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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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종연횡, 샌프란시스코 (10)
총성이 울려 퍼졌다.
하늘을 겨냥한 단발사격이 공개처형의 시작을 알렸다.
한 줄로 세워진 실탄들을 한 손으로 휩쓰는 겨울. 남은 손으로 탄창을 쥔다. 두 손이 겹쳐지면서, 손아귀 안에 정렬된 탄이 단숨에 밀려들어갔다. 첫 번에 다섯 발, 다음번에 네 발. 그렇게 단 두 번 밀어서 삽탄을 마친다. 장전 보조도구를 쓸 때에 필적하는 속도였다.
준비된 탄창을 내려놓고 권총 조립을 시작한다. 손은 눈보다 빨랐다. 서로 다른 세계, 이편과 저편의 관객들은 물론이거니와, 겨울의 인지조차도 벗어날 정도. 제한된 상황에서의 무기 정비는 기술적 역량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달칵. 들어간 탄창이 멈치에 맞물리는 소리. 철컥. 슬라이드를 당겼다가 놓는 소리.
군인이 이렇게 겹쳐지는 금속성의 의미를 모를 수 없다. 설마, 벌써? 창백해진 사형수들 몇몇이 부들거리며 그들의 사형집행인을 보았다. 남는 부품 하나 없이 깔끔해진 테이블. 완벽하게 조립된 권총. 그것을 오른손으로 쥐고, 왼손으로 감싼 채 배 아래로 늘어뜨리고 있다.
딱. 안전장치가 풀리는 소리. 끼릭. 격철이 뒤로 당겨지는 소리.
이어지는 미세한 소음들은 사형수들로 하여금 경기를 일으키게 만들었다. 형형한 생존욕구로 신경이 올올이 곤두선 그들에겐 천둥보다 크게 들렸을 것이다.
그 와중에 반수는 식은땀을 흘리며 무기를 결합하는 중이다. 온 정신이 테이블 위에 있어, 그 바깥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든, 어떤 일이 벌어지든 관심이 없다. 아니, 관심을 주지 않으려고 필사적이다. 혹은, 외부세계와의 감각이 완전히 끊어졌거나.
심성과 별개로 정신력은 꽤 괜찮은 이들. 어쩌다 비뚤어졌는지.
겨울은 그들을 침착하게 지켜보았다.
최후의 순간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잔혹한 희롱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자리의 성격을 감안하건대, 공개처형은 극적인 편이 좋을 터였다. 즉, 필요악이다.
당사자인 사형수들은 혼란스러워했다. 그러면서도 실낱같은 희망에 매달려, 놓았던 무기에 손을 뻗는 여자가 보인다. 그녀의 결단력이 어중간하던 나머지를 이끌었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모멸감을 느껴야 할 대목이어야 했다. 그러나 촌각에 목숨이 오가는 처지에서 그런 감정을 느낄 여력이 어디에 있겠는가.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보통내기가 아니겠지.’
지금은 사전적인 의미로 눈앞이 깜깜할 것을. 불규칙한 호흡, 폭주하는 심박. 급증한 혈류는 머릿속을 뜨겁고 팽팽하게 만들어 사고를 마비시킨다. 전투상황의 긴장감과 다를 바 없다. 전투를 겪은 병사들이 길게는 몇 시간이고 손을 떠는 이유이기도 했다.
어쨌든 당장은 살아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늘어난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사형수들의 무기 조립은 통상적인 경우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필요로 했다. 놓치고, 흘리고, 흐느끼며 수습하기를 반복한다. 그 모습만 본다면, 넘어서는 비극을 떠올리기 힘들 지경.
군의 훈련이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것은 이런 상황에서조차 기계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고급 장교 출신의 죄수들이다보니, 몸에 배어있던 것도 둔해진 모양. 혹은 아예 배었던 적이 없거나. 허둥대는 손짓에서 겨울은 그들이 누려온 권위와 나태와 안락을 읽어냈다. 어느 조직에서든, 기본에 더욱 충실한 건 매양 아래쪽의 사람들이었다.
철컥. 겨울 이후 처음으로 누군가 권총을 장전하는 소리.
주인공은 역시나 처음부터 냉정했던 사람이다. 무서울 정도로 몰입해서 작업을 끝낸 그는 이제야 겨울을 올려다본다. 그 눈에 일렁이는 형형한 생존욕의 불길이 인상 깊었다.
그는 또한 교활하기도 했다. 겨울이 일부러 기다려주는 상황에서, 완성된 총기를 바로 겨누지 않았다. 그랬다간 자신이 먼저 죽을 거라고 확신한 것일까. 자신보다 한참 앞서 여유롭게 조립을 마친 겨울이라면, 조준하고 쏘는 속도도 자신보다 훨씬 빠르리라고 예상한 듯 하다.
