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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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다리, 앨러미더 (3)
쿠궁. 문이 봉쇄되었다.
그러나 부족했다. 막힌 문 저편에 지옥이 육박한 것 같았다. 굶주림으로 성난 것들의 아비규환. 문짝이 덜컹거릴 때마다 조금씩 틈이 벌어졌다. 문틈으로 무수한 손가락들이 기어 나온다. 비상등의 붉은 조명이 함께 새어나왔다. 겨울이 실외기를 걷어찼다. 쾅! 철판 우그러지는 굉음이 손가락 으깨진 놈들의 비명과 어우러졌다. 떨어진 손가락 마디 수십 개가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탄궈셩이 진저리를 친다. 그는 등으로 실외기를 밀며 외쳤다.
“리! 하나 더 끌어오게! 여긴 내가 막고 있을 테니! 어서!”
겨울이 뛰었다. 새로운 실외기를 확보했다. 당기는 전신에 부하가 걸렸다. 땀이 흘렀다. 그그긍, 그그긍. 쇠가 돌을 갈아대는 소리. 움직임을 따라 하얀 자욱이 남는다.
“비키십시오!”
황급히 물러나는 중국군 장교. 겨울은 새로 끌어온 쇳덩이를 넘어트렸다. 군홧발 아래가 흔들렸다. 쓰러진 기계를 힘껏 밀어, 먼저 있던 것에 밀착시킨다. 배로 늘어난 무게와 접지면적은 곱절 이상의 저지력이었다. 더 이상 틈이 벌어지지 않는다. 다만 이따금씩 피가 튀고, 질척하게 으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수히 밀어대는 힘은 곧 압사의 조건이었다.
저편이 좁은 계단이라 다행이다. 수평으로 넓었으면 이 무게로도 막지 못했을 것이었다.
끄으억, 커억. 다친 사람의 신음 같은 소리. 알고 보면 올라와서 쓰러트린 변종들 일부였다. 쇠지레에 맞아 급소가 함몰되고도 절명하지 않은 것들. 다만 기절한 상태였을 뿐이다.
중국군 장교가 기겁했다.
“하늘이시여(我的天)!”
탕! 그의 총은 아래를 향해 단발로 쏘아졌다. 겨울이 붙잡아 꺾은 탓이었다.
“탄을 아끼시죠.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겨울 자신에게도 수류탄 한 발에 소총 탄창 두 매, 권총 탄창 세 개가 남았을 뿐이다. 넉넉하게 챙겨왔는데도 소모가 극심했다. 탄궈셩이라고 상황이 나은 건 아니었다. 겨울보다 쏘는 빈도는 낮았을지언정, 긴장과 공포 속에 당기는 방아쇠는 대부분이 연사였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물러나 계십시오.”
고급 장교의 뒷걸음질은 그가 체면을 지키며 낼 수 있는 최대의 속도였다.
흉곽에 발자국 푹 들어간 구울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렸다. 잠시 허우적거리더니, 헤매던 시선으로 겨울을 발견한다. 상황을 파악했나보다. 피를 토하며 몸을 뒤집었다. 날렵하여 호흡곤란에 빠진 생명체 같지가 않았다. 두 팔로 바바바박 기어온다. 마침내는 완력으로 펄쩍 도약하는 게 아닌가. 따다다닥! 바람을 물어뜯는 이빨.
그러나 정직한 포물선이었다. 정수리가 훤히 드러나, 겨울이 쇠지레를 내리찍었다. 피가 튄다. 덜컥, 손목에 걸리는 변종의 무게감. 머리가 고정된 채 몸통만 흔들렸다. 변종의 창백한 머리 위로 묽은 핏물이 흘러내린다. 붉은 비를 맞는 사람처럼 보였다. 본디 또래의 소년이었을 괴물은, 변색된 눈으로 겨울을 올려다보다가 무릎을 꿇었다. 지렛날은 스스로 빠졌다.
나머지를 정리한다. 숨 붙어 있는 놈들 모두 정상이 아니었다. 이마 위쪽이 깨진 녀석은 자꾸만 바닥을 때릴 뿐이다. 가눌 수 없는 몸에 대한 분노였다. 깨진 머리뼈 틈으로 분홍색 주름이 보였다. 겨울은 뒷굽으로 힘껏 찍었다. 뇌가 파괴된다.
