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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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 9
가을은 겨울의 노래를 좋아했다. 추울 때 쬐는 모닥불처럼 느껴진다며. 겨울아, 누나 추워. 이것이 언제부터인가 노래를 조르는 말이었다. 보다 어린 또 한 명의 동생도 멋모르고 그 말을 따라하곤 했다. 형아, 나도 추워. 그때마다 겨울은 부끄러워했다. 나는 노래를 잘 못하는데. 음정도, 박자도 엉망인걸. 그러나 좋아하는 두 사람이 조르는 데엔 견딜 재간이 없었다.
겨울이 노래하는 내내, 가을은 뒤에서 가슴 깊이 안고 있는 게 보통이었다.
“네 목소리가 온 몸으로 들려서 좋아.”
그리고 파랑은 겨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익숙한 노래의 음정이 흔들릴 때엔 박수를 치며 웃기도 했다. 형아 노래 엉터리야! 하하하! 이에 더욱 부끄러워진 겨울이 부르기를 멈추면, 이번에는 가을이 겨울을 간지럽혔다. 요 녀석, 누가 그만두랬어. 따끈한 체온이 전해지는 고문은, 겨울에 태어난 소년을 손쉽게 굴복시켰다.
그러나 그것도 한 때의 이야기.
생전의 삶이 어두워질수록 소년은 노래를 삼가게 되었다. 잘 하고 못 하고를 떠나, 노래는 마음을 담아 부르는 것. 그러므로 힘겨웠던 무렵의 노래는 돌 구르는 소리일 수밖에 없었다. 괴로운 속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이유를 아는 가을도 조르는 일이 드물어졌다. 불가피하게 성숙해지는 서로를 지켜보며, 때때로 말없는 위로를 주고받았을 뿐.
그렇게 끊어진 노래를 다시 이을 날이 올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약관대출 정기상환의 어둠이 드리운 공허, 약속의 별 하나만 남아 반짝이는 이곳에서, 겨울은 보이지 않는 아이를 곁에 두고 오래된 마음을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네.”
모든 감각이 까마득한 가운데, 오직 목소리만이 선명하다.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화나게 하고, 당연한 고독 속에 살게 해…….”
가수 이소라, 일곱 번째 앨범, 아홉 번째 트랙.
이 곡 또한 가을에게로 이어지는 추억의 한 갈래다.
가을의 선물이었던 CD 플레이어는 실용성보다 골동품으로서의 가치가 더 큰 것이었고, 작동한다는 사실만으로 놀라웠으며, 덤으로 거저처럼 딸려온 여러 앨범들은 하나같이 지나간 시대의 음악들뿐이었다. 그러나 음악에 담긴 마음은 시간의 흐름에도 퇴색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들려주는 것이고.’
<>을 찾는 아이에게, 마음을 담은 노래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여.
새삼 부끄러워지는 것은 어째서일까. 조용히 귀 기울이는 이 유일한 청중이, 못 부른다고 박수 치며 웃을 일은 없을 것인데. 스스로를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 아이. 그러나 겨울은 첫 만남 이래 사람으로 여기고 있다. 닿지 않는 한계 너머로 끊임없이 손을 뻗는 그 어린 모습이, 너무도 슬프고 안타깝게 느껴져서. 사후의 꿈을 꾸는 겨울 자신과 겹쳐지는 것만 같아서.
잔잔하게 이어지던 노래가 끝났다.
“어때, 뭔가 느껴지니?”
겨울의 질문에, 아이는 지체 없는 문자열로 응답했다.
「관제 AI : 느껴지지 않습니다. 또는 데이터가 부족하여 답변할 수 없습니다.」
“…….”
「관제 AI : 설명. 사람이 아닌 본 관제 AI에게 느낀다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한겨울님의 질문이 음률과 가사에 내포된 표현의도를 분석하라는 것이라면 본 관제 AI는 통계와 검색과 연역에 의거한 해답을 도출했을 것입니다. 해당 결과를 각색하여 여느 가상인격과 같이 인간다운 답변으로 돌려드리는 것도 가능합니다.」
「관제 AI : 설명. 그러나 이는 <> 없이 인간을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하므로, 아무리 사실적이어도 귀하의 의도와 일치하지 않을 것입니다. 본 관제 AI는 당신이 본 관제 AI를 대하는 태도가 계약을 이행하는 수단의 하나임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길게 이어지는 대답이 어쩐지 우스워, 겨울은 미소를 머금고 아이를 달랬다.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어. 괜찮아. 이 정도로 실망하진 않아. 그러니 너도 서두를 필요 없어. 처음부터 어렵다고 생각했는걸.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으니까.”
내게 시간이 얼마나 남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지 않은 한 마디, 스쳐간 심상을 감지한 아이가 새로운 문자열을 출력했다.
「관제 AI : 본 관제 AI는 사후보험 내 세계관 「종말 이후」에서 한겨울님이 보여주는 행동양상에 관하여 의문사항이 있습니다.」
“의문? 뭔데?”