‘상황판단이 좋은데.’
겨울은 그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채로 이쪽을 노려보는 중년인은, 한동안 이발을 하지 못했는지 거친 머리카락이 고드름처럼 엉겨있었다. 정수리가 동그랗게 벗겨진 것조차 우습기보다는 기괴해보였다. 마치 사람을 닮은 괴물처럼.
냉정한 사형수가 기다리는 것은 다른 사형수의 사격이었다. 겨울이 희생양을 쏠 때, 그 틈을 타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기겠다는 속셈일 터.
지금이라도 겨울이 변덕을 부린다면 무의미한 계획이 될 것이지만, 이것이 냉정한 사형수가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기도 했다. 실패하면 어차피 죽는다. 그러므로 실패를 고민하거나 두려워하는 건 무의미하다. 추레한 죄수의 푹 패인 눈빛에선 그런 속내가 느껴졌다.
기묘한 대치에 시험장 안팎이 술렁인다.
차례로 조립을 마친 다른 사형수들 또한 상황을 눈치 챘다. 바로 겨울을 겨누지 않는 이들은, 그대로 머리가 벗겨진 남자의 의도에 편승했다.
물론 모두가 그렇게 영리하진 못했다.
“으아아아-!”
탕!
겨울의 총구에서 희미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조준에서 사격까지 얼마나 걸렸을까.
파울러 대위는 정면에서 다섯을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평가했었다. 그가 가정한 다섯은 몸에 밸 정도의 훈련을 거친 숙련병 다섯이다.
심장에 구멍이 뚫린 죄수는 쥐고 있던 소총부터 떨어트렸다. 흔들. 고통스러운 얼굴로 가슴을 쥐어짜며, 눈물 한 방울 흘리고, 꺼억 하는 단말마와 함께 무릎을 꿇었다. 쿵. 귓가에 떨어지는 생명의 무게감. 대각선으로 털썩 쓰러진 시신이 긴 경련을 일으켰다.
겨울은 어중간한 자세의 셋을 눈으로 훑었다.
어리석은 한 명이 벌어준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이때다 싶어 반사적으로 반응한 셋은, 총구를 다 들지도 못한 채였다. 끔찍하게 일그러진 얼굴들. 갈등과 두려움 속에서 다시 내려가는 총구 셋. 끝까지 지켜본 뒤에, 겨울 역시 총을 늘어뜨렸다.
대치가 재개되었다.
이제 죄수들은 하나의 희생양으론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안다.
남은 숫자는 일곱. 겨울을 상대하려면 동시다발적인 공격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나마도 없던 승산이 생기는 정도. 죄수들은 적대감 속에서 치열하게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오가는 눈짓들이 얼마나 효율적인 의사소통일는지. 다만 감정만이 넘쳐흐르는 분위기였다.
이 대치의 지분 절반을 차지하는 남자, 머리카락이 거칠게 엉킨 사내는 부득부득 이를 갈고 있다. 무임승차한 나머지가 원수만큼 미운 눈치다. 그의 입장에서, 나머지 죄수들은 자신을 위해 죽어야 할 잡것들에 지나지 않을 테니. 자신의 발상을 도둑맞은 분노도 있을 것이었다.
시험장의 모든 무기가 완전해졌다.
팽팽하게 당겨진 적막이 감돌았다.
겨울은 서부극을 떠올렸다. 구도만 놓고 본다면 총잡이들의 대결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서로의 반응속도와 정교함을 겨루는 싸움. 이 자리를 마련한 장군의 의도에 충분히 부합하는 긴장감일 것이다. 어디까지나 겨울의 짐작에 불과하지만, 틀릴 것 같지는 않았다.
‘설령 아니더라도, 결과적으로는 같게 될 거야.’
일곱 죄수들은 누구 하나 먼저 총구를 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움찔거리는 손동작들은, 겨울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죄수들까지 속이려는 악의로 가득했다. 쏘려는 것처럼 기만하려는 속임수들. 그러나 대범하지 못해 효과가 없었다. 손 크게 움직였다간 ‘커트 리’가 자신부터 쏘아 죽일 것이 두려울 테니까.
이쯤에서 끝내야겠다.
결심한 순간, 의도는 전류 흐르는 속도로 실천이 되었다. 타탕! 하나로 뭉쳐진 두 개의 총성은 연달아 집행된 두 번의 총살이었다. 경악한 사형수들이 일제히 반응했다. 그들의 탄약은 넉넉했고, 급한 김에 바닥으로 쏘아지는 총탄들이 어지럽게 튀었다.
그러나 겨울에게는 사선이 보인다. 붉은 경고는 몸에 닿는 것이 없었다. 그들의 조준선은 한참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오차확률이 포함되어 불분명할 때도 있으나, 저들의 능력이 대단치 않아 무의미하다.
타앙! 탕! 타탕!
