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647)
제 648화
“아카데미에 있었을 때였다. 메론으로 활동하던 나는 산적들을 죽인 적이 있었다. 그때 손속이 과했다는 이유로 교내 봉사 명령을 받았었지.”
모르는 이들이 거의 없는 진실 중의 진실이다.
“당시 도관의 관주였던 타노스가 학장에게 교내 봉사를 시켜야 한다며 압력을 가했지. 참으로 개탄스러워, 가진 권력을 그렇게 쓰다니 말이야. 결국 학장은 타노스의 말을 따랐고 공문서를 작성했지. 그때 그 문서에는 부관주였던 군나르 공작, 너의 지장과 타노스의 지장이 함께 찍혀 있다.”
“……그래서 그게 어떻다는 겁니까? 관주가 적극적으로 교내 봉사를 시켜야 한다며 학장에게 도관의 이름까지 걸었습니다. 태자 전하도 아시잖습니까. 도관의 관주가 관주로서 공개적으로 행동하는 일에 대해서는 부관주인 저의 허락까지 필요하다는 거.”
“그래, 잘 알지. 일단 첫 번째.”
다니엘이 손을 뻗어 아공간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낸 뒤 그대로 바닥에 툭 던졌다. 그 종이는 아카데미의 처분 결과서였다. 학장이 아카데미에 공표하는 게 아니라, 황제에게 보내는 결과서.
그곳에는 학장의 직인과 부관주 데니스 공작, 그리고 타노스의 직인이 함께 찍혀 있었다.
다니엘이 말을 잇는다.
“타노스를 아는 인물이라면 이렇게까지 과민 반응하는 게 의아스러웠을 것이다. 네 입장에서는 그 이유를 찾고 싶었을 거고. 도관을 그 이전부터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을 지니고 있던 너는, 아마 이때부터 의심을 품었겠지.”
“…….”
“메론이라는 평민은 대체 어디에서 나타났는가, 그는 전 이스마엘 왕국령에서 태어난 평민이었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너는 정말 확실히 하고 싶었나 보더군. 수하한테 시키거나 도관에 따로 명령을 내리지 않고 직접 나섰으니까.”
“…….”
“이건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얼굴을 바꾸고 체형을 바꾼다고 해서 스스로를 감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점점 굳어져 가는 데니스 공작의 표정과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는 다니엘의 표정은 완벽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부관주 이전에 너는 공작이다. 공작이 신분을 숨기고 멀리 야행을 떠나는 것을 그 누가 반길까. 적어도 ‘아베이루 재상’은 너에게 항상 사람을 심어 놨었다.”
다니엘은 이번에도 아공간을 열었다. 그곳에서 서류철을 꺼내고는 바닥에 툭 던졌다. 당연히 그냥 던진 게 아니다. 마나를 담아 던졌다.
파일철은 자연스럽게 데니스 공작의 앞에서 흩어졌다. 서류의 내용은 별것 아니었다. 멀리서 찍은 사진과 데니스 공작이 얼굴과 신체를 바꾼 뒤 전 이스마엘 왕국령을 돌아다니며 메론이라는 남자에 대해 아느냐고 물어보는 것을 직접 본, 어느 한 조사관의 보고서였다. 그 밑에는 아베이루 재상의 직인이 찍혀 있었다.
“이게 두 번째군. 너의 의문은 커져 갔을 것이다. 능력이 많은 평민이라 타노스가 개입한다?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신분 배경이 너무나도 완벽하고 인위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상황이라면, 다른 쪽으로 생각이 들 거다. 대체 메론은 누구인가, 왜 타노스가 그리도 유심히 살펴보는 것인가, 왜 개입하는 것인가, 그 의문을 너는 계속해서 풀고 싶었고, 결국 풀었다. 이게, 그 세 번째가 되겠군.”
다니엘이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그건 편지였다.
