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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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종연횡, 샌프란시스코 (9)
“왜 없겠나. 잘은 모르지만, 많을 거야. 아마도.”
고목처럼 단단하게 주름진 여성은 혐의를 부인하지 않았다.
“전에도 말했었지. 부를 과시하는 건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이기도 해. 흘러넘치는 부를 보고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거야. 부럽다. 저 사람의 개가 되어도 좋으니, 조금이라도 받아먹고 싶다. 더 편하게 살고 싶다. 저 사람의 호의를 얻고 싶다…….”
그녀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회를 뒤엎을 용기도 없고, 스스로가 비범해질 능력도 없고, 삶에 이렇다 할 뜻도 세우지 못한 장삼이사(张三李四)들은 그 정도가 한계거든. 아니라고 우기던 자들도 막상 본인이 수혜를 입게 될 때면 태도가 달라지더군.”
장삼이사. 장가네 셋째와 이가네 넷째. 흔하고 평범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런 범부들의 저열함, 자네도 본 적이 있을 것 같은데.”
“있습니다.”
겨울은 즉답했다. 온라인 환경에서 얼마나 비일비재했던가. 어느 아랍 부자, 석유재벌의 기사라도 뜨면 댓글이 범람했었다. 부럽다. 저 사람이랑 친구 하고 싶다. 친구는 무슨, 집사라도 괜찮겠네. 내게 10억만 주세요. 당신에겐 푼돈이잖아요. 할 수 있는 건 뭐든 다 해드림.
“그런 단순한 욕망은 양심보다 강력한 힘이지. 나도 예외는 아니었고.”
중장은 스스로를 냉정하게 평가했다. 장삼이사의 한 사람이라며.
“다른 방법이 있었을지도 몰라. 그러나 내게는 불가능했어. 난 그렇게 대단한 위인이 아니었으니까.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약간의 실력과 태반의 행운이었는걸.”
“지나치게 겸손하신 것 같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과거의 나는 그냥 성공하고 싶었을 뿐이야. 상식적으로 생각해보게. 부정이 만연한 국가, 공정하지 못한 사회에서 깨끗하기만 한 인물이 무슨 수로 성공하겠나? 위로 오르는 사다리는 모두 다른 누군가의 울타리 안에 있었는데?”
울타리 너머의 사다리. 그 비유가 겨울에겐 쉽게 와 닿았다. 이 정도로 간결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경험으로 체득한 지혜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처음엔 간절한 마음으로 남의 울타리를 두드렸네. 거기 나도 좀 넣어달라고. 충성을 바치겠다고. 거기에 숭고한 신념 같은 게 있었을 리가 있나. 난 아귀다툼에 끼어든 몰염치한 여자에 지나지 않았지. 찬물 더운물 가릴 여유가 없었어. 가끔씩 양심이 아쉬울 때가 있었네만, 고양이가 무슨 색이든 쥐만 잘 잡으면 그만 아닌가.”
내겐 그 외의 다른 길이 존재하지 않았다. 장군의 속뜻이었다.
“그래도 말이지.”
어조가 달라졌다.
“적어도 나만의 울타리를 세운 뒤에는 최소한의 선을 지켜왔다고 자부하네.”
그녀는 무심한 눈으로, 이제는 커트 리의 것이 된 시계를 응시했다.
“물론 내 욕망부터 채운 것이 사실이야. 그러나 평범한 사람 중에는 욕망을 채운 뒤에 비로소 선량해지는 부류가 있네. 식민지 약탈로 부의 토대를 쌓고, 아쉬울 게 없어지자 착한 척 하던 서양 놈들처럼……. 범상한 나에게도 그 정도의 양심은 있었단 말이지.”
겨울이 그 말을 받아주었다.
“이해합니다. 나취(나치/纳粹)에 빌붙어 부자가 된 후에야 겨우 사람 불쌍한 줄 알게 된 신더러(쉰들러/辛德勒)의 경우도 있죠. 그가 구해낸 사람들은 학살당한 전체에 비하면 극히 적었지만, 거기엔 숫자 이상의 의미가 있었을 겁니다.”
쉰들러가 홀로코스트에서 구해낸 유대인의 수는 1,200명. 죽어간 600만에 비하면 극히 적은 숫자일지언정, 그 고결함을 부인하는 이는 없다. 정신상태가 정상이라는 전제 하에.
세계의 의인(義人)과 비교당한 장군이 옅게 실소했다.
“자네도 꽤 짓궂군. 비슷한 사례이긴 한데, 내가 그렇게까지 대단한 사람은 못 된다네.”
