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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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6), 심리치료 (3)
소년을 찾아오는 여인에게, 심리상담은 단순한 핑계가 아니었다.
‘이 아이가 고통스럽지 않았으면 좋겠어.’
송수아의 가면 아래에 흐르는 진심. 그녀는 항상 자책한다. 나는 너무 이기적인 게 아닐까? 겨울의 아픔을 확인하려는 건, 결국 자기 자신에게 위안을 주고 싶은 것이었다. 소년을 배려하는 마음은 부차적이다. 변명으로는 초라했다.
그러나 이미 시작해버렸다. 있었던 만남 만큼의 유대가 이어졌다. 이제 와서 그만둔다면, 그 또한 소년에게 상처를 줄 일.
확실하진 않다. 겨울은 그녀를 어찌 생각하는지. 한 길 사람 속 모른다지만, 소년의 깊이는 범상치 않았다. 자문을 주는 진짜 상담사조차 고개를 갸우뚱 할 정도로.
여인이 유도하고 소년이 작성한 여러 심리검사의 결과들을, 상담사는 이렇게 평가했다.
“명백히 이상합니다.”
그리고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놀라진 마십시오. 이상하다는 것과 문제가 있다는 것은 서로 다른 개념입니다. 통계적으로 봤을 때, 사회 평균으로부터 표준편차의 두 배 이상 벗어나면 일단 이상한 겁니다. 일반적이지 않다는 뜻이죠. 즉 여기서의 이상은 정신질환이 될 수도 있고,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트라우마, 혹은 뛰어난 자질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때의 여인이 물었다.
“박사님께선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시죠?”
“그건……솔직히 모르겠습니다. 가족영역이나 성적영역에서는 억제된 모델로 분석이 가능한데, 전체적으로 보면 굉장히 독특하거든요. 뇌파 분석만 아니었어도, 전 이 결과를 신뢰하지 않았을 겁니다. 아이가 진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판단했겠죠.”
여인의 어두운 안색을 보고, 전문가는 자신의 견해를 덧붙였다.
“사장님께서 걱정하시는 이유는 압니다. 겪은 과거가 과거이고, 청소년기의 상처는 평생을 간다는 게 세간의 상식이니까요. 하지만 그건 사실과 다릅니다. 후천적인 정신질환은 불가역적인 손상이 아니예요. 적절한 상담과 치료를 병행한다는 전제 하에, 약 75% 정도의 회복탄력성이 존재하지요. 극단적인 경우만 아니라면 말입니다.”
“글쎄요. 이 아이의 과거보다 극단적인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요? 낙관적으로 보더라도, 25%의 트라우마는 남는다는 뜻 아닌가요?”
“이런. 잘못 이해하셨군요. 사장님, 인간의 정신은 딱딱 맞아 떨어지는 사칙연산이 아닙니다. 그리고 현대인들 중에 정신질환이 없는 사람도 드물어요. 누구나 내면의 상처가 있고, 그런 상처들이 쌓여 인격의 한 축을 이룹니다. 단지 이 겨울이라는 아이가 무척 특이해서, 함부로 결론짓기 어려울 뿐이지요.”
“결국 확실한 건 아무 것도 없는 셈이군요.”
“실망시켜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이 아이, 부모에게 화를 내지 않으려고 하더군요. 쌓인 감정은 꽤 많은 모양인데 말이죠. 다음에 가시거든 슬쩍 떠보십시오. 상담에 응하는 태도를 보니 그 정도는 괜찮을 것 같더군요.”
심리상담사는 여인과 소년의 만남을 매회 영상으로 전달받는다. 여인으로선 가면을 쓰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였으나, 마음이 무거워지는 일이다. 어쨌든 소년에겐 떳떳치 못한 짓이었으니. 비록 선의에서 하는 행동이라도 마찬가지. 그러나 그녀에게는 대안이 없었다.
‘하루하루가 너무도 불안한걸.’
그 뒤로 오늘이다.
서로 낯을 가리지 않을 만큼 익숙해진 후, 여인은 올 때마다 소년에게 간단한 검사를 부탁하곤 했다. 한 번에 한 가지씩. 그래서 겨울은 지금도 미완의 문장을 채우는 중이다. 같은 검사가 두 번째라 싫은 티 낼 법도 한데, 쉼 없이 적어 내릴 뿐.
정답이 없는 문제들이었다. 떠오르는 것을 즉시 채우면, 그것이 바로 푸는 이의 심상이다. 필요한 조건은 하나. 가급적 시간을 끌지 말 것. 겨울에겐 익숙해진 규칙이었다.
사각사각. 안정감이 느껴지는 만년필 소리. 펜대의 움직임은 소년의 성품과 같다.
여인은 음악을 듣는 기분이었다.
「부모님과 나는 」
고비를 만난 연주가 잠시 끊어졌다. 짧은 정적인데, 길게 느껴진다. 만년필 머리로 입술을 두드리는 고민을 하고서, 겨울은 표정 변화 없이 적었다.
