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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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ep show grey (6)
결정을 통보받은 국방부 공보처는 모범답안을 보내왔다. 위성 단말과 연결된 프린터가 꾸역꾸역 종이를 밀어냈다. 흐음. 겨울을 별도의 통신실로 안내한 코왈스키는, 전문을 살펴보더니 피식피식 웃었다. 설마 한 시간도 안 되어 답신이 올 줄은 몰랐다고.
“기일도 정하지 않은 주제에 급하긴 급했나보네요. 아니면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거나.”
그녀는 테이블 가득한 비문(秘文)을 치워 공간을 만들었다.
만들어진 자리에 앉아, 전문을 받아 살피며, 겨울이 답했다.
“기대하고 있었겠죠. 강요로 비춰질까봐 차마 대놓고 제안할 순 없어도, 그분들 입장에선 바라마지 않았던 선택일 테니까요. 최선이자 최고의 가능성인걸요. 게다가 이 정도의 명문이 잠깐 사이에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기도 어렵고요.”
일전에 들었던 대통령의 연설만큼이나 훌륭한 문장들이었다. 미리 만들어놨다가 보낸 거라고 봐야 했다. 쓰이지 않게 되었다면 얼마나 아까웠을까. 위성통신 저편에서 전전긍긍하고 있었을 담당자들이 눈에 선하다. 겨울은 드물게 투명한 미소를 지었다. 혹시 맥과이어 대위나 블리스 소령도 있으려나? 공보처에 근무하는 사람이 한둘은 아니겠지만.
마주 짓는 미소에 장난스러운 목소리를 더하는 코왈스키 요원.
“바라고 있었다기 보다는, 그쪽도 우리처럼 내기를 한 게 아닐까요?”
“설마요.”
“모르는 일이에요. 개인적으로는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데요. 중위님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거든요. 아마 이런 식이었겠죠. 나는 한겨울 중위를 믿어. 능력만큼이나 인성도 좋을 거라고. 뭐, 예상 거래액이 터무니없긴 하지만, 그 사람은 한낱 돈에 흔들리지 않을 거야. 왜냐니? 그는 한겨울 중위잖아! 라는 느낌?”
“공보처에서 들으면 화내겠어요.”
“어때요? 요즘은 누구든 즐거운 일을 찾아야 해요. 시종일관 엄격 진지한 사람이 이 잿빛 세월을 어떻게 견디겠어요? 저만 해도 그래요. 마지막으로 집에 간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걸요. 오, 우리 스모키는 엄마 얼굴도 잊었을 거예요.”
아이 이름 치고는 특이하다. 젊은 요원이 유부녀처럼 보이지도 않았기에, 갸우뚱 하는 겨울.
“스모키? 혹시 애완동물인가요?”
“네. 순종 페르시안이에요. 페르시안 친칠라. 애완동물이라기엔 상전을 모시고 사는 느낌이었지만, 어쩔 수 없죠. 고양이인걸요. 이웃에 맡겨두고 왔는데 걱정이네요. 사례비를 충분히 드리지 못했거든요. 무슨 작전인지도 모르고 끌려오는 바람에.”
설마 이렇게 길어질 줄이야. 중얼거리는 요원.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CIA의 활동무대인 다른 국가들이 줄줄이 몰락하는 가운데, 장기 잠복이 필요한 임무를 부여받을 줄은.
코왈스키는 정말로 그리운 표정을 짓는다. 뜯어봐도 연기 같지는 않았다. 겨울이 묻는다.
“몇 살이죠?”
“올해로 아홉 살이요.”
“고양이 기준으로는 나이가 많이 들었네요.”
“그렇죠. 오래 살아야 할 텐데. 이제는 유일한 가족이거든요.”
멈칫. 대화가 끊어졌다. 상대를 가만히 바라보는 겨울. 요원은 짧은 침묵을 쾌활하게 끝냈다.
“괜한 말을 해버렸네요. 신경 쓰지 마세요. 벌써 1년 넘게 지난 일인걸요.”
가만히 바라보던 겨울은, 안색을 살핀 뒤에, 일부러 더 물어보았다.
“유감입니다. 다른 가족 분들이 서부에 거주하셨나요?”
