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639)
제 640화
대충 정리가 됐다.
동대륙에서 벌어진 일들도, 셀과의 관계 개선도, 마음을 고백했고 받았다.
정말 정리가 된 게 맞다.
하지만 끝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끝은 시작에 불과하다.
잭이 말했다.
“아들.”
“예, 아버지.”
“이제 정식으로 황태자로서 활동해야지?”
다니엘도 할 말이 있었다.
“그 전에, 한 가지 확실히 해야 할 게 있습니다.”
“뭔데, 그게?”
“언제 물러나실 겁니까?”
잭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잭뿐만이 아니라 주방 쪽에서 지켜보고 있던 샬롯과 발렌타인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질문이 조금 당황스러우십니까?”
“어, 그런데 조금이 아니라 많이.”
잭이 웃는다. 두 남자는 식탁에서 마주 보고 앉아 서로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다니엘은 잭의 진심을 알기 위해.
잭도 다니엘의 진심을 알기 위해.
서로는 서로가 잘 안다.
“당황스럽긴 한데, 답해 주지 못할 것도 없지.”
잭이 발렌타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심통 난 표정의 발렌타인에게 조금 미안한 표정을 지은 것도 잠시, 이내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서대륙에 문제가 여러 개 있어.”
“그렇습니까?”
“솔직히, 너도 다 기억하니까 알 거 아니야. 지금부터 쓰이는 역사는 과거 그 어느 순간에도 없던 역사야. 네가 패도를 걸으면서 생긴 나비효과 같은 거지.”
잭이 고개를 돌려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타노스가 말하더라. 은퇴하고 싶다고.”
조금 뜬금없었다.
“은퇴, 말씀이십니까?”
“응. 언제더라, 네가 보급청장까지 올라갔을 때, 기억나?”
“예. 납니다. 4회차 밀로스력 28년.”
“그리고 가장 길었던 게 언제였지?”
“12회차 밀로스력 40년입니다.”
“그 시기까지 타노스는 단 한 번도 은퇴를 원했던 적이 없었어. 기억나?”
“예. 납니다.”
“네가 동대륙에서 타노스랑 1:1로 싸웠을 때, 그때 타노스가 그러더라고 이제 은퇴해도 될 것 같다고.”
다니엘은 잠시 침묵했다.
확실히 변하긴 했구나.
“녀석이 밀로스 제국의 수호자이긴 한데, 너도 알잖아. 수호자라는 자리는 사실 의미 없는 자리라는 거.”
“…….”
“타노스가 중요한 이유는 녀석이 지금 도관의 관주를 맡고 있다는 거야. 너도 알겠지만, 도관은 지금 분열되어 있어.”
“아버지가 의도하신 거 아닙니까?”
“의도한 거지. 그리고 타노스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도관의 전대 관주였던 론은 도관의 기틀을 닦았고 도관의 현재 관주인 타노스는 불순분자들을 솎아내는 일을 했어. 아들.”
“예, 아버지.”
“도관은 밀로스 제국을 지탱하는 조직이야. 그들은 세상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어. 황제의 눈과 귀가 되어 주는 존재들이지.”
“…….”
“이게 무슨 말이냐면, 도관을 완전하게 네 세력으로 만들어야 진짜 손발을 얻는다는 뜻이야. 물론 너로서는 할 말이 있겠지. 천마신교를 도관처럼 만들면 안 되겠냐고.”
잭이 부드럽게 웃었다.
“가능은 해. 가능은 한데, 너무 비효율적이잖아.”
“그렇습니까?”
“왜? 아들 생각은 다른가?”
“……솔직히 다르지는 않습니다.”
수십 년에 걸쳐 황제에게 충성하는 이들로만 꾸려 온 도관과 갑작스럽게 교주가 되어 이끄는 천마신교는 분명 그 근본부터가 다르다.
“천마신교를 버리라는 게 아니야. 두 대륙을 철저하게 분리하라는 뜻이지.”
“분리 말씀이십니까?”