“내가 동대륙으로 처음 갔을 때 나는 배로 이동했다. 혼자가 아니라 신분을 숨긴 타노스와 함께 갔었지. 본 사람이 극히 드물긴 했으나 배를 몰던 함장은 분명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 함장은 배를 몰고 돌아오는 도중 사망했다고 하더군. 몰랐는데 도관의 전사였더라고, 그것도 너를 따르는 전사.”
“……설마 그 편지는…….”
“맞아. 그때 그 함장이 너에게 보낸 편지다. 솔직히 회의적이었는데 이게 있을 줄은 나도 몰랐어. 혹시 몰라 뒤를 파 보니 가족이 있더군. 그 가족한테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한 장 더 써 놨다고 하던데, 일을 할 거면 삭초제근, 뿌리까지 뽑아 놨어야지.”
“…….”
“조금 기니 짧게 요약만 하지. ‘부관주님, 메론 감찰관과 위장한 관주님이 갑판 위에서 장막을 치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장막을 치기 전 관주가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확실하게 들었습니다.’. 확실히 그때 도련님이라는 단어가 나온 후에 장막을 쳤던 것 같아. 여기에서 너는 완벽하게 답을 찾았다.”
즉.
“너는 내가 황태자인 것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데니스 공작이 미간을 찌푸렸다. 가만히 듣자 하니 이상했다.
“태자 전하, 감히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해 봐.”
“제가 태자 전하가 메론이라는 위장 신분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과 저희 데니스 공작가를 무너뜨리려는 것에는 대체 어떤 인과 관계가 있는 겁니까? 설마 그 위장 신분을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죽어야 하는 겁니까? 명분을 제시하겠다고 하셨는데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이건 명분도 아닙니다. 트집 잡는 거지.”
다니엘은 웃었다. 진심으로 우스웠으니까.
“그 명분을 지금부터 주려고 했는데, 한번 계속 들어 봐. 이 ‘네 번째’가 끝나고 나면 전부 납득할 테니까.”
다니엘이 다시 뒷짐을 지었다.
“동대륙에서, 나는 회천교를 끌어내기 위해 회천교에 직접 가서 내 목에 현상금을 걸었다.”
“…….”
“그런데 참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더라고. 나는 분명 ‘한번’ 의뢰했는데, 다른 누군가가 한 번 더 의뢰를 했더군.”
데니스 공작이 눈을 감았다.
묵묵히 다니엘은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천하성주 류진, 혹은 지금의 중앙감찰 청장을 하고 있는 칼 세이건, 둘 중 한 명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군.”
다니엘이 걸음을 옮겼다.
“천하성을 전부 뒤졌다. 이 잡듯이 구석구석 전부 훑었지. 일주일 만에 모든 장부를 찾았다. 당연히 비자금도 찾았고. 밀로스 제국을 거의 10년은 넘게 굴려도 남아돌 정도의 돈이더군. 그런데, 그 모든 장부 중에 2억에 달하는 금화가 지출된 내역이 없더군. 그리고 직접 물어보기도 했는데 류진은 아니더군. 그렇다면 칼 세이건을 어떨까. 마찬가지로 칼 세이건도 없었어. 깨끗하더군.”
“…….”
“데니스 공작, 삼전사들을 제대로 관리했어야지. 왜 그렇게 방치했나?”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앞선 함장과 같아. 요즘 유행인지 모르겠는데 보험을 들어 놓는 이들이 많더군, ‘감찰관 메론’에게 2억 금화라는 청부금을 낸 증거를 내가 입수했거든.”
데니스 공작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그의 앞까지 걸어간 다니엘이 손을 뻗어 아공간을 열었다. 그곳에서 잡힌 것은 작은 수정구였다.
다니엘은 긴말 않고 수정구를 살짝 누르며 마나를 주입했다.
그러자, 그 안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부관주님, 이 돈을 정말 그렇게 써도 되겠습니까?
-싫은가?
