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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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다리, 앨러미더 (5)
오르카 블랙은 CIA의 샌프란시스코 지부였다. 그러므로 네이선 채드윅은 지부장으로 불려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팀장이라는 애매한 호칭을 고집했다.
“화합을 위한 노력입니다, 중위. 델타 포스나 네이비 씰 같은 특수부대원들은 정보국 요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자업자득이니 어쩌겠습니까마는.”
예쁘게 보여야지요. 채드윅은 그렇게 말하며 바보 같은 미소를 지었다.
말하는 도중, 그는 어느 버튼을 딸깍 딸깍 눌러대고 있었다. 유선으로 연결된 리모컨이었고, 반대쪽 끝은 정체불명의 상자로 이어졌다. 상자는 버튼을 누를 때마다 덜컹거렸다. 그리고 답답한 소리가 났다. 겨울은 상자의 내용물을 알 것 같았다.
이것은 4월의 첫 번째 밤에 있었던 일이다.
탄궈셩 호위 임무를 앞두고, 겨울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그러나 시간가속은 금세 깨어졌다. 채드윅이 소년장교를 호출했다. 통제실에서 만난 팀장은 부탁할 것이 있다고 했다. 그는 겨울을 블랙 사이트 덱(Black Site Deck)으로 이끌었다.
“자업자득이라는 건 무슨 의미로 하시는 말씀인가요?”
겨울의 질문에, 채드윅은 버튼을 꾹 누르며 답했다.
“잘못된 첩보로 허탕을 치게 만드는 거야 어쩔 수 없지요. 우리는 신이 아니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덜 된 일부 인원들이 꽤 거만하게 굴었습니다. 일부라곤 해도, 결국은 CIA 전체를 대변할 수밖에 없지요. 리비아의 참극 이후로 욕을 많이 먹었어요.”
그러면서 껄껄 웃었다.
그는 자신의 말에 부연을 붙였다. 리비아의 참극이란 12년에 있었던 미 대사관 테러 사건을 뜻한다고. 겨울도 얼핏 들어보긴 했다. 중앙정보국의 미흡한 대처가 사태를 악화시켰다던가.
“중위, GRS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들어보기만 했네요.”
GRS는 SAD와 더불어 CIA가 보유한 양대 무장집단이었다.
“우리는 그들을 소모품처럼 다뤘지요. 공식적인 임무든, 비공식적인 임무든 말입니다. 헌데 그 친구들은 온갖 특수부대에서 사지를 헤치고 나온 역전의 용사들이었거든요. 그러니 후배들의 여론이 나빠질 수밖에 없었지요.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밖에요.”
딸깍딸깍. 이 와중에 장난처럼 버튼을 눌러대는 소리. 겨울은 인상을 찌푸렸다.
“깁슨 감독관은 여기서 벌어지는 일을 알고 계신가요?”
“예, 뭐. 이 정도는 작전에 필요한 일 아니겠습니까.”
빙글빙글 웃는 팀장은 사악한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상자 속에 들어있는 사람의 의견은 많이 다를 것이었다. 과연 의견을 물어도 좋을 상태일지는 모르겠지만.
CIA 샌프란시스코 작전본부, 통칭 「피쿼드 호」에는 비밀스러운 공간이 많았다. FBI 감독관인 조안나 깁슨 조차도 모든 갑판을 돌아다닐 수 없었다. 출입이 허락된 것은 장정 9호 추적 작전, 「페어 스트라이크」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구역들 뿐.
그러므로 겨울의 질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블랙 사이트 덱이라…….’
누적된 종말을 통해 알게 된 바, 블랙 사이트는 중앙정보국이 ‘강화된 심문 기술(Enhanced interrogation techniques)’을 사용하는 비밀스러운 장소의 명칭이었다. 이런 장소가 미국 본토에도 존재했다고 들었다. 즉, 자국민을 대상으로 고문을 자행했다는 뜻.
여기에도 있으리라고 예상은 했었다. 그러나 채드윅이 겨울을 불러온 이유까지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제게 하실 부탁이라는 게 뭔가요? 임무투입을 앞두고 피로를 남기고 싶진 않네요.”
겨울의 말에 팀장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 그런 말씀을 들으니 우리 중위님이 사람처럼 느껴지는군요. 사흘을 철야로 견디고도 휴식을 반납하시더니.”
