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123)
00122
=========================================================================
#에이프릴 벤전스 (11)
내선을 걸어온 사람은 예상대로 태평양 공화국의 총독이라는 자. 겨울은 그럴 거라고 예상했다. 닫힌 사회에서, 외부와의 접촉은 위험한 가능성이다. 통제되어야 한다.
겨울의 신분과 목적을 들은 총독이 난데없는 폭소를 터트렸다.
[오, 세상에. 이거 정말 놀랍군! 하하하! 설마 구조대가 올 줄이야!]
그리고 그는 책임자를 비웃는다.
[어느 선에서 내린 결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멍청하기 짝이 없어. 지금 이 순간에도 구조를 요청하는 배가 수백, 수천 척일 텐데……. 아무리 미국이라지만, 이렇게 낭비할 자원이 있나?]
맥락상 구조신호를 보낸 건 총독의 결정인 것 같다. 겨울이 물었다.
“당신이 신호를 보낸 주제에, 정작 구조를 바라진 않았다는 뜻입니까?”
[당연하지 않은가, 중위. 세상이 상냥한 곳이라는 착각은 오래 전에 버렸거든. 샌프란시스코를 향해 고정된 침로. 폭주하는 대형 여객선. 내가 책임자였다면 격침시키라고 했을 거야. 하지만 귀관이 온 걸 보니 미군도 아직 현실을 모르는군. 쯧쯧. 앞으로 얼마 못 가겠어.]
아, 인류의 앞날은 어둡다! 헛소리를 지껄이며 낮게 키득거리는 남자. 보조 수신기로 엿듣던 FBI 수사관이 인상을 찌푸렸다. 겨울은 그녀에게서 두 가지 감정을 읽는다. 하나는 경멸. 하나는 죄악감. 후자는 자기 자신을 겨냥한 것이었다.
항모전단 사령관도, FBI 수사관도, 처음엔 여객선을 격침시키자는 쪽이었다. 그 점에서 이 미치광이 살인마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런 식으로 느끼는 모양.
위로할 때는 아니었다. 겨울이 재차 질문했다.
“이해가 가지 않네요. 그렇다면 왜 신호를 보냈죠?”
가능성이 낮더라도, 자력구제를 시도하는 게 차라리 나았을 것을.
[그야 물론 사람답게 죽기 위해서지.]
“사람답게?”
[그래. 구조가 올 거라는 희망이 없으면, 친애하는 국민들이 미쳐 날뛰었을 테니까. 공화국의 질서가 무너지고, 그 와중에 나 또한 성할 수 없었겠지. 국민들이 총독을 살해하는 폭거는 용납할 수 없어. 모두 함께 죽는다면 모를까. 그래서 어뢰나 미사일을 기대하고 있었네만…….]
굉장히 빠르게 쏟아지는 말. 총독은 대화를 즐기는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준비된 변명을 쏟아놓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처럼.
그나저나, 집단 자살을 위해 구조신호를 보냈단 말인가? 그로써 본인의 생명을 조금이라도 연장하려고……?
이게 과연 진심일까, 아니면 떠보려고 하는 말일까. 느낌만으로는 전자에 가깝다. 확신은 서지 않는다. 겨울은 일단 계속 어울려주기로 했다.
“그게 사람다운 죽음인가요?”
[아무렴. 단 1초라도 더 살고 싶어서, 최후의 순간까지 발버둥치는 모습. 이 얼마나 사람다운가. 기품 있는 자살 방식이지.]
“글쎄요. 당신은 그토록 살고 싶어 하면서, 잘도 다른 사람들을 잡아먹으셨군요.”
논리적으로 미친 남자가 다시 한 번 웃음을 터트린다.
[그렇게라도 살아남아야 했던 우리들의 처지를 비웃으려는 건가? 고상하기도 하셔라. 하지만 중위, 공화국 국민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어. 타고난 식인종, 살인마 따위가 아니었단 말이야. 누구나 우리처럼 될 수 있어. 사람을 잡아먹고 싶을 만큼 배가 고파진다면.]
