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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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프릴 벤전스, 코로나 트라이엄프 (5)
거대한 배의 유동은 느리게 흔들리는 요람 같았다. 함교를 밀어대는 바람소리. 그리고 선체에 부딪히는 파도소리. 눈을 감고 있으면, 등 아래에 바다를 깔고 있는 기분이었다.
불 꺼진 선실에 누워, 소년은 실패한 요청을 곱씹는다.
교섭은 잘 풀리지 않았다.
USS 히긴스의 함장은 지휘계통을 벗어난 요청에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무시하지도 못했다. 명예훈장엔 계급과 소속을 넘어선 무게가 있었으므로. FBI 수사관이 전전긍긍하는 사이, 구축함 함장은 통신을 윗선으로 중계했다. 무전기 맞은편의 계급이 계속해서 올라갔다.
민간인들을 몰살시킨다는 죄책감. 그리고 최연소 명예훈장 수훈자에 대한 호기심. 특히 후자가 아니었다면, 항모전단 사령관과 대화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실전상황에서 소장과 일개 중위의 격차는 그만큼 크다. 소년장교의 명성이 아무리 높다고 하더라도.
사령관 찰스 키치너 제독은, 피로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중위. 귀관이 무슨 일로 거기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매력적인 제안이야. 그래도 거부할 수밖에 없겠군. 요즘 배들은 과적과 초과승선이 일상이거든. 만약 에이프릴 퍼시픽이 유령선이 되었다면, 적은 한 사람의 휴행탄수로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일 가능성이 높아.]
겨울이 휴대하는 탄약은 단독군장으로 200발 남짓. 여분을 더하고 급탄 가방을 멘다면, 어떻게든 1천발까지 채울 수 있을지도.
제독은 여객선이 변종 소굴로 변했을 가능성을 우려했다.
[자네가 한 발에 정확히 하나를 죽인다 하더라도, 그 뒤에 남을 수천을 어떻게 감당할 텐가? 그 가운데서 혹시 있을지 모를 생존자들을 찾아다니겠다고? 대검 하나 들고서?]
“네.”
겨울은 짧은 즉답으로 제독을 웃게 만들었다.
[오, 이런. 내 귀관의 용기를 기억하지. 방송에서 나오는 게 어느 정도는 연출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군. 하지만 허락할 수 없네. 한계를 넘어선 용기는 만용에 불과해.]
“그렇다면 병력을 지원해주실 순 없으십니까?”
항공모함에 승선하는 인원만 5천 이상이다. 태반이 기술전문직으로서 직접적인 교전과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전투훈련은 받은 상태. 전단에 속한 각 함들로부터 병력을 차출할 수도 있다. 겨울의 판단은 이랬다.
‘전투원이 몇 백 수준이면 갑판 정도는 손실 없이 장악할 수 있겠지.’
여객선의 이동경로는 제한적이다. 변종들은 집중된 화력 앞에 병목현상을 일으킬 것이었다. 처음으로 내릴 때는 헬기의 화력지원을 받으면 된다. 평범한 변종에게도 동물적인 지능이 있으니, 갑판으로 나올 엄두를 내지 않게 될 터.
물론 선내로 진입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장애물이 많고 복잡한 환경. 사상자가 발생하기 좋은 조건이었다. 겨울은 짐작했다. 제독이 망설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라고. 그러니 가장 위험한 부분을 소년장교에게 맡길 수 있다면,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고.
사실은 조금 달랐다.
[한겨울 중위. 본 함에서 부여한 에이프릴 퍼시픽의 식별부호는 로미오 96일세.]
번호는 레이더 접촉 순서대로 부여하는 것이라고, 제독이 설명했다. 그러므로 제독의 기함은 이미 최소 아흔다섯 척의 선박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조난신호를 보내는 배가 마흔세 척이야. 그 가운데 진짜와 가짜를 가려내기도 힘들어……. 인도적인 지원과 구조작전에도 한계가 있네. 장기간 누적된 인명피해, 그리고 승조원들의 정신적인 스트레스. 가용병력이 위험할 정도로 줄어든 상태지. 본관은 지휘관으로서 부대의 전투력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어. 내 말 이해하겠나?]
“네.”
[귀관은 좋은 군인이야. 내가 내린 결정에 상심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대화하게 되어 즐거웠네. 그만 쉬게. 키치너 제독은 일방적으로 통신을 끊었다.
해군 소장이 육군 중위에게 이만큼 이야기해준 것만으로도 충분한 성의였다. 겨울은 그의 피로감을 이해했다.
‘이 시간에 제독이 응답한 것만 봐도 말이지.’
밤이 깊었다. 당직사령이 제독을 대신하고 있어야 정상이었다. 즉 지금 이 순간에도 최고지휘관의 책임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 함대의 피로도를 짐작할 만하다. 어지간해서는 민간 선박을 격침시키라고 하지도 않을 터.
