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131)
00130
=========================================================================
#골든게이트 (3)
대화는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느린 배의 지루함을 달래기엔 좋은 시간이었다. 에이프릴 퍼시픽은 의도적으로 피하는 화제가 되었다. 그 배의 최후에 대해서도.
지는 해가 바다를 물들였다. 웬일인지 안개가 끼지 않아, 골든게이트는 이름처럼 금빛으로 반짝인다. 금문교를 향해 좁아지는 물목. 북쪽에는 붉은 절벽이 굽이쳤다. 고지대에 구축된 포대들이 인상적이었다. 십 수 문의 야포가 바다를 겨누고 있다.
시력에 보정을 받는 겨울은, 능선을 따라 구보하는 병사들까지 볼 수 있었다. 경사를 오르는 모습이 힘겨웠다. 그들이 향하는 고지엔 초소와 게양대가 존재했다. 성조기가 물결친다. 해협 어디서든 볼 수 있을 크기였다.
같은 깃발이 남쪽에도 보인다. 미군은 다리로 연결된 양안을 장악하고 있었다.
‘어떻게?’
겨울은 당연한 의문을 느꼈다.
“앤. 저런 기지가 있었던가요? 방송에서는 못 봤던 것 같은데요. 달리 들은 적도 없고.”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는 북미 감염의 진원지. 미군은 여기서 호되게 밀려났었다. 그러므로 교두보를 마련한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다. 당국이 자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희소식에 굶주린 언론이야 두말할 나위도 없었고.
“그럴 거예요. 아직은 비밀이니까.”
“왜죠?”
조안나는 장난스럽게 반문한다.
“한 번 맞춰보시겠습니까?”
음. 미간을 좁히며 고민하는 겨울. 기지의 전모를 볼 수 있다면 도움이 될 텐데. 활주로의 유무, 시설의 수준, 주둔 병력의 규모와 배치된 장비의 종류 등. 그러나 당장 보이는 건 바다에 면한 일부에 불과했다.
아니. 그런 것들은 중요치 않을 것이다. 겨울은 생각을 달리했다. 조안나가 무의미한 장난을 칠 사람은 아니었다. 맞출 수 있으니까 맞춰보라고 했겠지. 능력을 시험해보는 것일지도 모르고. 아니더라도 좋은 인상을 줄 기회다. 이미 그녀는 작은 힌트를 주었다.
‘아직은 비밀이라고 했지?’
뭔가 준비가 덜 되었나? 때가 되면 공개한다는 뜻으로 봐도 무방할까? 보도관제가 걸릴 이유는 여론 밖에 없다. 변종들이 TV를 시청하는 것도 아니니. 트릭스터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한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아니라면, 전선은 한바탕 난리를 겪었을 것이다.
대선. 그래, 그것도 있었지. 「명백한 해방」 작전조차 정치적 조건에 영향을 받았다. 결정적인 순간에 공개하려는 계획일까? 사람들은 분명히 열광할 것이다…….
선거 전략을 말하려다가, 겨울은 입을 다물었다. 이 모습을 흥미롭게 주시하는 FBI 요원.
“뭔가 떠오르셨습니까?”
“선거 전략인가 싶었는데, 설령 맞더라도 가장 큰 이유는 아닐 것 같네요.”
“왜죠?”
“여론이 들끓어 통제할 수 없게 되어도 곤란하겠구나 해서요.”
“그렇게 생각하신 이유는?”
“이 도시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겨울이 언급한 사람은 해상난민들이 아니었다. 시가지에 고립된 채 지금도 저항하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시민들. 여기 기지가 구축되었음이 알려지면, 낙오된 시민들을 구조하자는 주장이 제기될 게 뻔했다.
