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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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프릴 벤전스, 코로나 트라이엄프 (4)
대화가 드문드문 이어지는 자리였다. 뱃사람들의 위계질서일까? 이항사 이하로는 무척이나 과묵했다. 그리고 선장은 한숨을 자주 쉬었다. 그가 듣고 싶었던 소식들이, 그렇게 유쾌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미 본토에 수용된 난민들의 생활상들.
“우리는 그나마 사정이 낫군요. 굶주리진 않으니 말입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익숙해진 절망과 외로움이 묻어난다.
코로나 트라이엄프는 일본 선적의 화물선이었다. 선주도 일본의 해운업체. 다만 운영은 필리핀 업체에 위탁한 형식이라, 선장과 선원이 모두 필리핀 사람들이었다. 본디 석탄을 싣고 일본과 호주 사이를 오가던 배였다고.
지금은 소유권을 주장할 회사가 없다. 배는 이제 뱃사람들의 것이 되었다. 선장은 죽는 날까지 조국에 헌신할 작정이었다. 그는 말한다. 아마 앞으로 땅 밟을 일은 없겠지요, 라고.
“인도네시아에 망명정부가 있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무능하긴 매한가지입니다만, 그래도 난민이 된 국민들을 보호하겠다고 시늉은 하더군요.”
그러자 레온 소위가 쓴웃음을 짓는다. 입장이 입장이라 말은 못하고, 마음만 같은 모양.
인도네시아는 역병을 견디는 국가 중 하나였다. 겨울은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감염은 기하급수적이다. 막대한 인구, 높은 밀도가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도 있었는데. 시간을 벌어 강점으로 만든 모양이다.
레온 소위는 인도네시아의 초기 대응이 성공적이었다고 증언했다.
“병력이 사백만입니다. 도시는 진지와 철창 투성이로 변했고요. 거점 방어는 충분하지요. 문제는 물자, 그 중에서도 식량 부족입니다. 저희가 왜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미국 정부의 정책엔 일관성이 있었다. 육지에서 난민들을 병력자원으로 쓰는 것처럼, 해상에서는 타국의 선박들을 끌어들였다. 식량은 그 대가로 내어주고.
도시가 철창으로 가득 차는 건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역병이 번지기 전에도, 치안이 불안한 지역에서는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장벽과 철조망을 두르며, 사설 경비업체가 치안을 담당한다. 혹은 주민들이 자경대를 조직하던가.
‘출입 제한 거주지(Gated community), 혹은 빗장을 지른 도시…….’
근래의 TV에서는 요새화 공동체(Fortified community)라는 말까지 나오는 판이다. 일반 가정집조차도, 내부를 감옥처럼 만드는 게 유행이었다. 군 주둔지 근처의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겨울은 그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경험이다. 지난 회차들을 돌이켜볼 때, 그런 지역에서는 감염이 쉽게 확산되지 않았다.
빽- 빽-
비상등이 켜지고 사이렌이 울었다. 내선에 불이 들어온다.
선장이 당황하여 내선 전화를 받는다. 무슨 일이지? 케이서스 선장은 단답을 할 뿐이라, 대화의 반쪽으로는 내용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겨울은 선장의 안색을 살폈다. 주름이 깊어진다. 선장 역시 수사관과 소년 장교를 힐끗거렸다.
통화를 마치는 선장에게, FBI 수사관이 질문한다.
“무슨 일이죠? 돌발 사태인가요?”
“돌발 사태라……. 어떤 의미로는 그렇습니다. 구조신호가 잡혔다는군요.”
일단 함교로 가시죠. 경우에 따라서는 두 분의 의견이 필요할 테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케이서스는 조안나 깁슨과 겨울을 위해 앞장섰다.
조타실 입구는 필리핀 해군 초병들이 지키고 있었다. 경례를 받으며 들어가자, 당직 근무 중이던 일항사가 선장에게 상황을 보고한다.
