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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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9), 장미가 시드는 계절 (2)
젊은 몸의 늙은 폭군은 턱을 괴고 앉아있었다. 입은 옷은 없다. 질척질척. 아래에서 올라오는 소리는 젖어있었다. 비싼 여자였다. 모든 행동이 기품 있고 천박했다. 시선이 마주치자 눈으로 웃는다. 아름답다. 입 안이 가득한 채로는 어려운 노릇이건만. 그 와중에도 혀를 굴린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은밀한 유혹이었다. 우아한 외모와 동떨어진 움직임. 그녀의 입은 뜨거웠다.
그러나 있어야 할 반응이 없었다. 폭군은 식어있었다. 피부가 차가울 지경이다. 거쳐 간 여자 가운데 한 명이 말했었다. 냉혈동물 같다고. 사람이 아닌 것 같아 무섭다고.
그때 폭군은 속으로 비웃었다. 사람이 원래 차가운 동물인 것을.
어쨌든 그는 성기능에 문제가 있었다. 육체를 갈기 전엔 노환인줄 알았다. 아니, 그렇게 믿었다. 젊음을 거래하면 잃어버린 인생이 돌아오리라고.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으리라고.
‘새로운 내가 되고 싶었다.’
고건철은 과거의 자신이 싫었다. 거울을 보면 화가 치밀었다. 멍청한 놈의 얼굴이라고. 제 여자 하나 간수하지 못한 얼간이 새끼라고. 불륜이 발각된 현장에서, 아내였던 여자는 미친 듯이 웃었다. 지금 네 꼴을 보라고. 너 같은 추물을 진심으로 사랑할 리 있겠느냐며.
아, 그 날카롭던 웃음소리. 떠올릴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제멋대로 반복되는 기억. 머릿속의 음량을 줄일 수가 없었다. 하하하, 하하하하하! 점점 더 커지다가, 마침내는 분간할 수 없는 굉음이 되고 만다. 그것은 마치 돌 구르는 소리를 닮았다. 우르르르륵.
찰싹! 고건철 회장은 눈을 깜박거렸다.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알알한 통증. 하얗게 식어있던 살에 연한 손자국이 남아있었다. 낮게 있던 여자의 소행이었다. 그녀는 자세를 바꾸었다. 올려다보는 시선은 순종적이고, 어루만지는 손길은 지배적이었다. 남은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그녀. 하얗고 가느다란 목이 드러난다. 살짝 기울인 얼굴로 생긋 웃으며 하는 말.
“너무하시네요. 저랑 같이 있으면서 다른 사람을 생각하시다니.”
“넘겨짚지 마라.”
“아닌가요?”
회장은 인상을 썼다. 그러나 화를 내진 않았다. 옆에 두고도 견딜 만 한 여자를 찾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른 여자들은 벗은 몸만 봐도 구역질이 났다. 특히 더 견디기 어려운 건 화장보다 진하고 향수보다 역겨운 미소들이었다. 어설프게 가려서 그 너머의 추악함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그런 감정들.
이 여자는 그나마 괜찮게 웃을 줄 안다. 자신의 더러움을 긍정하는 솔직함이 느껴지므로. 혼혈의 특색이 드러나는 외모도 괜찮다. 아내였던 여자와는 다를수록 좋았다. 덕분에 곁에 두어도 참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혐오스러운 것들 가운데 그나마 나은 하나였다. 화를 내어 쫓을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습관적인 화 또한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새로운 삶을 위하여.
사아악, 사악. 민감한 곳에서 하얀 손이 움직인다. 악기를 연주하듯이. 변주에 들이는 감정은 가벼운 투정과 유혹이었다. 부드러운 마찰은 활대가 현을 켜는 것 같았다. 그러나 탁월한 기량으로도 죽은 악기를 살릴 순 없었다. 울림통이 비어있지 않았다. 자글거리는 돌로 꽉 차있어서, 어떤 연주도 깊어질 틈이 없었다.
폭군이 요구했다.
“하던 거나 계속해라.”