“제가 거는 기대입니다.”
“기대……라. 부응하도록 애써보지. 그래야 할 시대이기도 하고.”
이 대화를 듣는 중국군 장교들은 기색이 다채로웠다. 시에루 중장의 열광적인 지지자들은 특히 더 알아보기 쉬웠다. 숫자가 얼마 안 되는 게 문제였지만.
그들처럼, 겨울도 중장의 말이 사실이기를 바란다.
진류의 함장 우메하라 아츠 해좌를 만났을 때도 같은 기대를 걸었다. 이런 사람이 높아질수록 이번 세계관의 향후는 더 나아지리라고.
시에루 중장은 합리적인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최소한 지금까지 만났던 중국인들 가운데 가장 괜찮은 편 아닌가. 작전이 잘 마무리될 경우, 커트 리의 존재와 무관하게, 그녀는 자신이 바라는 입지를 손에 넣게 될 것이었다. 언젠가는 그녀의 공동체와 겨울동맹 사이에 인연이 생길지도 모르고.
“자네는 저들과 내가 무엇이 다르냐고 물었지.”
겨울은 장군의 시선을 좇아 사형수들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죄에 짓눌려 움푹해진 눈들이 보인다. 동정심을 구걸하는 한 쌍, 억울함이 느껴지는 한 쌍, 분노하는 한 쌍, 속이 깊은 한 쌍, 감히 마주치지 못하는 한 쌍,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한 쌍…….
“근본적으로는 다르지 않아. 아니, 다를 수가 없었다고 해야 정확하겠군.”
그녀는 팔짱을 꼈다.
“그러나 사람이 되어야 할 시점에서 사람이 되었는가, 아닌가의 차이는 있을 걸세.”
“알 것 같습니다.”
“정말인가?”
“처지가 열악할 때 사람이 추해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누가 먼저 추해지기 시작하면, 그런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내가 더러워지지 않기는 더 힘들 것이고요.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합니까? 그저 환경이 나빴을 뿐입니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는 사람은 없고, 태어날 환경을 선택할 수도 없는 거니까 말입니다.”
“좋군, 좋아.”
장군의 건조한 얼굴에 희미한 흐뭇함이 번졌다.
“내게 어느 정도는 절망감도 있었지. 힘을 얻은 뒤에도 위대한 조국은 너무나 거대했거든. 혼자서 깨끗할 뿐이면 자기만족에 불과한데, 그렇다고 세상을 바꾸자니 나를 향해 칼을 들이댈 놈들이 너무나 많았어. 지금 돌아보면 거기서 무기력감을 느꼈던 것 같아. 용기가 없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
이것이 합리화에 불과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겨울은 그 가능성을 곱씹지 않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그렇게 믿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거짓에서 시작되는 진실도 있는걸.’
다른 건 몰라도 사람의 마음은 그랬다. 열리지 않는 상자 안에 뭐가 있는 줄 알겠는가. 그 사람이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지, 그 사랑이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과 같은지 알아낼 방법은 또 어디에 있겠는가. 사람들은 자신의 상자조차도 열지 못한다.
거짓이라 믿었던 자신이 진짜일 수도 있고, 진짜라고 믿었던 자신이 거짓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의미는 실제로 스스로를 쌓아나가는 과정 그 자체에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기에, 겨울은 이 세계관에서도 마음을 지키고 있다.
“말이 길어졌는데,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해왔다는 뜻일세. 그 한도 내에서 양심적이었고, 그 한도 내에서 의리를 지켰고, 그 한도 내에서 명예로웠을 뿐.”
“그 이상이 가능한 사람은 드물겠죠. 능력이 있어도 안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요.”
겨울이 곧잘 고민하는, 사람의 한계에 관한 문제였다.
중장이 깊게 긍정했다.
“난 앞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걸세. 사람이 만들지 않은 난세야. 영웅이 나타나면 좋겠으나, 그렇지 못하니 간웅이라도 나서야지. 내가 치세의 능신은 아니었겠지만 말이야.”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 이는 본래 조조를 이르는 말이었다. 겨울은 자신을 유비에 비유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라 했던 강영순 노인을 떠올렸다. 노인이 지금 이 대화를 들었다면 무슨 조언을 주었을까. 궁금해진다. 글을 말 대신으로 삼아온 그녀 역시 민완기와 마찬가지로 평범하지 않은 인물에 속하기에.