“구조를 요청한 함선은 에이프릴 퍼시픽. 호주 선적의 13만 4천 톤 급 여객선입니다. 현재 서쪽 75km 해상에서 시속 8노트의 속도로 샌프란시스코를 향하고 있으며, 이대로 간다면 약 2시간 40분 후에 1km 거리까지 근접하게 됩니다.”
전자 해도에는 해당 선박의 침로와 예상 진로가 떠있었다. 콘솔을 조작해 화면을 확대한 뒤, 샌프란시스코 방향까지 지도를 밀어올린 함장이 무겁게 신음했다.
마주치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피하면 그만이니까. 허나 여객선이 조함 불가능한 상태라면, 만 안쪽으로 돌진해버릴 것이었다.
뉴스에서 조감한 샌프란시스코 만은 온갖 국가의 해상난민으로 가득 차있었다. 서울시의 몇 배나 되는 면적인데도 불구하고. 입구까지 밀려나온 배들은 충돌사고에 속수무책일 것이다. 8노트가 빠른 속도는 아닐지언정, 크루즈의 질량만큼은 어마어마하니까.
‘역대 최악의 해난사고가 될 지도.’
소년은 참극을 예감했다.
“다른 정보는 없나?”
연이은 선장의 질문에, 일항사가 또박또박 답변한다.
“자동화된 구난 신호뿐입니다. 교신 시도에 반응이 없는 걸 보니, 아무래도 원격으로 작동시킨 것 같습니다. 추측에 불과합니다만.”
“으음……. 수상한데. 왜 엔진을 끄지 않았을까.”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는 선장. 함선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우선 엔진을 끄는 게 원칙이었다. 겨울도 함께 생각한다. 그러지 못할 가능성은 셋.
‘단순한 실수이거나, 그럴 여유가 없었거나, 혹은 함교부터 전멸했거나.’
뒤의 두 가지는 별로 좋지 않다. 선내감염, 선상반란, 해적의 습격. 있을 법한 경우마다 만만치 않았다. 상대가 변종이든 해적이든, 규모에 따라서는 겨울에게도 위험하다.
필리핀 해군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을까?
‘아니, 제프리 소대만큼의 전투력은 절대로 안 나올 거야.’
기대를 스스로 부정하는 겨울이었다. 미군의 전투력은 탁월한 훈련과 값비싼 장비, 실전경험, 그리고 누구 한 사람 버리지 않는다는 믿음에서 나온다.
한편 함선 승조원들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기술자 집단이다. 그들의 전투력은 장비운용 숙련도에서 나온다. 영역이 완전히 달랐다. 기초적인 전투 훈련이야 되어있겠지만.
애초에 미지의 적과 교전을 치를 의욕이 있을지 부터가 문제였고.
“미군에겐 알리셨습니까?”
연락장교 레온이 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일항사.
“네. 위성통신으로. 히긴스에서 수신했습니다. 거기서 다시 위쪽으로 올라가겠죠.”
겨울은 해도상의 이름을 읽었다. 히긴스는 미국의 구축함이었다.
호위함 라몬 알카라즈와 교신한 선장이 감속을 지시했다.
“가까워져서 좋을 것 없지. 감속한 다음, 반응을 살펴봐야겠어. 8노트로 감속하게.”
일항사가 레버를 끌어내린다. 겨울은 미미한 속도변화를 감지했다.
깁슨 요원이 묻는다.
“반응을 살핀다는 건 무슨 뜻이죠?”
“경계하는 겁니다. 해적의 계획적인 접근일지도 모르니까요.”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는 느낌이군요.”
“그렇습니다. 이미 탈취한 대형선박을 미끼로 내세우고, 자신은 레이더의 사각지대에 숨어서 거리를 좁히는 방식이죠. 호위함을 기습해서 순식간에 끝내버리는 겁니다.”
