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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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프릴 벤전스 (13)
죄송합니다. 한 마디의 사과와 약간의 시간. FBI 요원을 설득하는 데 그 이상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미련을 빠르게 거둬들였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침착한 안내를 통해 겨울을 관리구획의 중심으로 인도한다.
승조원 전용 공간이기 때문일까? 변종과 조우하는 빈도가 예상 이하였다.
겨울은 수직통로를 타고 아래층으로 미끄러졌다.
-5층의 후방과 전방통로를 폐쇄해두었습니다만,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안내는 최저음량이었다. 속삭이는 것처럼 들린다.
-선수 방향의 문으로 나가십시오. 대로를 지나면 카지노 입구입니다. 거기서 중앙 계단을 통해 내려가는 게 최단경로고요. 혹시 그 길을 이용할 수 없을 경우엔 대극장 방향으로 이동하세요. 아트리움을 지나기 전 내선으로 연락 주시면 전방통로를 개방해드리겠습니다.
그녀가 지나가라고 한 대로(Boulevard)는 말 그대로의 넓은 길이었다. 객실이 빼곡하게 들어찬 위층과 달리, 각종 유흥시설이 집중된 이번 갑판부터는 사방으로 열린 공간이 많았다.
조안나 깁슨이 괜히 경고한 게 아니다. 개방된 공간에는 격벽이 드물었다. 그나마 있는 격벽은 후방 라운지와 전방의 아트리움, 대극장까지만 봉쇄할 수 있을 따름이었고. 5층에서 3층까지 이런 식이다. 돌아가려면 본격적인 진입 이전이 좋았다.
-부디 무운을 빕니다.
겨울은 나가는 문을 열었다.
원형의 바 안쪽이었다. 감염된 바텐더가 전방을 향해 굳어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등, 오르내리지 않는 어깨. 겨울은 이것이 대사억제에 들었음을 깨달았다. 당장 죽일 필요는 없지만, 살려둘 이유도 없다. 콰득! 뒤통수에 대검을 박는다. 바르르 떠는 몸을 조용히 눕혀놓았다.
테이블을 훌쩍 넘었다. 그리고 주변을 살핀다. 군데군데 비상등이 밝혀진 클럽. 불길한 붉은 조명 아래 검은 얼룩이 낭자했다. 딱 딱 따다다닥.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빨 부딪히는 소리.
카지노로 이어지는 대로는 이 배의 항해일지 같은 느낌이었다. 움직이는 시체와 움직이지 않는 시체들. 한 번 훑어보기만 해도 생전의 선상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통찰」에 의한 정보수집이 자동으로 진행된다. 언제고 필요할 때 떠오를 것이다.
변종들 대부분은 마네킹처럼 서있었다. 창가에 다수가 몰려있는걸 보니, 아무래도 헬기의 소음을 듣고 한 차례 깨어났던 게 아닐까?
마침 지금은 엔진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무래도 교대 시간이 맞아떨어지지 않은 모양. 하기야 급작스러운 작전이니 칼 같은 임무교대는 기대하기 어렵겠다. 또한 제독은 누적된 인명손실과 피로에 대해서도 말했었고.
지금의 겨울에겐 차라리 잘 된 일. 중기관총에 철갑탄을 쓰더라도, 선체를 관통해서 내부까지 화력을 지원하긴 어렵다.
차라리 조용한 지금이 나았다.
그러나 아직 활동하는 변종들도 있었다. 역할은 뻔했다. 그들 나름의 파수꾼들이겠지. 순번이라도 정한 건가? 동물적인 지능이니 가능할 수도 있겠다. 한낱 늑대조차 역할분담에 충실하다. 하물며 인간을 모체로 한 괴물들이야.
‘이것들을 여기서 죽이고 가는 게 낫겠는데…….’
한 층 아래, 4층 갑판에는 좌우로 구명정이 적재되어 있다. 또한 좌우와 선수 쪽이 트여있는 층이기도 했다. 생존자들을 유도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다.
