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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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종연횡, 샌프란시스코 (13)
“양용빈(杨永斌) 상장 동지. 당신도 뭐라고 말 좀 해보십시오!”
시에루 중장이 바로 그 남자를 지목했다.
마침 또 시계를 보고 있던 육군상장이 점잖은 태도로 고개를 들었다. 그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시에루 중장이 예의를 지키며, 그러나 큰 소리로 밀어붙이듯이 내는 말.
“당신이 보물섬(金银岛)을 점령한 건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시기 때문이 아닙니까? 우리가 행보를 함께한다면 협상력도 그만큼 강해질 것입니다! 미국은 훨씬 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겠지요! 본관은 장차 만들어질 새로운 중국에 상장 동지의 지도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보물섬은 인공섬 트레져 아일랜드의 직역이었다. 육지와는 왕복 4차선 도로 하나로 이어져있을 뿐. 육군상장은 이 길목에 화물선을 돌진시켰다. 겨울이 오기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얇은 육지에 좌초한 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성벽과 같았다. 미군이 컨테이너를 쌓아 변종집단의 진입을 차단했듯이. 남은 섬을 점령하기는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나저나, 지도력이 필요하다……인가.’
공동체를 함께 이끌자는 암시. 구체적인 약속은 아니지만, 보는 눈이 많은 자리에서 이 이상의 제안을 꺼낼 순 없을 것이다. 체면을 망치는 일이 될 테니.
겨울이 주시하는 가운데, 육군상장이 싱긋 웃었다.
“새로운 중국이라. 귀관은 마치 중국이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군.”
악의가 느껴지지 않아서 더 위험하게 느껴지는 음성이었다. 사근사근하고 상냥하기까지 한 목소리에 좌중이 잠잠해지는 것도 같은 이유일 터였고. 언성을 높이던 강경파마저 주춤거렸다. 그들조차도, 중국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자연스럽게 말할 순 없었기에.
테이블 위에 깍지를 낀 상장이 온화한 발언을 이어갔다.
“국가는 정신이야. 다른 구성요소는 그 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해. 그리고 군인은 가장 위태로운 순간에 그 정신을 명예로운 무력으로 지키는 자들이지. 즉.”
그는 미소의 여운이 남은 얼굴로 자신의 가슴을 눌러보였다.
“내 조국은 여기에 있네. 중국은 유사 이래 잠시라도 사라진 적이 없어. 그러니 멸망한 조국의 복수 운운하는 것도 우습군. 본관이 보기에 여기 있는 놈들은 전부 반역자들이야.”
겨울은 어두운 예감을 느꼈다. 광기는 이성적일수록 위험하다. 에이프릴 퍼시픽이 왜 그런 지옥이 되었던가. 겨울의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방아쇠울로 들어갔다.
이 자, 양용빈 육군상장을 지금 바로 사살해야 할까? 강경파를 포함해서?
아니다. 그런다고 그가 기다리는 무언가가 지연될 가능성은 한없이 낮다. 지금 그는 그저 여기 앉아있을 뿐. 궤도에 오른 계획은 상장의 간섭 없이도 관성으로 실행될 것이었다. 그런 게 아니고서는 냉정하게 미친 사람이 이런 자리에 올 이유가 없다. 저것은 합리적인 여유다.
게다가 교전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보장은 낮다. 시에루 중장이야 어떻게든 지켜내더라도, 나머지의 생사는 운에 맡겨야 한다.
여기에 이르는 판단의 흐름을 「통찰」이 끊임없이 긍정했다.
당장은 방법이 없나. 겨울은 잡음조차 거의 들리지 않는 교신채널이 아쉬웠다. 선내까지는 위성전파도, 지향성 전파도 닿지 않기에. 그렇다고 잠시 자리를 비우기도 불가능하다. CIA가 무언가 눈치 챘기를 바랄 뿐이었다.
같은 불길함을 느꼈는지, 시에루 중장의 어깨가 딱딱하게 굳었다.
“상장 동지께선 현실을 외면하고 계시는 겁니다. 국가는 정신이나 철학처럼 모호한 것이 아닙니다. 국가는 인민이며, 인민의 삶을 보장하는 정치이며, 또한 인민의 생활을 현실적으로 뒷받침하는 제도와 간접자본의 총체입니다. 가스, 수도, 유류, 전기, 식량! 말씀해보십시오. 그 중에서 지금까지 남아있는 게 대체 얼마나 됩니까? 우리에게 무엇이 남아있습니까?”
