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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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종연횡, 샌프란시스코 (8)
브리핑으로부터 이틀 후. 시에루 중장이 겨울을 호출했다.
장군들의 회동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대비는 되어있었다. 애국심 운운하며 죽을 각오를 물었던 채드윅이지만, 겨울을 쉽게 방치할 수는 없었던 모양. 처음부터 대책을 세워둔 채로 소년장교를 시험해본 것일지도 모르지만.
회동에 참석할 별도의 협력자가 있다던가. 그 정체까지는 겨울도 알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미국의 유일한 끄나풀인줄로 아는 상태라고. 다만 어감과 정황으로 미루어 장군급 인사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지 않고선 유사시 겨울에게 도움을 줄 능력이 부족할 테니.
생각하느라 잠잠한 틈에 시에루 중장이 묻는다.
“혹시 불쾌한가?”
겨울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전에 뵈었을 때 이미 실력을 확인해보겠다고 하셨잖습니까. 언제가 될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불쾌할 이유가 없지요.”
이곳은 현 시점에서 병영으로 전용된 여객선이었다. 여기서 커트 리의 검증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그 방식은 아직 알 수 없으나, 장군의 우호적인 태도는 예전과 다를 바 없었다.
“내가 봐온 남자들은 꼭 그렇지만도 않던걸. 근거를 내보이기 전에 무턱대고 믿어주었으면 하는 바람들이 있었으니. 그것이 그들 나름의 자존심이라던가.”
여장군이 비틀린 미소를 짓는다.
“그러고 보면 기독교 경전에 이런 말이 있다지?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도다.”
겨울이 긍정했다.
“요한복음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굳이 지력보정이 아니어도 익히 들은 경구였다. 본래의 의미를 떠나 제멋대로 왜곡해대는 광신도들의 입으로부터. 그들의 외침으로부터. 현실도피 수단으로서의 믿음.
“오, 이런. 이거 뜻밖이군……. 아니, 자란 국가가 국가이니 이상할 것도 없으려나. 혹시 자네도 야소(耶稣, 예수)의 신도인가?”
신기해하는 한편으로 조심스럽기도 한 장군 앞에서 겨울은 즉각 부인했다.
“아닙니다. 어릴 때 잠깐 교회를 다닌 적은 있지만, 어디까지나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나마 있던 약간의 신앙도 전장을 거치면서 죽었고요. 인간을 사랑하는 신이 있다면 전쟁 같은 건 일어나선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전에 정해진 커트 리의 설정이었다. 여기에 짧은 공백을 두고 덧붙이는 한 마디.
“그래도 요즘 들어선 믿고 싶은 생각도 듭니다.”
“절대자에게 구원을 청하려고?”
“아뇨. 그렇게까지 나약하진 않습니다. 게다가 사람을 수도 없이 죽여 놓고 천국에 가기를 바라는 것도 웃기는 일이겠죠.”
“그러면?”
“원망할 상대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말입니다. 세상이 너무 끔찍하니까요.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 존재한다면 마음이라도 편하지 않겠습니까?”
이에 장군은 소리 내어 웃었다.
“달라, 역시 달라. 내 부하들이 자네의 반만 닮아도 좋으련만.”
그리고 깊게 내쉬는 한숨.
“오두미교든가 태평천국이라든가 해서, 어지러운 세상에 온갖 사교(邪敎)가 흥성하는 거야 낯설지도 않은 일이지만, 대약진 이후에조차 같은 일이 반복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네. 일일이 대처해야 할 입장에선 정말 짜증스러운 일이야. 인민군의 개개인은 분명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었을 것인데……. 인류가 쌓아온 지성과 철학의 지반이 이토록 약한 것이었나 싶군.”
아니, 이건 못들은 걸로 해주게나. 겨울이 본 장군의 얼굴은 이제껏 보아온 낯빛 가운데 가장 깊은 감정으로 물들어 있었다. 겨울은 그 감정을 십분 이해했다. 스스로도 겨울동맹에서 익히 우려하고 대처해온 문제 아니었던가.
