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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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물 아래 (2)
조안나는 천장을 보며 눈을 깜박였다. 붉은 눈가가 차분하게 젖었다.
“실감이 나지 않네요. 이제 곧 천만 이상이 죽는데도, 마치 다른 세상의 일처럼 느껴져서.”
그녀가 길게 토하는 한숨에선 깊은 습기가 묻어났다. 슬픔과 더불어 느껴지는 약간의 자기혐오. 나는 이보다 더 괴로워야 하는 게 아닌가. 왜 이렇게 담담한가. 복합적인 감정이 요원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 인간적인 면모가 겨울의 마음에 닿았다.
“우리가 약해서 그래요.”
조용히, 어루만지듯이, 겨울이 하는 말.
“슬퍼해야 할 모든 일을 슬퍼하고 싶은데, 세상의 모든 불행을 책임지고 싶은데……. 그러기엔 우리가 너무 작고 약한 사람들이라서 그래요. 언제나 내 아픔이 가장 크게 느껴지고, 하루하루 살기 위해 최선을 다 해야 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구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치는 걸요. 슬퍼할 능력조차 모자란 거예요.”
고개를 저은 뒤에, 겨울은 사람을 긍정했다.
“약하다는 게 죄가 될 순 없잖아요. 다만 할 수 있는 일도 하지 않는 건 잘못이겠죠. 그러니 앤, 우리는 손닿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거기까지가 한계이고, 그 이상은 꿈이니까요. 소년이 삼킨 말은 말 이외의 감정으로 전해졌다. 이에 주먹으로 이마를 누르며 두 눈을 질끈 감는 FBI 요원.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마른 입술 사이로 새는 독백은 자기 자신에 대한 채찍질이었다.
“못난 모습을 보였군요.”
한 번 쉬고 다시 굳히는 말.
“네, 지금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죠. 인체실험도 인체실험이지만, 정보국 내에 독자행동을 일삼는 사조직이 있다는 것 자체가 큰 문제이기도 하고요.”
동요를 끊어낸 요원이 준비된 계획을 빠르게 풀어놓았다.
“15시를 기점으로 전력계통에 약간의 장애가 생길 겁니다. 물론 몇 초 사이에 복구되겠으나, 폐쇄회로의 전환주기가 초기화되는 걸로 충분합니다. 아시다시피 상황실의 모니터 숫자보다 폐쇄회로 카메라가 훨씬 더 많으니까요. 화면이 바뀌는 간격에 맞춰 움직인다면 발각되지 않고 최하층까지 내려갈 수 있을 겁니다.”
그녀는 자신의 수첩을 보여주었다. 업무내용과 필담이 적힌 페이지가 번갈아 넘어간 끝에 선내의 약도가 나타난다. 여기엔 예상이동경로와 함께 감시 카메라의 위치, 화면에 비춰지는 시간간격 등이 정갈한 필체로 꼼꼼하게 적혀있었다. 「독도법」이 정보를 빠르게 흡수했다.
겨울이 감탄했다.
“준비가 철저하네요. 이 정도면 충분히 가능하겠어요.”
폐쇄회로 카메라에 모션 트래킹, 즉 움직임을 자동으로 추적하는 기능이 있긴 해도, 평소 많은 사람이 오가는 낮 시간엔 활용되지 않았다. 철수를 앞둔 지금 역시 설정은 동일할 것이다. 여러모로 부산스러운 마당에 거기까지 신경 쓸 사람은 없을 테니까.
조안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위험한 일에 끌어들여서 미안해요, 겨울. 하지만 의지할 사람이 달리 없었습니다.”
“미안하긴요. 전 오히려 기쁘네요. 도움이 될 수 있어서.”
“……고마워요.”
FBI 요원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타격대를 끌어들이는 건 어때요?”
겨울이 제안했다.
“화이트 스컬이라면 그래도 안면을 익힌 사람들이 꽤 있는 편이거든요. 앤은 파울러 대위님께 좋은 감정이 없겠지만, 근본이 나쁜 사람은 아니잖아요. 군인으로서는 훌륭하고요. 정부 명령이 아닌 인체실험에 대해 들으면 분명히 협력할 거라고 봐요. 다른 타격대까지 설득해줄 가능성도 있고…….”
해병다운 완고함이 이럴 땐 신뢰의 근거가 된다.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해병 수색대(포스 리컨) 1개 중대가 돕는다면 일이 훨씬 더 수월할 거예요. 상황실을 기습적으로 장악하는 방법도 괜찮겠고요. 무엇보다, 이 정도는 감독관의 권한으로 요청할 수 있지 않아요?”