“추정규모가 80만이었던가요? 오염지역 전체의 추정치이긴 하지만, 이만한 대도시권이니 적어도 십만은 되겠네요. 기지에 수용할 능력이 있을지 부터가 의심스러워요. 구출할 때 필요한 자원도 자원이고……. 헬기가 대량으로 필요할 테니까요. 명백한 해방 작전을 준비하는 데 차질이 빚어지면 곤란하겠죠. 그거야말로 대선에 가장 결정적이잖아요.”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산호세 등. 만에 인접한 대도시들이 하나의 메갈로폴리스를 이룬다. 헬기를 얼마나 동원해야 십만 단위의 수송이 가능하겠는가. 군용기는 정비도 만만치 않다. 항속거리를 감안할 때 한동안 고정 배치할 필요도 있었다. 심각한 전력낭비다.
FBI 수사관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반론했다.
“그만큼 공수부담이 줄어들지 않겠어요?”
미국은 오염지역에 하루 5천 톤의 물자를 뿌린다. 200만의 생명을 지탱할 수 있는 양. 그런데 생존자 규모는 80만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물자부족에 시달린다.
물자를 낙하산으로 투하하기 때문이다. 원치 않는 곳에 떨어지는 양이 절반 이상이었다. 샌프란시스코만 하더라도, 이 넓은 도시에서 점으로 분포하는 생존자들이 너무 많았다.
‘건물 하나 점령하고 버티는 경우가 가장 곤란하다지.’
오며가며 들었던 이야기였다. 수용인원이 많은데, 낙하산 떨어트릴 면적은 지나치게 좁다고.
이런 곳이야말로 헬기를 투입해야 한다. 공수 효율을 감안해서라도, 이런 곳에서는 사람들을 빼내야 하는 것. 겨울은 줄곧 의문이었다. 하지 않는 이유가 있나? 헬기가 그렇게 부족한가? 혹은 구조 도중, 줄어든 인원으로 인해 건물의 방어가 뚫릴 게 우려된다거나…….
겨울이 대답했다.
“헬기와 수송기의 역할이 다른걸요. 수송기를 절약한다고 헬기를 대신할 순 없어요. 어쨌든 우든 원더는 헬기가 아니잖아요. 마침 저기 하나 날아가네요.”
애국자들을 위한 두 잇 유어셀프. TV 프로그램에서 소개했던 목제 수송기가 퇴락한 도시의 공제선을 가로지르는 중이었다. 이윽고 낮은 하늘에서 화물을 투하한다. 파일럿은 펼쳐진 낙하산 주위를 맴돌았다. 제대로 떨어지는지 지켜보는 모양이다.
느린 비행운이 방향을 바꾸었다. 파일럿은 만족했으려나? 겨울이 남은 말을 이었다.
“헬기를 대량으로 수용하려면 기지도 바뀌어야겠죠. 설비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질 거예요. 이곳에 있는 기지가 명백한 해방 작전을 위해 준비된 거라면 난처하지 않을까요? 이제 두 달도 남지 않았는데요. 무엇보다 생존자들을 수용하고서 제 기능을 하긴 어렵겠고요.”
그렇다고 구조여론을 무시했다간 지지율이 떨어질 게 뻔하니, 기지에 대해선 입 다물고 있는 수밖에. 여기까지 들려주니, 조안나가 부드럽게 웃음 짓는다.
“괜찮은 판단력입니다. 겨울은 알면 알수록 신기하군요.”
재능보다는 인성이 더 놀랍지만요. 어떻게 당신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요? 차분히 칭찬하는 그녀에게, 겨울은 덜 여문 미소를 내보였다. 적당히 부끄럽고, 적당히 기뻐하는.
‘이 정도면 충분하려나?’
표정 만들 때마다 옅은 불안을 느낀다. FBI 감독관의 유능함 탓이었다. 에이프릴 퍼시픽의 미치광이를 분석하던 그 대수롭지 않은 태도. 사람을 읽는 노하우.
「통찰」 깊은 인물은 지어내는 감정을 꿰뚫는 경우가 있었다. 처음 몇 번인가의 세계관에서 경험한 뒤로 다시 겪은 적은 없다. 그러나 공허한 요즘이었다. 속이 많이 비어서 더 짙은 연기가 필요했다. 지식을 겸비한 요원에겐 조심스러워진다. 「간파」당했다간 불신을 살 것이다.