그가 언급하는 것은 첫 적응기간에 있었던 일이었다. 파울러 대위에게 시험 받았던 일주일. 최후의 3일간은 수면이 허용되지 않았다. 해병대의 전통 같은 것이었다. 훈련소에서는 그나마 몇 시간이라도 재워주는 과정이었으나, 대위는 한 층 더 가혹하게 굴었다.
“질문에 대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말 돌리지 말라는 요구에 팀장은 리모컨을 내밀었다.
“누르십시오.”
“……이건 무슨 의미인지.”
“필요한 일입니다.”
건네는 리모컨을 받아들고서, 겨울은 묵묵히 그를 바라보았다. 채드윅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보이도록 행동하긴 했지만, 난 미치광이가 아닙니다. 다만 정상인으로 보이면 여러모로 곤란하거든요. 업무적으로나, 양심상으로나.”
짧은 말에 긴 의미였다.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스스로부터 살해당할 각오를 세우는 사람들. 그러나 이것이 진심일까? 속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가면을 벗을 때마다 새로운 가면이 나타날 뿐이었다.
“나도 알아요, 중위. 고문이 옳지 않다는 것쯤. 하지만 이런 시대잖습니까. 사람을 벗어나지 않고는 사람으로서 살기 어려운 세상입니다. 그래요, 애국은 정의가 아니지요. 허나 삶의 필수품입니다. 누르십시오. 그래야 내게서 중요한 정보를 들을 수 있을 거예요.”
채드윅이 손짓했다. 겨울은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이제 와서 이런 식으로 시험하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팀장님.”
“…….”
“제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저에 대한 판단이 이미 끝났다는 뜻 아닙니까? 난민구역에서 저는 살인자였습니다. 몰랐다고 하진 않으시겠죠.”
정보국이 그토록 허술한 집단이겠느냐는 지적. 이는 채드윅을 웃게 만들었다.
“오, 불쾌했다면 사과드리지요. 나는 그저 확신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당신이 대의를 위한 필요악을 용납할 것인가. 작전수행에 지장을 주지는 않겠는가. 아프가니스탄의 목동과 네이비 씰의 일화는 아실 겁니다. 여기선 그런 일이 벌어지면 곤란하거든요.”
팀장이 언급한 것은 아프간에서 비밀작전 도중 민간인과 마주친 미군 특수부대의 이야기다. 그들은 고뇌했다. 기밀유지를 위해 민간인들을 죽여야 할 것인가. 그 중엔 아이도 있었다.
미군은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참혹한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겨울이 응답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사람이 저 혼자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겠습니다. 이걸로 충분하지 않다면, 저를 작전에서 제외해주시기 바랍니다.”
“이거야 원.”
채드윅이 장난스럽게 한숨을 쉬었다.
“중위님 당신을 여기로 보낸 건 랭글리의 실수일지도 모르겠군요. 책상물림들 하는 짓이 어련하겠습니까만. 그치들이 한 때 현장에서 뛰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어요. 내가 그리로 가지 않는 이유지요. 같은 퇴물이 될까봐.”
랭글리는 CIA 본부의 소재지였다.
결국 채드윅은 겨울에게 진정한 용건을 털어놓지 않았다. 그렇다고 겨울의 말처럼 작전에서 배제시킨 것도 아니었다. 그날 밤의 대화를 곱씹은 겨울은, 좋지 않은 예감을 느꼈다.
‘그가 계획하는 필요악이 뭐지?’
예감이 정확하다면, 보통 일은 아닐 것이었다.
“리, 무슨 생각을 그리 깊게 하나? 어디 아픈 건 아니겠지?”
탄궈셩의 목소리. 겨울은 그를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말 없는 겨울을 염려하는 중이었다.
“몸은 괜찮습니다.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갈까 고민하는 중이었습니다.”
채드윅이 무슨 일을 꾸미든, 작전 자체가 수월하게 풀린다면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탄궈셩의 모친, 해군중장 시에루가 지니고 있다는 베이더우 위성의 열쇠. 그것만 확보하면 미 본토에 대한 핵위협을 극적으로 경감시킬 수 있다.
‘장정 9호를 잡는 것보다는 못할 테지만…….’
