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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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11), 장미가 시드는 계절 (4)
폭군의 사냥개는 이번 사냥감이 흥미로웠다.
거리를 두고 지켜볼 때에도 보통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단지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뭔가 묘한 분위기가 있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어째서일까? 처연한 눈빛 때문에? 아니, 그렇지 않다. 슬픔을 겪은 미인은 지금껏 많이 경험했다. 거칠게 살아온 사내 스스로가 수많은 여인의 괴로움이기도 했다. 한가을은 그들과 달랐다. 세상과 동떨어져있는 것 같았다. 잿빛의 세상에서 혼자만 천연색이었다.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숙련된 정보요원으로서, 강영일은 남들과 다른 감각으로 사람을 판별했다. 그 스스로는 이를 아우라라 불렀다. 육감이라고 해도 좋겠지만, 그런 단어로 표현하기엔 부족한 무언가였다.
이 여자가 흘리는 눈물은 어떤 맛일까?
개는 충동을 억눌렀다. 이 먹이는 주인의 몫이었다. 강영일이 섬기는 폭군은 여러 가지 의미로 압도적이었다. 그토록 비틀린 아우라를 본 적이 없었다. 상사도, 기관도, 국가도 속으론 가소롭게 여겼던 요원이었으나, 혜성그룹의 회장만큼은 진짜 주인으로 여겼다.
그는 익숙한 길을 따라 운전대를 돌렸다. 그룹 본사로 향하는 길이었다.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오랬더니 겨우 그 꼴인가?”
두 사람의 시선이 백미러를 통해 마주친다.
한가을은 눈을 몇 번 깜박이곤,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음에 안 들면 돌려보내시던가요.”
“허.”
다시금 폭력적인 충동이 치밀었다. 난폭한 호기심이었다. 이 여자, 두려움을 억누르고 있는 게 아니다. 정말로 겁을 먹지 않은 거다. 그 증거가 방금의 목소리였다. 되바라진 사냥감들이 겉으로 태연할 때가 있었으나, 음성의 떨림까지 감추지는 못했었다.
‘거기까지 속이는 건 관록 있는 요원에게나 가능한 일.’
설마 이 여자가 그런 종류의 훈련을 거치진 않았을 테고.
강영일이 흥미로워하는 동안, 한가을 또한 자신의 고요함을 뜻밖이라 여기고 있었다.
나, 이상하네.
스스로의 상황이 기이할 정도로 객관화되어 다가왔다.
겨울의 몸을 빼앗은 폭군의 부름. 선택권은 없었고, 눈앞의 남자는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심장이 뛰기도 잠시였다. 목적을 들은 뒤에는 그나마 있던 동요도 사라졌다.
부자연스러운 명정(明靜) 속에서 가을은 스스로를 되짚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아,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겁에 질려있었구나.
오랫동안 겨울을 만나러 가지 못했다. 그 아이에게서 자신을 향한 원망과 분노를 발견하게 될까봐. 이것이야말로 가을을 사로잡은 가장 큰 공포였다. 수시로 숨이 막혔다. 자다가도 헐떡이며 깨어난다. 한낮의 시야가 깜깜해질 때도 있다. 누나만 보는 또 하나의 동생을 위해 건강을 유지하려 애쓰지만, 체중은 갈수록 줄기만 했다.
죽는 것만 못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진심으로.
그러니 다른 두려움이 파고들 틈 따위 있을 리가 없었다.
가을은 무릎을 내려다보았다.
해묵은 파카 바깥으로 녹색 치맛자락이 나와 있다.
오늘 입은 모든 옷이 겨울의 선물이었다. 처음부터 새 옷은 아니었다. 교회의 바자회에서 구한 것이었기에. 그러나 선물은 마음이 중요하다는 말, 가을은 그 때 사무치게 실감했다.
‘내가 이걸 왜 입었지?’
굉장히 아끼던 옷들이다. 특히나 녹색의 원피스는. 낙엽 지는 계절과 눈 내리는 계절이 다투는 날엔 어울리는 복장도 아니건만. 하물며 폭군을 만나러 가는 길에 입을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설명할 수 없는 이끌림으로, 가을은 선택했다.
어쩌면 각오를 다지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강영일은 시계를 보았다. 여유가 충분했다면 달리 들러서 좋은 옷으로 갈아입혔을 텐데, 회장이 정한 시간이 평소보다 촉박했다.
‘그때는 내키지 않는 기색이더니.’
개는 생각한다. 늙은 주인의 변덕이려니. 몸이 젊어졌다고 속까지 어려지는 건 아닌 법이니까. 사고가 여기에 이르자 쓴웃음이 나오는 강영일이었다. 그 강고하고 파괴적인 폭군이 한낱 여자 하나 때문에 미쳐간다는 게 신기하기 짝이 없어서.
개의 속처럼 검은 차는 한국에서 가장 고압적인 건물 앞에 정지했다.