겨울은 미련을 끊고 시간을 가속시켰다. 스스로 흘러가는 세계가 무의미한 밤을 단축시킬 것이다. 관제인격의 상황연산이 끝날 때까지는, 다른 세계의 관객들을 신경 쓸 필요가 없겠지.
‘그러고 보면 의외로 조용했네.’
자기 삶이 힘들고 고달파 남의 삶을 즐기려는 사람들. 소년이 실패를 곱씹는 사이, 그들은 그저 어둠 속에서 누워있었을 따름이다. 가끔씩 정돈된 상념이 「텔레타이프」로 문자화되어 전달되긴 했을지라도.
아, 그런가. 그들의 일상엔, 어둡고 조용한 시간마저 부족한 건가. 겨울은 자신의 추리를 스스로 긍정했다. 불행한 세상의 불행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삶은 겨울의 한계 바깥에 있었다.
삐-
시간 가속이 깨졌다. 눈을 뜬 겨울이 바로 시계를 확인한다. 고작 한 시간도 흐르지 않았다.
왜지? 이제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할 때까지 별 일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삐, 삐, 삐. 전자음이 반복되는 건 불이 들어온 선실 내선 탓이었다. 겨울은 의아해 하며 받았다.
들려오는 케이서스 선장의 목소리.
[아, 중위님. 지금 바로 올라와주시겠습니까? 에이프릴 퍼시픽 건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구나. 겨울은 베개 아래 깔아둔 권총과 이불 밑의 소총을 챙기고, 단독군장을 갖춘 채 함교로 뛰었다.
“무슨 일이죠?”
“아, 뛰어오실 필요까진 없었는데……. 일단 받아보시죠. 칼 빈슨에서 중위님을 찾는 통신입니다.”
USS 칼 빈슨은 키치너 제독의 기함이었다.
겨울은 수신기를 들기 전 전자해도를 살폈다. 에이프릴 퍼시픽을 나타내는 기호가 여전히 움직이는 중이었다. 벌써 격침되었어야 정상이지만.
“네. 중위 한겨울입니다.”
[음, 중위.]
상대는 역시 제독. 아까보다 무거운 피로감이 묻어난다. 정신적으로 몰려있는 느낌.
[어디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군…….]
한참 뜸을 들인 뒤에, 제독은 에이프릴 퍼시픽이 아직도 떠 있는 이유를 말해주었다
[파일럿이 명령을 거부했네. 아무래도 근접비행으로 살펴본 모양이야. 생존자들이 있다던가. 골치 아픈 일이지……. 이렇게 되었으니, 공격기를 새로 띄우기도 어렵고.]
탑승객이 보일 만큼 가까운 저공비행? 제트기로 그렇게까지 할 수 있나? 속도를 감안하면,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가는 수준일 것을. 고개를 기울였던 겨울은, 미군에게 정지비행이 가능한 공격기가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엔진을 수직으로 꺾어 제자리 이착륙을 해내는 기종.
공격기를 새로 띄우기 어렵다는 것도 이해가 간다. 아까 제독은 승조원들의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언급했었다. 입단속을 시키더라도, 결국은 퍼질 이야기. 민간인을 오폭으로 죽여도 정신적인 충격이 남는다. 알고 죽이는 건 그 이상일 것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아까의 결심은 변함없는가?]
“물론입니다.”
[여전히 빠른 대답이군. 병력지원이 없어도 괜찮단 말이지?]
“네.”
다짐 받듯이 묻는 제독에게, 계속해서 즉답을 돌려주는 겨울. 마침내 제독이 허락했다.
[좋아. 전투 병력을 파견하긴 어렵지만, 헬기 한 대는 지속적으로 띄워두겠네. 최소한 갑판에 있는 동안에는 안전할 거야. 생존자들을 최대한 구조해보도록.]
“알겠습니다.”
[자네가 탈 기체는 히긴스에서 보내줄 걸세. 소요시간은……음, 그래. 30분이면 된다고 하는군. 병력 외에 필요한 게 있다면 알려주게. 탄약이나 화기 종류 말이야.]
옆에서 깁슨 요원이 작게 알려준다. 이 배엔 식량 말고도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작전을 위한 보급물자가 실려 있노라고. 겨울은 고개를 끄덕인 뒤, 제독에게 문제없다고 보고했다.
[그런가. 이게 잘 하는 짓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켜보도록 하지. 행운을 비네.]
제독과의 두 번째 대화가 끝났다.
겨울은 갑판에서 헬기를 기다렸다. 처음보다 거칠어진 바람. 기상이변은 겨울에게 새삼스럽지 않다. 생전의 세계는 이 세계관의 배경이 된 시대보다 더 깊은 고통을 겪고 있었기에.