「부모님과 나는 헤어졌다. 」
길고 성실한 다른 문항들에 비해 유달리 짧은 답안이었다. 전번에도 동일했다. 가족에 관한 영역에서 소년은 자신을 억누르는 경향이 있었다.
그 억압에 어떤 의미가 녹아있을 것인가.
몇 번의 고비를 넘긴 겨울은 나머지를 수월하게 채우고, 다 채운 검사지를 여인에게 넘겨주었다. 여인은 그것을 받아 개인 영역에 저장했다. 서류는 빛으로 바스러진다.
겨울이 말했다.
“말씀하세요.”
“으, 응?”
“아까부터 불편해 보이셔서요. 뭔가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게 아닌가요?”
여인은 속으로 자신을 꾸짖었다. 충분히 감추지 못한 게 첫째요, 당황해서 말을 더듬은 게 둘째였다. 그녀가 쓰는 가면에 대해 듣고, 자문을 주는 상담사는 몇 가지 주의사항을 당부했다. 그 중 하나가 당황하지도, 긴장하지도 말라는 것.
때가 늦어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스스로를 빠르게 다스린 여인은, 소년을 향해 부끄러운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미안. 내가 신경 쓰이게 했나보구나. 맞아. 묻고 싶은 게 있어. 혹시 네 기분이 상할지도 모를 내용이라 망설이고 있었단다.”
“글쎄요……. 그런 건 마음이 중요한 게 아닐까요?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께서 나쁜 뜻으로 묻지는 않으시겠죠……. 물어보셔도 돼요. 오해하지 않을게요. 대신, 대답하기 힘들면 안 해도 되는 거죠?”
“물론이지. 아무튼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구나. 그렇다면, 음, 실은 그동안의 검사결과를 보고 생긴 의문인데…….”
그녀는 조심스레 질문했다. 주의가 필요한 뇌관이었다.
“겨울아, 예전에 부모님과 안 좋은 일이 있었니? 그러니까 내 말은, 보통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쁜 일 말이야.”
“네.”
소년의 대답이 너무 즉각적이어서, 여인은 또 한 차례 동요할 뻔 했다. 그녀로서는 고맙게도, 겨울의 말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그게 어려운 질문이었나요……? 전 선생님이 당연히 짐작하셨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검사지 문항에서부터 의도가 뻔히 보이는 걸요……. 아, 그렇다고 거짓으로 적은 건 아니에요. 솔직하게 쓰는 것과 의도를 이해하는 건 서로 다른 차원이잖아요.”
그러더니, 겨울은 그녀에게 거꾸로 묻는다.
“혹시 그게 무슨 일이었는지가 궁금하세요?”
“아니, 아니야. 그건 말해주지 않아도 돼. 말해주면 도움은 되겠지만……내가 알고 싶은 건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가 아니야. 그 일로 생긴 감정을 억누르는 이유가 뭘까, 그게 궁금했던 거란다……. 알잖니. 해묵은 감정이 계속해서 쌓이면, 마음의 병이 되어버리는걸.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된단다.”
네가 병을 얻지 않았으면 해. 겨울은 그렇게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갈등한다. 대답을 피할까?
한숨 한 번 곁들인 결론은 부정적이었다. 실상 별 것도 아닌 일이었다.
“원망하지 않으려고요.”
“응?”
“저희 부모님, 굉장히 나쁜 분들이세요. 제게 잘못 많이 하셨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분들만을 원망하진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잘못된 화풀이인 것 같아서…….”
잘못된 화풀이라니? 원망하지 않겠다니? 충분히 화내고 저주하고 눈물 흘릴 일이 아니었던가? 여인은 혼란스러운 심정으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공백은 길지 않았다.
“여기에 오고 나서는, 혼자서 생각할 시간이 참 많았어요.”
겨울이 기억하는 생전의 마지막 순간은, 하얗고 차가웠던 수술실의 풍경이었다. 풍경의 끝은 분명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잠이 들었고, 깨어났을 땐 이미 혼자만의 세계였다. 이제 더는 돌 무거워질 일 없겠지. 그때 느낀 서러운 해방감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천만 개의 별이 빛나는 공허 속에서 오랫동안 울기도 했다. 참지 않아도 좋았다. 겨울의 눈물에 가슴 미어지는 사람이 여기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후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시간만 흘려보냈다. 아니, 시간과 함께 흘렀다.
“처음에는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미움만 커지더라고요. 아버지도 밉고, 어머니도 싫고. 제가 여기에 있는 게, 저를 사랑하지 않았던 부모님 탓이라고 생각해서. 그런데 그렇게 미움을 잔뜩 키우다보니까……이건 아니다, 이걸로는 부족하다 싶은 느낌이 들었어요.”
듣고 있던 여인은 맥박이 빨라졌다. 미워할 사람이 부족했다는 뜻인가? 부풀어 오른 증오가 새롭게 향했다면, 대상이 과연 누구였을까?