베이더우는 중국판 GPS였다. 아직 GPS에 비하면 손색이 있다. 2020년 완성을 목표로 구축되고 있었기에. 「종말 이후」가 개시되는 시점에서, 동북아와 오세아니아, 인도에 이르는 영역 한정으로 좌표를 제공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CIA가 파악한 바, 군사목적으로는 달랐다. 세계 어디든 핵탄도탄 유도의 최종과정에 관여한다. 만약 탄도탄이 떨어질 때 좌표를 비틀어버릴 수 있다면? 탄두는 원래의 표적에서 한참 빗나갈 것이었다. 적어도 수십 킬로미터 바깥으로.
미국은 이 위성들을 파괴하는 방안도 고려했었다. 그러나 남은 중국군 세력이 이를 감지할 경우, 극단적인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었다. 위성이 없다고 미사일을 못 쏘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쿠궁, 쿵.
환기구가 있는 방향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음, 놈들이 올라오려고 애를 쓰는 모양이군. 그래봐야 소용없겠지만.”
장교가 말은 이렇게 해도, 목소리에서 떨리는 불안감이 느껴진다. 겨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꽉 끼도록 구겨 넣었으니 쉽게 뚫진 못할 겁니다. 적어도 우리가 떠날 때 까지는.”
환기구에 시체를 구겨 넣었다. 감전사한 변종들을 포개고 접어서 수직통로에 쑤셔 박은 것. 애초에 넓은 통로도 아니었다. 사지를 제대로 펼 수도 없는 공간에서, 도약해야 닿을 높이의 장애물들을 어떻게 치울 수 있을까? 올라오려면 긴 시간이 소요될 터였다.
“나가는 방법에 대해서 말인데.”
장교가 시가지 동쪽을 가리켰다.
“저쪽에 버려진 미군 차량들이 보이나? 저걸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 한 번 보게.”
그는 망원경을 내밀었다. 겨울은 사양했다. 맨눈으로도 보이는 거리였다. 교차로에 버려진 차량은 여럿이었다. 그 중엔 전차도 존재했다. 유조차가 곁에 멈춰서 있었다.
“급유관이 꽂혀있군요. 보급 도중에 공격당한 모양입니다.”
그게 아니고선 전차가 변종들에게 당할 이유가 없었다. 샌프란시스코 함락은 그럼블 출현 이전에 벌어진 사건이었으니. 움직이는 전차는 변종을 상대로 무적이었다. 다만 그 전투력은 보급체계가 온전할 때에만 발휘된다. 도시 전체를 휩쓰는 혼란의 와중에, 기름 퍼먹는 괴물이 얼마나 효율적이었을지 의문스러웠다.
“차량에 장착된 화기를 탈거해서 쓸 수 있을 거야. 어쩌면 저 탄극(坦克, Tank)에 기름을 채워서 움직일 수 있을지도 모르지. 무슨 수를 써서든 남쪽으로 2공리(公里 : 킬로미터)만 가면 돼. 그러면 해상에서 화력지원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이거야말로 최고의 결말 아닌가?”
그의 말처럼, 앨러미더 섬은 좌우로 길고 상하로는 좁았다. 현재의 위치가 섬의 북안에 가깝긴 하나, 남안까지 고작 2킬로미터에 불과할 만큼. 무거운 전차로도 순식간에 주파 가능한 거리였다. 설령 베타 그럼블이라도 60톤짜리 강철의 질주를 막을 순 없었다.
그러나 불가능했다.
“중교님. 우리는 저 전차의 기동암호를 모릅니다.”
기계적으로 시동을 걸 순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자장비가 작동하지 않는 현대전차는 눈 먼 관짝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머리를 내놓은 채 주행하기도 어렵겠고.
“암호……. 그래, 그랬었지. 적대장비라서 깜박했군. 젠장. 라오메이(老美)놈들. 군의 현대화도 좋지만, 전면전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게 아닌가? 탄극수(坦克手 : 전차병)들이 전사한 뒤에 다른 병사들이 탑승할 수도 있는 거잖아?”
