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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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종연횡, 샌프란시스코 (5)
“미리 말씀드릴게요. 이 통화는 녹음되고 있어요.”
[저도 눈치는 있습니다.]
전직 교수가 껄껄 웃었다.
[굳이 영어로 말씀하시는 시점에서 짐작했지요. 애당초 비밀작전에 차출되어 떠나셨으니, 평범하게 연락이 오는 것도 이상한 노릇이고요. 혹시 중앙정보국이나 뭐 그런 뎁니까?]
겨울이 긍정하자 민완기는 다시 한 번 웃는다.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아 흥미진진하다면서.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통에 오히려 감독관이 곤혹스러워했다.
“불쾌하진 않으세요?”
[그럴 게 뭐가 있겠습니까? 낯설기는 합니다만, 신뢰를 얻을 기회라고 생각하면 나쁠 것도 없지요. 보통은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이는 언젠가 겨울이 했던 말과 판박이였다.
[아무튼 정말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작은 대장님 목소리를 들으니 좋군요.]
“저도요. 건강하신 것 같아 다행이에요.”
[헌데, 무슨 일로 연락을 주셨습니까? 뭔가 긴히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지?]
“아뇨, 그런 건 아녜요. 단지 소식이 궁금해서. 그동안 별 일 없으셨어요?”
[글쎄요……. 어제와 오늘이 항상 다른 요즘인지라. 이쪽 사정을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거의 몰라요. 아는 건 포트 로버츠가 무사하다는 것 정도?”
명백한 해방 작전이 진행 중인 지금, CIA나 FBI를 경유하는 소식은 그 이상이 될 수 없었다. 한 때 조안나가 도와주고 싶어 했으나 마찬가지. 난민들의 속사정은 중요하지 않은 정보였다.
[그렇습니까. 어디부터 얼마나 말씀드려야할지 조금 막막하게 느껴지는군요.]
이에 겨울은 시간을 확인했다.
“25분에 맞춰주세요.”
같은 요구를 장연철이 들었다면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그의 성실함에 대한 믿음과는 별개였다. 겨울이 민완기에게 먼저 연락한 이유이기도 했다. 밀린 소식을 듣기에도 부족한 여유. 동맹의 다른 간부들에 대한 연락은 다음으로 미뤄둘 작정이었다.
흠. 짧은 고민 끝에 민완기가 겨울의 양해를 구했다.
[알겠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이야기인 만큼 다소 두서가 없더라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우선은 겨울동맹의 사정이었다.
[비록 여기엔 없으시지만, 동맹의 구심점은 여전히 작은 대장님입니다. 없는 사람의 존재감이 갈수록 커지는 과정은 개인적으로 무척 흥미롭더군요.]
“그런가요?”
[왜 아니겠습니까? 여러 이유가 있겠습니다만서도, 가장 큰 원인은 요즘 미국 정계의 분위기가 아닌가 합니다.]
“아…….”
듣고 보니 타당하다. 다가오는 대선은 불확실한 미래였다. 난민의 처우 문제에 비판적인 후보가 적잖은 지지를 얻고 있었으므로. 그가 유일하게 예외로 언급하는 것이 겨울이었다.
‘난민 전체에 대한 지원이 아니라, 난민 지도자 개개인에 대한 지원체제로 전환하겠다던가?’
즉 그가 대통령이 되어 자신의 공약을 지킨다면, 미국 정부는 난민들을 직접적으로 책임지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난민들은 지도자가 누구냐에 따라 다른 수준의 생활을 누리게 될 것이었다. 미국 정부와 시민들에게 가치를 입증해보인 지도자에겐 엄청난 지원이 쏟아질 터. 반대의 경우는 끼니를 거를 정도로 열악해질 것이다.
[여론도 여론이지요. 어느 후보가 이기든 지금보다 나아지기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민주당이 승리해도 현상유지가 고작이겠고, 공화당이 이겼다간 난리가 날 겁니다. 이런 마당이니 작은 대장님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밖에요.]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걱정스럽네요.”
강영순 노인은 겨울을 구세주로 믿는 광신도들의 존재를 경고했었다.