레이더는 결국 반사되는 전파를 잡아내는 것이다. 즉, 이쪽을 어떻게든 먼저 발견하고 나면, 선장이 말한 것 같은 함정을 파는 게 가능하다. 전투함의 체급은 대양을 항해하는 민간선박에 비하면 대체로 작은 편이었고. 수긍하고 다시 묻는 조안나 깁슨.
“직접 경험하신 건가요?”
“경험이라고 해야 할 지……그런 식의 접근이 지금까지 두 차례 있었습니다만, 해안경비대로부터 사전에 주의를 받았기 때문에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눈 먼 포격에 두들겨 맞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지만요. 저게 첫 번째에 생긴 겁니다.”
그는 함교 전면의 깨진 유리를 가리켰다. 덕트 테이프로 어설프게 때워 놨다. 두께만으로 권총탄 쯤은 막게 생겼으나, 기관포탄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실내를 긁고 지나간 여섯 개의 탄흔이 있다. 겨울은 굵기를 가늠한다. 대략 20mm. 총과 포의 경계에 걸쳐진 사격이었다.
이번엔 겨울이 질문한다.
“만약 반응이 없다면 진짜 구조신청일 가능성이 높은데……그 때는 어떻게 처리되죠?”
배후에 해적이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반응할 것이다. 이쪽에 맞게 속도를 줄이든, 혹은 들통 났음을 깨닫고 도주를 하든. 제 정신이 아니라거나, 당장 굶어 죽을 지경이면 절망적인 공격을 시도할 지도 모르고.
“보통은 방관으로 끝납니다. 난민들은 바다날씨처럼 변덕스럽지요. 난민과 강도가 더 이상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개념이라서요. 죽어가는 사람들을 건져 올렸다가, 그 다음날 배를 점령당한 선원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선장은 우울한 표정과 비관적인 추측을 이어갔다.
“단지 이번엔 그보다 더 나쁘게 돌아 갈까봐 걱정스럽군요.”
겨울은 그가 암시하는 바를 바로 알아듣는다.
“격침시킬지도 모른다는 말씀이시군요.”
“예. 저대로 두었다간 어디든 부딪힐 테니 말입니다. 낮은 확률이나마 미군이 손해를 볼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겠고……. 내부 상황은 완전히 미지인데다, 최악의 경우 배가 감염변종으로 바글거릴지도 모르잖습니까.”
내버려둔다면 만 단위로 죽는다. 격침시킨다면 천 단위로 죽는다. 최악을 대신하는 차악의 선택. 불가피한 조치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에게도, 집단에게도 한계가 있고, 세계 최강의 군대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FBI 조사관은 냉정했다. 적어도 표정만큼은. 그러나 목이 뻣뻣하게 굳어있다.
‘불편해하는구나. 헬기를 탔을 때보다도 더.’
겨울은 그녀를 쉽게 읽었다. 한 박자 늦게 연동하는 「통찰」과 「간파」. 적어도 사람을 읽는 것만큼은, 시스템이 소년을 앞서기 어렵다. 관제인격의 소망 또한 여기에 있을 테고.
이건 흔들어볼 수 있겠는데.
일항사가 들어오는 통신을 접수했다.
“속도를 추가로 줄이라는 통보입니다. 곧 공격기를 띄울 테니 오인공격에 주의하라는군요. 20분 안에 상공에 진입한다고 합니다.”
“그런가.”
종말에 부대끼는 사람들은 익숙해진 우울함을 담담하게 억눌렀다. 겨울은 그 얼굴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바깥 세계에서도, 시대에 지친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살고 있었기에.
“깁슨 요원. 공격을 중지시킬 수 있을까요?”
“무슨 말씀이시죠? 제게 그런 권한이 있을 리가…….”
수사국 요원은 갑작스러운 요구에 당혹스러워했다. 하지만 겨울은 다시 설득한다.