그러나, 그녀의 걱정은 기우였다. 이어지는 겨울의 말이, 예상과는 다른 내용이었기에.
“아버지는, 자식인 제가 봐도 철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책임감도 부족하고, 절제력도 없었죠. 자기 감정이 중요하다보니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는 일도 드물었고요. 어머니도……크게 나을 건 없었네요. 그런데 이분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이랬을까요? 너는 장차 자라서 못된 부모가 될 것이다, 라는 식으로 정해진 운명 같은 건 없잖아요?”
아직까지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여인은 애매하게 동조했다.
“그렇……지.”
“타고난 천성이란 게 있긴 있을 거예요. 하지만 배워야 사람이 되고, 사람은 살면서 성숙해지는 거니까……. 결국 제게 저런 부모님을 준 건 이 세상이 아닌가 싶었던 거예요. 부모님의 부모님이 조금 더 깊게 사랑하고, 부모님의 친구들이 조금 더 좋은 사람이었고, 부모님의 선생님이 조금 더 좋은 가르침을 주셨으면, 지금 이렇게 될 일은 없었을 텐데…….”
“즉, 네가 부족하다고 했던 건……미워하려면 세상 사람들을 다 미워해야 한다는 거니?”
“네, 맞아요. 그 때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진짜 원인은 따로 있는데, 부모님만 미워하는 건 중간에 포기해버리는 느낌이 들어서……. 되게 유치하죠?”
그렇게 물으며, 겨울은 말갛게 웃는다. 여인은 소년의 미소를 구분하기 힘겨웠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기 힘든 감정을 담아, 겨울이 들려주는 그 뒤의 이야기.
“부모님이 싫다보니 사람들도 다 싫고, 사람들이 너무 미워서 온 세상이 다 미워졌어요. 이런 세상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 매일매일 그런 상상을 했었어요.”
“겨울아, 그럼 지금은 아니라는 거야?”
“네. 그래선 안 되겠더라고요.”
“왜?”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그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잖아요.”
겨울은 무릎 위에 깍지를 끼고, 아래를 보며 조용히 말한다.
“꼭 행복했으면 하는 두 사람이 있거든요. 여기에 들어와 새삼스럽게 깨달은 게 있다면, 사람은 역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야 한다는 거였어요.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진 않아요. 그러니, 사람들이 좀 더 행복해지기를 바라야겠죠. 끝도 없이 미워하는 게 아니라.”
소년이 마지막으로 덧붙이는 한 마디.
“그런데 많이 어렵네요.”
여인은 깊은 비애를 느꼈다.
============================ 작품 후기 ============================
#Q&A
Q. 아그랍파님 : @해리스 사건은 어떤 방식으로 공개하나요?? 만약 산타 마리아 때처럼 미국 전역에 드라마식 재방영을 계속한다면. 궐레미 제프리같은 출연진은 국민 배우가 되겠군요!ㅋㅋ
A. 연대장 말마따나 극적인 요소가 많으니까요. 제프리도 슬슬 뭔가 받을 때가 됐죠…
Q. 그집쭈꾸미 @완결이 나면 대략 몇년도 몇분기정도 될까요?? 마음같아서는 연재일수가 저와 평생을 함께할 정도로 길면 좋겠네요
A. 그렇게 길게 가면 작품성이 유지가 안 될 거예요. 저한테 그럴 능력이 있을 리가…
Q. 라이프세이버님 : @정주행완료 결제하고 이틀만에 다보는군요 사실 보면서 친구에게 추천을 했는데 친구가 동심이 너무 넘쳐나서 두번보면 황천길가겠다며 읽기를 거부하더군요 동심을 이해하지못하는 친구가 안타깝습니다 p.s아몬께서 별빛으로 속삭이시길 작가님에게 쿠폰을 몰빵하라하십니다 그러므로 27장드리지요
A. 동심이 넘쳐나서 황천길이라니, 그 친구분 동심 무료나눔 안 하시나요?…작가에게 필요한데…
Q. Jzelia님 : 조아라에서 본 소설 중에 가장 완성도가 높네요. 그리고 여러 의미에서 뽕맛도 장난아니고요. 나 이거 보다가 어린왕자도 다시 읽고 중간중간에 나오는 용어들도 검색해가면서 봤네요. 조아라에서 떡타지만 봐서 그런가? 근데 후원, 원고료 쿠폰은 어케 받는거죠? 아니다. 그냥 계좌하나 후기에 올리면 거기다 매달 치킨값 입금해드릴게.
A. 후원은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미완의 소설은 언제든 취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걸요.
Q. 14C2A58H2님 : @종이책이라… 한정판없나요? 예를들어 퉁구스카님의 동심과 반물질 1픽토그램씩들은 진공 플라즈마관이라던가 아니면 보는것만으로 동심이 차오르는 작가님 친필 사인본이라던가
A. 사인본으로 이벤트나 해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