“그건 아니고, 부모님께서 여행 중이셨어요. 결혼 30주년이었거든요. 프랑스행 티켓은 제가 사드렸죠. 호텔과 레스토랑도 예약하고. 파리에서 시간을 보내신다는 연락이 마지막이었네요.”
“프랑스라면 대피할 시간이 충분했을 텐데……. 특별기가 편성되지 않았었나요?”
자국 시민들의 비상연락망과 유사시 대피계획을 구축해두는 것은 대사관의 기본 업무에 해당했다. 미국은 이런 면에서 탁월하다. 워낙 잦은 전쟁과 테러를 겪는 국가이기에.
“왜 아니었겠어요. 하지만 당시의 프랑스는 혼돈의 도가니였으니까요. 임시 대피소로 지정되었던 백화점에서 폭탄이 터졌어요. 범인은 종말론자인 동시에 공산주의자더군요. 극단적인 광신과 대표적인 무신론의 조합이라니, 우습지 않나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상상은 가네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지상으로 보내신 역병의 기수를 보아라. 이는 자본주의에 물들어 타락해버린 인류에 대한 징벌일진저. 내가 오늘 자본주의의 만화경을 폭파한 것은 세상에 고하는 질타의 외침이니. 인류여, 구원을 바라는가? 그렇다면 회개할지어다…….”
지력보정이 해당 사건에 대한 정보를 출력했다. 갤러리 라파예트 폭탄 테러 사건. 대피소가 왜 하필 백화점이었나? 생각하는 즉시 정보가 보강된다. 사진과 함께 어른거리는 텍스트. 통상적으로 대피작전의 집결지점은 경기장이나 호텔 등으로 정해지지만, 당시 파리의 모든 경기장과 호텔은 이재민으로 가득 차있었다고.
“말씀드렸죠? 즐거운 일을 찾아야 한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정보국 요원. 그러나 내쉬지 않는 한숨이 느껴진다. 기술적으로 숨겨진 진짜 감정. 하지만 태연함의 겹이 얇았다. 조금 더 두꺼울 여지가 있건만.
겨울은 말을 돌렸다.
“그런데 제가 여기 들어와도 괜찮은 건가요?”
사방이 암호문이었다. 이 방에 있는 문서들만 유출되어도 미국의 모든 암호체계가 위험해질 것이었다. 미국의 잠재적인 적이었던 국가들이 하나같이 존망의 기로에 놓여있으나, 그래서 더욱 위험한 시기였다. 특히 러시아. 오르카 블랙의 부가적인 임무 중 하나는 샌프란시스코 일대의 방첩활동이기도 했다.
‘버려진 군사시설들이 많으니까.’
암호체계를 갱신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지금 같은 시기엔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상관없어요. 작전에 참여하는 인원들에게까지 지켜야 할 비밀은 없거든요. 명예훈장 수훈자를 의심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저는 비밀취급인가가 없는걸요.”
“후후, 현장의 융통성이라고 생각하세요. 하지만, 그러네요.”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게 드문 일이긴 해요. 대개 혼자 일하는데.”
그래서인지 사적인 공간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코왈스키는 짓궂은 미소를 짓는다.
“그래서, 어떠세요? 제 방에 들어오신 소감은.”
“꽤 삭막하게 지내시네요.”
“어허, 정말로 그것뿐이에요?”
거리가 좁혀졌다. 맞은편에서 상체를 숙여 다가오는 요원. 좌우로 밀린 서류 사이인지라 위태로운 풍경이다. 흔들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성숙한 체향이 밀려왔다. 겨울은 체온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맥박이 빨라진다. 숨 쉬는 간격은 맥박을 따라 줄어든다.
정신은 오히려 차갑게 식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괴리는 샌 미구엘이 마지막이었는데.’
상황연산에 의해 강제되는 감각. 본인의 진짜 상태와 무관하게, 공포스러운 분위기에서 식은땀이 흐르게 만들고, 긴장감이 흐르는 상황에서는 심장이 뛰게 만드는 효과.
정신은 감각에 의지한다. 비록 진짜 육체는 팔린 지 오래지만, 사후보험의 감각재현이 한없이 실제에 수렴하는 한, 거대한 상실 또한 감각의 장벽 너머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하여, 미숙할 땐 정신이 감각에 휩쓸릴 때가 잦았다. 흔들다리 효과와 같은 맥락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상하다.