단지 육군상장만을 겨냥하고 토하는 열변이 아니었다.
“다음 인민대표회의는 언제 열립니까? 주석 동지가 살아계십니까? 아니면 중앙군사위원회로부터의 지시를 기대할 순 있습니까? 하다못해 집단군 편제라도 온전히 남아있는 곳이 있기나 하냔 말입니다!”
땅, 테이블을 힘차게 내리치는 소리. 여걸의 호령이 실내에 쩌렁쩌렁했다.
“동지! 중국이 멸망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군인의 본분을 기억하십시오! 군대는 살인자 집단이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미래를 지켜야 합니다! 복수? 보복? 어디 한 번 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그게 정당하다면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정당한 복수라는 게 존재할 리 없다.
‘복수는 산 사람의 자기위안이지. 이미 죽은 사람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걸…….’
납골당에 백만 송이 꽃을 바친들, 그 향기가 죽은 사람에게 닿기나 할까. 꽃의 아름다움은 살아있는 사람을 위로할 따름이다. 죽은 사람은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
이게 겨울 혼자 하는 생각이어도 중장의 의도와 다르지 않을 터였다.
“살아남은 인민의 숫자가 시역 이전의 13억 6천만에 비하면 한 줌에 불과할지라도, 유명을 달리한 십억의 인민보다 살아남은 단 한 명의 아이를 더 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 아이에게 이미 죽은 사람들의 뒤를 따르라고 강요할 순 없습니다!”
중장이 좌중을 삿대질했다.
“설령 시역이 미국의 소행이라 치더라도! 당신들이 진정한 복수를 원한다면! 부차의 똥을 핥는 구천의 심정으로 살아남아야 할 게 아닙니까? 승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남는 자의 몫입니다! 같이 죽어서 뭐 어쩌겠다는 겁니까! 어디 저승에 가서 자랑해보십시다! 4천년 중화의 역사를 원수와의 공멸로 끝장내고 왔노라고! 그럼 먼저 간 동지들이 박수라도 쳐줄 것 같습니까? 하, 어림없는 소리! 당신들은 알량한 복수심에 홀려 의무를 저버리고 있는 거야!”
준열한 꾸짖음이 공기의 무거움을 더한다. 잠시 동안은, 시에루 중장이 씩씩대는 소리에 메아리가 울릴 지경이었다. 모두가 억눌린 가운데 전과 같은 이는 양용빈 육군상장 뿐이었다. 그는 여전히 실체가 불분명한 여유를 지키고 있었다. 어찌 보면 초연함에 가깝다.
시에루 중장의 삶에서 지금처럼 떳떳한 순간은 없었겠지. 지금처럼 진심이었던 순간도 없었겠고. 내심 이렇게 평하는 겨울은, 그녀의 열변을 깎아내리는 게 아니었다. 소년도 죽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삶은 매순간의 깨달음이다. 계속되는 의미부여가 자신을 새롭게 만든다. 과거의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되던가.
그런 사람에게, 과거의 네가 형편없었으니 현재의 너는 소리 높일 자격이 없다……고 윽박지르는 건 인간적이지 못하다. 겨울은 사람이 변화할 가능성을 믿는다. 실제로는 그런 일이 드물지라도. 같은 맥락에서, 언젠가는 세상이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으리라고.
믿고 싶은 것이다.
이미 늦지 않았는가, 라는 의심이 끊임없이 반복되기는 하지만.
사람이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건, 대개 이제까지의 자신으로 현실을 풀어나갈 수 없을 때다.
그런 의미에서 종말이 다가오는 세계는 얼마나 상징적인가. 좋은 꿈을 꾸기에 적합하지 않느냐고, 겨울은 스스로를 타일렀다.
“시에루 중장. 좋은 말 잘 들었네. 젊음의 혈기가 넘치는군.”
이렇게 말하는 양용빈 육군상장은 마음씨 좋은 동네 할아버지처럼 보였다.
“그대는 국가가 총체라고 했지.”
지나간 말을 되짚는 의도가 무엇일까.
