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Fields RAW novel - Chapter (304)
필드의 어린왕자-304화 (외전 완결)(304/304)
외전 12화 에필로그
2038. 07. 04. 일요일. 캐나다, 위니펙.
매니토바 주의 주도이자, 대초원 지역에 붙어 있는- 대도시의 서쪽에선 아시니보인 강줄기가 흘러들어온다.
이어, 물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산업단지와 동물원. 골프 클럽 등이 순차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데.
한여름을 맞이한, 도심의 정취를 숨길 생각이 없는지. 곳곳에 자리한 나무둥치는 선명한 적갈색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새 삼십대 중반에 다다른, 검은색 머리카락을 지닌 남자가 위니펙의 풍경을 즐기러 온 것은 아니라서-
그의 발걸음은 도시 외곽.
101번 고속도로 옆에 붙어 있는, 널따란 초지(풀이 나 있는 땅)에 도달해서야 멈춰 섰다.
[Chapel Lawn Funeral Home & Cemetery]정문에 붙은 단출한 글씨체뿐만 아니라.
군데군데 서 있는 나무와 비석들이, 해당 부지가 장례식장 및 묘지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와중.
킴은 남쪽 지역으로 걸어 내려와, 묵묵히 안장(安葬)하는 과정을 지켜본다.
함께 둘러앉은 수십의 사람들과는 일면식도 없었으되, 묘지의 모습도- 고인의 존재도 여전히 익숙하게 느껴졌다.
그래.
오늘은, 린다 마시.
바리 배리의 어머니가 아들의 곁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자주 만난 것은 아니었으되, 매해 안부 인사를 건네거나 종종 캐나다에 방문해 대화를 나누고는 했었는데.
이제 그녀는, 고운 흙이불을 덮고 영원한 잠에 든다.
이에, 킴은 마지막 배웅에 나선 도중- 불현듯 사색에 빠졌다.
어릴 적에는 죽음이라는 게, 이별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썩 마음에 와닿지 않았건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별의 무게가 늘어나는 것 같다고… 그는 못내, 씁쓸한 미소를 베어 문다.
그러나저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땅을 다지며 장례 절차가 마무리되고.
친인척들은 애써 슬픈 기색을 몰아낸 뒤, 방문객들에게 다가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당연히, 킴에게도 또래 남성(3, 40대로 보이는)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분명 초면일진대, 낯익은 얼굴이다.
“직접 보는 건 처음이네. 휴 배리야. 와줘서 고마워.”
“…응.”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 안면과 눈꼬리, 입매 등이 어찌나 똑같던지. 킴은 미숙한 영어 실력으로 대꾸하고는, 이내 상대방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말로만 들어왔던, 바리 아저씨의 아들은 역시나 제 아버지를 쏙 빼닮았더라.
이 와중.
침묵이 오해를 낳았던가, 휴 배리는 지갑을 꺼내 명함을 건네준다. 네모난 흰색 종이는 상대방이 변호사라는 사실을 알려왔다.
“음, 내가 그… 바리 배리의 아들이야.”
“알아. 많이 닮았네.”
“하하… 아들이니까.”
연달아, 그는 킴을 향해 감사를 표한다.
린다의 장례식을 주관하는 입장으로서,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캐나다까지 날아와 준. 축구 스타에게 정성을 다하려 한 것.
특히, 서른두 살에 레알 마드리드 생활을 마무리한 뒤. 영국-런던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던 남자가 재차 이적을 앞두었다 들었기에.
휴 배리는 적당한 수준의 공치사를 섞어 말을 이었다.
다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린다에 의해 마련된 만남은, 자연스레 바리 배리에 관한 주제로 옮겨간다.
말인즉슨.
에이전트의 아들 또한 사십대가 가까웠던 탓에,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아버지로서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고백이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까 조금은 알 것 같더라. 사실, 어렸을 때는 아버지도… 너도 미웠거든. 아들한테는 제대로 못했으면서, 자기 아이도 아닌 애한테는 서슴없이 애정을 드러낸다는 게… 간접적으로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싫더라고.”