공산주의 성향이 강한 나라답게, 철학에 관한 믿음은 종교에 대한 신뢰 이상이었을 터.
민간신앙과 미신이 보편적이어도, 어디까지나 전통과 문화의 영역이었다.
“약한 것이 죄는 아닙니다. 다만 다른 누군가가 그들을 책임지는 데엔 한계가 있겠지요.”
그 한계도 결국 사람의 한계였다. 넘어서고자 하는 벽이었고.
공감하는 장군의 입가에 우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가에 따라 대인과 소인이 나누어지는 것이겠지. 힘들다고 해서 그들을 마냥 저버리면, 나 역시 그들과 매한가지의 소인배가 되어버릴 테니. 나는 내 울타리를 지킬 거야. 미치고 병들어도 내 부하들이고, 내 사람들인 거지.”
비뚤어졌어도 강한 인격이었다.
“오늘 저는 어떤 시험을 받게 됩니까?”
장군이 앞장섰다.
“따라오게.”
사전에 지시받은 내용이겠으나, 호위병들이 여장군과 겨울을 동격으로 호위했다.
층이 바뀌면서 분위기도 바뀌었다. 약간의 악취가 감도는 건조한 공기. 곳곳에 핏자국이 선연하다. 객실마다 창살이 붙어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긴 울부짖음. 이런 단서들을 자동으로 분석하는 「추적」 덕분에, 겨울은 여기서 이루어진 무수한 형벌 및 고문, 가혹행위들을 알아챌 수 있었다.
곧이어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하늘이 보인다. 본래 유리창으로 덮여있던 천장이지만, 여러 곳이 깨진 김에 아예 다 들어낸 것 같은 구조였다.
이 광장은 무장병력이 요소요소를 지키고 있었다. 준비된 좌석에 앉아있던 간부들 중 한 사람이 벌떡 일어선다. 시에루 해군중장의 아들, 탄궈셩 중교였다. 어머니에게 절도를 갖춰 경례한 다음, 겨울에게는 허물 없는 반가움을 표한다.
“이 사람! 오랜만이군! 그동안 잘 지냈나?”
기쁨 가득한 얼굴에 미소를 돌려주는 겨울.
“염려해주신 덕분에 별 일 없었습니다. 중교님께서는 어떠십니까? 복귀하신 뒤에 몸살이 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젊은 중교가 민망해했다.
“몸보다는 마음의 병이 아니었나 싶네. 부하들의 장례식을 치르느라 더했지.”
지켜보던 장군이 지적했다.
“탄궈셩 중교. 사적으로 만나는 시간이 아니다. 자리로 돌아가라.”
“아……”
젊은 장교의 민망함이 다른 의미로 짙어진다. 그러나 아들을 대하는 어머니의 태도는 얼음처럼 차갑고 강철처럼 단단했다. 보는 눈이 있어서라기보다, 공사구분이 엄격하다는 느낌.
겨울은 광장의 중앙을 보았다. 철창이 둘러쳐진 상태였다. 장교들이 모여 있는 방향으로는 두꺼운 유리를 대놓았다. 딱 보아도 방탄유리였다.
시에루 중장이 말했다.
“저기 있는 것들이 시험을 위해 준비된 자라새끼들일세.”
겨울이 대꾸했다.
“저는 쾌락살인마가 아닙니다.”
장군이 커트 리를 시험하려는 방식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희생양들은 갑판에 용접된 족쇄에 묶인 상태. 총으로 쏴도 끊어지지 않을 굵은 사슬이 그들의 행동을 제약했다. 허용된 동선은 전후좌우로 1미터 정도일까.
그들 앞엔 완전히 분해된 각종 화기가 놓여있었다.
눈앞에 무기를 두고도 감히 손대지 못하는 것은, 그들을 겨누고 있는 저격수들 때문이겠고.