기술수준이 향상될수록, 육체에 대한 통제력도 강화되므로.
따라서 지금 같은 괴리감은 정상이 아니었다.
“당혹스럽네요, 코왈스키 요원.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 건 오늘이 처음인데. 이유가 뭐죠?”
정면을 똑바로 바라보는 겨울. 그 시선이 요원의 접근을 지연시킨다. 그녀는 장난스러우면서도 고혹적인 태도로 되물었다.
“이유? 글쎄요.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모습 외에 다른 이유가 필요한가요?”
“…….”
“모르잖아요. 지금 이 순간 봉쇄선 동쪽 어디에선가 감염폭발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그로인해 내일 아침, 동부로 이어지는 모든 통신망이 두절되고, 저는 조용해진 콘솔 앞에서 눈물만 흘리게 될지도. 내일 이 시간, 어떻게 하면 고통 없이 죽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지도.”
따뜻한 손이 다가와 뺨에 닿는다.
“언제 멸망할지 모르는 세계에서, 내일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한 쌍의 남녀가 밀폐된 공간에 함께 있는 거예요. 다른 이유는 필요 없잖아요? 우리는 여기서 즐거운 일 하나를 만들 수 있을 거예요.”
더욱 가까워진 얼굴에 옅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남은 거리, 이제 약 한 뼘 가량. 뺨에서 미끄러진 손이 목을 타고 미끄러진다.
“중위님도 지금 얼굴이 붉은걸요. 두근거리지 않아요?”
“네. 저도 그걸 이상하게 여기는 중입니다.”
“이상할 게 뭐가 있겠어요?”
겨울은 조금 더 내려가려는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눈으로는 여전히 요원을 직시하면서, 고저 없는 차분함으로 말한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진심으로 예쁘다고 생각해요. 매력적이세요.”
“정말로?”
“네. 그러니 실망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제 생각엔 아마 맥주였을 것 같은데, 맞나요?”
“……무슨 말씀이신지.”
“방금 표정 관리 실패하셨어요.”
거짓말이다. 요원의 포커페이스는 단단했다. 감정의 꺼풀을 도구로 쓰는 능력자인 것을.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흔들렸다. 코왈스키는 손을 거둔다. 그리고 겨울을 바라보았다. 좀 전과 분위기가 확 바뀌어서. 무언가 신기한 것을 관찰하듯이.
“이미 확신하고 계시는군요. 우겨도 소용없겠네요.”
포옥 한숨 쉬며 테이블 아래로 내려가는 그녀. 의자를 끌어다 다리를 꼬고 앉는다.
“어떻게 아셨어요? 반쯤 진심인 연기여서, 이건 반드시 먹힌다고 생각했는데.”
“아까부터 계속해서 위화감이 느껴진 터라. 상황도 그렇고, 저 자신도 그렇고.”
상황연산의 감각적인 강제는, 결국 또 다른 변인의 작용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약물. 가능한 복용 경로는 한 병의 버드와이저뿐이었다.
감각보정의 경고가 없었던 것도 이해가 간다. 일단 약물이 생명에 위해를 가하는 종류는 아니었을 것이다. 독성이 없으면 「생존감각」은 둔해진다. 겨울을 해치려는 의도가 아니었으니 「위기감지」 역시 제 기능을 하기 어렵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채드윅 팀장 개인의 능력이겠지.’
수준 높은 「기만」은 스스로를 「통찰」에서 감출 뿐만 아니라, 적대적인 의도마저 은폐한다.
질병 같은 냉정이 아니었다면 눈치 채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겨울의 정신은 아직 돌의 무게에 짓눌려있다. 인간이 아닌 상품으로서 수치심조차 박탈당했던 날의 기억은, 뇌리의 가장 어둡고 차가운 곳에 칼날처럼 박혀있다.
대화의 흐름도 인위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겨울의 느낌일 뿐이었지만, 우연이 반복되면 필연인 법이었다.
“흐음. 짐작 가는 구석이 없는 건 아닌데……. 그래도 아쉽네요. 보통 남자들은 그 분위기에선 이상한 게 있어도 그냥 넘어가지 않나요? 훨씬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겨울은 한 번 웃고, 질문했다.
“다시 물어볼게요. 이유가 뭐죠?”