“서대륙의 도관을 정리하는 일을 너한테 맡기고 싶어. 도관이 완전한 네 세력이 된다면 너는 서대륙의 모든 정보를 가지고 놀 수 있는 존재가 돼. 즉 황제의 자리에 앉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거지.”
잭의 말은 간단했다.
“서대륙의 도관을 네가 정리해 봐. 그리고 도관을 네 것으로 만들어 봐. 그러면 그때 선위禪位할게.”
다니엘은 잠시 침묵했다.
“아버지.”
“그래, 아들.”
“도관만을 정리해라, 그러면 황제 자리를 주겠다. 그게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왜? 이번에도 아들 생각은 달라?”
“예. 다릅니다.”
잭이 흥미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 다를까? 한번 듣고 싶네.”
“동대륙은 지금 전체적으로 낙후되어 있습니다.”
“그건 맞지.”
“동대륙을 재건하고 싶습니다.”
잭이 턱을 긁적였다.
잭은 바보가 아니다. 다니엘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금방 눈치챘다.
“선위하는 건 동대륙을 먼저 재건한 이후에 해 달라?”
“예.”
잭이 다시 고개를 돌려 발렌타인을 바라보았다. 심통 난 표정은 여전했다.
“여보. 아들놈이 우리 은퇴 시기를 더 미루자는데, 어떻게 생각해?”
“그걸 왜 내게 묻느냐. 항상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했으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그 말에 발렌타인이 입꼬리를 꿈틀했다.
잭이 웃으며 말했다. 확실히 잭은 웃음이 많다.
“기분 좀 풀어. 이제는 혼자 결정할 일 없으니까.”
“……그렇게 말한다면 그래, 은퇴 시기를 조금 더 늦춘다고 해도 달라질 게 뭐가 있겠느냐. 아들이 그걸 원한다는데. 그럼.”
“들어줘야겠지?”
발렌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잭이 다시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좋아. 아들 말대로 하자. 동대륙의 왕으로서 동대륙을 재건해 봐. 그 이후에 이 자리에 올라. 그런데.”
그런데, 이다음이 중요했다.
“그럼 이 자리는 동대륙의 왕과 제국의 황제가 대화를 나누는 자리가 되겠네?”
“네.”
“그러면 아들로서보다, 동대륙의 왕을 대하듯 이야기할게. 명칭은 동왕東王이라고 불러도 되나?”
“저는 상관없습니다. 폐하.”
“좋아. 동쪽의 왕아.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내가 너무 양보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들어?”
“듭니다.”
“그럼 공평해야겠지? 내 쪽에서도 조건을 걸게. 도관을 정리하는 일은 너 혼자서 해.”
“……저 혼자서 하라는 말씀은……?”
“천마신교의 힘을 빌리지 않고 혼자서 하라고. 대호법이라고 했나? 영월이라는 그 애, 되게 총명하더라. 걔 도움도 없이 해. 타노스의 도움도 마찬가지고 론의 도움도, 유설하도 양불휘도. 동대륙에서 네가 오늘까지 쌓아 온 그 모든 것의 도움을 받지 말고 혼자서 해.”
이 말은.
“오늘부터 수호자라는 직책은 폐지할 거야. 그리고 타노스는 휴가 간 걸로 처리할 거고.”
다니엘은 조용히 잭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 네가 황태자라는 거 동대륙 사람들은 모르지?”
“예. 모릅니다.”
“그럼 간단해지겠네. 동대륙 감찰관에서 너는 도관의 관원으로 보직 이동이 될 거야. 무슨 말인지 이제 확실히 이해가 가?”
“예.”
“먼저 동대륙으로 가서 밀린 일을 좀 처리하고, 그다음에 서대륙으로 와. 시간은 넉넉하게 일주일 정도 주면 되나?”
“충분합니다.”
“이번 일만 끝나면 정식으로 너를 동대륙의 왕으로 선포해 줄게.”
다니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마저 밥 먹자.”
“예, 아버지.”
“여보랑 샬롯도 이리 와. 같이 먹자. 오랜만에.”
그렇게 다 함께 식사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다니엘은 느꼈다.
도관을 정리하는 일.