기다리던 직원들이 문을 열어주었다. 차고 메마른 바람 속에서 군복 같은 유니폼을 입고 회장의 손님을 기다리던 사람들이었다. 밀랍인형들의 사열을 보는 기분이다.
내려선 가을이 하얀 숨결을 흘렸다.
“따라와라.”
셰퍼드가 앞장섰다.
양을 제단으로 인도하며, 개는 생각했다. 폭군이 이 여자에게 관심을 보일까?
내 차례가 온다면 좋을 텐데.
눈물. 눈물 맛을 보고 싶다.
전용 승강기를 타니 회장실까지 순식간이었다. 강영일은 업무적인 냉정함으로 자신의 도착을 알렸다. 잠시 후, 허가를 받은 여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바로 입실하려던 강영일이 멈칫 돌아선다. 부딪힐 뻔한 가을은 왜 그러냐는 듯 빤히 바라보았다.
“외투. 그건 벗고 들어가는 게 나을 것 같군.”
사소한 걸로 폭군의 심기를 거스를 필요는 없으니까.
가을은 순순히 따랐다. 회장실 앞에 상주하는 비서에게 맡긴다. 소중한 옷이니 잘 보관해주세요, 하고. 여비서는 당황한 눈치였다. VIP라고 들었는데, 옷의 허름함과 소중하다는 말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는 것 같았다.
이윽고, 가을은 겨울의 육체를 차지한 괴물과 마주했다.
이제껏 차분했던 것이 거짓말인 양, 왈칵 쏟아지는 눈물.
표정이 다르고 눈매가 다르고 영혼이 다르지만, 그것을 분명하게 느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의 지난날이 남아있었다. 둑 무너지는 그리움을 주체할 수 없었다.
고건철 회장이 눈을 크게 떴다.
이게……무슨…….
폭군에게 호흡곤란이 찾아왔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전신을 두들겨 맞는 기분이었다. 육체의 모든 구성요소가 고통스러웠다. 제멋대로 날뛰었지만, 방향만큼은 한결같았다.
강철 같은 이성이 본능과 감정에 제동을 걸었을 때, 회장은 무의식 속에서 자신이 좁혀놓은 거리에 충격을 받았다.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녹색으로 하늘거리는 향기가 있었다.
하마터면 손을 댈 뻔했다.
회장은 스스로에게 격분했다. 아직 구매하지 않은 상품을 건드리려 하다니? 거래도 하지 않고서?
지금 이 감정, 비슷한 것을 느껴본 적이 있다.
과거 그의 영혼을 송두리째 사로잡았던 열병.
같지는 않다. 다르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끔찍하다.
정체를 알 수 없었기에.
의혹이 부풀었다. 설마 육체에 기억이나 감정 따위가 남아있었던 건가? 아니, 어처구니없는 소리. 그것은 오컬트에 지나지 않는다고 증명된 지 오래가 아니던가. 가능할 리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면, 지금 이 동요는 어떻게 설명하면 좋단 말인가.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다시 무의식 속에서, 이번에는 물러나려던 고건철 회장이, 이를 악물고 스스로를 멈춰 세웠다. 나는 나의 주인이다. 내가 나의 주인이다. 육체도, 감정도. 이깟 감정이 뭐라고 나를 휘두른단 말인가. 이 또한 나의 것이다.
가을은 괴물의 얼굴에서 독기가 빠졌다가, 다시 올라오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하는 겨울의 옛 모습이었다.
#Intermission,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여러분, 파블로 데 사라사테라는 이름을 아십니까?
그게 누구냐고요? 교양이 부족하시군요. 파가니니 이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평가받는 거장을 모르시다니.
하하, 농담입니다. 화 내지 마세요. 모를 수도 있죠. 이제 더는 어떤 연주자도 인공지능의 기교를 능가할 수 없게 된 시대인데 말입니다. 트리니티 엔진은 청취자의 감성을 학습하여 개개인에게 최적화된 변주를 제공하는 수준에 도달했으니까요.
물론 감성 그 자체를 이해하는 건 아닌지라, 긍정적인 감정 피드백이 발생할 때까지 시행착오를 거듭하긴 합니다만, 우리 이 정도의 기술적 한계는 관대하게 봐주기로 하죠. 어쨌든 세계 최고의 인공지능 아니겠습니까?
그럼 사라사테의 이야기를 뭐 하러 꺼냈느냐. 이 사람이 노력의 대가이기 때문입니다. 생전의 노력을 사후의 행복으로 보상받는 시대에, 노력의 의미를 되새겨볼까 해서 말이지요.
사라사테는 자신을 천재라고 부르는 사람에게 이렇게 답했습니다.
“천재란 말이오? 내가? 하루 14시간씩, 37년을 쉬지 않고 연습했는데?”
즉 나처럼 노력하면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다는 뜻이지요.
