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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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 포트 로버츠 (2)
연대장이 말했다.
“이제 와서 말하기는 좀 새삼스럽지만……. 지난 작전, 정말 고생 많았네. 정신 나간 놈들을 상대로 잘 싸워줬어.”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소년장교의 대답을 들은 연대장, 래플린 대령이, 엷은 미소를 짓는다.
“모범적인 답변이군. 그래, 자네 말이 맞아. 허나 더 안타까운 일이 될 수도 있었지. 아기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불한당들이 애국자들을 살해하고, 이 나라는 자네를 잃어버리고……. 이런 사건이 벌어질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한숨지은 연대장은 겨울에게 자리를 권한다.
“일단 앉게. 금방 끝날 이야기로 부른 건 아니니까.”
“네.”
빈자리를 채우는데, 앉는 순간 창문이 번뜩였다. 몇 초 후에 유리가 덜덜 떨린다. 태풍이 비록 소강기에 접어들었어도, 먼 곳에서는 이따금씩 천둥이 치곤 했다. 창밖의 하늘은 구름이 아직 두꺼워 민낯을 볼 수 없었다. 비가 다시 내리는 건 시간문제로 보였다.
연대장이 운을 띄운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네. 자네, 무섭지 않은가?”
“…….”
공교롭게도, 오는 길에 한 번 들었던 질문이다. 소녀의 목소리가 겹쳐져서, 겨울은 잠시 뜸을 들이고 말았다. 연대장이 오해하기에 충분했다. 피부 검은 대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귀관의 이번 전투기록을 검토해봤어. 거의 죽을 뻔 했더군.”
“우연한 사고였습니다.”
“전장에서는 운도 실력으로 봐야해. 좋은 군인이 되려면 불운을 인정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네. 그동안 강운이 따른 귀관은 더더욱 그렇지. 인정하게. 자네는 언제든 죽을 수 있어.”
아무래도 그냥 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겨울은 궁금했다. 오늘 부른 용건과 관련이 있나?
“그래서 말인데…….”
관련이 있었다.
“중위. 혹시 일선에서 물러날 생각이 있는가?”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말 그대로, 귀관이 원한다면 더 이상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다는 거지.”
대령이 두 장의 서식을 꺼내어 테이블 위에 나란히 놓는다.
“귀관은 선택할 자격이 있네. 비록 젊은 나이지만, 다른 사람이 평생을 바쳐도 부족할 용기와 헌신을 이미 보여주지 않았나. 명예훈장이 그 증거지. 물론 군대를 떠나라는 말은 아니야. 직접 싸우지 않고도 사람들을 도울 방법이 있다는 뜻일세.”
“죄송합니다만, 저는 아직 총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먼저 이것들을 보고 나서 말하세나. 검토할 가치가 있을 거야.”
내용을 짐작하면서도, 겨울은 연대장의 권유에 따른다. 하나는 위촉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어떤 부대로의 전입신청 양식이었다. 후자의 부대명이 인상적이었다.
‘방역전쟁 전술지원그룹?’
소속부대 변경은 일반적으로 군 내의 인사명령에 의거한다. 그러나 소수의 특별한 부대들은 지원자 심사를 통해 구성원을 충당했다. 겨울은 후자에 속하는 부대들을 제법 알고 있었으나, 지금 받은 서류상의 부대명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무래도 이번 세계관 고유의 무작위 상황연산 값인 듯 했다.
‘선택할 자격이 있다고 했으니,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는 의미인가?’
사실 위촉장 쪽의 직책도 명칭이 낯설었다. 어느 쪽이든 정보가 부족하다.
서류에서 시선을 떼자, 자연스럽게 연대장의 말이 이어진다.
“하나씩 설명하지. 먼저 이쪽. 이건 조만간 만들어질 군정청의 감사위원 위촉장이라네.”
“군정청이요?”
“음, 정확하게는 중부 캘리포니아 난민 군정청이라고 해야겠군. 앞으로 군에 의한 난민관리를 좀 더 공식화하겠다는 거지. 솔직히 지금까지의 행정지원은 여러모로 미비했으니까.”
조금 망설이던 연대장이, 사정을 조금 더 풀어놓는다.
“사실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고……. 아무래도 위에서 여론을 신경 쓰는 모양이야.”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대선이 다가오고 있거든. 정치 싸움은 이런 상황에서도 벌어지는군. 참 쓸 데 없기도 하지……. 문제가 되는 여론은 우선 난민들에게 우호적인 쪽이 하나 있네. 난민들을 병력자원으로 쓰려는 정부시책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어. 난민들의 어쩔 수 없는 처지를 악용한다는 거야.”
“미국 시민들이 치러야 할 희생을 전가하려 한다, 그런 이야기인가요?”
“정확하네. 도덕적으로 바르지 못 하다 이거지. 어느 정도는 이 나라의 우월함에 대한 믿음도 깔려있는 것 같네만, 이건 내 관점이니 걸러서 받아들이게나.”
연대장은 본인의 관점이라고 했으나, 겨울이 보기엔 충분히 일리 있는 통찰이었다. 도움을 요청하러 온 사람들이니 지켜준다. 미국은 위대한 나라니까. 모두가 이런 마음가짐은 아닐지라도, 일부는 경도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겨울이 평한다.