이에 여인이 샐쭉해졌다.
“잠시 쉬게 해주세요. 턱이 아프단 말예요. 이런 식이면 얼굴이 두꺼워지고 말걸요?”
그리고 그녀는 교태롭게 올라왔다. 온몸으로 부대끼며, 냉혈한에게 자신의 체온을 어필한다. 만지는 손은 여전하다. 단단한 다리 위에 올라타서 볼에 키스하고, 귓불을 깨물면서 묻는다.
“제 입이 좋으세요?”
회장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불쾌하다.”
“뭐예요 그게.”
볼을 부풀리는 여인. 토라진 기색을 적당히 내비친다.
그러나 사실이었다. 눈을 감고 느끼면 정말로 더러웠다. 무언가 인간이 아닌 것, 축축하고 더러운 연체동물이 붙어있는 기분이었다. 극도의 거부감이 느껴지는 행위. 그런데도 거듭 요구하는 자신이, 회장은 우습게 느껴졌다. 덜 아문 상처의 딱지를 떼는 아이와 같지 않은가 하고.
“싫은데 왜 자꾸 해달라고 하시는 거예요?”
“알 것 없다. 넌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휴, 알았어요. 그래도 지금은 말고요. 가끔은 그냥 맡겨보세요.”
제게는 다른 즐거움도 많은걸요. 그녀의 달큰한 속삭임이 폭군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말 그대로의 오싹함이다. 이 같은 속삭임에 지배당할 때가 있었다. 더운 방에 오래된 겨울의 추위가 밀려왔다. 현실과 회상의 온도차가, 망가진 인간을 날카롭게 몰아세운다.
유달리 혹독했던 그날은 딸의 생일이었다. 아버지는 몹시 바빴기에 함께할 수 없었다. 없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중한 만남이 미뤄졌다.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 운이 나빴다. 그 땐 어떤 의미로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론 최악이었다. 축하받아야 할 아이는 눈 내리는 정원에 홀로 나와 있었다. 달달 떨면서. 인형을 끌어안고. 무슨 인형이었더라? 아니,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오래 있었던 것 같았다. 머리와 양 어깨가 하얗게 덮였다.
아버지가 물었다.
“무슨 일이니? 왜 혼자 나와 있어? 응?”
막내딸은 평소 다른 자식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하나였다. 평소엔 수줍어서 그런다고 여겼다. 막내는 자주 우울해했고, 말수가 적었다. 친구도 없는 것 같았다. 인형을 끌어안고 몇 시간씩 앉아있기가 예사였다. 하지만 축하받아야할 날에 홀로 나와 있는 것을 보니 이상했다.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딸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꼭 안아주자 눈물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들어가시면 안 돼요.”
더욱 이상했다. 조용히 들어갔다. 고용인들이 보이지 않았다. 집사는 그렇다 치고, 당직을 서는 하녀도 없다니. 실내는 더웠다. 그러나 뼈는 시렸다. 두근거림에 귀가 멀 것 같았으나, 침실에서 들리는 소리를 놓칠 정도는 아니었다. 가는 걸음에 옷가지들이 걸렸다. 움직이며 한 꺼풀씩 벗어던진 것들이었다. 한 사람 것이 아니어서 숨이 막혔다. 여자 옷은 눈에 익었고, 남자 옷도 눈에 익었다. 다만 뒤쪽은 회장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닫혀있지도 않았다. 얼마나 급했으면. 그냥 밀어두었을 뿐. 허덕임은 그 사이에서 새어나왔다. 회장은 문틈을 들여다보았다. 둘 다 아는 사람이었다. 한 쪽은 아내였고, 한 쪽은 동생이었다. 아내는 동생의 하반신에 붙어있었다.
“또 다른 사람 생각하시네요. 대체 누구에요? 저보다 매력적인 그녀는.”
현재가 과거에 끼어들었다. 고건철은 뾰로통한 여자를 바라보았다. 대답은 충동적이었다.
“딸.”
“뭐라고요?”