이렇듯 성공한 사람들은 노력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력이야말로 만능의 열쇠라고. 이 세상 모든 고난을 열정 하나로 극복할 수 있노라고.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세상엔 노력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존재하지요. 예컨대 여러분의 연애사업이라던가…….
잠시 눈물 좀 닦겠습니다.
농담은 접어두고, 노력이 일반적인 성공의 조건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노력 없이 재능만으로 빛나는 사람들은 드문 편이니까요. 없지는 않겠지만요.
하지만 칠전팔기는 성공했을 때에나 미담이 되는 법입니다.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일어나서 또 다시 쓰러져버리는 일이 얼마나 비일비재합니까?
아마 고객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누구나 최고등급의 화려한 사후세계를 꿈꾸지만, 실상 절반 이상의 가입자들이 최저등급의 기본보장을 제공받는 것이 현실인걸요.
아, 이론상으로는 사후에도 끝없는 노력을 통해 등급을 올릴 수 있긴 합니다. 아시다시피 기본보장의 유효기간은 반영구적이니까요! 그러나 실제 등급상승을 이루는 사례는 굉장히 드물더군요. 하향이면 모를까.
하기야 사라사테 수준의 노력은 보통 사람에게 어렵겠죠. 그건 그냥 노력이 아니라 노오오오력이니 말입니다. 아니지, 노오오오오오오오력쯤 되려나요?
즉 하다하다 손 놓고 넋도 놓고 그대로 안주해버리는 가입자들이 대부분이라는 뜻입니다. 머저리 같은 가상인격에게 분노하고, 반복되는 세계관에 싫증을 내면서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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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괜찮겠죠. 그런 경우는 드물잖아요. 납골당에 안치된 가입자 태반이 노인층이니까요. 늙은 몸을 누가 산답니까? 되찾고 싶은 건 언제나 젊음인데. 이 시대에 젊어서, 혹은 어려서 죽는 경우가 어디 흔하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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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왜 상품명을 판도라의 상자로 정했냐고요? 불길한 느낌이라 싫으시다고요?
비유하자면 담배의 경고문구 같은 거랍니다. 그 왜 있잖습니까. 담뱃갑에 인쇄된 구태의연한 경고문. 「흡연은 폐암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며, 특히 임신부와 청소년의 건강에 해롭습니다.」라고 적혀있는 거, 다들 한 번쯤 보신 적 있지 않으십니까?
이게 제가 보기엔 이런 느낌입니다.
「이토록 건강에 해로운 담배지만, 그래도 피울 거지?」
하하. 이름이 불길하든 말든 살 사람은 어차피 다 삽니다.
‘나는 다를 거야’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많잖아요. 시험공부 전혀 안 했는데 찍으면 다 정답일 것 같은 느낌. 근거 없는 자신감. 마냥 잘 될 것 같은 낙관적인 예감. 일확천금의 꿈.
그런 의미에서 기본보장등급의 고객님들께는 1개월간 특별할인이 적용됩니다! 반값이면 살 수 있다니까요? 같은 값에 남들의 두 배를 사버리면, 사실상 당첨확률이 두 배인 셈이죠.
돈이 없는데 무슨 수로 사느냐. 그것도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약관대출과 마찬가지로, 남은 보장기간을 금액으로 환산하여 현금처럼 사용하실 수 있거든요!
장자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유한한 목숨으로 어찌 무한한 욕망을 채우려는가?”
사후보험이 존재하는 지금,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습니다. 네. 죽음이 곧 끝이었던 시대와는 많이 달라진 답이죠.
그러니 기왕 지를 거라면 끝까지 지르세요. 온갖 재앙과 절망이 쏟아져 나온다 한들, 당신이 열지 않은 최후의 상자에 희망이 들어있을지도 모릅니다.
대한민국 사후세계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하여, 그리고 보다 나은 수익성을 위하여, 낙원그룹 가상현실사업부는 사후보험공단과 함께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품 후기 ============================
#건강
으…불면증과 몸살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몸이 안 좋은데 잠을 못 자겠네요. 죽을 것 같습니다…
#해피엔딩
여러 번 말씀드리는데, 이 소설은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동심을 걸고 맹세한다니까요. 왜 아무도 안 믿어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Q&A
Q. qoewh님 : @아니…너무하잖아요. 왜 이렇게 동심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하셨어요?
A. 그건 제가 교과서를 중심으로 공부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슬기로운 생활의 영향이 컸죠…
Q. 하쿠류님 : @ 작가님 ! 작가님의 동심 충만이란 ‘초속 5cm’의 철로에서 스쳐지나가는 것을 말하시는 건가요? ㅠㅜ
A. 아뇨. 붕어빵에 들어있는 붕어를 말합니다.
Q. 노블레스버퍼님 : @아니다 작가 이 악마야 ㅠㅠ 배드엔딩은 슬픈걸요 흙흘ㅋ
A. 신카이 마코토 감독 영화 중에 배드엔딩으로 끝난 작품이 있던가요? 없는데…보세요, 배경은 항상 아름다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