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12)
00011
=========================================================================
#Intermission, 민족주의와 전체주의
집단의 이익을 방어하는 명분이 될 때, 민족주의는 전체주의로 변질되기 쉽습니다. 역사 속의 모든 전체주의는 악의 제국을 낳았습니다. 일본제국은 가혹한 식민통치와 난징 대학살을, 나치독일은 홀로코스트를 자행했습니다.
한편 전체주의는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광범위한 군중의 단합을 가장 빠르게 이끌어내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인류멸망의 기로에서, 종의 존속이라는 대의를 위해 전체주의는 불가피한 필요악일지도 모릅니다. 도덕적 멸종과 비도덕적 생존 중 어느 쪽이 더 큰 비극일지는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를 주제입니다.
악으로 선을 추구할 수 있을까요? 당신의 선택은 무엇입니까?
#파벌 (3), 캠프 로버츠
로그가 죽 올라갔다. 호감도 감소보정 발생 경고들. 불변보정까지 섞여있었다. 일본 소녀의 비명 외에 누구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기묘한 정적 가운데, 임화수가 손짓했다.
“잠깐 치워봐.”
막리지와 소년 사이에 있던 소녀가 한쪽으로 질질 끌려갔다. 짐짝 취급이었다. 그녀는 겁탈당할 위기가 지났다는 걸 인식하지 못했다. 워낙 겁에 질렸으니까, 정상적인 상황판단이 불가능하다. 끊임없이 비명을 질렀다. 임화수가 버럭 일갈한다.
“시끄럽잖아! 닥치게 해!”
방법은 폭력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몇 번 윽박지르다가 다짜고짜 뺨을 때렸다. 비명이 더 커졌으나, 조용해질 때까지 치면 그만이었다. 같은 여자끼리 저럴 수 있다는 게, 아무리 가상현실 상의 묘사라지만 소름끼친다. 마침내 얼굴이 퉁퉁 부은 소녀가 거의 혼절하다시피 쓰러진 뒤에야 정적이 돌아왔다.
임화수가 소년을 노려보았다.
“어린놈이 버르장머리 없이…말세다, 말세야! 민족의 빛나는 얼, 동방예의지국의 정신은 온데간데없어! 이게 다 왜놈들 때문에 민족정기가 쇠한 탓이겠지만…….”
“지금 그 왜놈들 짓을 그대로 하시는 것 아닌가요?”
“머릿속이 아주 제대로 썩었구나!”
그는 얼굴에 경련을 일으키며 노호했다.
“저것들은 짐승 짓을 저지르고서, 세기가 흐르도록 제대로 반성 하지 않았다! 이거 먹고 떨어지라는 형식적인 사과뿐! 그냥 뒀다간 우리가 또다시, 똑같이 당할 거란 사실을 왜 몰라! 피가 그래! 태생이 그런 놈들이란 말이야! 용서받을 기회는 분명히 있었다! 걷어찬 저놈들이 나쁜 것이다! 죄를 지었으면 대가를 치러야지! 우리 민족에겐 일본에 대한 무제한의 청구권이 남아있다! 무얼 해도 용서받을 자격이 있어! 이것은 예방전쟁인 동시에 정당방위다!”
궤변이다. 앞은 맞고 뒤는 틀렸다. 일본은 과거사에 대한 책임이 있다. 그러나, 집단살해에 대한 보상으로 집단살해의 권리가 주어져선 안 된다. 사죄와 반성이 필요한 이유가 뭔가. 다시는 그런 일 없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 살아있는 피해자들이, 죽기 전에 조금이라도 마음 편해지길 바라는 것이다.
임화수의 논리는, 네가 내 딸을 강간했으니 나도 네 딸을 강간하겠다는 개소리다. 글렀다. 사람은 사람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겨울 자신이 생전에 그러하지 못했기에 필요 이상으로 화가 났고, 날카롭게 대꾸했다.
“자위행위를 민족의 이름으로 정당화하지 말아주실래요? 같은 민족으로서 기분 나쁘니까.”
“이놈이 그래도!”