겨울이 곧바로 부정했다.
“아뇨. 당신들은 그 이상이었어요. 질병과 인간을 같은 무대에 올려놓고 즐겼잖습니까. 그들의 싸움과 죽음에 열광하면서 말이죠. 그거 아십니까? 마지막으로 목줄에 묶인 괴물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오래 버티겠죠. 많이 먹었으니까.”
무대 바닥엔 원이 그려져 있었다. 원의 반지름은 곧 괴물을 묶은 목줄의 길이였다.
한 번 원에 들어가면 과제를 마칠 때까진 나올 수 없었다. 열 번의 덤블링. 열 번의 팔굽혀펴기. 열 번의 뜀뛰기. 훌라후프 열 번 돌리기. 줄넘기 열 번 넘기. 기타 등등의 우스꽝스러운 연속 과제를, 변종을 피해 도망 다니며 완료해야 한다. 사전에 정해진 것도 아니다. 진행자와 관객들이 그때그때 요구한다. 몸짓만으로도 읽기 쉬운 광기의 도가니.
변종을 죽이는 건 반칙이었다. 무장 인력에게 사살 당한다. 무성영화 같은 폐쇄회로 화면 속에서, 겨울은 반칙을 저지른 사람들의 죽음을 몇 번이나 목격했다. 그리 길게 검토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과제는 갈수록 엽기적으로 변했다.
최악의 과제는 시간(屍姦)이었다. 살아있는 시체, 변종을 범하라는 것. 죽이는 것은 여전히 반칙이었으므로, 도전자의 태반이 죽어나갔다. 변종의 완력은 강력하다. 굶주린 강간 피해자 앞에서 불가피한 가해자는 무력한 먹잇감이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았다.
피해자에게 물리는 즉시, 가해자는 사살 당했다.
‘마치 사마귀의 교미 같았어…….’
수컷을 빠득빠득 씹어 먹는 암컷의 모습을, 인간에게서 볼 수 있을 줄이야.
성공한 사례도 존재했다. 대체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성공의 증표로서, 진행자는 미리 씌워두었던 콘돔을 벗긴다. 내용물이 관건이었다. 하얗게 흘러내릴 때, 관객들은 뜨겁게 호응했다.
규칙도 갈수록 복잡해졌다. 처음엔 하나의 원이 있었을 뿐이나, 나중엔 다섯 개까지 늘었다. 사람이 싸워야 할 상대는 사람이었다. 다섯 원이 겹치는 좁은 자리에, 마지막 생존자가 서있어야 끝나는 잔혹한 경기.
“그런 짓까지도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하실 셈입니까?”
겨울이 하는 말에, 총독이 가볍게 대꾸한다.
[물론이지.]
“…….”
[순진하게 구는 건가, 아니면 정말로 순진한 건가……? 아직 어린 나이이니 후자일지도 모르겠군. 그렇다면 내가 가르쳐주지, 중위. 즐거움은 삶의 필수 요소야. 사람은 즐겁지 않으면 못 사는 동물이라고. 감옥에 갇힌 죄수가 왜 바깥을 그리워한단 말인가? 응? 굶주리지 않고 헐벗지 않으며 비바람을 맞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대답해보게.]
여기서 떠오르는 건 즐거움이 급해서 섹스를 외치는 사람들. 삶이 불행한 다른 세계의 관객들은, 별 것 없는 소년의 사후를 부러워한다. 사람은 즐거움 없이 살 수 없다.
“맞는 말이에요. 그렇다고 자기 즐거움을 남의 심장에서 짜내면 안 되는 거죠. 가장 기본적인 상식을 무시하면서 동의를 구하지 말아주시겠어요? 역겨우니까.”
[하하. 내가 아는 상식과 다르군.]
“왜 다르죠? 어린 나이 운운하시니 드리는 말씀인데,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거든요. 이건 중학생들도 배우는 명제예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 다른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이고요.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어선 안 되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이기도 하죠.”