“애초에 도로 상태가 말이 아닙니다. 어떤 장애물이 있을지 모르고요. 전차의 소음을 감안하면 자살행위에 가깝습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아스팔트는 곳곳이 깨져있었다. 수해가 여러 차례 휩쓸고 지나간 흔적이었다. 도로 한복판에 박살난 주택이 있는 경우도 보였다. 강풍이 밀어냈을 것이다. 그 사이로 물 흐른 골이 선명하게 패여 있다. 여전히 물이 고인 곳도 많았다.
차량을 타는 건 무리라고 봐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사실은, 해저터널까지 침수된 상태라는 점이었다. 오클랜드로 이어지는 웹스터 터널, 포지 터널 모두가 붉은 물에 잠겨있었다.
“그럼 어찌 해야 좋겠나?”
“일단 무기와 탄약을 확보하는 것까지는 찬성입니다. 지금은 지나치게 무방비하니까요.”
“그 후엔?”
“저는 북쪽 수로로 빠지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거리도 가깝고, 사냥개가 여기서 넷이나 죽었으니까요.”
“다른 사냥개들이 있을 텐데?”
“전에 보지 못했던 신종이었습니다. 숫자가 벌써부터 많을 것 같진 않습니다.”
“그래도…….”
염려를 떨치지 못하는 장교에게, 겨울은 시가지 서쪽을 가리켰다. 풍경이 지워지고 있었다. 바다로부터 밀려오는 노을빛 안개 탓이었다. 조만간 여기까지 도달할 것처럼 보인다.
“다행히 오늘의 안개는 꽤 짙어질 것 같습니다. 운을 걸어보기에 충분한 조건이죠. 아직 수영을 하는 변종은 나타나지 않았으니까요. 설령 남은 사냥개가 있어 우리의 냄새를 맡더라도, 우리가 강 한가운데 있는데 어쩌겠습니까. 도올(그럼블)의 투척은 명중률이 낮을 겁니다.”
교각 폭파작업 도중 발각되었을 때도 그럼블이 문제였다. 샌프란시스코의 변덕스러운 안개는 그날따라 예상에 한참 못 미쳤기에. 개가 냄새를 맡았고, 거대한 괴물들이 작은 괴물들을 던져댔다. 팔다리 맹렬히 허우적대며 날아오는 투사체들은 빠져 죽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건 제 생각입니다만, 다리가 없는 방향으로 간다면 괴물들과의 조우 확률이 많이 낮아질 것 같습니다.”
“의미를 모르겠군.”
“놈들이 다리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을 거라는 뜻입니다.”
“설마.”
탄궈셩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겨울이 판단하기로, 트릭스터에겐 있을 법한 가정이었다. 놈은 기초적인 전술과 전략을 구사하지 않던가.
============================ 작품 후기 ============================
#Q&A
Q. 로나프님 : @다시보다가 문득 생각난데 아스테로소였나? 보건국 격리병동에 갔을때 중국인 난민들의 마지막 식사가 군용식량이 아닐거라는 묘사가 있었는데 이게 무슨 의미였나요? 다시봐도 짐작이 안됩니다.
A. 그 때 겨울은 실종자들이 아니라 변종들이 파먹었을 거라고 생각한 겁니다. 챕터 제목이 아마 징조들이었을걸요? 결과적으로 겨울의 예상이 맞았죠.
Q. 사람나무님 : 우와… @작가님 종이책 나오면 살까 하는데 제품의 신뢰성이 걱정됩니다. 라면은 몇그릇까지 견디나요?오뎅탕도 괜찮을까요
A. 9mm 권총탄을 방어할 수 있을 걸요?
Q. 수달7님 : @작품의 엔딩이나 아니면 앞으로의 이야기중 더 크고 중요한 비중과 역활을 맡을 파트는 현실쪽인가요 가상쪽인가요?
A. 주제의식은 아무래도 현실 쪽의 비중이 높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이야기가 가상현실 이야기 없이는 성립하기 어려울 거라고 느낍니다.
Q. lolica님 : 작가님 이과신가
A. 문과입니다. 그것도 이과와 가장 거리가 멀다는 국문과 출신입니다.
Q. 불곰크왕님 : @1편 결제방식으로 연재하는 플랫폼이 계신가요?
A. 네이버 엔스토어에서 연재 중입니다. 원래는 지난달에 리디북스를 비롯한 다른 플랫폼에서도 서비스가 시작되었어야 정상인데, 네이버가 한 달만 더 다른 데 올리지 말라고 했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