무장은 그대로. 단지 탄약 휴대량을 늘렸다. 배낭에도 탄창과 폭발물을 채웠고.
기다리는 중에, 완전 무장한 수사관이 나란히 섰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제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굉장히 위험할 텐데요.”
겨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사관은 시선을 전방에 고정시킨 채 미동도 하지 않는다. 한 갈래로 묶어 올린 머리카락이 거칠게 나부꼈다. 그녀는 묵직한 샷건으로 무장했다. 샌 아르도 유전을 점령할 때 유라가 사용했던 물건. 자동사격이 가능하다.
그녀가 단호하게 하는 말.
“실력으로야 중위님께 비할 바 아닙니다만, 저 역시 비정규전의 베테랑입니다. 멕시코 카르텔과의 전투는 대개 시가지와 실내, 지하터널, 숲 속의 아지트 같은 곳에서 벌어졌으니까요. 대테러 훈련도 받았고요. 보직을 변경한 뒤로는 전투가 드물었으나, 한 중위님을 보조하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지금은 소속이 어디신데요?”
“대량살상무기 관리부입니다.”
“아.”
확실히 샌프란시스코 같은 곳에 투입될만한 자원이었다.
갑판을 순찰하는 필리핀 초병들이 멀찍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저들끼리 무언가 속닥이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보는 시선들. 깁슨 요원이 한숨을 쉰다.
“라몬 알 카라즈에서는 지원이 어렵다고 하더군요. 저들을 탓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지만, 아쉽습니다.”
당연하겠지. 이 먼 바다에 와서 외국에 부역하는 군인들이 왜 위험을 감수하겠는가. 미군조차 나서기 어려워하는 마당에.
겨울은 다른 것을 묻는다.
“샷건으로 괜찮을까요?”
“저도 고민해봤습니다. 중위님과 탄을 공유할 수 있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고.”
같은 탄약을 쓰는 무기를 고르면, 한 사람이 부족할 때 나머지를 받아 쓸 수 있다. 전술적인 유용성. 그러나 그녀는 그 점을 이미 검토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제게 익숙한 무기를 쓰는 편이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무기의 조합도 중요하겠고요. 해외에서는 북미와 다른 변종이 발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쩌면 소총보다 강한 근접화력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지역에 따라 새로운 변종이라……. 이는 이전까지의 세계관에서 없었던 사실이다.
“다른 변종의 예를 들자면요?”
겨울의 질문에, 수사관이 미간을 좁힌다.
“이쪽 정보는 기밀로 통제되는 경우가 많은지라……. 제가 아는 거라면 중국에서 발견된 탄저균 내성 변종과 겨자가스 생성 변종 정도입니다. 생화학무기 사용을 자제하는 이유라더군요. 도시 내 생존자 집단에 대한 배려이기도 합니다만…….”
그래서 생화학탄을 투사할 땐, 해당 지역을 완전히 초토화시키는 게 보통이라고.
겨울이 새로운 정보를 숙고하는 사이, 바람결에 묵직한 엔진 소리가 뒤섞인다.
어둠 속 불 밝힌 갑판에 헬기가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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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
이 소설이 본격적인 군사 소설은 아닌데, 아무래도 소재가 소재다보니 잘 아시는 독자분들의 지적이 있을까봐 걱정스럽네요.
그래서 여기에 짧은 변명을 남깁니다.
작중에 언급된 제자리 비행 가능 기종은 F-35B입니다.
알아본 결과 해군항공대 소속으로 F-35B를 수령한 부대는 메릴랜드 주 패턱센트 기지의 제23시험평가비행단 뿐이지만, 극적 전개를 위해 약간의 고증을 희생한 것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음주
전 이제 술 마시러 나갈 겁니다. 친구가 사준대요. 하하하하. 부럽죠?
#Q&A
Q. 나로다케님 : 기술은 몇등급까지 있나요? 초인 14를 뛰어넘는 절대자 15? 15등급은 퀘스트나 위업 깨야만 얻을 수 있고 그러려나
A. 천재의 영역은 타고난 재능 없인 노력으로 도달할 수 없는 경지를 말하며, 그 위로 초인의 영역과 신의 영역이 있습니다. 여기서의 신은 어디까지나 비유적인 의미입니다. 사격의 신, 근접격투의 신. 뭐 그런 식인데…
신의 영역은 사실상 현질 없이 도달 불가능한 영역입니다.
Q. Ca모님 : 조금 늦은 질문이지만 전에 해리슨 대위와 싸운뒤 잡은 포로 2명은 어떻게 되었나요? 겨울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됩니다. 좋은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A.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만, 당연히 군사재판에 회부되지요. 재판에 시일이 걸리는 판큼 아직 판결은 나오지 않은 상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