“나도 네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래?”
그새, 하나둘.
장례식에 참여했던 이들이 확연히 느슨해진 분위기 아래 제각기 발걸음을 옮기고.
킴은 영문 모를 친근감에 기대어 작은 배리의 마음을 위로한다.
“응. 술을 마실 때마다 네 이름이 나왔어.”
“…그건 몰랐네. 난 나중에 가서 아버지가 보냈던 이메일만 봤거든. 거기엔 마치 너를 아들 삼은 것처럼 쓰여 있었지.”
“맞아. 반쯤은 그랬던 것 같아. 실제로, 바리 아저씨도 그렇게 말했고.”
“…….”
“나를 통해서 비춰 보고 싶었을 만큼… 아들이 그리웠다더라. 난 그냥 감사했는데, 도리어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어.”
“…….”
광활한 묘지를 둘러보며, 상념에 잠긴 것도 잠시.
휴 배리는 별안간 양팔을 벌려 상대방과 포옹한다.
킴 또한, 순간 움찔했을 뿐. 상대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고맙다.”
“…….”
뒤이어. 그는 포옹을 풀며 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는, 이내 ‘Bari Barry’라 적혀 있는 비석 근처로 시선을 돌린다.
한국처럼 봉분(흙을 쌓아 올려 만듦) 형식이 아니었기에, 평평한 잔디밭 위에는 꽃다발만 올라가는 것이 보통이나.
제 아버지의 자리만큼은, 장례 업체에서 마련한 유리관 속.
황금빛 축구공이 놓여 있다.
“아버지가 자랑스러워하실 거야.”
첫 번째 발롱도르는, 오롯이 바리 아저씨의 것이었다.
* * *
일반적으로 여름은 더위와 씨름하는 계절이되, 축구팬들에게는 이적시장이 열리는 시기이기도 한지라.
네티즌들은 명문 팀과 주요 선수들을 놓고 퍼즐 맞추기에 한창이다.
특정 선수의 몸값과 나이, 지표 등을 놓고 설전이 벌어지는 것인데.
그러던, 8월 초.
맷 로(Matt Law : 언론사 기자)의 SNS를 통해 킴의 이적설이 현실화되며, 게시판은 엉망이 됐다.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 유럽 챔피언스 리그와 월드컵 등. 프로로서 적잖은 나이에도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여전히 축구계의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킴은-UD 라스팔마스로 복귀할 것이다.]517 Comment
FederalMan81 : 결국에는 이렇게 되나. 왜 떠나려는 거야(눈물 이모티콘). 이제 겨우 서른다섯 살인데 운영진도 어떻게든 붙잡았어야지. 리그에서 최소 서른 골씩 넣어주는 선수가 누가 있다고.
└Denish : 서른다섯이 겨우는 아니지. 게다가, 애당초 3년 계약이었어. 이적료를 회수하려면 지금 내보내는 게 맞지. 게다가, 선수 측이 매우 단호하다고 들었음.
└NotClaym : 2년 동안 행복했다. 단지, 스트라이커 매물이 없어서 걱정이야. 누가 이 자리를 대체하겠어?
└Cowcao_02 : 닐 스노우?
└jgg_Outcast : 아, 저번 시즌에 다섯 골 집어넣은 애?
OcZero0 : 근데, 라스팔마스가 킴의 주급을 감당할 수 있나? 라리가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작년에는 11위였던데.
└Island_onfire : 대폭 삭감해서 간다는 루머가 있음. 물론, 이적을 결정한 건 루벤 카스트로의 전화 때문이라고…….
└impjunk : 아내는 싫어했다더라. 아이들 교육하기엔 런던이 훨씬 좋으니까.