「생존감각」과 「위기감지」가 반응했다. 옆에서 찌르고 들어오는 팔을 꺾어 무력화하고, 칼을 빼앗아 목줄에 누른다. 기민하고 민첩한 몸은 마치 타인의 것 같았다. 기술숙련이 높은 캐릭터는, 단지 ‘방어하고, 제압한다.’는 대략적인 의도를 놀랍도록 정교하게 구체화시켰다.
분을 이기지 못하고 폭발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런 척 충성을 과시할 목적이었는지, 아무튼 갑작스레 달려든 남자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소년이 이대로 그어버리면 끝장이다.
그러나 겨울은 그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완급조절. 머리 뜨거워진 군중이 제 목숨 돌아볼 정도면 충분하다. 어차피 이 수를 다 상대하며 빠져나갈 가능성은 낮고, 여기서 죽을 생각도 없었으니까.
“또 이러면 다음은 없습니다.”
한 마디 해주고, 칼을 툭 던진 뒤 남자를 밀듯이 놓아준다. 얼마 못가 무릎 꿇은 남자는 자신의 목을 더듬으며 켁켁거렸다. 긴장해서 숨도 제대로 못 쉬었던 모양이다.
임화수는 모멸감으로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지만, 당장 저놈을 죽이라고 소리 지르지는 않았다. 대신 손짓으로 아랫것들을 만류한다. 합리적인 AI 연산이다. 성급하기만 해서야 이런 조직을 만들 수 있었을 리 없다.
“너 말이다.”
이제 가식적인 존중은 집어치우고 말하는 그.
“네가 이러고도 여길 살아서 나갈 수 있을 것 같으냐? 이 많은 수를 상대로?”
“아뇨. 만약 싸운다면, 오늘이 제 인생 마지막 날이겠네요. 하지만 각오하고 죽이세요. 뒷감당하기 힘드실 테니.”
“허풍이 대단하구나. 그깟 알량한 지원병 신분이 널 지켜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제 생각에 저는 본보기 같아요. 난민 가운데 믿을 수 있고 우수한 사람이 있다면 우대하겠다고, 미군이 세워놓은 살아있는 광고판이죠. 그 광고판에 피를 뿌리면, 미군은 체면 때문에라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라고 봐요. 그 사람들은 수가 적거든요. 소수가 다수를 통제하는 입장에서 체면은 중요한 문제 아닐까요? 그러니, 위-대하신 막리지, 절 죽이긴 힘드실 겁니다. 적어도 여기서는 말예요.”
“맹랑하구나. 겨우 그걸 믿고 목숨을 걸다니.”
“죄송하지만 전 미군만 믿는 게 아니에요. 제 실력도 믿죠. 여러분을 다 죽이고 빠져나갈 가능성도 없는 건 아니고요.”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겠지?”
“설마요. 거짓말할 자리가 아닌데요. 믿기 어려우시면, 정말 서로 죽여 볼까요?”
“…….”
“과연 몇 명이나 목숨 걸고 충성할지 궁금하네요. 확인해보시겠어요?”
회주는 꽤 길게 화를 삭이더니 다시 한 번 설득을 시도했다.
“요 어리고 맹랑한 것아, 네가 지닌 그 잘난 재능과 담대한 배짱도, 다 훌륭한 민족의 혈통을 물려받은 덕분이라는 걸 모르느냐? 우리 민족에게는 거룩한 사명이 있다! 다른 모든 나라들이 그랬듯이, 미국도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지고 말 것이야! 그러면 우리 환웅의 후예들은 이 풍요로운 미주(美洲)에 한민족의 새로운 터전, 위대한 국가를 세우는 것이다!”
“고등학교 세계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더군요. 세계시민주의가 전제되지 않은 모든 민족주의는 악마의 신앙이라고. 회주님, 악마새끼세요?”
임화수는 대놓고 막 지르는 도발에 다시금 말을 잃었다. 그의 입지를 생각할 때, 이렇게 심한 모욕을 받을 일 없었을 것이라 더 큰 자극일 터였다.