“끈질긴 남자는 인기 없는데. 담배 한 대 피워도 되나요?”
대답은 라이터를 꺼내는 것으로 대신했다. 상냥하기도 하셔라. 담배 한 대 물고 불을 받는 코왈스키. 사방이 조용하여, 담배 타들어가는 메마른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그건 레인저의 선물이군요.”
“산타 마가리타에서 받았죠. 75연대 2대대 델타 중대, 3소대장 존 E. 프레이 중위.”
“존 E. 프레이? 아, 델타 중대. 에머트 대위의 망나니들. 아직도 험프백을 쫓아다닌다고 하던데. 봉쇄사령부의 복귀 명령을 계속해서 무시하기로 유명하죠. 사실 사령부에서도 기대를 걸고 있어서 강압적으로 굴지 않는 거지만요.”
“다른 소식은 없나요?”
논점에서 벗어나긴 했으나, 궁금한 정보였다. 코왈스키 요원이 자리를 피할 것 같지도 않고. 애초에 그녀가 이유를 숨긴다면 추궁할 입장도 못되었다. 어쨌든 현장 지휘권은 CIA에게 있으니까. 채드윅이 지휘책임자로서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해버리면 그만이었다.
“음, 이쪽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긴 한데, 생사는 불분명한 상황이에요. 마지막 연락은 열흘 전 피나클 국립공원 남쪽에서 왔다고 해요.”
역설적이지만, 명령불복종은 훌륭한 군인의 조건이었다.
============================ 작품 후기 ============================
#Q&A
Q. svjk님 : @언제나처럼 잘보고 갑니다. 저널에 대한 질문이 몇 있는데요, 겨울이는 종말이후 내에서 현실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것 같은데, 시간 가속은 피할수 없는 것인가요? 아니면 지금 보고 있는 시청자의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서 시간 가속을 활용하는 건가요? 피할수 없는 거라면 발생조건은 어떻게 되나요?
A. 147회에 남겨주신 질문인데, 지난 회 후기가 너무 길어져서 이번에 답변 드립니다. 당연히 후자입니다. 간접적이지만, 시청자들이 지루하다고 보챈다는 내용이 나왔었죠. 겨울은 가을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하는 중입니다.
Q. 하루루루루님 : @아 작가님 거짓말하신거 하나 찾았는데 보상으로 연참해주세요! 몇편이였는지 기억이 안나는데 작가님 SNS랑 커뮤니티 활동 안한다고 하신거요. 음…….할케기니아 씰브레이커 연재처가………어 누구야! 억! 읍읍읍
A. 동심 생명체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후후. 문넷에 씰브레이커를 연재하긴 했어도, 커뮤니티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었죠. 4년 넘는 시간 동안 게시물 몇 개, 댓글 몇 개 쓴 정도인걸요. 저랑 친분 있는 분이 없을 겁니다.
Q. 햇살조각님 : @(전략) 그래서 겨울이 다른 특히 요즘 많이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서 매력적인(사이코패스적인 매력이나?)캐릭과 다르게 정말 괜찮고 가치관이나 생각하는게 성숙한? 매력이 엄청나게 다가오네요. 친구..아니 그냥 아는 사람 중에 이런 사람이 존재한다면 좋겠어요..아니 저런환경이니 겨울이 존재하는거지만 으음 납골당의 표현을 따르자면 저도 더 넓어지고 싶네요. 겨울의 모티브가 된 것들이 있나요? 인물이라든지??
A. 모티브가 된 인물은 없습니다. 세상 풍파에 시달려 애어른이 된 어린왕자를 상상했을 뿐입니다.
Q. 라우넬리스님 : @험프백은 일반 좀비를 강화 혹은 변종으로 만들거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진화?를 하는 변종이전의 형태를 가진 그런 쪽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맞나요!?
A. 사실 실체는 그렇게 대수롭지 않습니다만…대부분의 특성은 이미 댓글에서 나왔습니다. 다만 세계관에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한 사소한 특성 하나가 나오지 않았을 뿐이에요.
#메리 크리스마스
여러분, 모두 즐거운 성탄 보내세요. 작가도 스스로에게 선물을 했습니다. 스팀 게임 3만원어치…과연 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만.
라이브러리에 쌓인 게임이 170개인데 엔딩을 본 건 몇 개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