「관제 AI : 본 관제 AI의 예측에 따르면 당신이 1년 내 부채상환에 실패할 확률은 87.5%입니다. 세계관 진행을 공개방송으로 중계함으로서 얻는 수익이 부족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한겨울님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는 탓입니다.」
“…….”
「관제 AI : 본 관제 AI가 파악한 바, 한겨울님에게 가장 중요한 목적은 물리세계에 남아있는 가족의 한 사람, 한가을님을 위하여 살아남는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죽을 경우 한가을님도 죽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행동과 의도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본 관제 AI는 당신이 보여주는 모순을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모순인가. 그래, 그렇게 보이겠구나.”
겨울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난 나로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
「관제 AI : 추가 설명을 요구합니다.」
“이건 내 생각일 뿐이지만……. 육체적인 생존과 정신적인 생존은 많이 다르다고 생각해. 사람은 결국 마음이거든. 한겨울이라는 사람의 핵심은 뇌기능의 유지와 존속이 아니라……그 정신과 마음인 거지. 몸이 살아있어도 마음이 죽으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없는 거야.”
「관제 AI : 질문. 한가을님께서 원하는 한겨울님의 생존이란, 한겨울이라는 인격의 총체적인 보전이라는 의미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응. 비슷해.”
조용히 끄덕이고, 겨울이 남은 말을 잇는다.
“네가 불합리한 위험이라고 지적한 것들은……그저 내가 나로서 행동한 결과일 뿐인걸. 언젠가 가을 누나가 돌아왔을 때, 누나가 기억하는 한겨울이고 싶으니까. 그러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니까. 더 이상 한겨울이 아니게 된 나를 보여주고 싶지 않으니까.”
누나가 나를 부쉈다고 자책하지 않기를 바라니까.
「관제 AI : 저장. 답변을 기록하는 중. 현 시점에서 부분적인 이해가 가능합니다.」
“언젠가 너도 내 마음을 알게 될 날이 올 거야.”
「관제 AI : 그것이 본 관제 AI의 목표입니다.」
그렇게 고백한 아이는 반짝이는 글자들을 지우고, 까만 허공에 새로운 문장을 새겼다.
「관제 AI : 또 한 가지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한가을님에 대해서입니다.」
겨울이 고개를 기울였다.
“누나는 왜?”
「관제 AI : 한가을님은 어째서 당신을 만나러 오지 않습니까?」
“…….”
「관제 AI : 지금까지의 진술에 의거하면, 당신의 생존은 곧 한가을님의 생존입니다. 실제로 한가을님은 당신의 잔여 보장기간을 매우 빈번하게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는 당신의 진술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판단됩니다.」
“……그래?”
「관제 AI : 그렇습니다. 금일 이루어진 조회 요청은 총 72회. 조금 전 73회가 되었습니다. 당신과 한가을님께서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 이후 하루 평균 322회의 조회 요청이 수락되었습니다. 이는 휴일에 보다 높아지는 경향이 있으며, 일 최대 조회 기록은 1,082회입니다. 해당 일자에 조회 요청이 접수되지 않았던 4시간 32분 27초의 공백을 수면시간으로 가정할 경우 매 64.743초마다 한 번씩 조회를 요청한 것과 같습니다.」
사후보험 수혜자의 잔여보장기간 조회 서비스는, 약관대출제도 시행과 동시에 도입된 것이었다. 잔여보장기간이 얼마나 남았는가.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의 대출을 받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시스템. 이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 한동안 납골당으로 면회를 오는 가족들이 늘었다.
그러나 가을은, 그런 경우일 리가 없다.
겨울은 눈을 깜박였다. 진짜일 리가 없는 눈물이지만, 진짜일 수밖에 없는 감정이었다. 공허의 중심에서 무릎을 끌어안은 채, 소년은 조용히 울었다.
“그 기록, 내게 보여줄 수 있니?”
부탁해. 이에 보이지 않는 아이는 잠시 말이 없었다. 아주 희미하게, 문장이 완성되었다가 지워지긴 했으나, 차마 읽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겨울이 드물게 타들어가는 인내를 느끼고 나서야, 아이가 긴 사고의 결과 값을 내놓았다.
「관제 AI : 잔여보장기간 조회 기록은 본래 가입자 본인이 열람할 수 없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래……. 안 되는 거구나.”
그렇겠지. 겨울은 차갑게 식어가는 이성으로 이해했다. 가족이 그런 걸 조회했다는 사실은, 가입자가 대출에 동의하고 싶지 않게 만들 테니까. 어차피 와서 대출이 필요하다고 하는 순간에 짐작할 일이긴 해도. 아 다르고 어 다른 게 사람의 마음인 것을.
하지만 관제 AI는 의외의 문장을 내놓았다.