앞서도 집중적으로 노린 것이 머리였다. 인간이 변질된 괴물들이었으므로 뇌손상의 증상도 인간과 같았다. 중심을 못 잡거나 구역질을 하는 놈들이 대부분이었다.
애초에 살아남은 수가 많지도 않았다. 다 정리하는 데 소요된 시간은 고작 1분 남짓.
“이제……이제 우리는 안전한 건가, 리?”
탄궈셩이 신음처럼 허덕였다. 겨울 이상의 땀에 젖어있다. 탈수가 우려될 만큼.
허나 안심은 아직 이르다. 신경이 여전히 저릿거렸다. 위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 겨울은 주위를 경계했다. 위협요소가 뭐가 있지? 감각이 날카로워지는 방향은 여럿이었다. 그 방향마다 환기 시설이 있었다. 팬은 지금도 도는 중이다. 옥상에 즐비한 태양광 패널에서 전력을 공급받는 것 같았다.
돋워진 청력에 퉁탕거리는 쇳소리가 들린다. 실시간으로 변하는 방위와 줄어드는 거리.
“중교님.”
“왜 그러나?”
“아무래도 뛰어야 할 것 같습니다.”
“뭐?”
겨울은 맥 빠진 장교를 붙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한 번 휘청이고 간신히 중심을 회복하는 탄궈셩.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돌아보았던 그는, 박살난 팬이 육편과 함께 튀어 오르는 광경을 보았다. 어느 변종이 회전하는 날개에 몸통으로 부딪힌 결과였다.
크아아아아-
환기구를 뛰쳐나온 변종이 사납게 포효했다. 어깨에 쇳날이 박혀있다. 팔 한 짝이 없다. 그러나 달려온다. 혼자가 아니었다. 실내로 이어지는 새까만 구멍으로부터, 변종과 변종과 변종들이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인간을 넘어선 근력으로 온 몸을 날리면서.
다른 환기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건물이 대형인 만큼 숫자가 많았다. 변종들이 사방에서 튀어나온다. 탁 트인 지형에서 포위된다면 겨울에게도 위험했다. 무엇보다, 호위대상의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장군의 아들은 살아남아야 한다.
“미치겠군!”
흐느낌 섞인 탄궈셩의 절규였다.
달려가는 방향엔 급수탑이 있었다. 건물 옥상이다 보니 높이가 높진 않지만, 물탱크 위로 오르는 사다리는 오직 하나 뿐. 올라가서 버티면 당장은 안전할 것이다. 고립을 피할 수 없겠으나, 「생존감각」이 제시하는 유일한 가능성이었다.
사다리 아래에 이르러, 겨울은 호위대상의 탄띠를 잡아 던지듯이 밀어 올렸다. 그리고 도약으로 뒤따른다. 먼저 올려주었음에도 탄궈셩은 금세 따라잡혔다. 겨울은 한 손으로 매달려 권총을 뽑았다. 난간을 타고 올라오는 것들의 이마와 정수리를 쏘았다. 툭! 투툭! 중심이 위태로운 놈들을 쏘았으므로 와르르 무너진다.
집단을 이끄는 구울은 신중하게 굴었다. 뒤에 작게 도사렸으므로 조준선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서 올라오게!”
끝에 도달한 탄궈셩이 손을 내밀었다. 겨울은 남은 거리를 단숨에 박차고 올라가, 내밀어진 손을 무안하게 만들었다. 외마디 괴성이 질러진 뒤에, 변종들은 더 이상 따라붙지 않았다. 놈들의 지능으로도 높이 오르는 좁은 길의 불리함을 이해한 것이다. 그럼에도 겨울은 쇠지레를 단단히 쥐었다. 체력 좋은 놈이라면 구울이 아니어도 잠깐 사이에 극복할 간격이었다.
“젠장. 완전히 갇혔어…….”
탄궈셩의 탄식이 옳았다. 겨울에게도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급수탑 주위에 몰린 숫자가 이백을 넘었다. 그 가운데 구울의 비율이 높은 것은 어째서일까. 일반 변종들 가운데서도 건장한 남성체가 많았다. 추측컨대 배관의 수직구조를 극복한 녀석들만 올라왔을 것이었다. 그 증거로, 환기구가 막히지 않았음에도 더 올라오는 녀석이 없었다.