“부분적으로 맞는 말이긴 해도, 저는 동의하기 어렵네요. 살아남기 위해서 누구나 최선을 다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난민과 미국 시민을 구분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내 생각도 그렇네. 언젠가는 어차피 다 함께 싸워야 해. 인류의 존망이 걸린 전쟁 아닌가. 순서가 뭐가 중요하겠어? 뒤에 있는 사람들과 위에 계신 분들은 현장을 잘 몰라. 사실 이건 내게도 조금 해당사항이 있겠지만. 흠, 조금? 조금 맞겠지. 아닌가?”
자신 없는 태도로 자문하는 래플린 대령. 희극은 희극인데 연기가 아니었다.
겨울이 묻는다.
“그런데 연대장님.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잘 이해가 가지 않아서…….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된 지금도 대통령 선거가 정상 진행되나요?”
“이 나라는 남북전쟁 중에도 선거를 치렀네. 물론 지금이 훨씬 더 큰 위기겠으나, 봉쇄선에서 1년 가깝게 잘 막아내고 있으니 선거를 보류할 사유는 못 된다는 게 야당의 입장이야. 시민들 의견도 그렇고. 이래저래 힘든 시기다 보니 다들 불만이 많은가봐. 그걸 무마하기 위해서라도 선거가 필요하다고들 하더군. 글쎄, 대통령 각하께서도 힘들어서 때려 치고 싶으신 게 아닐까? 아, 마지막은 농담일세.”
이런 말을 하면서 대령은 못내 어색한 표정이었다.
“군인은 원래 정치에 신경 쓰면 안 되는 건데. 어쨌든, 지금 말한 여론에는 귀관의 지분도 적지 않아. 난민들의 처우가 얼마나 열악하면, 자네 나이에 무기를 들었어야 했느냐는 거야.”
“별로 달갑진 않네요.”
“그렇겠지.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단 말이야……. 문제가 되는 다른 여론은 더 달갑지 않을 걸세. 이쪽은 난민들을 아예 추방해버리자는 미치광이들이거든. 근거 없는 헛소문에 휩쓸린 사람들이지.”
“헛소문이요?”
“그래, 헛소문.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악질적인 게 난민들이 병을 퍼트리고 다닌다는 루머일세. 전에 질병통제예방센터에서 모호한 발표를 한 뒤부터 믿는 사람이 급격히 늘었어.”
“혹시 그 사람들이 중국인들을 유난히 싫어하진 않나요?”
“뭐, 그렇지. 자네도 들은 게 있는 모양이군. 아니면 짐작한 건가?”
“둘 다입니다.”
겨울은 리아이링을 떠올렸다. 기지 북쪽의 작은 마을을 점령할 때, 그녀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중국인들이 불만 억제를 위한 희생양이 될까봐 두렵다고.
질병통제예방센터는 대역병이 생물병기일 가능성을 암시했다. 중국이 만든 무기, 중국의 관리 실패. 이것이 지금 맹목적인 사람들이 믿는 내막일 것이었다. 중국이 첫 번째 피해자일 가능성은 배제하고서.
래플린 대령의 남은 말을 풀었다.
“굳이 중국인이 아니더라도, 난민에 대한 공포가 조금씩 확산되고 있어. 멕시코 방면 국경을 넘어오려는 사람들도 싫고, 동부 해안으로 불법 상륙하는 사람들도 싫은 거야. 동부에서 소규모 감염사고가 증가하다보니, 난민이고 뭐고 전부 다 쏴 죽이자는 극단주의자들까지 지지를 얻고 있는 상황이라네. 주로 남부에서 말이지. 그래봐야 일부에 불과하네만, 난 그치들이 늘어난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안 들어. 그래도 정치인들 입장에서는 신경이 쓰이겠지.”
“어느 쪽이든 군정청을 만드는 데 부정적이겠네요. 그래서 제가 필요한 거로군요.”
“어쩔 수 없지. 귀관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이번 해리스 대위 사건으로 좀 더 늘어나지 않겠나 싶군. 아니, 더 늘어날 수나 있나? 꼬장꼬장한 레드 넥들도 자네가 싫다고는 안 할 텐데.”
“그 사건, 결국 공개하기로 결정이 난 건가요?”
“거의 확실하다고 보네. 위에서도 손익을 계산해봤겠지. 전투기록을 검토해보니 나라도 공개하는 편이 낫겠다고 느꼈고. 사건 자체는 대단히 민감하고 부정적이지만, 각색하기에 따라서는 아주 극적이지 않은가 말이야.”
대령이 다음 말을 고르는 데엔 시간이 걸렸다. 할 말이 많아 헤매는 것 같았다.
“인상적인 부분이 참 많았네. 해리스 대위에 대한 귀관의 경고부터 시작해서, 수적 열세인데도 공세로 치고 나간 부분이 참 훌륭했어. 귀관이 직접 적 별동대의 측면을 잡아낸 건, 성공시킬 자신만 있다면 우수한 판단이었지. 결과적으로 옳은 결정이었고. 자네의 교육을 맡은 게 3대대장 캡스턴 중령이었다고 하던데, 혹시 그에게 배운 건가?”