역시나, 민완기의 이어지는 말이 비슷한 내용이었다.
[매일 새벽마다 여기저기서 기도회가 열립니다. 『한겨울님의 무사귀환을 기도하는 사람들』이라던가, 비슷한 이름의 모임이 상당히 많지요. 그 밖에 깡패 같은 패거리들도 늘었습니다. 작은 대장님의 친위대를 자처하는……. 굳이 말하자면 극우 깡패라고 해야겠군요. 한국전쟁기의 대한청년단과 비슷한 경우라고 해야 할까요? 경우가 좀 다르지만 말입니다.]
대한청년단은 이승만 대통령이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었다.
모르는 비교였으나, 지력보정으로 뜬 내용을 읽고, 겨울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류의 친위세력은 부작용이 수두룩했다. 시스템적으로 말하면, 공동체에 여러 가지 불변보정이 붙는다. 상황연산 상의 무작위 변수에 악영향을 준다는 뜻이었다.
“부장님들 선에서 대처하기 어려운 수준인가요?”
[아, 그 정도는 아니예요. 작은 대장님 덕분에 경찰의 도움을 받기도 수월해졌고요. 아, 참. 이걸 말씀드려야겠군요. 거류구에 정식으로 보안관이 파견되었는데, 대장님과 인연이 있는 분이십니다. 일부러 이곳에 지원하셨다고. 혹시 캐슬린 헤이랜드라는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캐슬린 헤이랜드……. 아.”
겨울이 떠올린 것과 지력보정이 동작한 것은 거의 동시였다. 연이은 태풍으로 여러 댐의 붕괴가 우려되던 때, 산타 마가리타 호수를 향하는 길에서 오인사격을 가했던 두 사람 중 하나. 제프리 소대의 그렉 가드너 일병이 그녀의 사격에 맞았었다.
[헤이랜드 보안관은 작은 대장님께 목숨을 빚졌다고 하셨습니다만, 정말인지요?]
“조금 복잡한데, 캐슬린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아니라고 하기도 뭐하네요.”
다시 만날 일은 없으리라 여겼건만.
[그럼 체이스 페리 경위도 아십니까?]
이번에는 떠올리는 데 조금 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산타 마리아에서 같은 이름의 경찰을 만난 적은 있지만, 계급이 다르네요.”
[그 분이 맞을 겁니다.]
민완기가 사정을 설명했다.
[연립단지 공사가 끝나면서 여긴 사실상의 도시가 되었지요. 군정청의 행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했고요. 덕분에 구역마다 경찰서가 들어섰는데, 한국계 거류구의 담당자가 바로 페리 경위입니다. 이 분 또한 자원해서 오신 경우더군요. 작은 대장님을 돕고 싶었다고.]
“캐슬린은 그렇다 쳐도 페리 경사……아니, 경위는 뜻밖이네요.”
오염지역의 인력은 항상 수급난을 겪으므로 자원자가 우선적으로 들어오는 것 자체는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 다 만난 시간으로 따지면 채 하루가 되지 못했다. 보안관이야 생명의 은인이라 여긴다니 그렇다 쳐도, 산타 마리아 경찰 기동대원 쪽은 애매한 감이 있었다.
‘산타 마리아는 대피가 가장 성공적이었던 도시 중 하나였다고 하지 않았었나?’
기억을 더듬어보니 본인에게 직접 들은 말이었다. 오염지역에서 내내 활동해온 레인저와 달리, 본인은 한 달쯤 전에 도착했을 뿐이라고. 즉 산타 마리아는 민간인과 정부 인력을 가리지 않고 봉쇄선 동쪽으로 안전하게 철수했다는 뜻이었을 터였다.
[사람의 마음을 누가 알까요. 경위에겐 작은 대장님의 활약이 그만큼 인상 깊었던 모양이지요. 그땐 다들 기적이라고 부를 정도였으니, 제가 보기엔 이상할 것이 없군요.]
어쩌면 부채감일수도 있겠다. 경위가 말했었다. “여긴 제 근무지고, 이건 제 직업입니다.”라고. 겨울은 그 책임감이 애향심에 닿아있다고 느꼈다.