“그 말이 틀렸다고는 하지 않겠어. 하지만 구성요소의 경중은 가려야 하지 않을까?”
“무슨 말씀이십니까, 동지.”
되묻을 때도 꼬박꼬박 동지 호칭을 붙이는 시에루 중장. 의도적인 화법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말 한 마디가 분위기를 달리하는 법.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일지라도.
기품 있게 늙은 육군상장이 해군중장에게 묻는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일단 묻겠네. 그대는 뭔가?”
“……질문하시는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귀관, 시에루 중장이라는 사람이 뭐냐고 묻고 있는 걸세.”
“……”
“그대가 중국을 인민과 인민을 위한 모든 것들의 총체라고 했듯이, 그대는 그대의 정신과 다른 모든 육체적 구성요소의 총체일 것이야. 팔, 다리, 대장, 신장, 심장, 뼈, 안구, 뇌, 귀, 혈소판과 백혈구, 골수, 탈양핵당핵산(DNA), 깊게 들어가면 철분과 단백질, 염분과 기타 등등의 성분이 모여 시에루라는 사람을 이루겠지. 그렇잖은가?”
“일단 그렇다고 해두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좋아. 그럼 하나 묻지. 자네가 팔이 잘렸다고 치세. 오른 팔이 떨어져 나간 거야. 그럼 시에루라는 사람은 어느 쪽에 있는가? 잘려나간 팔 쪽인가, 아니면 머리가 붙어있는 보다 큰 덩어리 쪽인가?”
시에루 중장의 안색이 험악해졌다. 그녀는 어리석지 않다. 미쳐버린 육군상장의 의도를 간파한 것이다. 그러나 좌중의 분위기. 그 위태로운 균형 때문에 대화를 깨버릴 수도 없었다. 상장의 발언을 짓뭉개는 건,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상대의 말은 듣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그건 이 회합의 파탄을 의미했다.
“어느 쪽도 저입니다만, 좀 더 많이 남아있는 쪽에서 안타까움을 느끼겠지요.”
“그렇다면 다시 묻지. 그 상태의 자네가 이번엔 왼팔마저 잃었다고 가정하세. 시에루 그대는 어느 쪽에 있겠는가? 왼팔일까? 오른팔일까? 아니면 다리와 머리가 남아있는 몸통 쪽일까?”
“…….”
“계속해서, 사지를 차례로 잘라내고, 마침내 몸통과 머리만 남았다고 치지. 인격체로서의 시에루 그대는 사지가 잘렸으니 5분의 1이 된 것인가? 아니면 정신이 온전히 남아있으니 인격은 그대로이되 그저 몸이 불편해졌을 따름인가? 응? 대답해보게.”
반박할 논리를 구체화할 시간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처음에 시에루 중장이 밀어붙였던 것과 같이, 이번에는 육군상장 쪽에서 몰아세웠다.
“인간의 핵심이 생명유지기능이라고 한다면 뇌보다는 심장이 중요하겠지? 뇌사상태여도 살아있는 사람이 있으니까. 하지만 자네가 그런 처지를 긍정할 것 같지는 않군. 그러니 뇌보다는 심장이야말로 시에루라는 사람이라고 하지는 못할 거야.”
“…….”
“투이시우시의 배(忒修斯之船/테세우스의 배)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는가?”
그리스의 고사를 들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이어지는 논변.
“투이시우시에겐 한 척의 배가 있어. 목조선이야. 유지보수를 위해서는 낡은 판자를 계속해서 교체해야 해. 그러다보면 최초의 배를 이루고 있던 목재는 단 한 장도 남지 않게 되지. 여기서, 갈아낸 판자를 버리지 않고 그대로 모아, 새로운 배를 만들었다고 치세. 그럼 어느 쪽이 투이시우시의 진짜 배라고 해야겠는가? 본래의 목재가 더 많이 들어있는 후자인가, 아니면 계속해서 새로운 목재를 끼워 넣은 전자인가?”
“…….”
“결국 진위를 결정하는 요소는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일세. 정신, 철학, 사상, 개념, 해석, 혹은 신념이나 믿음, 영혼과 같은. 그렇지 않은가?”
육군상장이 타이르는 듯 한 한숨을 쉬었다.
