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643)
제 644화
묘한 침묵이 자리한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칼 세이건의 표정은 잔뜩 굳어져 있었다. 보통 자연경쯤 되는 고수면 감정을 숨기는 데 능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조차 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칼 세이건은 당황해 있었다.
“……태자 전하, 아무래도 큰 성취를 이루신 것 같은데, 맞습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감축드립니다. 밀로스 제국의 미래가 더욱더 밝아졌군요.”
웃고 말았다.
“세이건 공작, 당황스럽나?”
“예. 당황스럽습니다.”
“무엇이 당황스럽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태자 전하가 고작 스무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마신경이라는, 저조차 감도 잡지 못한 경지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두 번째는?”
“왜 여기에서 저를 기다리셨는지에 대한 의문입니다.”
“첫 번째는 그렇다 치고, 두 번째는 황태자가, 중앙감찰청의 청장과 좋은 인연을 만들고 싶어서라는 생각은 안 드나?”
세이건의 표정이 잠시 굳어진다.
“……좋은 인연, 저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은밀하게 오신 데에는 다 이유가 있으실 것 같은데, 구체적인 내용을 듣고 싶습니다.”
구체적.
이게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좋은 단어다.
“요람 왕국에서 밀로스 제국으로 적을 옮길 때, 상당히 많은 이들을 죽였던데 어떻게 된 거지?”
“……혼란의 시대였습니다. 죽일 만한 이들이었고 죽이지 않았더라면 제가 죽었을 겁니다.”
“밀로스 제국으로 넘어와서도 당시 연을 맺고 있던 정보 조직과 용병들을 휘하로 받아들였던데, 그 과정에서 또 생각보다 많은 피가 흘렀더군. 이거는?”
세이건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태자 전하.”
“왜?”
“지금 매우 당황스럽습니다.”
“어떤 점이?”
“반대로 묻고 싶습니다. 태자 전하라면 태자 전하의 자리를 넘보는 이들을 가만히 놔두실 겁니까?”
웃으며 답했다.
“그럴 리가 없지.”
“같은 겁니다.”
“같은 거긴 한데, 도관의 관주도 아니고 부관주 따위랑 정치질을 하는 것도 같다고 봐야 하나?”
세이건이 움찔한다.
“좀 실망이야. 너는 대내외적으로 매우 투철하고, 냉철하며 거기다 열정적이기까지 한 인물로 알려져 있어. 심지어 고작 20년 만에 밀로스 제국의 공작 자리를 차지한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 해. 뭐라고 부르더라. 거의 성공의 아이콘? 재미있는 별명이던데, 이건 마음에 드나?”
“태자 전하.”
“왜?”
“제가 도관의 부관주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부분 때문에 이러시는 겁니까?”
고개를 저었다.
“정확히는 도관 내부에 생긴 파벌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거야.”
“…….”
“본론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거 같은데, 좋아. 본론으로 들어가지. 데니스 군나르에게 너의 치부를 들켰나?”
“……예.”
“그 치부를 무마해 주는 조건으로 무엇을 해 주기로 했지?”
“앞으로 벌어질 도관에서의 ‘숙청’을 모른 척해 주기로 했습니다.”
세상 모든 일들은 어? 하는 사이에 벌어진다.
특히나 큰 그림을 그리는 이들이라면 그 행동은 빠를 수밖에 없다.
아니, 제대로 된 권력자의 자리에 올라가 있는 이들이 큰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보통 사람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중앙감찰청 청장인 칼 세이건도 보통 사람이 아니고 도관의 부관주인 데니스 군나르도 보통 사람이 아니다.
특히 후자의 경우가 문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군나르 가문의 사람이니까.
“괜한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더라고. 칼 세이건.”
“……예, 태자 전하.”
“나는 네가 바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데니스 군나르가 너의 치부를 밝혀내고 있을 때 네가 가만히 있었을 것 같지가 않아.”
“…….”
“도관을 장악하고자 하는 데니스 군나르, ‘놈’에게 붙은 놈들에 대해서 얼마나 조사해 놨지?”
칼 세이건은 잠시 침묵했다. 진중하게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다. 그가 말했다.
“전부 조사해 놨습니다. 인물 특정은 물론 현재 위치까지 하루에 한 번씩 보고받고 있습니다.”
“좋군.”
진심이다.
“내가 놈들의 명단을 내놓으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 거지?”
“드리겠습니다.”
그대로 다리를 꼬았다. 조용히 말을 이었다.
“아버지에게는 아베이루라는 천재가 있었고 어머니라는 조력자가 있었다.”
“…….”
