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87)
제 88화
슬쩍 고개를 돌렸다.
팔짱을 낀 스승님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고, 그런 스승님의 입에서 조금 냉정한 말이 내뱉어진다.
[벌어지지 않은 미래에서 내 제자가 되었던 너에게 새로운 시련이 찾아왔구나.]냉정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상황을 냉철하게 바라본다고 해야 할지.
어떤 표현이 어울릴지 모르겠다.
[보여 주거라. 네가 책임지는 방식을.]나는 스승님의 과거를 안다.
스승님은 왜 공동에 갇혀 있었던 걸까.
긴 이야기를 내 입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건 스승님의 역린이니까.
하지만, 한 줄로 설명이 가능하다.
버려졌다는 거.
눈앞의 샬롯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가장 이상적인 선택은 하나다.
샬롯을 버리는 거.
나는 게걸스럽게 내 목덜미에서 피를 흡혈하는 꼬맹이의 뒷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저는 다릅니다.”
[…….]“저는 제 사람을 절대 버리지 않을 거고, 한번 한 약속을 무조건 지킬 겁니다.”
그러고 보니, 꼬맹이의 머리에서 익숙한 샴푸 냄새가 난다.
얘, 꽤 좋은 샴푸 쓰나 보다.
내 거랑 같은 거였나.
에휴.
“오랜만에 운동 좀 하겠네.”
꼬맹이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그대로 아래로 내려 꼬맹이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촤악-!!
그대로 집어 던졌다.
꼬맹이가 멀리 날아가며 그 궤적을 따라 허공에 그림 그리듯 핏물이 수놓아진다.
당연히 저건 내 피다.
투욱-
바닥에 착지한 꼬맹이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붉은 눈에 검은 피부.
생각 외로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작은 악마 같다고 해야 할까.
문제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우물우물 씹어 댄다는 거.
아무래도 저거, 내 목덜미에서 방금 떨어져 나간 살덩이인 거 같다.
검게 물든 채로, 서늘하게 웃고 있는 우리 꼬맹이의 모습이 참 낯설다.
아니, 잠깐만.
이 모습을 아까 그 꼬맹이들 앞에서 보여 주지 그랬어.
그러면 죄다 오줌 지렸을 텐데.
콰아아앙-!!
샬롯이 자리를 박차고, 나를 향해 달려든다.
확실히 빠르다.
평소의 샬롯이 아니었다.
몸을 트는 것과 동시에, 달려드는 샬롯의 몸을 살짝 밀었다.
말이 살짝이지.
방향을 완전히 틀어 버리며 던져 버렸다는 게 정확하리라.
쨍그랑하며 유리가 깨지고, 샬롯이 밖으로 튕겨져 나간다.
그대로 창가에 발을 올렸다.
수련장에, 거꾸로 박혀 있던 샬롯.
그리고 조금 멀리서 멍한 표정으로 여기를 바라보고 있는 타노스와 셀.
특히 셀의 동공이 미친 듯이 지진하고 있다.
검게 물든 악마…… 뭐 그 예언을 똑같이 떠올리고 있는 듯.
그대로 자리를 박차며, 샬롯의 앞에 내려섰다.
“주…… 주군? 이게 대체……?”
-검게 물든 악마…….
두 녀석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데.
“신경 쓰지 마.”
오른손으로 부서진 어깨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식후운동이니까.”
오른손에 빛이 흘러나온다.
5서클 마법 리커버리.
부서진 뼈가 천천히 맞춰지고, 통증이 사라진다.
이어서.
콰앙-!
샬롯이 자리를 박찼다.
아까보다, 더 빨라졌다.
고개를 틀자.
스악-!
샬롯의 주먹이 스친다.
자연스럽게 몸을 옆으로 틀었다.
파앙-!
샬롯이 시도한 박치기가 이번에도 허공을 스치는데, 소리가 심상치 않다.
이어서 오른쪽 팔목을 들어 올리자.
콰아앙-!
허공에서 몸을 튼 샬롯의 발뒤꿈치가 내 팔에 막힌다.
와, 너 이런 움직임도 가능했었냐.
곡예 그 자체라고 해야 할까.
어려서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지나치게 유연하네.