겨울이 점치는 가능성은 파수꾼들을 무음으로 해치우는 것. 그 뒤에 깨어나지 않은 놈들을 하나하나 살해하면 된다.
눈 뜨고 잠든 놈들 사이를 걷는 건 기괴한 느낌이었다. 굳은 변종을 엄폐물 삼아 움직이는 변종의 시야를 피한다. 자세를 낮추고 이동하다가 파 먹힌 여자를 발견했다. 피로 물든 원피스에 진주 목걸이. 손목에 감겨있는 우아한 시계. 붉은 조명 아래 광택이 번들거리는 핸드백. 먹고 먹히는 집단에서 먹는 쪽이었으리라.
겨울의 주의를 끈 것은 썩어가는 모습이 아니라, 그 냄새였다. 부패한 육류의 악취 외에도 특이한 향취가 남아있다. 거북할 정도로 화학적인 자스민 향기. 강렬하다. 보통은 이렇게 쓰지 않는 것을. 씻기가 여의치 않았던 걸까?
싣고 다니는 식량이 식량이었으니……. 먹기 전까지 살려두려면 많은 물이 필요했을 터.
예상대로, 백을 뒤져보니 향수병이 나왔다.
카펫 깔린 바닥에 계속해서 분사하는 겨울. 그리고 몇 걸음 물러나, 머리를 틀어 올린 여성체의 폭 넓은 치마 뒤에 웅크린다. 소리 없이 백 팩을 놓아 무게를 줄였다. 한 결 가벼워진 육체는, 이제 인간을 넘어선 민첩성을 고스란히 발휘할 것이다.
향기 짙은 바닥은 깨어 움직이는 놈들의 이동경로였다. 둘씩 짝지어 다니는 것이 조금 곤란하다. 손을 빠르게 써야 하겠다.
역시나, 걸려들었다. 킁킁. 코를 움찔거리며 접근하는 한 쌍. 남성체 하나, 겨울 또래의 여성체가 하나다. 새로운 숙주를 발견한 게 아니니 하울링은 아직 이르다. 다만 냄새를 쫓아 기웃거리다가, 마침내 바닥으로 몸을 기울인다. 손으로 땅을 짚고 냄새의 근원을 찾는 중.
우득. 우드득.
배후를 점한 겨울이 두 개체의 목을 빠르게 비틀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힘이었다. 짧은 스냅으로도 경추(頸椎)가 어긋난다. 쓰러지기 전에 뒷덜미를 붙들었다. 잡혀서 축 늘어지는 두 구의 시체. 바텐더에게 그랬듯이, 살며시 놓아준다.
소녀 변종이 겨울을 응시하고 있었다. 얇은 목이 한 바퀴 반이나 돌아버린 탓. 찢어진 살에서 피가 흐른다. 탁한 눈을 혐오스러운 갈망으로 물들인 채 혀를 내밀었다. 죽음이 임박한 변종의 힘없는 번식본능. 죽은 소녀는 눈물을 흘렸다. 어떤 감정의 작용이라고 보긴 힘들었다.
시체를 내려놓고, 겨울은 남은 수를 헤아렸다.
잘 하면 탄 한 발 낭비하지 않고 처리할 수 있겠다.
파수꾼 다섯 쌍을 추가로 해치운 뒤. 이어진 것은 조용하고 단조로운 반복 작업이었다. 그래도 서두른다. 헬기의 공백이 길지는 않을 것이기에. 깁슨 요원이 시간을 끄는 데도 한계가 있을 것이고.
괴물 같은 남자가 있었다.
“……?!”
겨울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감각보정의 경고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평균적인 변종의 순발력으로 세 호흡이면 덮쳐올 간격. 구석진 응달에 웅크리고 앉아, 우물우물 손가락을 씹으면서, 노동에 가까운 반복 살해를 지켜보고 있다.
어째서 눈치 채지 못했나. 겨울은 보정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다. 시스템의 한계를 아는 까닭. 확신에 가득 찬 순간, 시스템은 그 확신을 반영하므로.