보편적인 개인주의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의 애향심은 가끔 겨울의 예상을 넘어설 때가 있었다. 매 경험이 낯설다. 심지어는 그 유명한 디트로이트조차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남아있는 중산층 이상이 많다니, 민완기의 말마따나 사람의 마음은 모를 일이었다.
[남자가 남자에게 반할 수도 있는 법이고요.]
“아니, 그건 아니라고 봐요.”
[인기를 감안할 때 각오는 해두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작은 대장님 덕분에 새로운 정체성을 깨달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을 겁니다. 그렇지, 라디오에서 들은 내용인데, 우편집중국에 쌓이는 대장님의 팬레터 중에 남자들이 보낸 양도 굉장히 많다고 들었습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숨죽인 웃음소리. 범인은 입을 가린 감독관이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시침을 뗀다. 고개를 흔들고, 겨울이 답했다.
“……죄송하지만 농담할 시간 없어요.”
민완기는 농담이라고 던지는데, 겨울로서는 실제로 겪어본 일들이었다. 언제였던가, 눈망울이 그렁그렁했던 레드넥의 수줍은 고백을 떠올리면 지금도 조금 난처할 정도다.
‘그런 마음을 거절하기도 쉽지 않고.’
상처를 주지 않으려니 어려운 것이다. 좋아한다는데.
[그랬지요. 그럼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서,]
민완기가 바뀐 말을 이었다.
[헤이랜드 보안관과 페리 경위 두 사람은 동맹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어려울 때 여러모로 편의를 봐주지요. 딱히 불법적인 유착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동맹 안팎을 단속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단속하는 시점과 장소를 정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상황을 조정할 수 있으니까요. 이것도 결국 우리 대장님 덕분이지요.]
“의도한 건 아니잖아요.”
[그게 인덕이라는 겁니다.]
껄껄 웃고 다시 말하는 민완기.
[그래도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못할 때가 많은 터라, 근래에는 장부장님과 사이가 나빠진 척을 하게 되었습니다. 매번 서로 다른 쪽을 편들어주고 있어요.]
“사람들이 너무 갈라져도 나중에 감당하기 힘들 것 같은 데요.”
어느 한 계파의 힘이 너무 커져도 곤란하지만, 분열을 지나치게 조장하면 또 다른 문제가 될 것이었다. 기존에 나눠져 있던 파벌만으로도 충분히 많다. 미움이 미움을 낳는 법.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민완기가 겨울의 걱정을 잠재웠다.
[요즘 사람들이 그럽니다. 예전이 참 좋았다고.]
“그래요?”
[매일같이 벌어지는 다툼에 넌더리를 내는 거지요. 그러면서 꼭 따라붙는 한 마디가 있습니다. 작은 대장님이 있을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라고.]
과거는 언제나 미화된다. 더욱이 실제로도 현재보다 나았던 때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뭉치도록 돕고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면 곤란하니 적당한 사람을 하나 밀어줘서 말이지요.]
“제가 아는 분인가요?”
[물론입니다. 송예경 씨가 의외로 사람들의 지지를 받더군요.]
송예경이라면……. 다물진흥회로 전향한 남편에게 버림 받은 여자다. 겨울은 눈살을 찌푸렸다. 평소엔 잘 내색하지 않지만, 원한이 무척 깊어보였는데.
“그분으로 정말 괜찮을까요?”
[뭘 걱정하시는지는 압니다만, 누군가 필요했던 시점에서 송예경 씨 외의 대안이 없었습니다. 전부터 다른 단체로부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모임을 주도하고 있었더군요. 폭력적인 단체도 아니고, 종교적인 모임도 아니어서 조금 늦게 알았습니다.]
“으음…….”
[백산호 그 사람만 아니었어도 좀 더 여유가 있었겠으나…….]
“백산호? 그게 누구였죠?”
[전에 마음에 안 든다고 정리하라고 하셨던 중간 간부입니다. 기억 안 나십니까?]
“혹시 민 부장님이 본보기로 삼으시려던 사람인가요?”