같은 맥락에서, 이타(利他)는 궁극적으로 이기(利己)일 수밖에 없다. 둘은 서로 다르지 않다. 소년이 생전에 품었던 꿈이었다. 죽고 난 지금은 아무래도 좋게 되고 말았지만.
‘나 혼자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는, 내가 모두를 사랑하는 대신 모두가 나를 사랑해 주었으면…….’
철없고 어릴 때의 소망이었다. 내가 받기를 원하는 만큼 남에게 먼저 베풀라고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베풀고 나면 아무 것도 돌아오지 않았다. 받기만 하는 사람들. 고로 자기 자신만 사랑하는 사람들의 세상이었기에.
어쩌면 다들 가진 게 없어서 더욱 아꼈을지도 모르겠다. 보답 받기가 확실치 않은데, 얼마 없는 것을 내주기가 두려워서. 인간의 나약함이자 한계였다. 소년 또한 나눠줄 것이 몸과 마음 말고 무엇이 있었던가. 세상 그 자체를 미워하기에 소년은 너무 작았다.
도취된 정신병자가 상념을 깬다.
[그래, 확실히 귀관은 그렇게 말 할 자격이 있지. 내가 TV에서 본 게 모두 사실이라면 말이야. 솔직히 감탄했어. 귀관은 양심이 죽으라면 죽을 사람처럼 굴더라고. 산타 마리아에서의 무모한 질주 하며, 산모 하나 지키겠다고 부대원 전체의 목숨을 거는 등. 그런데 말이지.]
그는 웃음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그렇게 살면 귀관에겐 무엇이 남나? 응? 종래엔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걸? 다른 사람들을 위해 심장마저 꺼내주면, 그 삶은 행복한 건가? 응? 귀관은 지금까지 얼마나 행복했나?]
“…….”
[사실을 인정해. 양심적인 사람이 박수갈채를 받는 건, 다른 모든 이들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지. 아낌없이 나눠주는 멍청이라니, 얼마나 아름다운가 말이야.]
“그만.”
더 들을 필요가 없겠다. 애초에 이런 이야기를 나누려던 것도 아니고. 소 뒷걸음질로 쥐 잡듯이 겨울의 상처를 후벼대긴 했으나, 결국 살인마가 자기합리화를 위해 주워섬기는 소리.
“당신, 개도 아닌 게 너무 오래 짖으시네요.”
개는 차라리 귀엽기라도 하지. 들으라고 하는 독백이며, 의도적인 도발이었다. 그저 어울려주었던 지금까지와 달리, 강세를 주는 연기로 여상스레 던지는 협박. 부자연스러움이 만들어내는 긴장감.
“세상이 그렇게 돌아간다는 것과 세상은 원래 이래야 한다는 건 굉장히 다른 겁니다, 나쁜 새끼야. 어디서 사기를 치려고 들어요?”
[그냥 뒀어도 죽었을 놈들의 죽음이 그렇게 중요한가?]
이 바다에서, 식량을 조건 없이 나눠준다는 방송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다. 정말 희망이 없는 놈들만 이끌려 온 것이다. 결과적으로 살아남은 이 배가, 지금으로선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개소리가 또 한 번 이어지기에, 겨울은 다시 한 번 그의 말을 자른다.
“참 말 많네요. 시끄럽고, 지금부터 묻지 않은 말 한 마디마다 당신 뼈 하납니다.”
웃음 섞인 한숨을 쉬는 총독. 사람의 도리를 말하던 사람이 그런 말을 해도 되겠냐는 투로.
[하하하! 그것 참 인도적인 말씀이시군.]
일단 하나. 겨울은 차분하게 차가운 숫자를 세었다.
“당신에게 복수하려고 일부러 감염된 사람들을 생각하면, 바로 죽이겠다고 하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겁니다. 제가 거기 갈 때까지, 어느 뼈를 버려야 하나 잘 고민해 보시죠.”
칼자루는 이쪽에서 쥐고 있었다. 비록 이편의 숫자는 둘 뿐이지만, 바로 죽일 수도 있다는 게 단순한 공갈만은 아니었다. 헬기가 있으니까. 헬기 하나로 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많다.