‘이미 올라온 숫자만으로도 충분히 부담스럽지만…….’
탄약 잔량이 위태롭다. 지형에 의지해서 싸워볼 순 있겠으나, 좋은 선택지는 아니었다. 툭탁, 탕. 변종들이 잡동사니를 던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뜯어낸 파이프, 가지고 올라온 날붙이, 깨진 벽돌 따위를. 투사체로 무장한 적이 다수일 때, 전력의 차이는 급격하게 벌어진다.
그래도 지금은 괜찮았다. 물탱크 위쪽이 제법 넓었다. 위에 머무는 한 변종들은 표적을 관측하지 못할 것이었다. 포물선으로 떨어지는 것들이 가끔씩 위험하겠으나, 겨울의 감각이 놓칠 리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할 작정인가? 방법이 없어 보이는데.”
고급 장교가 하급자에게 던질 질문은 아니다. 그러나 좌절한 탄궈셩이 미치지 않는 것은 겨울에게 의지하고 있는 까닭이었다. 이미 겪은 것들이 여러모로 압도적이었을 터.
어쨌든 그는 지금 겨울만 보고 있다. 생사가 갈리는 현장에서 쌓이는 신뢰는 질적으로 우수했다. 조안나와 단기간에 친밀해질 수 있었던 것도 같은 맥락. 임무를 감안할 때 긍정적인 현상이었다. 과연 여기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지만.
현재로서는 겨울에게도 제안할 것이 없었다. 그저 이렇게 말할 뿐.
“일단은 좀 쉬시는 게 어떻습니까? 많이 지치셨습니다. 이대로는 기회가 오더라도 의미가 없을 겁니다.”
“휴식? 이 상황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제가 망을 보겠습니다.”
탄궈셩은 힘없이 고개를 흔들곤 대자로 드러누웠다. 자포자기에 가까운 태도였다. 누운 채로 물을 마시다가 컥컥거리며 일어나기를 잠시, 다시 누워 눈을 감는다. 잠들지는 않았다. 던져지는 것들이 텅텅 부딪힐 때마다 움찔거렸다.
잠시 후, 야만스러운 공격이 잦아들었다. 이쪽이 지치기를 기다리는 분위기였다. 시간은 역병의 편이었다.
겨울은 앉아서 주머니를 더듬었다. 잡히는 건 몇 개의 에너지 바. 전투식량에서 휴대하기 간편한 것들만 추려내어 휴대한 것이다. 공수되는 물자에 전투식량이 포함되어 있는 만큼 의심을 받을 여지도 없었다.
견과류 씹히는 소리에 고급 장교가 눈을 뜬다.
“자네도 참 대단하군. 이 상황에서 음식이 넘어가다니.”
“포기하긴 이르니까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중교님도 의외로 침착하십니다.”
“……글쎄.”
그는 뭐라고 말하려다가 말고, 갑작스레 울기 시작했다. 스스로는 막으려고 한다. 허나 막는다고 새지 않을 흐느낌이 아니었다. 심성이 약하다고 보긴 어렵겠다. 상황이 상황이니.
“엄마가 헬기를 보내줄까?”
울음 섞인 독백이었다. 청년기의 끝자락에 선 성인으로서 마마(妈妈)를 찾는 어감이 어렸으나, 죽음이 가까울 때 부모를 찾는 사람들은 항상 어려지게 마련이었다. 그 심리를 무수히 보아오고도 내면에서 같은 마음을 찾지 못한 겨울은, 그러나 장교의 눈물에 공감할 수 있었다. 기억 속의 가장 오랜 과거로부터, 그런 마음을 동경하며 자라왔으므로.
동시에 이성으로는 그가 제시한 가능성을 판단하는 중이다. 시에루 중장 일파는 항공연료 비축분이 적다. 보유한 것은 구축함 탑재 헬기 몇 대 뿐이고, 정비 상태는 빈말로도 양호하다고 하기 어려웠다. 부품 공급이 끊긴 지 어언 1년이 넘은 시점이었다.
‘군용 항공기는 보통 잦은 정비를 담보로 신뢰성을 확보하는 물건들인걸…….’