겨울에게는 저널로 간략하게 지나간 부분이었다. 지력보정으로 뜨는 증강현실을 보고, 겨울이 침착하게 대답한다.
“네. 이라크에서 저처럼 행동한 장교나 부사관들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중령이 잘 가르쳤군. 맞아, 그런 용감한 사람들이 있었지. 허나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절대로 자네 정도는 아니었어. 자신감과 무모함의 경계란 참 애매한 거야…….”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할 건 또 뭔가. 아무튼 그 밖에도 여러모로 영화를 보는 것 같았지. 트랩으로 트릭스터를 잡는 부분이나, 자네가 산채로 매몰되는 대목이 그래. 물 위를 달리는 변종들도 마찬가지고. 무엇보다, 그 긴 밤을 거쳐 결국 아기가 태어난 순간이 감동적이었어. 국방부 공보처에서 환장을 하겠더군. 하지만.”
한 번 말을 끊는 것은 강조의 목적이었다.
“모든 게 다 영화 같아도, 자네 인생은 영화가 아니야. 다시 촬영할 수도 없고, 뒤로 감을 수도 없지. 귀관이 이번에 죽을 뻔한 걸 두고 위쪽에서도 말이 많은 듯 해. 날더러 자네 의사를 확인해보라지 않겠나?”
연대장이 다시 한 번 권한다.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죽음으로 끝나는 영웅담은 사람들에게 비극이나 마찬가지야.”
겨울이 바른 웃음을 만들었다.
“위에서 제 의사를 존중한다는 건, 어느 쪽이든 그만한 이익이 있기 때문 아닌가요?”
“새삼스럽군.”
“그렇다면 제 대답은 같습니다. 아직은 싸우고 싶어요.”
대령이 어깨를 으쓱였다.
“결심이 굳었나…….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거란 예감은 있었지. 이쪽을 권할 의미도 없겠군. 그래도 사령부의 지시이니 한 번 보기나 하게.”
그가 남은 한 장의 서식을 툭툭 쳐보였다. 겨울이 묻는다.
“이 방역전쟁 전술지원그룹은 뭘 하는 부대인가요? 처음 듣는데요.”
“이번에 새로 만들어졌으니 그럴 수밖에. 특수전 사령부 소속이고, 대외적으로는 가장 위험한 임무만 처리한다고 알려질 거야. 실제로는 그 반대겠지만.”
“홍보용이군요.”
“전투를 하지 않는 건 아니야. 단지 안전이 확실하게 보장되는 환경에서, 후방지원 충실하게 받아가며 임무를 수행한다고 보면 되네. 물론 공보처의 촬영팀이 24시간 따라다니는 건 당연한 일이고. 동료들보다는 민사심리전 장교 집단이나 정치인들을 더 자주 만나게 될 테지.”
“싫네요.”
“잠깐도 고민을 안 하는군. 오코넬 중사는 들어간다고 하던데.”
“그게 누구죠?”
“모르나? 지금까지 그럼블 셋을 잡고 여러모로 활약해서 은성무공훈장을 중복으로 받은 양반일세. 모병광고에도 나왔었지. 개자식 운운하는 이상한 모양새이긴 했네만.”
“아.”
더 많은 탄약과 더 많은 개자식들. 겨울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이 세계관에서 겨울은 단연 독보적이지만, 그밖에 전쟁영웅이 없는 건 아니었다. TV에서 매양 나오는 게 그런 사람들의 소식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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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현 시점에서 겨울이의 소득을 계산해봤는데, 명예훈장 수훈자 연금까지 합쳐서 연간 6만 달러가 넘더군요.
부들부들. 작가가 소설 속 캐릭터를 부러워하게 되다니…
#Q&A
Q. 콩자님 : 신학을 아는 사람으로써 소설에 교회가 나오면 책 자체를 접거나 스킵하게 되죠. 대부분은 전문성이 없으면서 왜 아는척을 하고싶은건지 원..
A. 순복음 성도회는 정상적인 종교단체가 아닙니다. 작중에서 대놓고 사이비라고 하고 서술하는데, 그걸 현실의 교회와 동일시하시면 작가가 난처합니다…
Q. 시크한길냥이님 : @ 위대한옛것이시여…. 지독한 독감에 걸렸나이다… 저에게 축복을…
A. 제 축복은 동심에 관한 것밖에 없는데요…음…옆집 요그소토스 불러 드릴까요?
Q. 도화원님 : @위대한 옛것이면서 운석을 타고 내려오는 것으로 보아 그렇게 고등종족이 아니군요!
A. 그 운석 제 코딱지였는데요…
Q. 늘푸르른하늘님 : @작가님의 동심을 위해 1쿠폰 뿌리고 갑니다
A. 한 장의 쿠폰을 받았기에…작가의 의지가 1포인트 찼다.
Q. 생략님 : @Secret Files Tunguska 혹시 이 게임을 아시나요?
A. 글쎄요…처음 듣는 게임입니다. 장르가 공포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