설마 「기척차단」인가……? 그럴 리가. 그건 생존계열과 전투계열이 동시에 깊어져야 획득 가능한데. 지금의 겨울조차도 엄두를 내기 어렵다.
남은 가능성은, 남자가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을 경우. 적대적이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다면 「생존감각」이나 「전투감각」에 감지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 또한 어딘가 모자란 가설이었다. 변종들이 남자를 왜 그냥 두었겠는가.
수염 수북한 남자가 다가왔다. 겨울이 맹렬한 경계심으로 겨냥하는 총구 앞에서, 남자는 두려운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사-알려주새오. 나 당신 아ㄹ아. 하-하-한겨울, 주, 중위. 헤!”
목소리가 크다. 아직 죽이지 못한 것들이 반응했다. 숫자가 많은데. 우득, 우득 우드득. 굳어있던 관절이 급격하게 꺾이는 소리들.
일단 괴물이 아닌 듯 했으므로, 겨울은 남자의 목덜미를 붙잡는다. Kiosk. 편의점 같은 시설에 던져 넣었다. 으에엥! 남자가 울었다. 겨울이 재차 총을 들이민다.
“조용히!”
작게 으르렁거린 협박이 제대로 먹혔다. 남자는 제 손으로 입을 막는다. 울먹울먹. 손가락 사이로 흐느끼는 소리가 샜다. 바깥에서 거친 발소리들이 오간다. 매점의 진열장 안쪽에서도 움직이는 기척이 하나. 겨울은 매대를 타넘었다. 막 각성한 변종의 정면에 뚝 떨어져, 시선 마주치기도 전에 턱을 쳐올렸다.
빡! 개머리판에 맞은 뼈가 바스러진다. 맞은 놈이 쓰러진다. 부딪히기 전에 멱살을 잡고, 끌어내리며 무릎으로 강타. 빠각! 다시 한 번 턱을 맞은 놈은 눈이 뒤집어졌다. 축 늘어지는 몸뚱이. 기절한 놈을 눕혀놓고, 목을 밟아 마무리한다. 슬며시 누르는 군홧발 아래 피와 살이 으깨어졌다. 뚜둑, 뚝, 뚜둑.
겨울은 섬짓한 감각에 홱 돌아섰다. 그렁그렁한 눈으로 지켜보는 남자의 모습. 바깥에서 굶주린 발소리가 겹쳐지는데, 위기감도 없는지 멀거니 서있을 뿐이다.
“자세 낮춰요!”
남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낯빛이다. 이번에도 결국 강제로 끌어내려야 했다. 쿵. 카운터 안쪽에 무릎 꿇려 놓고, 겨울은 그늘에 의지하여 바깥을 경계한다.
‘대체 이 남자는 뭐야?’
밀착하자 썩은 내가 확 풍겼다. 붙잡았던 손도 고름으로 미끌거렸다. 옷을 흠뻑 적신 것이, 땀 이상의 더러운 분비물이었다. 대체 옷가지 안쪽이 어떻게 생겼기에?
후우, 후우. 남자가 숨을 내쉴 때마다, 겨울은 반사적으로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습관이었다. 변종을 처리하는 습관. 냄새가 너무 비슷해서, 습관적인 반응이 나온다.
바깥을 신경 쓰면서도, 겨울은 거듭 사내를 곁눈질했다. 어디를 봐도 정상이 아니다. 머리카락은 듬성듬성 비었다. 빠진 자리를 보면 살이 무르고 썩는 중이었다. 그나마 있는 모발은 머릿기름과 진물로 떡이 져서, 접착제로 붙여놓은 것처럼 보인다.
설마 전염병 환자인가? 묵직한 불안감이 엄습한다. 「질병저항」을 획득할 여력이 없건만. 「역병면역」을 얻는 조건의 하나인 만큼, 「통찰」 이상으로 소모가 극심한 기술이다.
두두두두두. 회전날개가 돌아가는 소리. 거리감이 빠르게 줄어든다. 새로운 헬기의 도착이었다. 탐조등을 달고 왔는지, 창문으로 거센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선수 방향에서 선미 방향으로 훑고 지나가는 탐색.