사실 이건 겨울이 실제로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선생님께 들었던 말이다. 그 선생님이란, 겨울이 태어나기 십 수 해 전에 은퇴한 사람이었지만, 국가검정을 통과한 강의기록은 여전히 이후 세대의 수업에 활용되고 있었다. 그 외에도 가상현실 환경에서 제공되는 강의는 얼마든지 많았으나, 이후에 기록된 다른 모든 강의는 어딘가 허전하게 느껴졌다.
그 선생의 강의가 교실수업 세대의 마지막 기록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더는 말을 나누지 못하겠군. 정신이 썩어도 보통 썩은 게 아니야.”
임화수가 이마를 짚고 한숨을 쉬었다. 사실 그럴듯한 생김새에 힘입어, 하는 행동만 보면 세상의 모든 고뇌를 일신에 걸머진 현자처럼 보인다. 이 또한 사기꾼의 재능이겠지만.
“동감입니다. 여기 더 있기 싫어지네요. 정신 썩은 사람들에게서 썩은 내가 나서요.”
거짓 현자의 눈썹이 위로 치솟는다.
“어쩌면 네 자신감이 맞을지도 모르지. 우린 여기서 널 죽일 수 없다. 하지만 여기가 아니라면 어떨까? 항상 불안에 쫓기는 삶을 원하지는 않을 텐데?”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서로 같이 죽여보자고. 딱히 싸우고 싶은 생각은 없어도, 한 번 시작하면 이자 쳐서 갚아드리죠.”
배짱 부려도 된다. 재능이익 탓에, 현재 보유한 능력은 초반에 있을 수 없는 수준이다. 어지간히 떼로 습격하지 않는 이상 몸이 상할 가능성은 낮았다. 암살시도는 별개의 이야기겠지만.
자리에서 일어선 소년은 출구 아닌 쪽으로 걸었다. 그 방향에 있던 자들이 남녀 가리지 않고 쭈뼛거리며 물러난다. 소년이 대검 손잡이를 단단히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뽑지 않았을 뿐 명백한 위협이었다.
“이 분은 제가 모셔가겠습니다. 막으려면 죽을 각오로 오세요.”
주위를 둘러보며 하는 말에 성토하는 목소리만 높았지 정말로 나서는 이가 없었다. 자리에서 움찔거리는 덩치 큰 거한 하나가 돋보인다. 여기 있는 자들 가운데 유독 강해보이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시선 마주친 뒤엔 오히려 움직이지 않는다. 아마도 「생존본능」이나 「위기감지」, 「간파」 중 하나를 보유한 인물일 것이었다.
“生きたいなら, 私の手を取ってください.(살고 싶다면, 내 손을 잡으세요.)”
기술보정에 의지하여 한 말은 의미 그대로 전달되었다. 6등급 「일본어」다. 원어민 수준은 아니더라도 의미 전달이 틀리진 않을 것이었다. 덜덜 떨던 소녀는 그래도 친숙한 언어로 말하는 사람을 믿는다. 손을 잡고서 이끄는 대로 뒤따랐다. 끝까지 막는 이는 없었다. 다만 돌아보았을 때, 임화수가 우묵한 눈으로 응시하고 있었을 뿐.
데리고 나왔지만 데리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약점이 된다. 그대로 일본인 거류구로 향했다. 「스미요시카이」 붕괴 이후 의외로 안정되어 있었는데, 난립했던 일본계 조직들이 거대한 위협을 앞두고 연합하여 단결했기 때문이다. 일본계 난민의 수가 가장 적다곤 해도, 서로 싸우지 않으면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된다.
“お前はだれだ!(넌 누구냐!)”
“落ち着いてください. あなたの同胞を連れてきただけです. 悶着を起こすつもりはありません.(진정하세요. 당신의 동포를 데려왔을 뿐이에요. 문제를 일으킬 생각은 없습니다.)”
일본인 거류구의 경계선에서 버티고 있던 남자들은 겨울의 말에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겨울은 데리고 온 여성을 앞으로 떠밀었다. 이름도 묻지 않은 그녀는 서럽게 울면서도 자꾸만 멈칫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엿들을 생각은 아니었으나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소년의 귀에 들어온다. 「생존본능」은 오감에 상향보정을 부여하고, 「간파」는 부분적으로 상대의 의도를 읽는다. 소리를 죽여도 의미가 없었다. 미심쩍은 눈치로 이쪽을 슬쩍 곁눈질하는 남자들은 그렇게 좋은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 역시 어느 조직의 행동대원쯤 되는 것이겠지.