이 세계는 물리현실의 과거를 비추는 거울이다. 이곳에서, 겨울은 하루하루 깊어지는 이해를 느꼈다. 생전의 세계가 어쩌다 그런 모습이 되었는가를.
겨울이 중장과의 대화에서 드문 흥미를 느끼는 것도 그런 연유였다.
포부를 담은 중장의 자기변호가 끝났다.
“자, 알고 싶다던 내 속을 들어본 소감이 어떤가?”
겨울은 길게 말하지 않았다.
“시험은 언제 시작하면 됩니까?”
시에루 중장이 피식 웃었다. 손짓으로 부관을 부른다. 아까 눈여겨보았던, 중장의 열렬한 지지자들 중 하나는 아니었다. 겨울에게 보내는 시선 또한 왜 이런 놈이, 라는 느낌.
‘굳이 이런 식으로 과시하는 이유를 알 만 하네.’
시험이라곤 해도 형식이 이상했다. 처음엔 단순한 여흥인가 싶었다. 사람은 즐거움 없인 살지 못한다고. 에이프릴 퍼시픽의 미치광이가 주워섬긴 말이지만, 틀린 사람이 한 말이라도 틀린 내용은 아니었다.
커트 리를 욕심내는 시에루 중장이 아무 생각 없이 구경거리로 만들진 않았을 테니.
친위대를 구성하는 면면은 또한 연줄의 결과물일 것이다. 얼마나 제공하느냐가 곧 중장에게서 총애를 받는 정도를 반영하는 지표일 것 같기도 하고.
“사용할 무기를 고르게.”
부관이 요구했다. 겨울은 소총을 내려놓고 권총을 건네주었다.
“탄은 표적의 숫자만큼만 가지고 들어갈 수 있네만, 불만은 없겠지?”
“상관없습니다.”
겨울에게 동요가 없자 부관이 흔들렸다. 의혹 깊은 표정으로 탄창에서 탄을 제거한다. 일일이 세어보고, 따로 쥐는 숫자가 아홉 발.
이제 내부로 들어가, 빈 테이블을 앞에 둔 채, 겨울은 지시 없이도 권총을 분해했다. 부품을 정갈하게 펼쳐놓는 속도가 부관을 다시금 흔들리게 만들었다.
맞대면한 사형수들의 눈에 조금씩 사나움이 깃들었다.
부관이 그들을 향해 선언한다.
“이미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이것은 귀관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다. 누구라도 좋다. 여기 이 커트 리라는 자를 죽여라. 그러면 너희 전체가 다시 한 번 명예로운 복무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자비를 베풀어주신 중장님께 감사드리도록.”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그들은 살의에 집중하고 있었다.
부관은 탄을 들어 하나하나 헤아리듯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이 자에게는 정확히 너희 머릿수만큼의 탄환만이 주어져있다. 즉 너희보다 빠르게 총을 조립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한 발이라도 빗나가선 안 되는 거지. 이만큼 유리한 조건이다. 최선을 다하도록.”
마지막 한 마디가 유독 깊었다.
부관의 계급은 대교. 다른 나라 기준으로는 대령 내지 준장에 해당했다.
그러니 커트 리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 없을 것이다. 중국인 공동체의 한겨울로 만들겠다는 시에루 중장의 구상이 어디까지 공유되었을지, 공유되었다고 해서 어느 정도의 공감을 얻었을지 의문이다. 헛된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축해버릴 수도 있었다. 장군이 일개 용병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한겨울 같은 사례가 쉽게 만들어질 리 있겠느냐고.
‘그걸 검증하고, 저들에게 납득시키는 자리이기도 한 건가.’
그렇다면 여기서 그들이 보았을 한겨울만큼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이외에도 준비된 시험이 있겠지 싶었다.
겨울은 피부에 보정으로 와 닿는 「위협성」 순서로 표적을 나누었다. 가장 침착했던 사형수가 또한 가장 위협적이었다. 쥐었다 폈다 하며 손을 푸는 중. 이미 사람의 눈이 아니다.
아홉 사형수가 신호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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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족제비족1님 : @ 게임의 초기값은 미국 서해 연안주 감염, 봉쇄선 설치됨, 난민캠프에서 플레이어 시작, 튜토리얼은 식량구하기 미션 정도인가요? 연대장 정도에서 시작할 수 있나요
A. 설정상 현질을 하면 가능합니다. 포인트가 주어지며, 원하는 시작조건의 가치평가를 통해 차감되는 방식으로요. 그러니 돈만 많으면 대통령으로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건 또다른 현질을 부르겠지만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