이게 서대륙에서의 마지막 일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 * *
서대륙으로 돌아온 나는 곧장 천마신교의 모든 인원들을 모았다.
당연히 타노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딱 한 명.
스승님을 제외한 모두가 동대륙 천하성 감찰청으로 집합했다.
그들과 모인 자리에서 나는 아버지와 나눈 대화를 이야기해 주었다.
시간 회귀나 이런 것은 이야기 안 했고, 아버지는 동대륙의 일을 동대륙의 힘만으로 처리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다시 서대륙으로 넘어간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는 타노스를 바라보았다.
“폐하께서 말씀하시길, 오늘부터 수호자라는 직책을 없앤다고 하셨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타노스는 의외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애초에 수호자라는 자리는 모두가 알 듯 그냥 형식적인 자리였다.
서대륙에서 황제를 제외한 그다음으로 강한 자이면서 황제가 허락한 자율권하에서 황제의 특명을 수행하는, 그런 자리가 바로 수호자다.
없애는 게 맞았다. 의미도 없고.
들어보니 애초에 타노스도 수호자라는 직책을 없애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쉽게 납득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다음 말은 조금 납득하지 못했나 보다.
“그리고, 이제 휴가를 가시랍니다.”
“휴가요?”
“예. 들어보니까 전부터 계속 요청하셨다고 하던데, 아닙니까?”
“맞긴 한데, 그 휴가가 지금…….”
타노스로서는 당황스러울 거다. 휴가를 요청했던 건 맞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문제는 시기다.
하필이면 지금?
“도관 내부에 처리하지 못한 일이 있습니다.”
“마침 그 이야기도 하려고 했습니다.”
“예?”
바로 말했다.
“그 도관의 일을 폐하가 제게 맡기셨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간단했다.
조용히 침묵하고 있던 영월이 물었다.
“다시 서대륙으로 가시는 건가요?”
“그래, 도관의 관원이 되라더군.”
“…….”
할 말을 잃은 표정의 영월을 바라보며 물었다.
“표정이 왜 그래?”
“……이해가 가지 않아서요.”
“어느 쪽이?”
“교주님께서는 동대륙의 일을 거의 완벽하게 처리하셨습니다. 이미 동대륙을 지배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중앙감찰청이 내밀었던 소수점의 범죄율? 못 지키는 게 이상합니다. 기본적인 성과가 아니라, 역사상 현 황제 폐하를 제외하고 이만한 업적을 이룰 수 있는 경우는 아마 앞으로도 없을 거고 이전에도 없었습니다. 상을 줘야 함이 마땅한데 상은커녕 관주도 아니고 일반 관원으로 가라니, 너무 불공정한 처사입니다.”
“만약 그게 불공정하지 않다면?”
잠시 영월이 눈을 끔뻑였다.
영월은 바보가 아니다. 분명 똑똑하다.
“……설마 이번 일까지만 ‘메론’으로 살 생각이십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말하면.
“이번 일을 끝내면 동대륙의 왕으로 세상에 선포해 주신다고 하더군.”
이건 분명 대단한 일이다.
밀로스 제국에는 왕이 없다. 실질적으로 왕의 행세를 하는 이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은 왕이 아니다.
정식으로 왕이 된다는 것은 분명 다른 거다.
밀로스 제국 역사상 한 번도 없던 일이고 이 한 걸음은, 앞으로의 역사를 크게 장식할 거다.
아마 체계로 굳어질 수도 있다.
한 명의 황제, 한 명의 왕.
그리고 그 왕의 자리에 앉는 것은 황태자, 혹은 황제로부터 완전한 인정을 받은 자.
나는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마다 생각이 깊은 건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작은 목소리로 침묵을 깼다.
“선위를 하신다더군.”
“예?”
타노스를 비롯한 모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앉아. 오버하지 말고.”
“…….”
“내가 밀로스 제국의 황제가 되는 건 동대륙을 재건한 뒤다.”
“……재건이라 하면…….”
“동대륙을 무인들의 성지로 만들 생각이다.”
그대로 탁자를 두드렸다.
“서대륙의 문물을 적극 받아들이고, 동대륙의 무림서열록은 개편할 것이다.”