“권한을 떠나서 해보는 요청인 거죠. 공격기 대신 헬기를 보내줄 순 없겠느냐고 물어봐 주세요. 저 한 사람만이라도 에이프릴 퍼시픽에 올려달라고 말예요. 헬기는 구축함에도 있잖아요?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말도 안 됩니다! 저 배에 뭐가 있을 줄 알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무모하시군요. 감독관으로서 허가할 수 없습니다. 어차피 저쪽에서 받아들이지도 않겠지만요.”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밑져야 본전 아닌가요? 나중에 마음도 편하겠고요.”
나는 시도했어. 그들이 거부했을 뿐이야. 그런 식의 자기합리화가 가능해질 거라고. 죄책감이 조금이라도 덜어질 거라는 암시. 조안나가 입술을 씹는다.
“중위, 저는 그렇게 비겁한 사람이 아닙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저라도 비겁해질 기회를 주세요. 직접 교신해보겠습니다.”
FBI 요원이 잠깐 머뭇거린다. 적극적인 동의를 구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가 양심으로 망설이는 틈을 타, 겨울은 이미 마이크를 붙잡았으니. 일항사는 쉽게 밀려났다.
“아, 깁슨 요원. 제가 여기 있다는 것 자체를 숨겨야 하나요? 아니면 제 관등성명 정도는 밝혀도 무관한 건가요? 전부 비밀이면 곤란한데요.”
“……원칙적으로는 모두 기밀이나, 여기서의 교신이 돌고 돌아 만 안쪽까지 흘러갈 가능성은 없겠지요. 저쪽도 영문을 모를 테니까요. 작전 내용만 발설하지 않으시면 됩니다. 그런데……정말로 하실 겁니까?”
“네. 저는 이렇게 살고 싶거든요. 한계는 있겠지만.”
겨울은 차분하게 답한다. 그리고 재차 확인했다.
“저쪽에서 제 신원을 확인할 방법이 있겠습니까? 관등성명을 말한다고 바로 믿어줄 것 같지가 않아서 말예요.”
있는 것 같다. 다만 요원은 심각하게 갈등하는 기색이었다.
민간인 수천 명의 죽음 앞에 냉정해질 순 없는 건가. 좋은 요원은 아닐지라도, 좋은 사람이긴 하네. 겨울은 기다리지 않고 USS 히긴스를 호출했다.
============================ 작품 후기 ============================
#Q&A
Q. ssm9725님 : (전략) + ‘히틀러같은 사람이 지지를 받은건 삶이 각박해서 극단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라면 정말 좋겠지만… 현실의 인간은 소설보다 더 동심이 가득한가봅니다
A. 이미 출판사에 넘긴 원고를 포함해서 수정을 검토해보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Q. 전후좌우상하님 : 겨울이 계급이 소위인가요? 중위인가요? 위에서는 소위라고 하고 밑에서는 중위라고 하네요
A. 중위가 맞습니다. 작가가 실수했네요.
Q. 월하비영님 : 저널을 회상한다는 게 무슨 뜻이죠?저널이라는 부분에 대해 아직 잘 이해가 안됩니다.
A. 음…저널은 자동진행을 걸었을 때, 축약된 흐름을 겨울에게 전달해주는 매체입니다. 작중에서는 1인칭으로 진행되었죠. 저널을 진행하는 건 겨울의 인격을 학습한 가상인격이고요.
작품설정에 Intermission을 모아놓은 게시물이 있습니다. 인터미션에서 저널에 관한 내용이 나왔었으니, 한 번 다시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Q. qoewh님 : @ 작가님 제가 방금 전 좋은 일이 있어서 마구 들떴다가 필요상 감정을 추스를 필요가 있어 재빨리 어린 왕자를 읽었습니다. 과연 금새 차분해지더군요. 동심의 편린을 맛본 기분입니다.
A. 그런 용도로 쓰시다니…훌륭한 독자분이시군요. 눈동자로 들어와서 고요를 체험하세요. 오버워치는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