겨울은 남자에게 가만히 있으라 손짓하고, 매점 입구에 바싹 붙었다. 마침 거울 깨진 조각이 있어, 바깥을 엿보기에 유용했다.
변종집단은 이미 헬기를 학습한 뒤였다. 빛과 소음에 반응하며 흐트러질지언정,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무작정 몰려가는 일은 없었다. 다만 창문을 기웃거리며 상황을 주시한다.
그래도 이쪽으로 향하던 관심은 사라졌다.
가만있자. 여기도 내선이 있을 텐데. 직원이 배치되는 편의시설마다 연락수단이 있는 건 당연하다. 겨울은 수사관을 거쳐 헬기를 잠시 멀리할 작정이었다. 변종들이 재차 대사억제에 들어가면, 다시 한 번 아까처럼 시도할 수 있으리라…….
빠드득. 빠득. 쩝쩝.
매대 안쪽에서 들려오는 허기진 소리. 이 남자는 이 와중에 뭘 먹고 있는 건가. 고개를 돌린 겨울은 눈살을 심하게 찌푸렸다.
더러운 남자가 죽은 변종을 물어뜯는다. 양손으로도 거침없이 살을 찢어, 두 볼이 불룩해지도록 입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우물우물. 와그작와그작. 평범한 인육보다 질기고 단단한 살덩이가 으깨어지는 소리.
겨울이 목을 밟아 죽인 변종은 도살당한 돼지 이하로 분해되어 있었다. 그나마 붙어있던 다리를 쭉 찢어 허벅지를 베어 무는 남자.
“당신 지금 뭘 먹는 겁니까?”
적대적으로 묻는 말에 남자의 눈이 동그래졌다. 눈치를 보던 그가, 먹던 다리를 양쪽으로 당긴다. 관절이 뚝 끊어졌다. 순수한 팔의 힘만으로 해낸 일. 인간 이상의 괴력이었다.
인간도 변종도 아닌 남자가 겨울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드-실래오? 맛있어오…….”
내밀어진 것은, 연골이 덜렁거리는 무릎과 그 아래의 발끝까지.
겨울은 눈을 가늘게 떴다.
============================ 작품 후기 ============================
#불법공유
이야기해도 소용 없네요. 껄껄.
#Q&A
Q. RGZ95님 : @ 대륙이 다를 뿐인데 변종이 괴상한게 ; 본토에 상륙하면 끔찍하겠네요
A. 지금까지 언급된 것 중 가장 끔찍한 건 중국 쪽의 탄저균 내성 변종입니다. 탄저병은 정말 무섭습니다. 이게 나타나면 오염지역을 포기해야 할 거예요.
Q. 잘되기를님 : @음.. 싫어하는사람도 있다는걸 알지만 관객의 맨트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요즘 너무 관객이 안등장하나요 ㅠㅠ 긴장감완화라는 효과도 있는디 등장시키면 안되나요 ㅠㅠ.
A. 3화 이내로 등장합니다. 호불호가 참 갈리는 부분이네요.ㅠㅠ
Q. 비누좀주워주세요님 : @내 사랑을 받아라! 거절은 거절한다!
A. 받아 드릴 테니 거기 있는 비누 좀 주워주시겠어요? 🙂
Q. Guaaaaak님 : @작기님을 향한 감사와 사랑과 존경과 동심을 담아 27장의 따끈따끈한 원고료쿠폰을 보냅니다!
A. 네, 감사합니다.
Q. 반가운미소님 : @지금 한국은 뭐하고 있을까요? 윗 분들 대처능력을 생각해보면 초반에 대응이 늦어서 아에 국가로서의 기능을 상실 했을 것 같은데… 거기다가 인구밀집도를 생각해보면 대응을 잘했어도 헬게이트가 열렸을 것 같네요. 작은 땅덩어리에 폭발적인 인구가 몰려있으니까요.
A. 이 소설에 한국이 나올까요 안 나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