└vbwv10 : 라스팔마스도 나쁘지는 않아. 1부 리그로 승격한 이후, 중위권에 안착하며 무난한 성적을 거두고 있을뿐더러- 구단주가 재정 관리를 제대로 함. 부채 비율도 라리가 최하위권이고, 유소년 풀도 풍족한 편. 물론, 이딴 것보단 감독이 루벤 카스트로라는 게 훨씬 큰 영향을 끼쳤을 테지만(웃음 이모티콘).
└blueseleven : 너 라스팔마스 팬이지.
그리고 그로부터 채 2주가 지나지 않아, 이적 당사자는 그란 카나리아에 발을 들인다.
아이들이 학교에 갈 날이 몇 년 남지 않았던 탓에, 보금자리는 산 중턱. 루벤 카스트로가 살던 곳- 인근으로 정했으며.
주택보다는 저택에 가까운, 커다란 집구석에 짐을 채워 넣었다.
그렇게.
그는 17년 만에, 꿈꾸던 섬으로 되돌아왔다.
“…그러니까, 네가 좀 신경 써달라는 소리지.”
“…대놓고 책임지라는 말 아니야.”
“맞아.”
다만, UD 라스팔마스의 감독이 된- 루벤 카스트로가 따스한 마중을 나설 리는 없어서.
킴은 주말 오후.
홈구장에서 팬들의 격렬한 환대를 받고 돌아오자마자, 소속 팀 감독이 되어 버린- 늙은 펭귄에게 시달리는 중이었다.
“…이름이 뭐라고?”
“파빌 포라스. 브라질 국적이야. 재능은 기가 막힌다니까? 아, 물론 너보다는 못하지. 까마득해. 너만치 크는 건 기대도 안 한다고.”
“…유치하게 왜 이래?”
“왜 이러긴, 네가 비위 상한 표정 지을까 봐 그렇지.”
“…….”
이때다 싶었는지, 루벤 카스트로는 주름진 손가락을 놀려 선수의 사진까지 보여주는데.
별안간, 거실 저편에서 발소리가 나더니- 이내 킴의 무릎께로 작달막한 꼬마아이가 달라붙는다.
그녀의 정체는, 올해로 다섯 살 먹은 첫째 딸.
“아빠!”
“응.”
“아빠!”
“…응.”
“아빠!”
“…….”
말은 반복적이었으되, 표정을 보아하니 무슨 상황인지 어렵잖게 알아차릴 수 있어서. 아버지가 된 남자는 딸을 들어 올려 제 품에 안았다.
분명, 하비와 노는 것이 재미없어서 빠져나왔으리라.
“여자애랑은 어떻게 놀아줘야 하는지 모르겠네.”
아니나 다를까, 다니와 함께 스포츠 행정으로 빠진- UD 라스팔마스의 부회장이 거실 저편에서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이에, 신경 쓰지 말라는 의사를 표현하던 찰나.
식탁 반대편에서, 포기를 모르는 카스트로가 말꼬리를 잡아챘다.
“아무튼, 내 부탁 좀 들어줘라. 얘만 딱 집어서 잘 대해주라는 건 아니야. 그냥… 뭐랄까. 식단이나 근육 관리하는 법이랑, 어렵잖게 고칠 수 있을 법한 단점 등. 미미하고도 소소한 것들을 조언해 주는 걸로 충분해.”
“전혀 미미하고, 소소하지 않은데.”
“그래서, 싫다고?”
“응.”
“…….”
카스트로의 나이도 환갑에 근접했으나, 순간 팔뚝 근육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니 건강은 여전한 것 같다고.
킴은 어린 딸아이와 함께 손가락을 꼬물거리는 장난을 치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꼬맹아… 네가 나한테 그러면 안 되지. 내가 너를 위해 얼마나-”
“아빠는 꼬맹이 아닌데.”
“…….”
“아빠가 왜 꼬맹이야?”
“크흠. 그래. 그럼, 어… 켱횬아.”
“……?”
연이어, 그는 짜증 난 기색이 역력한 남자에게 나름의 설득을 이어나갔다.
