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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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젤 아일랜드 (2)
행선지는 기지 북쪽의 또 다른 선착장이었다. 해변을 끼고 도는 길을 따라, 차량은 북으로 미끄러졌다. 작은 해변이 차창 밖을 스친다. 파도에 오르내리는 적색 부표들. 기뢰를 깔아놨구나. 겨울은 남쪽 선착장에서 출발하지 않는 이유를 짐작해보았다.
‘길이 엉망이겠지. 계획 없이 확장된 시가지나 다름없을 테니.’
온갖 배들이 모여 무질서하게 닻을 내린 거대한 도시. 그리고 실시간으로 흐르고 흔들리는 거리. 그 사이로 난 길이 정상일 리 없다.
기지 북변은 한 줄의 장벽으로 막혀있었다. 컨테이너를 쌓아 만들었다. 짙어지는 어둠 속, 녹슨 상표들을 켜켜이 올린 모습에서 세기말이 느껴진다. 그 위에 병사들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조명도, 난간도 없어 무척이나 위험해 보였다. 갸우뚱. 겨울은 잠깐 야시경을 끌어내렸다.
과연. 가시영역을 벗어난 빛으로 장벽 전체를 밝혀놓았다.
“의외로군요. 여기선 헬기를 탈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만.”
조안나가 의문을 표했다. CIA 거점까지 직행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엔젤 섬까지 타고 가는 정도는 무방할 것이었다. 왜 다시 배를 타는가? 바커 소위가 답한다.
“아, 원래 그럴 예정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불가능해졌지만요.”
“어째서죠?”
“컨테이너 운반용으로 혹사시키는 바람에 고철이 되어 버렸거든요. 정비반에서 진즉에 두 손 들었습니다. 부품 돌려막기도 한계에 달했다고요. 뭐라더라, 이걸 타는 건 운에 목숨을 맡기는 거나 다름없다던가? 그런데도 태풍 때문에 억지로 운용했으니 더 이상은 무리일 겁니다.”
“태풍은 왜…….”
“장벽이 무너졌었습니다. 비상이 걸렸죠. 추락사고가 없었던 게 천행입니다.”
“아.”
조안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샌프란시스코는 풍수해가 심했던 도시였다.
그 헬기 중 하나가 선착장 근처에도 있었다. 날개를 얌전히 늘어뜨린 모습. 겉보기엔 멀쩡하다. 그러나 이렇게 바다 가까이 주기해둔 것 자체가, 더 이상 관리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소위가 시동을 껐다.
“내리시죠. 갈아타셔야 합니다.”
그는 앞장서서 백사장을 가로질렀다. 내딛는 걸음마다 버석거린다. 파도에 밀려온 쓰레기들 탓이었다. 모래와 물이 보이지 않을 지경. 다만 물결치는 쪽이 바다요, 그렇지 않은 쪽이 땅이었다. 겨울은 눈살을 찌푸렸다. 어디선가 풍겨오는 자욱한 탄내.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방풍림 저편에 황혼만큼이나 시꺼먼 무더기가 있었다.
다시 한 번, 조안나가 근심어린 표정을 짓는다.
“이렇게 부유물이 많은데, 가다가 문제가 생기진 않겠습니까?”
소위가 대수롭지 않게 답한다.
“그래서 호위 겸 예비로 한 척이 더 갑니다. 이 구역질나는 바다에서도 고기를 잡아보겠다고 쳐놓는 그물들이 가장 큰 문제죠. 그물이 망가지면 수거하는 꼴을 못 봅니다. 부표에 묶여서 둥둥 떠다니니 원……. 덕분에 엔진이든 스크루든 많이도 해먹었습니다. 하지 말라고 경고해도 소용없더군요.”
투덜거림은 덤이었다. 가동 가능한 보트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고.
준비된 경비정은 두 척이었다. 둘 다 크기는 작았다. 전장 약 47피트(14.6미터). 가속하면 물 위로 통통 튀어 오르는 그런 배였다. 겨울은 별 말 하지 않았는데, 소위가 서둘러 변명했다.
“이런 배가 아니고선 저 시궁창의 골목길을 헤집고 다니기가 어렵습니다. 중형선 이상으로는 유사시에 함수 돌리기가 힘겨워서 말이죠…….”