유일하게 화기와 사람이 없는 테이블은 아마도 겨울이 들어갈 자리일 것이다.
“나도 내 호위무관이 살인마이길 바라는 건 아닐세.”
장군의 말은 차분한 음성으로 이어졌다.
“저기, 머리가 갈색 반 검은색 반인 녀석 보이나?”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엔 초췌한 모습의 전직 장교가 있었다. 전직이라고 한 것은, 계급장이 뜯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병사 정복과는 사소한 차이가 있어 예전 신분을 짐작하는 게 가능했다.
머리를 물들인 품새로 보아 비교적 최근까지 풍족하게 지냈던 게 틀림없었다. 화물선으로 가득한 샌프란시스코 앞바다에서 염색약이 그리 귀한 물건은 아닐지라도, 아무나 막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물자의 희귀함보다는 조직의 분위기 문제일 것이었다.
“저 놈은 다섯 명의 여자와 두 명의 남자를 강간했지. 뒤쪽은 욕망도 아니고 그냥 장난으로 한 짓이었어. 내장파열로 죽을 때까지 괴롭혔다네. 쓰레기(人渣) 같으니라고.”
“……그렇습니까?”
“그 외에도 무수한 잘못을 저질러왔으나, 단파의 중진인 형의 위광으로 무마해온 악질이야. 그동안은 내 사람들을 보살피느라 어쩔 수 없이 참아줬지만, 시대가 이렇게 된 뒤에도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는 걸 봐줄 이유가 어디 있겠나?”
단파(团派)는 공산주의청년단의 약칭이었다. 계파 다툼이 치열한 공산당 내에서 입지가 강한 신진세력 쯤 된다. 전문가 영역의 「중국어」로부터 제공되는 사회문화적 배경을 빠르게 훑고서, 겨울은 나머지 죄인들을 눈여겨보았다.
시선의 이동을 알아차린 장군이 냉소적인 독설을 연달아 쏟아냈다.
“그 옆의 곱슬머리 자라새끼는 겁도 없이 해로인(海洛因, heroin)을 팔아먹었어. 외국에서 들여와 외국으로 넘기는 중계역에 불과했다지만, 감히 이 나라에서 마약을, 그것도 아편을 팔아먹다니. 내 언젠가 직접 살을 발라내리라고 다짐했었네.”
자기 울타리에 집착하면서도 묘한 애국심을 드러내는 장군이었으나, 겨울은 충분히 그럴 만 하다고 느꼈다. 헤로인의 원료는 양귀비. 아편과 같다. 그리고 중국 역사에서 아편전쟁만큼 수치스러운 사건도 별로 없을 것이었다. 중국이 마약 문제에 경기를 드러내는 이유이기도 했다.
‘정말 무슨 생각이었을까.’
생각이 없는 정도가 아니다. 현실감각이 심각하게 결여되어있다고 봐야했다. 부와 권력은 사람을 사람이 아니게 만드는 힘이었다. 자신이 불행해진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만드는 불행이었고. 행복하다고 느끼지만, 진짜 행복으로부터는 멀어질 뿐.
장군이 드러내는 강렬한 경멸감을 보건대 거짓인 것 같지도 않다.
끔찍한 진술은 아직도 남아있었다.
“저기 있는 미친년은 몸보신을 이유로 태아를 삶아 먹었지. 그리고 뒤쪽의 정수리 벗겨진 중늙은이는 뇌물 받고 보급품에 장난을 쳤어. 장기 항해에 가짜 식량이 실렸으니 무슨 일이 벌어졌겠나. 하마터면 병사들이 집단으로 아사할 뻔했다네. 그러고도 책임은 전적으로 생산자와 납품업자에게만 돌아갔지. 흥, 웃기지도 않아.”
그녀가 삿대질하는 남자는 희생양들 가운데 가장 냉정한 하나였다. 이쪽을 슬쩍 살피는가 하면, 제 앞에 펼쳐진 권총 부품들에 집중하기도 했다. 자신에게 어떤 기회가 주어질지 알아차린 것이다. 머릿속에서는 권총의 완전한 분해조립이 수도 없이 반복되고 있을 터였다.