“개편이라 하면…….”
“죽은 사람의 이름이 너무 많아. 전부 지우고 체계적으로 다시 쓸 거다. 순위가 높은 이들에게는 그만한 대우를 해 줄 것이고 중책을 맡긴다. 무너진 건물은 전부 다시 세울 것이며 운하가 있는 쪽으로 더 많은 무림 세력들을 끌어모을 생각이다. 영월.”
“……예, 교주님.”
“모든 계획을 네가 세워라. 제대로 된 계획을 세워서 보고하도록.”
영월이 눈을 끔뻑인다. 그걸 제가 다 하라고요? 그런 표정이다.
“할 수 있어. 스스로의 가능성을 낮게 보지 마라. 그리고 부교주의 자리에 새 인물을 앉힐 생각인데. 하필이면 이 자리에 불참했군.”
당연히 그 인물은 스승님이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도관에 불화가 있는 건 모두가 익히 알 거다. 아는 게 있건 없건 나한테 보고하지 마라. 이번 일은 나 혼자서 해야 하니까.”
주변을 둘러보다 타노스에게 시선을 멈췄다.
“휴가는 동대륙에서 보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도련님, 저 이거 거의 10년 만의 휴간데…….”
“동대륙에는 생각보다 볼 게 많습니다. 관광지도 여럿 있고요. 오신 김에 좀 쉬다 가시죠. 그렇게 쉬시다가.”
“천마신교의 일도 좀 돕고요?”
“예. 힘드시겠습니까?”
“괜찮습니다. 그런데 저보고 휴가를 가라는 폐하의 말씀은 제가 지속적으로 요청했던 ‘그 요구’를 받아들이신다는 뜻인데, 그게 무엇인지 도련님은 확실하게 알고 계십니까?”
“예. 알고 있습니다.”
타노스는 은퇴를 원한다.
“그럼, 제 마지막 일이 되겠군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허허, 고생은 저보다 도련님이 더 하셨지요. 그런데 왜 저한테 말을 높이십니까. 전에는 잘만 낮추시더니.”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까. 말을 낮추기를 원하십니까?”
“뭐…… 저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습니다. 도련님 편하신 쪽으로 하십시오.”
“그래, 그럼 온 김에 천마신교의 일을 좀 도와. 수고비는 넉넉히 챙겨 줄 테니.”
“…….”
“왜?”
“아닙니다. 정말이지, 폐하랑 너무 닮으셨습니다.”
“아들인데 당연히 닮아야지.”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선언하듯, 이야기했다.
“서대륙의 일은 오래 안 걸린다. 한 달, 길어야 한 달 안에 전부 끝낼 생각이다. 그러니 그때까지 다들 잘 지내도록.”
영월이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를 따라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조용히 침묵하고 있던 양불휘도 예외는 아니었다.
모두가, 일제히 포권을 취했다.
“존명-!”
* * *
그대로 자리를 벗어난 나는 곧장 용의 협곡으로 이동했다.
전과 같이, 한 남자가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다.
블랙 드래곤 젠투아다.
아, 한 가지가 달랐다.
그의 분위기다.
전에는 매우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면, 지금은 굉장히 부드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폐하’.”
“……폐하?”
“셀 님께서는 당신을 로드처럼 대우하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앞으로 황제가 되실 분이 아니십니까.”
“그건 맞지.”
젠투아가 웃으며 말했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대로 쭉 올라가시면 됩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걷는 걸음이 가벼웠다.
아직 남은 일이 하나 있긴 하지만 지금 이 일은 그보다 더 중요하다.
계속 걸었다.
나는.
그렇게 용의 협곡 정상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스승님을 볼 수 있었다.
“왔느냐.”
웃고 말았다.
말은 필요 없었다. 이 이상 뭐가 필요한가.
그대로 걸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
순식간에 스승님의 코앞으로 간 나는, 망설임 없이 스승님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스승님도 내게 얽혀 들어온다.
옷을 벗었다. 스승님도 벗었다.
우리는, 그렇게 용의 협곡 정상에서 사랑을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