인연이라는 게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고, 다니는 이사회의 일원이. 하비는 부회장이 된 데다, 본인은 무려 감독이라는 중책을 맡지 않았느냐며.
신축 구장의 명칭도 ‘Estadio de KIM(킴의 구장)’으로 정해질 것이 유력한데, 네가 이러면 우리 세대가 비난을 받는다는 둥.
성숙한 선수의식이 필요하다는 말을 나불거린 것.
“무엇보다, 나는 네 방향지시등 같은 사람이라고! 스텔라 어디 갔냐!”
“…뭐?”
“없지? 비행기 타고 일하러 갔지? 야, 꼬맹아. 그거 다 내 아내가 사업한다고 바빴던-”
그러다 문득, 눈가에 주름이 짙어진-늙고 못난 펭귄의 발언은 킴의 무릎께에서 튀어나온 항의에 의해 가로막힌다.
“엄마 있어!”
“…엉?”
“나 엄마랑 아빠 다 있어!!”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이에 루벤 카스트로가 심히 당황하여 오해를 바로잡으려 했으나, 소녀는 반쯤 울먹거리며 아빠의 품에 안겨 버린다.
사실, 첫째 딸은… 킴의 부족한 언어 능력(혹은 눈치)을 많이 닮았다.
* * *
라리가 개막을 일주일 앞둔, 어느 날.
킴은 라스팔마스에서의 일상을 누린다.
출장을 다녀와 깊게 잠이 든 스텔라를 대신해, 아이들의 아침을 차려주었고.
설거지를 하는 도중,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될 것 같다는- 페드리의 전화를 받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더해, 공식 훈련에 참가하기 전까지는 연년생인 두 딸과 공놀이에 매진했으며-
나가기 직전에는 아내와 함께 차 한잔을 마셨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애지중지하는 바리 배리의 차량 대신, 중형차에 탑승해 라스팔마스 훈련장으로 향한다.
추적추적-
그란 카나리아의 산등성이 곳곳에는 보기 드문 이슬비가 쏟아지는데.
화산섬이 내려다보이는 것을 즐기다 보니, 차량은 금세 GC-23번 도로를 거쳐 훈련장 근처의 상가 골목길까지 접어든다.
“…으음.”
그때 갑작스레, 어딘가 눈에 익은 인영이 스쳐 지나가서.
킴은 사이드미러를 통해 상대방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찰나의 고민 끝에 운전대를 돌려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짙은 갈색 피부에 두피에 바짝 달라붙은 머리카락, 둥그스름한 콧방울이… 루벤 카스트로의 휴대 전화기에서 봤던 이와 똑 닮아 있었다.
굳이 티를 내고 싶지는 않았으나, 비도 오는 데다 훈련장 입구에는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을 것이 뻔했던 고로.
같이 태워 가는 편이 옳을 것이다.
이내, 드르륵- 소리와 함께 차창이 아래로 내려가고. 킴은 상대의 얼굴을 마주함과 동시에, 이름을 까먹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그래서 그는 그 옛날, 누군가의 방식을 빌려 썼다.
“…Niño brasileño(브라질 꼬맹아). 비 내린다. 타고 가.”
“…괜찮은데.”
“뒤에 차 온다.”
“…….”
자기 자신도 부루퉁한 표정을 지은 채 흘끔거렸을까.
머뭇거리며 조수석 문을 열고 들어온, 열여섯 살 유망주의 모습에. 자연스레 입꼬리가 끌려 올라간다.
“…왜요?”
“아니야.”
“…….”
“식사는 했어?”
“……?”
뜬금없는 질문에 파빌 포라스가 머리통을 굴려대는 와중.
킴은 문득, 브라질 출신의 소년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비춰 본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실로 다양한 것들을 잃어버렸으나- 덩달아 그만큼 많은 것을 얻었기에…….
꽤 괜찮았노라고.
그는,
카나리아는 생각했다.
(외전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