[맞습니다.]
공사현장에서 홀로 말끔했던 남자. 땀 냄새가 나지 않았으며, 겨울바람이 부는 와중에도 손이 따뜻해서 의심했었다. 알고 보니 민완기가 발탁한 인물이었고.
‘자르라고 했더니 망설이셨지.’
사실 민완기는 그를 사람들의 원망을 집중시킬 희생양으로서 선별했던 것. 사람들의 인내가 한계에 달했을 때 강력하게 처벌하여, 동맹에 대한 지지와 결속을 단단히 하려던 의도였다. 겨울은 그것을 거부했다. 겨울의 방식이 아니었으므로.
소년은 항상 생각한다. 온전히 누구 한 사람의 책임인 죄라는 게 존재하는가, 하고.
민완기는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한 결과이니 그 한 사람의 책임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방조한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을 것이었다.
“그가 뭘 어쨌길래 그런 말씀을 하시죠?”
[어쨌다기보다는, 돈이 많더군요.]
“……돈?”
[예. 애초에 대단한 부자였나 봅니다. 여기가 도시로서 기능하게 되자마자 엄청난 돈을 풀어대더군요. 군정청 차원에서는 이런 상황에 대한 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지요. 상업용도로 지어진 건물들을 닥치는 대로 불하받고 있습니다.]
부동산 투기야말로 한국인의 대표적인 악덕 가운데 하나 아니겠습니까. 민완기의 평에서는 쓴 맛이 났다.
“좀 황당하네요. 그만한 돈이 어디서 났을까요?”
[사람들 말로는, 첫 번째 은행 창구가 열리자마자 지폐로 가득한 캐리어를 두 개나 끌고 나타났다고 합니다. 독하다면 정말 독한 인물 아니겠습니까? 무게만 하더라도 가뿐히 수십 킬로그램이었을 것인데, 휴지조각보다 못한 짐덩이를 악착같이 지니고 다녔으니 말입니다.]
============================ 작품 후기 ============================
#Q&A
Q. 카레라이스님 : @bj들은 자신의 겉모습을 바꿀수있나요? 그냥 단순히 나이를 변동하는게 아니라 키나 몸무게같은 체형변경부터 여자가 근육질의 남자가 되는 TS, 또는 생전엔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연예인 외모로 플레이한다던가 말이죠
A. 외모변경은 최초 1회 한정으로 무료입니다. 다른 사람의 초상권을 침해할 순 없습니다만, 자기 외양을 상품으로 등록한 연예인의 모습이라면 추가 요금을 지불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즉,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Q. 사도군님 : 항상 너무나 감사하며 보고 있습니다. 조아라 신년회 참석도 혹시 작가님 뵐수 있을까 해서 갔었네요. 프리미엄 가셔도 전 절대 찬성 드립니다.
A. 헉…저 같은 걸 왜 보고 싶어하세요. 그런 자리에 참석하기엔 제가 여러모로…좀…그렇습니다. 쪽지라도 미리 주셨으면 안 간다고 알려드렸을 텐데.
Q. 이슈트리님 : 그런데 중국임무 중에 미국으로 어떻게 온거에요??
A. 뭔가 착오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겨울은 중국에서 활동했던 게 아닙니다. 앨러미더 섬은 샌프란시스코 광역권 동부에 있고, 어디까지나 구 중국군 세력이 샌프란시스코 만에 피난해있을 뿐이거든요.
Q. 로나프님 : @궁금한게 생겼는데 주웨이가 방송에 등장하면 겨울의 정체가 바로 탄로나지 않을까요? 방송등장할때쯤이면 이미 작전종료가 되기 때문에 굳이 신경쓸필요가 없는 사안인가요?
A. 눈물 겨운 탈출과 귀순 사연이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걸요.
Q. 접니더님 : @배안에 시계 장인이 있고 엄청 공들이지 않는 이상 설치 불가능 인듯하네요….워낙 정교하니까.
A. 애초에 CIA의 전문분야입니다. 작중에서 묘사되지 않았어도, 이 정도는 당연히 검사했겠거니 생각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