“지금의 내게도 비슷한 이들이 있긴 해. 천마신교의 대호법인 영월은 천재지. 동대륙의 혼란을 수습하고 안정화시킬 인물로 그녀만 한 적임자가 거의 없어. 그 밑의 장로들도 대단하지. 그런데 양불휘와 유설하는 조만간 은퇴할 거다. 도관의 관주인 타노스도 은퇴하겠지. 애초에 수호자니, 도관의 관주니, 이런 자리를 원했던 인물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드래곤 로드, 내게는 스승님이 되시겠군. 이 자리에서는 편의상 로드로 통칭하지. 로드가 천마신교의 부교주가 되긴 했으나 너도 잘 알 거다.”
“……현 황제 폐하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사실 말씀이십니까?”
“그래. 근시일 안에 화해를 하긴 하겠지만. 거기까지다. 드래곤들은 서대륙으로 오지 않아. 대부분 동대륙에서 머물겠지.”
“…….”
“솔직하게 말하지. 칼 세이건, 나는 네가 탐난다.”
꿀꺽, 세이건 공작이 침을 삼킨다.
“권력욕이 상당한 거 같은데, 까놓고 말해 보자고, 넌 어디까지 올라가기를 원하지?”
“……현실적으로 말입니까? 아니면 머릿속에 있는 그대로 말입니까?”
“있는 그대로.”
칼 세이건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그 누구도 올 수 없다.
내가 막아 놨으니까.
칼 세이건이, 눈을 번뜩인다. 그가 숨겨 왔던 욕망을 그대로 표출했다. 그의 입이 열린다.
“태자 전하가 있는 그 자리, 혹은 그 너머를 원합니다.”
“황제의 자리를 원한다?”
“예.”
“너무 비현실적이군. 불경스럽기도 하고.”
“비현실적이지만 그 정도 야망은 있어야 사내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불경은 이미 감수했습니다.”
하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맞다. 사내새끼가 그 정도 야망은 있어야지.
“그런데 황제 자리는 안 될 것 같아. 그 자리는 내 자리거든.”
“…….”
“넘보는 것도 안 돼. 네가 나보다 마신경의 자리에 더 빠르게 올랐더라면 가능성 정도는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먼저 올랐어. 자, 칼 세이건, 다시 묻지. 너는 현실적으로 네가 어느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작위는 공작, 직책은 재상,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까지는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할 만하겠어. 세이건 공작.”
“예. 태자 전하.”
“내게 너의 목숨을 맡길 수 있겠나?”
“…….”
“편파 없이 정당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내게 목숨을 맡기면 10년 안에 너는 이 나라의 재상이 되어 있을 거다.”
“저를 믿으십니까?”
“너 개인은 몰라도 너의 능력은 믿는다. 자연경이라는 자리에 개나 소나 오르는 게 아니니까. 폐하께는 아베이루라는 뛰어난 재상이 있었다. 내게도 너라는 재상이 필요해.”
웃고 있는 내 얼굴을 칼 세이건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가, 내게 말했다.
“세 번입니다.”
“세 번?”
“정확히 세 번의 공격 안에 저를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드신다면 제 목숨을 드리겠습니다.”
칼 세이건은 어떤 식으로든 나와 겨루고 싶은 모양이다.
“제 제의에 응하시지 않아도 아까 말씀드렸던 데니스 군나르 편에 선 도관의 관원들 신상명세서는 전부 건네드리겠습니다.”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럼 자리를 옮기시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자리를 옮기기 전에.
“한 남자를 찾고 있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냈으면 싶은데.”
“찾고 있는 사람의 이름을 알고 싶습니다.”
“안토니오 세나.”
세이건 공작의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 이름을 모를 리 없으니까.
안토니오 세나는 초창기 도관의 사람이다. 그곳에서부터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그는 도관이 밀로스 제국의 황실 근위부대로 재탄생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밀로스 제국력 1년부터 13년까지 도관의 부관주를 지냈으며 14년 이후부터는 은퇴를 선언하고 잠적했다.
즉 현 도관의 부관주인 데니스 군나르가 14년부터 지금까지 부관주 자리에 앉아 있던 것보다 거의 2배는 더 많은 시간 동안 부관주 자리를 맡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타인의 입에서는 꽤 오랜만에 들어 보는 이름이군요. 그 남자라면 세이건 공작가에 있습니다.”
“응?”
“제가 귀빈으로 초청했습니다. 한 2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세이건 공작가에서 제 못난 아들놈과 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가정교사, 뭐 그런 거 하고 있다 이거냐?”
“비슷합니다.”
턱을 긁적였다.
일단.