“그 기준이 주관적이라고 할 순 있을 걸세. 그러나 마냥 아니라고 할 수도 없을 거야. 중국이 여러 요소의 총체라고 하더라도, 하나씩 자르고 쳐내며 어느 쪽이 중요한가, 무엇이 중국을 규정하는가를 가리다보면, 핵심은 결국 중국의 정신이 될 수밖에. 어느 개인, 제도, 법률이나 예술, 건축물, 도시, 영토 같은 작은 파편들은 이를테면 시에루라는 사람의 잘려나간 팔다리 같은 것일 뿐.”
팔다리를 자른다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겨울이 고민하는 사이, 시에루 중장이 격앙된 낯으로 항의한다.
“궤변입니다! 인간의 삶이 다른 모든 것들보다 중요합니다! 동지는 한낱 비유로서 현실을 왜곡하려 들고 있습니다!”
이에 갸우뚱 하는 육군상장.
“그저 살기 위해 살아가는 삶의 비참함을 모르는 바는 아닐 텐데?”
그리고 소리 내어 웃는다. 허허롭게 느껴지는, 어찌 보면 울음에 가까운 웃음이었다.
비록 미치광이의 희언이었으나, 살기 위해 살아가는 삶의 비참함에 대해서는 겨울의 마음에 와 닿는 것이 많았다. 하루하루 쌓여가는, 읽지 않은 메시지들. 그 비참한 사람들은 모든 행복이 사후에 있을 거라 기대하며, 사후세계를 엿보는 데 여념이 없다. 그들이 갈망하는 행복은 수준이 낮다. 그 이상을 몰라서 그런 걸까, 싶기도 했다.
테세우스의 배. 겨울은 물리현실에 남아있을 자신의 육체를 생각했다. 한겨울이라는 사람은 어디에 있나. 한겨울의 더 많은 부분을 가진 고건철 회장이야말로 본래의 의미에서 한겨울에 가까운가? 아니면 뇌와 척수만 남아있는 한겨울의 사고 쪽이 한겨울인가?
어느 쪽도 아니라면, 한겨울이라는 사람은 찢겨진 채 어느 쪽에도 온전히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저하되는 집중력. 지금 교전이 발생한다면 겨울은 최대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할 터.
“다시 말하지. 중국은 존재하네. 다만 많은 부분을 잃었을 뿐이야.”
이 와중에, 육군상장이 차분하게 선언했다.
“그러므로 나는 조국이 부여한 내 임무에 충실할 걸세. 비상시의 교전수칙을 말하는 거야. 상세불명의 공격에 의해 국가가 위급사태에 직면하고, 정상적인 지휘체계로부터 정상적인 명령하달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여기 모인 제군들도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
겨울은 제멋대로 흐르던 상념에 가까스로 제동을 걸었다.
“잠재적 적국에 대한 무차별적인 보복……당신은 미쳤어! 제정신이 아니야!”
절규에 가까운 시에루 중장의 힐난은 올바른 것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에게 선제공격을 받아 국가기능이 마비될 경우, 공격을 가했을 가능성이 있는 모든 국가에 보복공격을 가한다. 이것은 핵보유국 공통의 교전수칙이었다.
“중앙군사위원회의 지시가 없는 한, 내 의무는 변하지 않아.”
이렇게 말하는 양용빈 육군상장은 충성스러운 군인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보기에 따라서는, 한계에 부딪혀 더 이상 생각하기를 그만둔 사람의 모습이기도 했다.
이 시점에서 그가 또 한 차례 시계를 본다. 그리고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겨우 시간이 되었군.”
“당신! 무엇을 꾸미고 있나!”
이제 더는 존대하지 않는 시에루 중장에게, 양용빈 상장이 피곤한 표정으로 답한다.
“30초 후, 일곱 발의 핵도탄이 발사될 거야.”
대치를 관망하던 장내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뭐……라고?”
황망하기 짝이 없는 레이옌리에 소장의 물음. 이에 대해 육군상장은 어깨를 으쓱일 따름이었다.
“다들 보복수단이 장정 9호 뿐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아니야. 제2포병……. 아니, 전략화전군(战略火箭军/전략로켓군)의 이동식 핵도탄 발사대가 있다네. 보물섬을 확보한 것도 그 때문이야. 선상에서 발사하기가 불가능하지는 않아도, 안정성이 없으니 말이야.”