여자는 배를 잡고 웃었다. 웃다가 지칠 때까지. 배가 아프다고 호소하며, 눈물을 닦았다.
“뭐가 그리 우스운가?”
“안 웃게 생겼어요? 비서들은 무서워서 쩔쩔 매고, 나 같은 여자를 앞에 두고도 싫은 표정이나 짓는데다, 이렇게 멋진 몸을 가졌으면서도 발기부전으로 고민하는 남자가, 그토록 간절한 섹스의 와중에 뜬금없이 따님 생각을 하고 있다니. 세상에! 회장님, 이런 분이셨어요?”
그리고 다시 한참을 웃는 그녀. 회장이 말했다.
“나는 섹스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아니면 뭔데요?”
되찾고 싶은 거지. 회장은 불필요한 말을 삼갔다.
단순히 섹스를 하고 싶었을 뿐이라면 약을 썼을 것이다. 즉효성 약은 얼마든지 많았다. 없는 성욕까지 만들어주진 않겠지만, 팽창한 해면체는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었다. 인간은 그런 식으로 만들어져 있으니까. 기능적이며 비효율적인 고깃덩이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러나 회장은 새로운 시작을 원한다. 아내였던 여자에게 빼앗긴 모든 것을 되찾고 싶었다. 성욕은 그 중 하나였다. 성욕 자체는 아무 의미도 없다. 오히려 끔찍하고 저급하다. 그러나 그토록 경멸스러운 것조차도 일단은 회복해야 했다. 되찾고서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떨쳐낸다면, 다시는 여자와 관계 맺지 않을 작정이었다.
기다리다 지친 현재가 다르게 파고들었다.
“따님이라면 분명 낙원그룹의 신임회장님이셨죠? 정말 예쁘시던데. 저랑 비교하면 어때요?”
무시할까. 회장은 병적으로 치미는 화를 억눌렀다. 측근들이 데려온 모든 여자를 내쳤다. 이제 이 여자 하나 남았다. 이제까지와는 뭔가 다르게 할 필요가 있었다.
‘자극이 필요하다고?’
만날 때마다 피투성이가 되는 의사의 말이었다. 정신적인 자극이 필요하다고.
“제 어미를 닮았지.”
“어휴, 그럼 못 이기겠네요.”
“네가 훨씬 낫다.”
이에 다시 폭소하는 여인. 고건철은 다시 천착했다. 자극이라.
의사는 치료수단으로 가상현실을 제안했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강도와 다양성을, 체력 부담 없이 지속적으로 경험할 수 있을 거라고. 가소로운 소리였다. 상대는 항상 진짜여야만 했다. 어차피 그 진짜라는 것은 감각으로 구분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언제나 자신이 아니던가. 새로운 삶에 가짜가 끼어들어선 안 된다. 치열하게 내 삶이어야 한다.
‘그 여자가 아직도 나를 지배하고 있다.’
분노와 함께, 폭군에게 익숙한 후회가 밀려왔다. 좀 더 끔찍하게 죽였어야 했는데. 둘 다. 그랬다면 지금 같은 후유증이 남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건만. 대체 왜, 나에게, 나처럼 효율적인 인간에게 사랑 같은 오작동이 있었나. 그 여자에겐 그럴만한 가치가 없지 않았나.
“어휴, 무서운 표정. 안 되겠네. 오늘은 이만 가볼게요. 나름의 소득도 있었고.”
무릎 위에 앉아있던 여자는, 늙은 소년의 이마에 입 맞추고 웃으며 물러났다.
그녀는 옷을 입는 모습도 고왔다. 과연 현 연예계의 정점이라 할 만 했다. 그러나 아름답다고 느껴질 뿐이다. 기복 없는 생각만 스쳐간다. 데려오는 비용이 얼마라고 했더라? 돈이 아닌 다른 것을 원했던가? 이름은 뭐라고 했더라……?
“무슨 소득이 있었다는 건가?”