-……애송이잖습니까. 거기다가 감찰관이기도 하고, 그 감찰관의 목에 2억 금화를 쓴다는 건……. 너무 큰 지출이 아닌가 싶습니다.
-미래 밀로스 제국의 적이 될 수도 있는 남자다. 이참에 회천교의 손을 빌려 죽여 놓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올리버.
-예, 부관주님.
-회천교에 가서 청부를 넣어라. 감찰관 메론은 회천교를 정리하려다 같이 동귀어진했다, 이게 앞으로 쓰일 시나리오다. 이해했나?
-……예.
-그럼 당장 동대륙으로 넘어가도록.
-존명.
온갖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지는 세상이다. 통신 수정구는 밀로스 제국이 건국되기 전부터 만들어졌고 십수 년간 발전됐다.
애초에 녹음 기능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마나로 목소리를 잡아 놓기만 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마법이고 적색 마스터쯤 되면 그걸 못 하는 게 더 이상하다.
“이제 이야기를 좀 정리해 보자고.”
“…….”
“감찰관 메론을 죽여 달라 청부를 했다, 이 정도만으로 공작가를 멸문시킬 수는 없어. 아까 네 말을 빌리자면 그냥 트집 잡는 것에 불과하겠지. 감찰관 메론이 황태자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없으니까. 하지만 감찰관 메론이 황태자라는 사실을 아는 자가 감찰관 메론의 목을 따 달라고 청부를 넣는다면 이건 대체 무슨 죄일까.”
다니엘의 두 눈이 깊게 가라앉는다. 웃음도 없었다.
서늘한 얼굴로 데니스 공작을 바라보았다.
“반역죄다. 황태자의 목에 청부금을 걸었으니 빼도 박도 못하겠지. 데니스 공작, 앞서서 명분이 필요하다 했나?”
“……태자 전하…….”
“지금 제대로 된 명분이 생겨 버렸군.”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다니엘이 말을 이었다.
“도관이라는 황제 근위 부대를 사적으로 운용한 죄, 그 부대 내부에서 분란을 야기시킨 죄, 세상에 퍼져야 할 정보를 임의로 누락시켜 대륙을 혼란에 빠뜨린 죄, 그리고, 감히 황태자를 죽이려 한 죄. 지금부터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겠나?”
데니스 공작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가 자리에서 무릎을 꿇는다.
“죄송합니다. 태자 전하,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고개를 저었다.
의미 없었으니까.
나는 아공간에서 천마신검을 빼 들었다.
오늘 데니스 공작가는 멸문한다.
* * *
밀로스 제국에서 가장 유명한 신문은 타임이다.
타임은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로 나누어지는데, 오늘 발표된 일간지의 제목이 매우 충격적이었다.
‘진짜 황태자가 돌아오다.’
내용은 더 충격적이었다.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했던 평민 메론.
그는 아카데미를 졸업한 이후 동대륙 감찰청으로 발령받는다. 이건 확실히 해야 한다.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한 인재 중의 인재가 동대륙으로 간다? 이건 본래라면 말이 안 되는 처사였다.
그 정도의 인재는 곧장 중앙 기관으로 발령받는 게 정상이다. 하다못해 중앙보급청 내지, 중앙감찰청의 감찰연구관 등, 그런 자리로 가야 하지만 메론은 아니었다.
이건 누가 봐도 좌천이었고, 유배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메론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을 해낸다.
근본적인 질문이다.
동대륙 감찰청으로 발령받는 것이 왜 유배인가.
간단했다. 동대륙으로 발령받은 이들 중 꽤 많은 숫자의 사람이 자살했으니까.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았고, 그곳으로 발령받는 대다수의 이들은 보직 변경을 신청하기 일쑤였다.
그런 곳이다. 동대륙은.
메론은 그곳에 가자마자 자살 사건들을 조사했다. 그리고 동대륙 감찰청장이었던 레이먼드 베크의 비리를 파헤쳤으며 그와 관련이 되어 있던 천하성의 주요 인물들을 죽였다.