겨울은 뇌리가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이번이 마지막 종말일지도 모른다고 항상 생각하고는 있었으나, 그 가능성이 갑작스러울 만큼 성큼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상장의 말이 이어졌다.
“사실 한동안은 나조차 그런 게 있다는 사실을 몰랐지. 뭐, 본토가 초토화되는 와중에 정신없이 실어놓은 화물 중 하나였으니. 담당 장교는 자살했고, 병사들은 살해당하거나 잡아먹혔고……. 아무도 존재를 모른 채 온갖 화물과 잡동사니 사이에 방치된 핵도탄 발사대라는 건, 소련 붕괴 이래 최초가 아니었을지.”
낮은 웃음소리가 기이할 정도로 선명하게 울린다.
“어리석은…….”
시에루 중장의, 분노로 떨리는 질책.
“이제 보니 단단히 미친 작자로군. 그 도탄들이 이 하늘을 벗어날 수 있을 성 싶은가?”
“글쎄, 그건 어떨까.”
음울한 유쾌함을 담아 육군상장이 답한다.
“여기서 장성과 당 간부들의 회합이 열리는 중에 핵도탄이 발사된 걸세. 그것도 한두 발이 아니고, 자그마치 일곱 발이나. 자, 그럼 동지들이 신뢰하는 각 함장들은 어떤 판단을 내릴까? 발사된 미사일이 여기 모인 장군단의 총의라고 생각하진 않을까?”
“그 불확실한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었다고?”
묻는 말이 비명에 가깝다. 그러나 장내의 모든 시선이 꼬챙이처럼 꽂히는 와중에도, 미친 남자의 차분함엔 흔들림이 없었다.
“뭘 새삼스럽게. 여기 건곤일척의 심정으로 참석하지 않은 자가 있는가? 더 이상 여유가 없다고, 낮은 가능성이지만 모든 것을 걸어보겠다며 목숨 걸고 온 것 아니었나?”
“미쳤어……미쳤어…….”
질려있는 중얼거림은 뜻밖에 강경파의 한사람으로부터 흘러나왔다. 그 역시 이토록 급격한 전개를 기대하진 않았던 것일 터. 그를 제외한 나머지 강경파도 하얗게 굳어있었다.
“방공구축함의 함장들이 전후사정을 짐작하긴 어렵겠지. 혼란스러울 거야. 그러나 발사된 도탄은 명백히 중국의 것이고, 미군이 이를 요격하려 드는 급박한 상황에서 내릴 판단이란 애국심에 기초할 수밖에. 나는 승산 없는 싸움을 하지 않아.”
바깥에서 요란한 폭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온갖 종류의 화기가 발사되는 소리들.
쏠까. 겨울은 거듭 망설였다.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감. 지금 겨울이 방아쇠를 당긴다면, 모두가 모두를 겨누는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애초부터 그런 자리였다. 시에루 중장도 유사시 본인만큼은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며 그토록 커트 리를 원했던 것이니까.
지금 이 자리의 장군단은, 육군상장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온건한 방향으로 기울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양용빈 상장의 생각은 달랐다.
“이중엔 분명히 미 제국주의자들의 사주를 받고 출석한 매국노들이 있겠지.”
무심한 눈으로 좌중을 훑으며 이어가는 말.
“오늘 쏜 핵도탄이 모조리 떨어져도 상관없어. 미국은 이걸로 이 자리의 모두를 다시 한 번 의심할 것이다. 기본적인 입장부터 달라질 터. 동지들이 입장을 정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되겠지. 나에겐 군의 원로로서 귀관들을 하나로 이끌 책무가 있는 것을.”
겨울의 통찰과 상장의 심계 가운데 어느 쪽이 옳을 것인가.
상장이 담담하게 말했다.
“타협은 없다. 보복이 있을 뿐. 제국주의 원수들에게 죽음을. 중화인민공화국 만세.”
시에루 중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장을 잠시 노려보고는, 가까운 겨울을 향해 물러났다. 많은 총구가 중장을 겨누었으나 실제로 쏘아지는 것은 없었다. 육군상장 또한 무슨 생각인지 여유로울 뿐이다. 모두 죽이거나 협박한다는 수도 있을 것인데.