신뢰성과 내구도는 서로 다른 개념이다. 극단적인 예시로서, 2차 대전기의 미국 폭격기(B-29)는 사흘에 한 번 모든 엔진을 교체했다. 그러나 정해진 수명 내에서, 탁월한 성능으로 어떤 작전이라도 소화할 수 있었다.
그래도 아들을 살리려는 장군이 수색기를 띄울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블의 투척이 닿는 고도까지 내려오기는 또 별개의 이야기겠지만.
무전기는 먹통이었다. 앨러미더 섬의 남쪽 해안선에 이르기까지, 방해전파가 너무도 많았기에. 오르카 블랙의 영역에서 순찰을 돌 때도 외곽에서는 무전기를 쓸 수 없었다. 해안과 늪지와 시가지에 얼마나 많은 트릭스터가 도사리고 있을지는, 겨울로서도 추산하기 힘들었다.
‘애초에 시에루 중장은 아들을 왜 이런 위험한 임무에 내보냈을까.’
그녀의 지도력에 문제가 있을 것 같다.
일개 폭력조직의 두목조차도, 자기 입지를 안정시키겠다고 하나 뿐인 딸을 전장에 내보내지 않았던가. 리아이링의 이중적인 본성은 부모의 모순으로부터 잉태되었을지도 모른다.
겨울의 짐작이 맞다는 전제하에, 생존자 수색은 반대파의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거창한 명분도 필요 없었다. 부족한 항공유 재고는 얼마든지 반대의 이유가 될 수 있었다.
“물론 가진 게 없지요. 없어서 더한 겁니다. 일단 묻겠습니다. 깨끗한 옷 한 벌, 쓰지도 못할 달러 뭉치, 뚜껑 따지 않은 화장품, 새것으로 남아있는 면도칼이나 칫솔 따위를 열심히 감추는 모습들, 정말 한 번도 본적 없습니까?”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는 민완기의 것이었다. 맥락은 다르지만, 지적하는 심리는 같다.
겨울은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딱히 헬기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건 아니었다.
다만 바라는 것은 감각보정이 제시할 영감이었다. 한 난관에 오래도록 봉착해 있으면, 없던 감각이 생기는 경우도 있으니까.
예컨대 이런 개념이었다. 이 정도의 능력을 보유한 사람이라면, 해결책을 떠올리기까지 이 만큼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발상 자체는 오래된 시스템이었다.
그래도 고민을 쉬지는 않았다. 불확실한 구원에 기대는 것은 언제나 하책이었다. 스스로 좋은 방법을 떠올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노력해야 한다. 이번 세계관이 여기서 끝나더라도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하여.
============================ 작품 후기 ============================
#Q&A
Q. kthhyung님 : 뭐…. 겨울이 주인공이라서 호쾌한 액션을 보이는 건 이해를 하겠는데…. 저상황 에서 일반적으로 아무리 뛰어난 용병이라도 혼자 도망 가는게 일반적인게 아닐런지… 얼마나 대단한 장교인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A. 153화 내용 일부를 발췌하겠습니다.
–
“이런 상황에서도 계약에 충실한 건가. 하, 차라리 날 버리고 가지 그러나.”
그건 곤란하지.
CIA는 시에루 중장의 통신을 도청했다. 그 사이엔 베이더우 위성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겨울은 그녀 휘하의 정보수집선에 잠입해야 했다. 탄궈셩은 징검다리였다.
–
CIA가 베이더우 위성을 원하는 이유는 추후 작중에서 나오게 될 것입니다.
사실 어느 정도 덕력이 있는 분들은 이미 다 아시겠지만요.
Q. 푸른물결2님 : 외부에서 DLC를 추가해버리는것도 가능하려나..?
A. 갤러리의 개입을 말씀하시는 거라면…세계관 진행자가 동의할 때 가능합니다.
Q. 나리형님님 : 하아….. 다 봐버렸어…… 이제 어떻게 기다리지…… 그나저나 동심 충만한 이 소설은 제 취향을 직격하는 거라 종이책으로 나오면 지르고 싶습니다. 그럴 예정이 있나요??
A. 있습니다. 확실하진 않으나 익월 중 첫 권이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