정식 절차 없이, 그냥 죽인 거다.
미친놈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지만 후에 보고된 자료를 보면 그럴 만도 했다.
메론은 선제공격을 당했으니까.
즉, 기습을 당했는데도 역으로 그들을 죄다 죽일 정도의 배짱과 힘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그 이후, 사망으로 위장한 기피자들을 죄다 잡아들였으며 그들을 막는 가문들을 그 자리에서 멸문시켰다. 동대륙을 암중에서 지배하던 회천교를 뿌리째 뽑았으며, 과거 황제에게 대항했던 거대한 적 중 하나인 천마신교의 부교주 천월을, 메론은 죽였다.
천하성주 류진이 ‘반란’을 도모했고 과거 황제의 적이었던 천마신교의 교주인 영정, 천외천의 수장이었던 혁진강, 그리고 툴칸 제국제일검이라 불리던 하인케스 베커만까지.
이 세 명을 부활시켰다.
메론은 이번에도 이들을 막아선다.
천하성을 완전히 무너뜨렸으며, 영정을 죽이고 혁진강을 죽였다. 하인케스 베커만은 드래곤 로드 셀이 죽였다.
이게 진실이다.
이 정보들은 처음에는 제대로 전달되다가 어느 순간부터 왜곡되었다. 그 괴리가 계속 존재하고 정보는 계속해서 왔다 갔다 하니, 서대륙의 주민들과 동대륙의 주민들이 혼란에 빠지는 웃기지도 않는 일이 벌어졌다.
이 모든 일을 누가 했는가.
도관의 부관주였던 군나르 가문이 했다.
군나르 가문이 중간에 장난질을 하지 않았더라면 온전하게 알려졌을 진실이 지금 제대로 알려졌다.
세상이 떠들썩해졌다.
사상 최초의 일이다.
현 황제인 잭 밀로스는 귀족과 평민을 차별하지 않았다.
사기를 예로 들었을 때, 가해자의 사기로 인해 피해자가 집안 재산의 절반 이상을 잃었다면 마찬가지로 가해자도 집안 재산의 절반을 잃게 만들었다.
피해자가 중복된다면 기둥뿌리 자체를 뽑아냈다. 귀족 평민, 가리지 않았다.
적어도 공정함에 있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번 건 굉장히 달랐다.
사안이 사안이라고 해야 할까.
밀로스 제국의 역사상, ‘공작’이 이 정도의 사고를 친 적은 없었다. 심지어 그 공작이 황제의 핏줄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황제는 과연 그동안 그러했던 것처럼 벌을 내릴 것인가. 아니면 위선자처럼 그냥 넘어갈 것인가.
귀추가 주목됐다.
그리고 이 사안에 대해서, 황제는 직접 입을 열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짐은 황태자에게 모든 것을 일임했다.’
단 한 줄의 문장이었지만 이례적이었다.
그리고 그 한 줄 때문에 밀로스 제국은 긴장했다.
여태껏 공식 석상에서 활동했던 ‘황태자’가 연기였고 지금 메론으로 활동하는 그가 진짜 황태자라면.
기존에 파악해 두었던 황태자에 대한 인식들은 전부 바뀌어야 했다.
메론은 포악하고, 자비가 없는 남자로 유명하다.
가진 힘도 무시하지 못한다. 핏줄도 핏줄이고 그가 걸어온 세상은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제대로 된 수라의 길이었으니까.
동대륙에서 활동했던 것처럼 서대륙에서도 활동할 것인가.
그렇게, 사람들은 군나르 공작가에서 벌어지는 일에 주목했다.
직접 보고 싶은 이들도 있었다.
그들 모두 군나르 공작가로 향했다.
이건 확실히 해야 한다.
신문이 나온 날짜, 그리고 황제가 직접 문장을 적어 보낸 시각.
이 모든 것들은 ‘후’에 벌어진 일들이다.