“거북해하는 건 이해하네. 군인은 살인자와 달라. 전쟁은 멍텅구리들이 빚어내는 참극이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싸워야 한단 말이야. 정부와 국민의 아둔함을 목숨으로 책임지는 마음가짐이 바로 군인의 명예이고 긍지가 아니겠나.”
장군이 다시 말했다.
“애초부터 죽어 마땅한 자들이야. 자네가 죽이지 않아도 어차피 여기서 살아나갈 수 없네. 오히려 자네가 있기에 기회라도 잡을 수 있게 된 셈이지.”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다시 한 번 양해를 구하네. 이 시험을 기분 나쁘게 생각하진 말아주게.”
“장군에게서 이 정도의 특별취급을 받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다만.”
“다만?”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겨울의 말에 시에루 중장이 의아해했다.
“무엇인가?”
“여쭙기 전에, 제가 드릴 질문에 어떤 악의가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미리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장군님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을 뿐입니다.”
“내가 귀관의 양해를 구했으니, 자네도 내 양해를 구할 수 있지. 헌데, 나를 알고 싶다고?”
여장군은 흥미로운 기색으로 질문을 기다렸다.
괜한 물음일까. 겨울의 의문은 커트 리에겐 조금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신중하지 못했다는 자책도 들었다.
하지만 기왕 꺼낸 이야기를 여기서 접기는 어색하다. 마침내 입을 여는 겨울.
“장군께선 저들과 다르십니까?”
시에루 중장이 눈을 찡그렸다.
“그것은 무슨 의미인가?”
겨울은 지금도 휴대하고 있는 시계, 그녀에게서 받은 선물을 내보였다. 정교하게 맞물리는 귀금속들은 흐린 빛 아래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다채롭게 반짝였다. CIA가 검사하느라 애를 먹을 정도의 물건이었다. 장인이 아니고서는 함부로 분해하기도 어려운 예술품.
“이것을 6천 4백만 위안에 구입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이 전재산은 아니셨겠죠.”
“물론일세. 내 부는 그 이상이었지.”
잠깐 쉰 뒤에, 중장이 반문했다.
“혹시 내 축재에 부정이 있지는 않았느냐고 묻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즉답하는 겨울 앞에서 여장군의 표정이 풀어진다.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군. 다행이야.”
겨울이 더하는 말로 의도를 보충했다.
“이 세상에서 돈은 누군가의 목숨일 때도 있습니다. 장군께서는 다른 사람의 끼니를 빼앗은 적이 없으십니까?”
그러자 시에루 중장에게서 희미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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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Q. 에린의음유시인님 : @사소하다면 사소한 태클이지만 굳이 발해역사랑 한반도역사를 중국에선 본토역사로 본다라는 내용을 넣으셨어야 했을까요…? 꼭 필요한 감상도 아닌듯한데
A. 같은 중화민족으로서 의리를 강조한 부분을 연상하는 대목이었습니다만, 말씀을 듣고 보니 민족감정으로 격앙될 분이 계실 듯 하여 그냥 첨삭하기로 했습니다.
Q. 음란마귀F님 : @병원 다녀왔고 친구는 다행이도 초기에 발견해서 어지간하면 치료 가능하다네요. 그리고 제가 이 소설로 친구들을 감염시키고있습니다. 벌써 한명은 일본 애니에서 구원했죠
A. 아니, 잠깐만요. 이 소설로 ‘감염’시키다뇨. 이 소설은 질병입니다. 감염되는 게 맞아요. 너무하시네요.
Q. 쿠로파이님 : @소설밖이 슬프니 여기까지 슬퍼지면 대부분 못 버티실거에요. 근데 소설이 슬퍼지면 현실이 행복해보일지도 몰라요.
A. 극약처방…? 사실 초기구상이 완성도 면에서 더 낫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변경된 계획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