그래서 어젯밤도 더는 떠올리지 않으려고 한다. 안에 있는 돌을 들킬까봐. 총독이 너무 많이 건드려 놨다.
조안나가 난간에 기대어 샌프란시스코 시가지를 바라본다.
“맞습니다. 여론의 폭주를 걱정하는 거죠.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만.”
“그건 뭐죠?”
“기밀유지서약을 기억해주신다면 말씀드리죠.”
겨울은 고개를 갸웃 하고는, 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기밀을 누설하고 싶어도 안 될걸요? 모두 감시하고 계실 텐데. 제 주변에 들려줘도 파급력엔 한계가 있고요. 절 상대론 안심하셔도 좋아요. 애초에 말하고 다닐 생각도 없지만.”
이 근처에서 전파가 잡히고 있었다. 즉 군용 스마트폰 네트워크인 넷 워리어(Nett Warrior) 중계기가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는 뜻. 그럴 거라 예상했다. CIA와 특수부대가 합동작전중인 장소에 설마 통신망이 없을까.
바랐던 건 겨울동맹과의 연락이었다. 그러나 할 수 없었다. 전파는 잡히지만, 연락에 제한이 걸려있었다. 하기야 군사통신망이다. 개개의 단말기에 대한 권한설정 쯤 어렵지 않을 것이었다. 하다못해 전차조차도 시동과 별개로 네트워크 암호가 필요한 미국이었다.
조안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괜찮다면 잠시 볼 수 있을까요?”
그녀는 단말기를 조작해보더니, 대부분의 기능이 잠겨있는 걸 확인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FBI 요원이라고 해도 모든 걸 아는 건 아니라서요. 이런 식일 줄은 몰랐습니다. 살아있는 어플리케이션들은 전투지원 관련 기능들입니까?”
“네. 탄도 낙차 계산기, 좌표산출기, 영상보고 시스템, 화력지원 네트워크 같은 것들이죠.”
“예전엔 이렇지 않았는데……. 기능을 포함해서, 방역전쟁을 기점으로 너무 많이 달라졌네요. 실례했습니다. 불쾌하셨겠군요. 저는 단지 기밀이라는 사실을 환기시켜드릴 의도였는데요.”
애국자에 대한 취급이 저질스럽네. 중얼거리는 그녀에게 겨울이 고개를 흔들어보였다.
“아뇨, 전혀. 개의치 마세요. 이게 최선이겠죠. 저도 이쪽이 마음 편하거든요.”
불필요한 의심을 사는 것보다는. 그렇게 대꾸하며, 겨울은 돌려받은 폰을 갈무리했다.
“그래서, 다른 이유가 뭔가요?”
“비공식적인 가설입니다만, 변종들이 오염지역 내의 생존자들을 일부러 살려두는 것 같습니다.”
“일부러?”
“그동안의 정찰결과에 따르면, 변종들은 시가지 내 생존자집단을 적극적으로 공격하지 않습니다. 남미에서 북상하는 놈들로 인해 나날이 숫자가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격성은 오히려 감소하더군요.”
“이상하네요. 기지에 대한 공격은 그렇지 않았는데요.”
“바로 그거예요. 군사기지에 대한 공격 수준으로 시민들을 공격했다면, 오염지역엔 지금쯤 살아남은 사람이 드물어야 정상입니다.”
겨울은 TV로 보았던 샌디에이고를 떠올렸다. 제1해병원정군의 거점인 노스 아일랜드 기지만 하더라도, 변종들의 거친 파상공세에 조용할 날이 없다. 그러나 만 저편의 시가지에선 시민들이 깃발을 내걸지 않았던가. 아무리 무장했어도, 시민들이 군대보다 강하진 못했다.