“자리부터 옮기지.”
“예. 비어 있는 공터를 압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 * *
피가 뚝뚝 떨어진다.
골드웨이는, 그 피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직 모자란 거 같다고.
메론이라는 신입의 명령을 따르는 상황이 어처구니없긴 하지만 지금 상황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눈앞에 있는 15명.
그들은 온몸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고 몇몇은 마나 회로가 완전히 찢어져 일반인이 되어 있었다.
절규하는 이들, 포기한 이들, 살려 달라고 애걸복걸하고 있는 이들.
이들은 도관의 아픈 손가락이다.
아니지.
치부라고 봐도 좋았다.
“……솔직히 너희들에게 큰 원한 같은 건 없다.”
욕설과 살려 달라는 말만이 돌아올 뿐이었지만, 골드웨이는 묵묵히 말을 이었다.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겠지만 너희는 도관이라는 세력의 힘을 안에서부터 갉아먹고 있던 벌레들이다.”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위에서 명령이 내려왔다? 시키니까 어쩔 수 없었다? 도관이 충성하는 존재는 부관주나 관주가 아니다. 폐하다. 폐하는 도관에 명령을 내리고 우리는 그 명령에 부합하는 일들을 한다. 수레의 바퀴 같은 거지. 너희는 폐하의 명령은 둘째로 수행했고 첫째로는 ‘너희가 모시는 사람’의 명령을 들었다. 언제부터 도관의 부관주가 폐하보다 높은 사람이 된 거지?”
눈앞에 있는 남자의 다리를 칼로 쑤셨다. 푸욱.
쑤시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아래로 죽 그었다.
피가 흘러넘친다.
“삼전사들에게 직접 통신구로 보고를 했다. 그랬더니 이렇게 말하더군. 미쳤냐고. 어찌 관원 따위가 지금 명령을 거역하냐고, 네가 하고 있는 건 반역이라고. 그 외 등등, 썩어도 너무 썩었더군.”
정말이다.
삼전사 개개인에게 각각 통신구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보고했더니 위에 말한 대로 똑같이 말했다.
“칼 세이건의 비리를 캐내는 게 사실은 부관주의 독단이라는 것도 이미 알고는 있었다. 향후 세이건의 힘이 더 거대해졌을 때 그의 목을 틀어쥘 무기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전혀 아니었더군.”
“……그만, 그만해라!”
“너희는 칼 세이건의 뒤를 덮어 주려는 쓰레기들이다. 그런 쓰레기들에게는 자비조차 필요가 없는 법이지.”
그대로 서걱, 다리를 잘라 버렸다.
순식간에 왼발 하나를 잃은 1팀장인 에메랄드 젠이 괴성을 내뱉는다.
“아마, 이 일의 끝이 어떻게 되든 나는 죽게 되겠지. 그 신입도 초월자이긴 하나 도관 내부를 흔들었다는 죄로 죽게 될 거고, 상관없다. 너희 같은 버러지들을 미리 죽여 놓는 것만으로 나는 만족하니까.”
칼을 치켜든 골드웨이가 그 검으로 에메랄드 젠의 목을 찢으려던 그때였다.
터억.
누군가 골드웨이의 팔목을 잡아챘다.
골드웨이가 고개를 돌린다. 그의 두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팔목을 잡은 이가, 솔직히 메론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아닌 게 더 문제다.
이 남자를, 골드웨이는 안다.
“오랜만이군. 그간 잘 지냈나?”
“……수석 대전사님……?”
안토니오 세나.
초창기 도관에서 밀로스 제국으로 흘러들어 온 이들 중에 그를 모르는 이는 없다.
그는 초창기 도관에서 모든 대전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던 존재, 즉 수석 대전사였으며 밀로스 제국으로 넘어온 뒤 개편된 도관의 제1대 부관주였으며 그는 무려 13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자리에서 도관의 기틀을 다졌다.
흰머리가 희끗한 그의 외모는 섬에 살았던 그때와 거의 다르지 않았다.
놀라웠다.
그리고 이 압박감.
“……종을 초월하신 겁니까?”
“했지. 한 4년 정도 전에.”
“…….”
“그런데 골드웨이, 지금 상황이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군. 왜 도관의 관원이 관원을 고문하고 있는 거지?”
“……이들은 도관의 의무를 저버렸습니다.”
“그래?”
“예.”
안토니오 세나가 따악,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골드웨이를 제외한 모두가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
안토니오가 그대로 구석에 있던 창살에 등을 기댔다.
“이야기를 듣고 싶군. 해 줄 수 있겠나?”
주변을 둘러본 골드웨이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