‘본인이 죽을 가능성은 배제하는 건가.’
남아서 뭉치는 자들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일지도.
그냥 미쳐서 제정신이 아닌 상태이거나.
“마지막으로 말하지.”
시에루 중장이 좌중에게 고했다.
“나는 이 광기에 발 담그지 않겠다! 깨어있는 자라면 누구든 좋다! 내게로 오라! 나는 중국의 미래와 함께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리고 겨울에게 속삭인다.
“가지. 약속대로, 나를 지켜주게.”
겨울은 옅은 적색의 사선경고들 사이로 그녀를 이끌었다. 친위대 병사들이 장군을 감싸는 사이에, 혼란스러운 나머지가 우르르 움직였다. 소란스러운 바깥을 직접 보고 싶을 것이었다.
바깥으로 나갈수록 소음의 강도가 높아진다.
‘무전은 들어오지 않나…….’
긴급사태이니 CIA 또한 경황이 없을 터.
벌컥. 야외로 통하는 문을 열자 드디어 보이는 하늘. 어느새 깊어진 밤이 온갖 색채로 밝았다. 만 바깥 방향에서 날아오는 빛줄기들은 핵미사일을 요격하려는 미국 순양함들의 발악이었다. 광선 같은 기관포탄 줄기들과, 핵미사일을 향해 날아가는 무수한 요격 미사일들. 중국 구축함들이 탄막을 펼쳐 그것을 가로막는다.
어두운 천구에서 가장 밝은 빛은 천공을 향하는 일곱 줄기의 파멸이었다.
============================ 작품 후기 ============================
#Q&A
Q. 블루크리스탈님 : @종이책과 연재본 차이가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싸인본 이벤트 또는 초판한정 싸인본 계획 없으신가요?
A. 차이는 거의 없을 겁니다. 23화, 모두가 아시는 그 장면에 대해서 손을 대긴 했습니다만, 완성도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그리고 싸인본은…초판한정 이런 건 아니고, 작가 증정본으로 10~20부 쯤 만들어 개인적으로 배포할까 생각하는 중입니다.
Q. 아미슈님 : 종이책과 연재본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출판본에 실리는 특전같은건 없나요? 외전이라던지 용어설명집이라던지 등등요
A. 삽화나 지도 몇 장 정도일 겁니다. 용어설명에 대해서는 생각을 못 했네요. 다음 권에서 한 번 고려해보겠습니다. 아무래도 후기로 적은 내용이 심화 이해에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고…고증이나 배경에 대한 해설을 넣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1권은 이미 찍는 단계에 들어갔으니 무리겠지만요. 2권이 나올 땐 제가 좀 더 부지런해야겠네요.
Q. 호박호박님 : 닥ㅊ…깨는데 4시간 걸렸습니다. ㅎㅎ 애들 게임인줄 알았는데…고놈의 까마귀새끼 겁나 무섭더군요 코즈믹호러마저 느껴지니
A. 4시간이면 저보다 훨씬 빠르게 깨셨네요. 실력이 좋으시네요. 그런데 까마귀였나요? 부엉이나 올빼미라고 생각했습니다.
Q. 음란마귀F님 : @종이책은 구매 예정인데 싸인본 행사도 있나요?
A.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딱히 그런 행사는 예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근데 싸인본은 오컬트 도구가 아니라니까요. 왜 그렇게 가지고 싶어하세요. 하하.
Q. 긴팔원숭이님 : @참 작가님도 답답 하시겠습니다. 본문 후기에 여러차례 언급한 내용을 물어보고 물어보고 하시는분들은 뭔지… 닥치고 본문만 읽으시고 궁금증이 생기면 그제서야 질문을 하고 후기를 보는 분들이 너무 많은듯하네요. 4만 100여년전에 운석에 맞아서 사망하셨다가 100년만에 부활하신 작가님(본인은 자신의 코딱지라고 주장하시지만 제가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고 조사한바에 따르면 그게 아닌걸로…) 운석을 떨군 위대한 옛분에게 복수하실 의향이 있으신지???
A. 나중에 읽으신 분들이 예전 후기와 답변의 내용을 모르시는 거야 어쩔 수 없죠. 후기는 작품 내용의 일부가 아닌 걸요.
복수는…글쎄요…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