총성과 함께 만연하는 죽음. 죄수 가운데 오직 한 사람만 남기고 모조리 죽인다.
자동권총을 연사로 놓고 긁던 여자는 미간부터 뒤통수까지 꿰뚫렸다. 피와 뇌수를 눈물처럼 흘리며 꼬꾸라지는 그녀. 그 옆에서 으아아아 소리 지르던 남자는 목구멍 안쪽에 탄이 박혔고, 두개골 안에서 튀는 총탄에 뇌가 곤죽이 된 자가 있으며, 테이블을 엎어 방패삼으려던 한 명은 허벅지가 드러나 동맥이 끊어졌다. 허우적거리며 출혈을 막아보려 하지만, 두 손으로는 아무래도 벅차다. 겨울에겐 고통을 덜어줄 탄이 부족했다.
마지막 한 발이 남은 시점에서, 최후의 죄수는 서럽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의 총구는 아직도 비스듬했다. 그 상태로 동상처럼 굳어버렸다.
누구 하나, 겨울의 반응속도를 절반도 따라잡지 못한 까닭이다.
겨울은 마지막 처형을 집행했다.
탕!
머리가 홱 젖혀진다. 온 몸에서 힘이 빠졌다. 사형수는 뒤로 쓰러졌다. 절그럭. 발에 묶인 사슬이 부대끼는 소리. 그는 멀건 눈으로 흐린 하늘을 보며 죽었다.
겨울은 총을 홀스터에 꽂고 손을 풀었다.
짝, 짝, 짝. 배후에서 들려오는 박수 소리. 보내는 사람은 시에루 중장이었다. 그녀는 무척이나 고양된 얼굴이었다. 손뼉을 부딪칠 때마다 매번 과한 힘이 들어가 있다.
머리가 가는 곳에 꼬리도 간다. 갈채가 늘었다.
그것을 들으며, 겨울은 몸에 익힌 반응속도를 되새겼다.
TOM 적성과 마찬가지로, 이 또한 타고나는 것이었던가? 기억 속에서 오래 전에 읽었던 매뉴얼을 더듬는 겨울. 시스템 보정은 전기적인 동시에 화학적이고, 신경 단위로 작용한다. 이것이 실제 물리적인 반응속도를 증가시키기도 했다.
거기엔 분명히 한계가 있을 터.
‘그래도 전보다 더 빨라진 느낌이란 말이지.’
비교대상은 지나온 종말들이었다.
단지 그만큼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착각에 불과할까?
고민하는 사이 시험장이 치워진다. 제2의 한겨울을 검증하는 자리는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충실하지 못한 부하들을 납득시키고, 그들에게 장차 만들어질 미국 내 중국계 공동체의 가능성을 믿게끔 하려면 어지간한 광대극으로는 부족할 터.
시에루 중장은 냉정한 인물이다. 자신이 지불한 값어치만큼의 대가를 기대할 것이었다.
그 일방적인 평가와 기대가 누군가를 연상하게 만든다.
겨울은 생전의 기억과 함께 구르는 돌을 의식적으로 억눌렀다.
사고를 다른 방향으로 유도한다. 예컨대, 돌아가서 보고할 내용이라던가.
시에루 중장에 대한 겨울의 평가는 CIA가 향후의 전략을 세우는 데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예정이다. 비록 커트 리라는 인물에게 어울리는 행동은 아니었으되, 시험에 앞서 장군과 나누었던 문답은 정보국 요원들에게 요긴한 정보로 쓰일 터였고.
‘시에루 중장의 말이 자기미화에 불과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말하는 순간에는 진심으로 믿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 어쩌면, 그렇게 되고 싶다는 무의식이 드러난 것일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그럭저럭 괜찮은 인물이라고 해도 좋겠지. 겨울의 결론이었다.
최종 판단은 대화를 검토한 뒤 정보국에서 내려지겠지만, 현장요원으로서 겨울의 의견 또한 보고서에 첨부될 것이다.
겨울은 질질 끌려 나가는 시체들을 건조한 시선으로 일별했다.
시험장에 기다란 핏자국들이 남았다. 거기서 나는 쇳내음이 원래 있던 악취와 뒤섞인다. 뚫린 천장으로부터 쏟아지는 흐린 빛과 서늘한 봄바람, 피 냄새를 맡고 몰려온 성난 새들의 울음소리는, 세계관에 어울리는 감각의 홍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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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시 06분 부로 일부 내용을 삭제했습니다. 묘사에 오류가 있었습니다.
Q. [反]Kid님 : @작가님 옛것의 힘으로 트럼프 현질시켜줫나요! 미국 대선의 비밀이 여기에…!
A. 아뇨. 트럼프는 혼자 힘으로 현질을 한 경우라서 어쩔 수 없습니다. 현실을 받아들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