성보다 더 대단한 세력을 거느리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잘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