“너 일본인인가?”
“네. 쿠시나다 세츠나(櫛名田刹那)입니다. 한국인들에게 납치당했었어요.”
“저 자는 뭐지?”
“한국인 같은데…저를 납치한 사람들과 싸워서 저를 빼내주었습니다. 은인이에요.”
“그래봐야 춍은 다 똑같아. 은인은 무슨. 가족이 있나?”
“부모님께서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 아직…죽지 않았다면.”
“그런가. 어이, 다이스케. 네가 같이 가서 가족을 찾아줘라.”
“예, 형님!”
거기까지 듣고서 겨울은 몸을 돌렸다. 고맙다는 말을 들을 생각도 없었고, 들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일본인 행동대원이 소년의 등에다 대고 외치는 소리가 있었다.
“거기 조센징! 이름을 말해라! 언젠가 복수할 때 너만은 살려주마!”
겨울은 슬쩍 돌아보고는, 무감정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필요 없습니다.”
그러고서 걷는데, 그 뒤로도 몇몇 조직으로부터의 접근이 있었다. 딱히 새로울 것은 없었으나 단 하나, 「순복음 성도회」 만큼은 특이한 점이 있었다. 이들은 민족 운운하는 대신 신의 자녀들이라는 표현을 썼기 때문이다.
2인 1조로 지나가는 사람들 붙잡고 열심히 떠들어대던 성도회 사람들. 그 중 하나가 겨울을 알아보았다. 당장 수십 개의 시선이 집중되었고, 둘러싼 뒤 앞 다퉈 떠들어댔다.
“형제님! 독생자 예수께서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아나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휴거가 찾아온 지금 주 예수의 재림이 머지않았어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형제님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아래 회개하고 믿음을 가지면 하느님의 은총에 들 수 있습니다. 에녹은 믿음으로써 하늘로 들어 올려져 죽음을 겪지 않았습니다. 믿음이야말로 영생의 지름길인 것입니다!”
“우리 성도회는 일찍이 이 휴거를 예언하신 동방의 의인 박태선 목사님께서 이끄십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만이 이 재앙에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 찾아온 간난이 모두 성경에 나와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내가 말끔히 쓸어 없애겠다. 사람도 짐승도 쓸어 없애고, 공중의 새도 바다의 고기도 쓸어 없애겠다. 남을 넘어뜨리는 자들과 악한 자들을 거꾸러뜨리며, 땅에서 사람의 씨를 말리겠다.」 라고 하셨으니 성경은 즉 주님의 말씀이십니다.”
“또한 성경에 보면 「심판의 날이 다가왔으니 주 하느님 앞에서 입을 다물라. 주님께서는 제물을 잡아 놓으시고서, 제물 먹을 사람들을 부르셔서 성결하게 하셨다.」고 되어있으니, 역병에 감염되면 산사람을 뜯어먹는 즉 저 감염자들이 바로 「제물 먹을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바쳐진 제물입니다! 진실로 주님의 분노에서 살아남을 길은 믿음뿐입니다!”
“예언자 박태선 목사님께서 우리가 살 길을 알려주십니다! 가서 한 번만 만나보시면 찌르르 하고 전율이 느껴질 겁니다! 계시의 전율! 자, 어린 형제. 잠시면 됩니다. 우리와 같이 가요.”
광신도들이 떠드는 소리가 어지러웠다. 겨울은 무시하고 지나가려고 했다.
“죄송하지만 좀 지나가겠습니다. 관심 없으니 떨어져주세요.”
“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자 사탄의 권속이로다!”
나이 지긋한 노인이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피켓으로 소년을 내리찍으려 했다. 대충 막아서 비틀어 빼앗았다. 휙 던져버리자, 아이고아이고 곡소리를 내며 주우러 달려갔다.
그를 붙잡는 사람들은 미군 구역의 경계를 지난 뒤에야 자취를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