‘함교를 빼앗기고 철수한 것만 봐도, 남은 화력은 보잘 것 없겠지.’
3층 갑판의 그랜드 갤리는 이 배의 모든 식량이 집중되는 장소. 선체 중앙에 있고, 출입구는 제한적이다. 최후의 보루로 삼을 법한 곳이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신경 쓰이는 점이다. 아직도 살아있는 식량이 있을 까봐.
‘주방 내 폐쇄회로는 충분하지 않아.’
지금까지의 총독을 오랫동안 굶주린 사람이라고 생각하긴 어려웠다.
“중위님. 지금부터는 제가 하겠습니다.”
발신을 잠시 막아두고, 겨울은 고개를 갸우뚱 했다.
“굳이 그럴 이유가 있을까요?”
“지금까지 들어본 결과, 이 총독이라는 놈은 중위님을 상대로 겁을 먹고 있지 않습니다. 제대로 미쳤거나, 자포자기한 지 오래이거나. 어느 쪽이든 중위님의 이름값으로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판단됩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제가 상대하는 게 낫습니다. 범죄자와 협상하고 정보를 캐내는 분야에서는 수사국을 능가할 곳이 드문 편입니다.”
아예 없다고 단언하지 않는 점에서 미소를 짓게 된다.
“회유라도 해보실 셈이세요?”
“상대의 욕구를 탐색하고 자극하는 건 협상의 기본입니다. 먼저 구출한 요리사가 바다에 던져진 마당에, 이 작자와 다른 공범들이라고 처우가 좋을 순 없습니다. 이 사생아 새끼도 자기 처지를 잘 알 테니 어지간해서는 이쪽을 희롱하려고만 들 겁니다. 두려울 게 없다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역으로 농락해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수사관.
[여보세요-? 한겨울 중위? 거기 아무도 없습니까?]
키득거리는 소리가 스피커를 넘어온다.
겨울은 수사관에게 수화기를 내주었다. 소년 역시 사람 속 곧잘 읽지만, 그걸 활용하는 건 또 다른 영역에 속하므로.
============================ 작품 후기 ============================
#Q&A
Q. rumen님 : @겨울이 봤다는 영화는 모범시민인가요? 제라드 버틀러 주연?
A. 맞습니다. 엔딩이 찝찝하니 한계를 고민하기에 더욱 좋겠죠. 헤헤.
Q. 淸流蓮님 : @아 그리고 작가님, 꿈에서 그림자 같은게 나와서 영혼을 주면 작가님이 연참을 할거라고 했는데 설마 작가님은 아니죠?
A. 아, 그건 저를 사칭하는 페리카나 치킨입니다. 다음에 또 나오면 다리부터 물어 뜯으세요.
Q. 라이프세이버님 : @과거 식인문화를 가진나라는 생각보다 많았던것 같군요 중국 유럽 남아메리카 등등
A.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든 있었다고 봅니다.
Q. RGZ95님 : @ 역시…이런 세계관에선 안나올수 없는게 나왔군요 @.@
A. 워킹데드(게임) 시즌 1에서도 인육 관련 에피소드가 있었죠. 정말 재밌었는데, 스팀판으로 다시 할 엄두가 나질 않네요. 시즌 2도 궁금하건만…
Q. Pirque님 : @잘 읽었습니다. 작가님 글의 매력은 설정 배경, 서술, 개연성 세 가지로, 정말 뚜렷하게 보이는 작품입니다. 질적 면에서는 최근 소설들의 평균치를 뛰어넘고 남는다고 봅니다. 계속해서 건필해주시고, 이런 작품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A. 이렇게 연재속도도 느리고 취향도 마이너한 소설을 꾸준히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Q. Na-Ru님 : @음 겨울이 보았던 영화가 모범시민 이던가요. 글고 중간에 먼가 스킵이 된게 아쉽.
A. 아쉬우신 것이 혹시나 콜로세움의 좀 더 상세한 내용이라면 이번 편에서 해소되셨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