뒤늦은 질문을 던졌을 때, 그녀는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이제까지의 퇴폐가 조금도 묻어나지 않는 청순한 맵시로. 그녀는 갸우뚱 하며 웃었다.
“제가 딸보다 예쁘다고 하셨잖아요. 그 정도면 큰 발전이죠.”
“……나가라.”
그러나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천천히 거리를 좁혀서, 늙은 소년에게 입술을 겹친다. 스치듯이 한 번, 쪼듯이 두 번, 진하고 길게 세 번. 폭군은 마지막 역겨움을 간신히 참았다. 의자의 팔걸이에서 두 손이 꿈틀거렸다.
“그거 아세요?”
여자가 말했다.
“전 돈이 많아요. 물론 회장님에 비하면 새 발의 피겠지만, 저 하나 사후까지 건사하기엔 충분할 만큼 모았죠. 삶은 사후를 준비하는 과정에 불과한 시대잖아요.”
몇 걸음 떨어져서 다시 이어지는 이야기.
“그래서 돈을 보고 온 건 아니에요. 다만 생전에 이 일을 계속하고 싶었어요. 만족감 속에 은퇴할 때까지.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기는 싫었거든요.”
“후원을 바랐나?”
“네. 아시겠지만 요즘 연예인 노릇하기가 쉽진 않아요. 경쟁대상이 가성비 높은 전자계집들인걸 어쩌겠어요. 사람을 완전히 대신할 순 없어도, 사전에 정해진 각본과 연출이라면 사람과 썩 다르지도 않은걸요. 갈수록 설 자리가 좁아지는 걸 느껴요.”
“…….”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뇨. 그러고 싶지 않아요. 이게 제 삶이에요. 삶이 달라지면 그건 제가 아니에요. 죽기 전에 한 번은 살아야죠. 그러기 위해 뭐든 할 수 있다고 여겼어요. 회장님처럼 다시 젊어지더라도 지금 같은 삶은 불가능할 테니까.”
회장은 길어지는 이야기에 흥미를 잃었다. 기능에 매몰되는 인간이야 흔해 빠진 것 아니던가. 미련한 것들. 무언가에 지배당하는 삶은 진짜 삶이 아니다. 모든 것을 지배해야 한다. 그 수단이 돈이다. 만능의 기회비용. 그러므로 경제적인 삶이 올바른 삶이다.
회장이 손을 내저었다.
“그런 일은 비서와 상의하도록. 알아서 처리해줄 거다.”
“어휴. 제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생각해보세요.”
여자는 장난스럽게 미간을 찌푸렸다.
“전 지금 회장님이 굉장히 흥미롭거든요. 처음 목적은 아무래도 좋을 만큼.”
“넌 도구일 뿐이야.”
“알아요. 느꼈어요. 하지만 아끼는 도구가 될 순 있겠죠.”
“네가 노력한다면.”
“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그녀는 이번에야말로 물러나 작별을 고했다.
“또 불러주세요. 다음엔 제 이름을 불러주셨으면 좋겠네요.”
회장은 독한 불쾌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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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Q. zkqkel님 : @ 작가님 작품이 새벽에 자주 올라오는데 새벽이 가장 동심이 충만할 때인가요?
A. 그런건 아니고…그냥 글 쓰는 속도가 느려서 그렇습니다. 10시간에 3만자를 뽑아낸다는 다른 작가분들이 굉장히 부럽네요.
Q. Guaaaaak님 : @저 러시아말은 도대체 어떤 발음으로 읽는거죠 ㅋㅋㅋ
A. 블라디미르입니다.
Q. 나나나냥님 : @작가님 생활패턴 좀 챙기세요 작가님이 건강해야 오랫동안 소설 통조림할건데
A. 한 편 쓰고 피로에 절어서 하루를 그냥저냥 보내버리는 일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저도 이러면 안 되는데, 라고 생각은 합니다만…하하.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Q. 7월해군님 : @책으로 출판 언제 되나요ㅠㅠ 나오면 바로 사고싶은데
A. 작업중이라고 합니다. 아마 다음달에 1권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