이미 모든 상황은 종료됐다.
군나르 공작가에 도착한 이들은, 그곳에서 벌어진 일을 보고 경악을 금치 않을 수가 없었다.
몇몇은 그 자리에 주저앉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먼 거리에서 한 남자가 지켜보고 있었다.
* * *
묵묵히, 연기가 피어오르는 군나르 공작가를 바라보았다.
밀로스 제국에는 총 여섯 개의 공작가가 있었다.
발란티에 공작가, 시어런 공작가, 레오폴드 공작가, 이스마엘 공작가, 세이건 공작가.
마지막으로 군나르 공작가.
오늘로써, 완벽하게 군나르 공작가가 무너졌다.
군나르 공작가의 건물은 굉장히 크고 높았다.
그런 공작가 꼭대기에, 총 다섯 개의 목이 걸려 있었다.
데니스 군나르와 그의 두 아들, 각각 에딘 군나르, 캘빈 군나르, 그리고 그의 딸 제인 군나르와 군나르 공작의 아내였던 셀린느 공작 부인.
이렇게 다섯 개였다.
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나는 지금, 군나르 가문의 씨를 말렸다.
적어도 지금 이 세상에 군나르라는 이름을 쓰는 이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섯의 목 아래에도 잘린 목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군나르 공작가에서 일하던 식솔들이다.
식객으로 머물던 이들도 있었고, 군나르 가문이 사적으로 키우던 병사들도 있었다.
그 숫자가 대충 천이 넘는다.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내 뒤에, 정확히 120명의 남자들이 무릎을 꿇은 채 대기하고 있었다.
그중 흰머리가 인상적인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안토니오.”
“……예. 태자 전하.”
“내가 과하다고 생각하나?”
“……아닙니다. 밀로스 제국의 안위를 위협한 적이었습니다. 과하다는 생각 같은 것은 하지 않습니다. 또한.”
“또한?”
“큰 감정 같은 것도 없습니다.”
이 부분에서 작은 의문이 들었다. 감정이 없다?
안토니오가 말을 잇는다.
“죄를 지은 이들이 벌을 받았을 뿐입니다. 만약 감정이 있어야 한다면, 아마 저희는 죄책감을 가져야겠지요.”
“많은 감정들 중에 왜 하필이면 죄책감이지?”
“죽은 도관의 관원들은 분명 잘못된 선택을 하긴 했지만 이 자리에 있는 이들 대부분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은 인물들입니다.”
물끄러미 안토니오를 바라보았다.
“어린 시절을 함께했던 동료이기도 했고, 섬에 살던 도관이 세상으로 나와 폐하를 모시기로 맹세했을 때, 함께 맹세했던 이들이기도 합니다. 중간에 합류한 이들도 있긴 하지만 결국 대다수가 초창기 도관 출신입니다. 이들의 욕망을 막지 못했다는 점,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저희가 그것을 알고도 방치했으니 이런 결과는 당연합니다. 이 상황에서 가져야 할 감정은 죄책감 말고는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납득이 가기도 했고.
안토니오의 뒤쪽에, 고개를 숙인 채 무릎을 꿇고 있는 백여 명의 관원들에게 물었다.
“같은 생각인가?”
“예. 태자 전하.”
“나는 좀 다른데.”
모두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으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다.”
“…….”
“도관의 시조는 군나르였지. 폐하의 피와 내 피에는 군나르의 피가 섞여 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그래, 이건 파벌 싸움이 맞다. 군나르 피에 얽히지 않고 앞으로 더 나아가려는 자들과 군나르 피에 얽혀 권력을 탐한 머저리들 간의 파벌 싸움. 죽은 놈들 입장에서는 둘 다 결국 군나르니 무엇을 따르는지 애매할 수밖에 없었을 터.”
혀를 찼다.
“다르게 보면, 결국 이 자리에 있는 너희들도 전부 죽여 놓는 게 더 편하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