그대로 팔을 풀고, 가볍게 자리를 박찼다.
콰앙-!!
샬롯의 주먹이, 방금 전까지 내가 있던 곳에 박힌다.
허공에서 몸을 틀며 자리에 착지하자.
또다시 샬롯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상하게 더 빨라진 거 같은 느낌인데.
슬쩍 손을 뻗어, 내 복부를 향해 휘둘러지는 샬롯의 팔을 붙잡았다.
터억-!!
파앙-!!
파공음이 터지고, 어떻게든 한 대 때리겠다는 듯 샬롯의 왼쪽 어깨가 꿈틀한다.
자연스럽게 오른팔을 뻗자.
터억-!
파앙-!
샬롯의 두 팔을 움켜쥐었다.
슬쩍 고개를 돌리자, 타노스와 셀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신경 쓰지 말고, 너희들 할 일 해.”
“……진짜 괜찮으시겠습니까?”
“당연히 괜찮지. 우리 샬롯이 때 이른 사춘기가 와서 그래.”
“…….”
-…….
Chapter 6
이런 기분은 정말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흥미롭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격한 관심이라고 해야 할까.
샬롯의 심장에는 어느새 2개의 서클이 자리해 있었다.
정확히 5분 전이었나?
계속 움직이더니 자연스럽게 서클 하나가 새겨지더라.
얼탱이가 없다기보다는, 되게 신기했다.
피안화는 앞서서 말했듯 진조들의 왕위 계승식 때나 등장하는 현상이다.
정확히 말하면 마나와는 차원이 다른 혼기를 쓰는 진짜 초월자들의 피를 후대 진조에게 한계치까지 먹이고, 또 먹인다.
그렇게 되면 혼의 피를 마신 진조는 그 힘을 견디거나 흡수하기 위해 스스로의 그릇을 넓힌다.
그게 피안화라는 현상이다.
대개 그 계승식에서 혼의 피를 마신 진조는 진정한 후계자로 선포되는데 이게 참 애매하다.
난 뱀파이어의 왕도 아닌데 어찌하다 보니 샬롯한테 왕위 계승식을 치러 주고 있었네.
피식 웃으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후웅-!
샬롯의 공격을 가볍게 피하고. 한 번 더 뒤로 물러서자.
후웅-!
어느새 자세를 잡고 휘두른 샬롯의 발이, 내 코앞을 스쳐 지나간다.
다시 생각해도 매우 흥미롭다.
샬롯의 움직임은 분명 나와 닮아 있었다.
이어서 샬롯이 뒤로 멀찍이 자리를 박차며.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린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대지를 뒤덮고 하늘을 물들일 칠흑이여.”
익숙한 언령.
슬쩍 고개를 돌려 보자, 창가 쪽에 앉아 있던 스승님의 눈이 살짝 커진다.
분명, 디트리히와 펜타닐 암살단을 몰살시키던 그때 스승님이 사용하셨던 혼의 언령이다.
샬롯은 마치 기계처럼 말을 내뱉고 있었다.
“내 명에 반응하여, 세상에 재림할지어니.”
그런데, 그게 따라 한다고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심지어 샬롯이 내뱉는 건 언령도 아니었고.
이어서, 샬롯을 기준으로 약 2서클의 모든 마나가 파편이 되고 가루가 되며 내게 뻗어온다.
어떻게든 흉내를 내 보려는 거 같은데, 많이 다르다.
아니지, 차원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저거, 흉내 내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역시, 우리 꼬맹이.
잘 컸네.
잘 컸어.
슬쩍 손을 들고는 내 마나를 퍼트렸다.
파아아앙-!!
허공에서 마나와 마나가 충돌하며, 가벼운 충격파가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치솟아 오르는 먼지 너머로 샬롯이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이 보인다.
머리가 기억하는 ‘그것’과는 다르다는 그런 모습인데.
그것도 잠시였다.
녀석이 다시 내게 달려든다.
그런데 그 자세와 발놀림.
뭔가 익숙하다.
내가 싸움에 임할 때의 모습 같다고 해야 할까.
‘이거…… 설마.’
방금 전 스승님의 기술도 그렇고, 저 움직임도 그렇고.