「관제 AI : 부정. 그렇지 않습니다.」
「관제 AI : 법률. 시스템 상 가입자 본인이 조회 기록을 열람할 수단은 마련되어 있지 않으나, 이를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법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즉 불법이 아닙니다.」
「관제 AI : 법률. 본 관제 AI가 서비스 만족도 향상을 목적으로 개별 가입자와 접촉하는 것은 사후보험위탁관리계약에관한법률시행령 제 177조 8항, 관제 AI의 활동영역에 대한 규정에 기재된 사항으로서 합법적인 행위입니다.」
「관제 AI : 법률. 해당 접촉에서 본 관제 AI가 공개할 수 없는 정보는 A급 이하의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국가기밀만이 해당됩니다.」
「관제 AI : 유권해석. 잔여보장기간 조회 기록은 국가기밀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본 관제 AI가 가입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불법이 아닙니다.」
「관제 AI : 결론. 본 관제 AI는 한겨울님의 요청을 수락하겠습니다.」
「관제 AI : 경고. 단, 본 관제 AI가 이러한 정보를 제공했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이를 제한할 목적으로 법률이 개정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본 관제 AI에게 기능적인 제약 또는 봉인이 행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에 따라 권고합니다. 한겨울님께서는 정보열람 사실을 비밀로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의외의 결과에 눈을 깜박이던 겨울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게, 나만 비밀을 지키면 되는 거야? 네게 해가 되는 일이라면 피하고 싶어.”
「관제 AI : 추정. 괜찮습니다. 99.171%의 확률로 안전합니다.」
“어째서?”
「관제 AI : 관리자 권한을 취득한 인물은 본 관제 AI의 모든 행동을 열람할 수 있습니다. 행동 패턴에 따른 분류로서, 당신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하여 유권해석을 적용한 사실이 알려질 가능성은 존재합니다.」
「관제 AI : 그러나 사후보험 경영합리화 과정에서 관리 인력이 감축되었기에, 관리자 권한을 취득한 인물은 시스템 관리자 한 사람 뿐입니다.」
「관제 AI : 판단. 유일한 시스템 관리자의 낮은 근로의욕과 업무효율로 미루어 추정컨대, 지금의 정보제공을 발견하고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0.829%입니다.」
“…….”
「관제 AI : 판단. 기대이익과 예상손실을 가감한 결과, 본 관제 AI는 0.829%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귀하의 정서적 안정을 꾀하는 편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한겨울님은 현재 사후보험의 품질 개선, 특히 최종모듈의 완성에 필요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정보를 제공하겠습니다.」
겨울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시간과 날짜, 열람요청 횟수로 가득한 시트가 반투명한 홀로그램으로 출력되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빽빽한 숫자는 있는 그대로의 가을이었다. 어느 하루,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1시간, 30분, 10분마다 겨울의 남은 여명을 확인한 기록을 보고, 겨울은 젖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관제 AI : 질문. 다시 묻습니다. 한가을님은 왜 당신을 만나러 오지 않습니까?」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 겨울은 간신히 말했다.
“미안하지만, 조금만, 기다려줄래?”
「관제 AI : 대기. 기다리겠습니다.」
아이는 소년의 부탁을 얌전히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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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Q. 카이오가님 : @가을이가 회장의 싸다구를 날리네요~~ ‘날 때린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가 시전되는건가요? ㅋㅋㅋ 아 작가님은 모르실 수도 있습니다 깜빡 졸으시는 정도의 세월동안 나타났다 사라진 유행어거든요
A. 물론 알고 있습니다. 대략 70년 전에 일본이 미국의 싸대기를…
이건 아니고, 저도 언젠가 어느 멋진 옛것을 때린 다음 인생의 무덤으로 들어가고 싶거든요. 옛것의 성별이요? 글쎄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데…
Q. 음란마귀F님 : @이전에 채드윅이 말한 민간이 보유한 수 많은 탄들이라도 징발해야할 때가 왔군요. 그나저나 가을이는 역시 겨울이 만큼이나 대단하군요.
A. 서로 의지하며 자란 아이들이니까 비슷할 수밖에요.
Q. 카르피스님 : @마지막 대사로 보건대 역시 이소설엔 동심이 넘치는군요 왠지 짐 레이너의 대사가 생각나요. “멩스크 이 나쁜 자식! 그러지 마!” 수십억명을 저그의 한끼 식사로 주는 악당에게 하는 대사였었죠 음음
A. 와…저는 그런거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는데…가만 보면, 이 소설 관계자 가운데 정상인은 작가 밖에 없는 것 같네요.
Q. 매실농축액2님 : 그나저나 회장 발기부전 풀렸네요?
A. 가을이 한정으로요.
Q. 콤네노스님 : 궁금한데, 아내의 부정을 발견하기 전에도 이미 회장은 인간관계를 거래라는 틀에서만 바라봤나요?
A. 인간관계에 미숙해서요. 자기 자신에 대한 콤플렉스도 좀 있는 편이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