석연찮은 느낌이야 있었다. 그러나 겨울에겐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무대 밖에서 흐르는 이야기에 불과했으니. 지금까진 선택과 집중으로 이해했다. 힘이 남아있을 때 강한 적을 치는 본능. 불합리하다. 그래도 변종을 완전히 이해할 순 없는 거니까. 겨울의 납득은 이 정도였다.
곰곰이 검토한 뒤에, 겨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기는 식량이겠군요.”
“예. 놈들은 잘못 떨어진 식량을 긁어먹습니다. 진딧물을 살려두는 개미처럼 말이죠.”
“물자공수와 생존자 집단의 인과관계를 파악했다는 뜻인데……. 놀랍진 않네요. 그 가정이 옳다는 전제 하에, 시민들을 구출하기가 굉장히 까다롭겠어요.”
변종들이 그냥 보내줄 리가 있나. 한 번에 다 구하지 못하는 이상, 구조 과정이 취약해질 것은 예상했던 바.
“벌써 몇 차례 시도해봤습니다.”
낯빛이 나쁘다. 결과는 물어볼 것도 없었다.
아름다운 풍경이 급격하게 끝났다.
바람이 바뀌었다. 바다에서 만으로 불던 것이, 이제는 그 역방향이다. 심한 악취가 밀려들었다. 비리고 쉬고 썩은 것들이 혼잡하게 뒤섞인 냄새.
만에 가까워질수록 악취의 원인이 또렷해진다. 만 안쪽을 가득 채운 온갖 크기의 배들. 닻을 내린 무수한 선박들은 하나의 해상도시를 이루었다. 사슬과 그물, 밧줄로 서로를 묶어놓은 배들. 그것은 곧 사람들이 오가는 길이기도 했다. 요란하게 달린 국기들이 인상 깊었다.
도시에서 버려진 쓰레기들이 금문교 아래까지 밀려나왔다. 그 중엔 인간의 사체도 많았다. 어쩌면 대사억제에 들어간 변종일지도 모르고.
따다다다닷-
총성이 날카롭게 울린다. 여러 방향이었다. 바람의 갈피엔 누군가의 비명도 끼어있다.
물결에 울렁이는 도시를 보며, 겨울은 생각한다.
여기서도 유쾌한 일이 없을 것 같네.
============================ 작품 후기 ============================
#Q&A
Q. 꽃잎점님 : 자까님 매생이 조아해요?
A.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가느다란 미역 같은 거라고 듣긴 했네요.
Q. 생략님 : 금연하신다고 하셨는데… 살찌시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건 저의 착각이겠죠?
A. 저는 살면서 담배에 손을 댄 적이 없어요. 다른 작가님과 혼동하신 건 아닌가요?
Q. RGZ95님 : @ 평점을 높게 누르면 작가님이 꿈에 나와서 산치를 높여주시겠네요! 테켈리-리…
A. RGZ95님도 San치가 필요하세요? 흐음. 아닐 것 같은데…
Q. 그냥저냥마냥님 : @아쉽게도 제가 46번째가 아니네요…작가님이 꿈에 나타나신다면 갸아악 구아아악 해버릴텐데…아쉽
A. 허허. 숙면은 인생의 큰 기쁨 가운데 하나입니다. 굳이 꿈 속에서 저를 만나실 필요는 없어요.
Q. 도화원님 : @작가님이 동심생명체라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고 그런듯… 뭐야 평소에 납골당 팬이잖아??
A. 아,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가…이 소설의 독자분들 가운데 착한 분이 없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Q. 바회님 : @드림랜드에서 작가님과 접선하는 방법이 네이버 별점테러를 하면 된다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A. 그 방법을 자꾸 사용하면 작가가 드림랜드로 떠나버립니다. 영원히…ㅠㅠ
Q. qgegegqe님 : 46번째는 무슨 논리로 나온걸까?!
A. (45번째까지의 평점 평균*45 + X) / 46 = 46번째까지의 평점
X를 구하면 됩니다. 중학교 수준의 산수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