혹시.
샬롯은 그간 보고 겪었던 걸 본능적으로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대로 손을 뻗었다.
멀리 있던 나뭇가지가 내 손을 향해 날아온다.
나는 이것을 ‘몽둥이’처럼 쥐고, 샬롯을 향해 휘둘렀다.
샬롯이 빠르게 고개를 숙인다.
후웅-!
빗나간 몽둥이.
샬롯의 움직임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어서 몽둥이를 쥐고 있던 내 팔목을 정확히 오른 주먹으로 타격하고는, 왼손으로 내 멱살을 쥐고, 발을 뻗는다.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넘어졌고, 아니 넘어져 주었고, 그런 내게 샬롯은 팔을 뻗어 내 오른팔을 움켜잡았다.
마치 ‘기억’ 속의 한 장면처럼, 샬롯이 내 팔을 꺾는다.
아니, 꺾으려 했다.
나는 접혀 있던 팔을 그대로 움직이며 샬롯의 멱살을 움켜쥐고, 반대쪽으로 집어 던졌다.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서는 내 입가에는 아마 미소가 지어져 있을 거다.
혹시나 했는데 진짜였네.
“눈으로 보았던 움직임과 기술을 따라 한다…… 기분이 묘하네.”
방금 그 일련의 상황들은 내가 헤르만 후작가의 망나니를 제압하던 그때의 그 상황과 똑같았다.
놈이 휘두르던 몽둥이를 피한 뒤 팔목을 가격, 그리고 멱을 움켜쥐고 바닥에 메다꽂은 뒤 팔을 꺾어 버리는.
분명 그때의 동작들이다.
이거, 거울을 보는 느낌이다.
콰앙-!
샬롯이 다시 자리를 박찬다.
주먹을 휘두르려는 모양샌데, 그 움직임에 맞춰 뒤로 살짝 물러서며 그 주먹 안에 나뭇가지를 쥐여 주었다.
누가 보면 물건을 건네받는 그런 상황으로 오해할 법한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동작.
이어서 뒤로 한 걸음 더 물러서자, 샬롯이 내 머리를 향해 나뭇가지를 휘둘렀다.
후웅-!
뒤로 고개를 젖히며 피하기 무섭게, 허공을 베던 나뭇가지가 타점에 도달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방향을 바꾼다.
그리고, 다시 움직였다.
빠르고, 날카롭다.
심지어 방금보다 약 두 배 정도는 더 빠르다.
한 번 더 고개를 뒤로 젖히자.
후웅-!!
또다시 내 코앞을 스쳐 지나간다.
이 상황은 분명 발락투스와 싸우던 그 상황이다.
이다음 행동이…….
고개를 들었다.
샬롯이 허공에서 몸을 회전시키며 자연스럽게 원심력을 담은 발뒤꿈치를 휘두르고 있었다.
목표는 당연히 내 옆머리.
아마, 그때 나는 이 공격으로 발락투스를 멀리 날려 버렸었지.
그런데, 쪽팔리게 날아갈 순 없잖아.
왼쪽 팔목을 들어 올렸다.
콰아아앙-!!
조금 따끔한데.
나는 이번에도 슬쩍 뒤로 물러섰다.
거리가 살짝 벌려진 그때, 샬롯이 나뭇가지를 천천히 옆으로 늘어트린다.
그리고.
“빠르기가 질풍처럼.”
와.
만약에, 정말 만약에.
샬롯이 혼기를 쓸 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장담하는데, 나랑 스승님 말고는 절대로 못 막을 괴물이 탄생할 거다.
“……찢어발기리라.”
나뭇가지가 휘둘러지고, 동시에 나뭇가지가 산산조각 난다.
샬롯의 모든 마나가, 마치 내가 쓰던 언령처럼 바람의 칼날이 되어 나를 향해 뻗어 온다.
슬쩍 손을 들어 아까처럼 마나를 퍼트리며 모두 상쇄시키며 생각했다.
샬롯은.
진짜 천재구나.
천재가 될 수밖에 없는 그런 녀석이었구나.
스승님이 나를 가르치며 어떤 생각을 했을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이런 기분이었구나.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