겨울이 그의 말을 잘랐다.
“그렇군요. 그런데, 골목길이라고요?”
“아. 이쪽에서 쓰는 은어입니다. 구석으로 들어가면 양아치들이 있는 것도 비슷하죠.”
어울린다.
고속정 운용에 필요한 인원은 넷. 하지만 겨울이 타는 쪽만 해도 이미 1개 분대의 승조원들이 대기 중이었다. 하나 같이 방탄복과 구명조끼를 겹쳐 입고 있다. 겨울이 탑승하자 모두 부동자세를 취했다. 라자로 상병이 겨울을 안으로 이끌었다.
“선실로 들어가시죠. 무슨 일이 생겨도 방탄유리가 있으니 다치지 않으실 겁니다.”
“교전이 자주 일어나나 봐요?”
“자주……까지는 아닙니다. 저놈들도 자기네 생명줄이 우리라는 걸 잘 알거든요. 다만, 몇 달 전 보트 한 척이 실종된 적이 있습니다. 어느 패거리의 소행인지는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았죠. 개자식들. 본보기를 보여줬어야 하는 건데…….”
그러자 바커 소위가 입술을 비죽거렸다.
“어이. 그렇다고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킬 순 없잖아.”
소위의 반응만으로 상병이 희망하는 본보기가 어떤 식인지 알 만 했다.
겨울은 조안나와 함께 선실 안에 섰다. 앉을 곳은 없었다. 손잡이가 있을 뿐.
두 척의 고속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걸쭉한 바다가 갈라진다. 투툭, 툭, 투툭. 단단한 것들이 선수에 부딪혀 튕겨지는 소리들. 전후 갑판의 기관총좌를 잡은 병사들이 주위를 끊임없이 경계했다. 조안나가 소위에게 질문했다.
“코로나 트라이엄프에 실어온 무기와 탄약은 어쩌죠?”
“아, 그건 나중에 별도의 수단으로 수송해드릴 겁니다. 당장은 방법이 없어요.”
“이런. 특별히 요청한 장비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그 이상의 말을 더하진 않는다.
진로가 자꾸 구부러졌다. 죽은 배들의 도시에서 자연스럽게 조성된 길은 미로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전진에 지장이 없는 것은, 이런 작은 배에도 예외 없이 발라놓은 첨단기기들 덕분이었다. 겨울은 조종석에 비치는 회색의 음영을 보았다. 광각 적외선 모니터였다. 놀라울 만큼 선명했다.
‘누가 미국 아니랄까봐…….’
다만 속도를 내긴 힘들었다. 부유물뿐만 아니라, 오가는 배들도 문제였다. 떠있는 게 신기할 만큼 녹슨 소선들. 목제도 있었다. 저들은 대체 무슨 목적으로 움직이는 걸까.
가까운 섬이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다.
정면의 중국어선 갑판에서, 상의를 벗은 남자가 이쪽을 주시한다. 두툼한 몸이 문신으로 뒤덮여있었다. 허리춤엔 녹슨 식칼을 질러놓았다. 적외선 화면에 하얗게 표시된다.
“더러운 칭키(Chinky) 새끼. 저런 건 바로 쏴 죽여야 합니다.”
라자로 상병의 욕설. 그는 아까부터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조안나가 좋지 않은 표정으로 그를 흘긴다. 겨울은 그녀의 우려를 느낄 수 있었다. 상병이 보여주는 증오가, 이 지역 미군 전체를 물들인 경향이 아니기를.
그 걱정과 별개로, 칼 찬 남자가 정상인일 가능성은 한 없이 낮다. 애초에 비대한 살집부터가 약탈자의 증거였다.
사내가 히죽 웃는다. 기관총의 조준선이 돌아오는데도 개의치 않고, 손을 바지 속에 넣어 제 추물을 긁적거린다. 꺼내서 냄새를 맡더니 으- 하고 찌푸리는 등, 대놓고 도발적이었다.
조금 더 나아가자 이번엔 길이 좁아졌다. 실제로 물길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좌우에서 다가오는 쪽배, 혹은 널빤지들 때문이었다. 손으로 노 저어 오는 헐벗은 이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갑판에 있던 병사들이 사방으로 윽박지른다. 언어가 달라도 쉽게 알법한 위협적인 몸짓들.
그러나 헐벗은 이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에겐 표정이 없었다. 동정심을 사려는 몸짓도 없이, 조용히 다가와 손을 내밀 뿐. 뭐라도 주면 좋고, 주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엿보인다.
보나마나 앵벌이겠지. 뭘 줘도 빼앗길 것이다. 받은 자리에서 먹어치우면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것이고.
그 가운데 유일하게 감정을 보이는 건 한 사람의 어머니였다. 꽉 찬 쪽배의 뒤편에서 호소하는 시선을 보내온다. 힘없는 그녀는 양보 않는 사람들을 헤치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다. 틈을 비집으려다가 쓰러지기를 몇 차례. 그 와중에도 품에 있는 아기만큼은 소중히 보듬고 있었다.
조안나와 그녀의 눈길이 마주쳤다. 어머니는, 데려가 달라는 듯, 자신의 아기를 들어보였다. 아기는 울 것처럼 입을 달싹거린다. 그러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선실 안쪽이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못 먹은 아기에게 기력이 없는 것인지. 살 빠진 아이는 죽음을 닮았다.
바커 소위가 슬쩍 돌아보았다.
“쳐다보지 마십시오. 마음만 상할 뿐입니다.”
“압니다.”
답하는 음성이 의외로 침착하다. FBI 요원은 현실의 한계를 의무적으로 받아들였다. 다만 깜박이는 눈가에 여남은 감정이 있어, 손끝으로 슥 닦아낸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책임지지 못할 동정심은 베풀지 않는 것만 못하죠.”
그녀는 아이를 받을 수 없다. 받아서 스스로 기를 수 있겠는가? 최선은 이 자리, 겨울 외의 누군가에게 맡기는 것이다. 포트 베이커는 아이 하나쯤 받아줄 여유가 있을지도 모르니.
‘그러나 그건 선행의 대가를 떠넘기는 거지. 무책임한 태도야.’
아기 입장에선 무책임한 선행이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와 동일하게, 어머니와 함께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미래를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 사랑 없이 자라는 아이의 삶은 어두운 것이다. 때론 죽기보다 힘겨운 삶도 있는 법.
또 한 명의 당사자로서, 겨울은 정답이 없다고 여겼다.
섬은 갑작스럽게 가까워졌다.
감정적으로 길었고 물리적으로 짧았던 편도의 끝. 감정노동에 숙달된 병사들은 소모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 사이에서 조안나는 조금 둔하게 움직였다. 등 뒤에 미련을 남긴 사람의 걸음걸이. 모성은 기혼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경험상, 타고나는 본성도 아니었다.
겨울은 어머니를 떠올렸다. 그리고 생전의 세계를 되새겼다.
“앤.”
“네, 겨울.”
“비극 그 자체보다는, 비극에 익숙해진 사람들 쪽이 더 슬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군요. 그건 무서운 일이죠.”
“앤은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에요.”
조안나가 맥 빠진 웃음을 터트렸다.
“세상에, 이렇게 민망하기도 오랜만입니다.”
그녀는 고개를 흔들곤, 발걸음을 재촉했다. 바커 소위가 험비를 대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험비 대열이 섬의 북쪽으로 달렸다.
잠수함이 대기 중인 곳에도 기지가 있었다.
입구에서 바커 소위가 작별을 고한다.
“이대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전 여기서 돌아가겠습니다.”
“아, 네. 수고하셨습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세요.”
겨울의 답례에, 소위가 특이한 손짓을 해 보인다. 검지와 중지를 붙이고, 약지와 소지를 다시 붙여서 손을 펼치는 인사법이었다.
“두 분의 장수와 번영을 바랍니다.”
아무래도 스타 트렉인지 뭔지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이렇게 하는 건가? 겨울이 같은 인사를 돌려주니 소위가 무척이나 기뻐했다. 옆에서 FBI 수사관이 한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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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조금 좋지 않아 후기는 생략하겠습니다. 다음에 답변드릴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