조안나가 유감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좋은 의견이지만, 이미 검토해봤습니다. 그러나 역시 소각절차가 마음에 걸립니다. 비상사태를 상정한 자폭장치라서 다른 시스템하고는 별개로 작동합니다. 차단할 방법을 개인적으로 찾아봤으나 소득이 없었죠. 즉, 채드윅 팀장은 언제든 증거를 인멸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많은 인원은 오히려 역효과라고 생각하는군요?”
“네. 들킬 가능성이 높아지는 건 피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타격대 안에 채드윅 팀장의 동조자가 없을 거란 보장도 없으니까요. 그런 식의 사조직은 개인적인 접촉과 포섭으로 확장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심리상태가 불안정한 대원은 얼마든지 있고요.”
중국 놈들 때문에 내가 여기서 이 고생을 한다. 작전이 길어짐에 따라 이런 식으로 어두워진 대원들이 있었다. 대체인력도 없는지라, 오랜 시간 부패한 바다에 고이게 된 사람들.
‘흔들기도, 설득하기도 쉽겠지. 특수부대원이니 가치는 충분하고.’
FBI 요원의 우려가 곱씹을수록 합당하다. 겨울은 수긍했다.
“그러네요.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아닙니다. 당연한 의견이었어요.”
결국 원안 그대로 착수하는 쪽이 최선이었다.
“수첩 좀 빌릴게요.”
겨울은 조안나의 수첩을 받아 일부 내용을 옮겨 적고, 필요한 내용을 숙지했다.
그러고도 시간에 여유가 있었다. 겨울이 일부러 바깥에 얼굴을 비추었다.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면 의심을 사기 쉬울 것이므로.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둔 것은, 누군가 겨울을 찾을 때를 대비한 얕은 트릭이었다.
“아, 한겨울 중위? 아까 식당 쪽에서 본 것 같은데?”
같은 대답이 다양한 목소리로 반복되도록.
통제구역에서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데 필요한 시간은 길어도 한 시간 이내로 예상된다.
돌아올 땐 보는 눈을 피했다. 10분을 남기고, 겨울은 잡동사니가 쌓여있는 선실 벽에 기대어 때를 기다렸다. 톡, 톡. 군화 굽이 부딪히는 작은 소리. 나란히 기댄 조안나가 가볍게 발장난을 치는 중이다. 무심한 눈으로 발끝을 내려다보는 그녀. 절제된 호흡은 긴장을 억누르는 습관일 것이었다.
지직.
순간적으로 조명이 나갔다. 15시 정각을 알리는 신호였다. 웅- 하고 다시 밝아지는 형광등 아래에서, 겨울과 FBI 요원이 서로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문을 열고 나간다. 당연하게도 복도엔 인기척이 없었다. 정면의 폐쇄회로가 상황실에 연결되기까지 앞으로 5초. 두 사람이 전력으로 달려 카메라의 사각을 파고들었다. 카메라 바로 아래 웅크려, 시계를 확인한다. 째깍, 째깍. 모니터에 비춰지는 시간이 다시 5초.
다시 달려 복도의 남은 절반을 극복하는 둘. 압력 문을 빠르게 열고 들어가, 바로 보이는 선실로 숨었다. 여기서 보내야 하는 시간, 3초, 2초, 1초.
쾅! 문을 박차고 나간다. 무인지경이라 소리는 신경 쓸 필요 없었다. 좁은 공간에서 메아리치는 군화소리. 조금씩 거칠어지는 숨소리. 이는 겨울보다 요원 쪽이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운동량에 비해 심박과 호흡이 높아지는 건 불가피했다.
승강기는 쓸 수 없었다. 폐쇄회로도 문제지만, 승강기의 움직임이 별도의 화면에 뜨는 탓이었다. 인력의 철수가 끝난 구역에서 승강기가 작동하면 분명히 수상하게 여길 것이다.
비상계단을 내려가는 내내 캉캉거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주변이 적막하기에 더더욱.
중간의 층계참에서 잠시 쉬는 시간이 있었다. 체력을 보존해야 했다. 전력질주로 돌파할 구간이 아직 많이 남아있으므로.
쉴 때도 경계를 소홀히 할 순 없었다. 카메라의 사각이 좁다보니, 겨울과 요원은 등을 기댄 채 반대 방향으로 총구를 겨누었다.
“아직까지, 들킨 것 같지는, 않군요.”
음성은 등 전체로 전해지는 떨림이었다. 몰아쉬는 호흡도 더불어 느껴졌다.
겨울은 노래를 조르던 누이를 떠올린다. 그럴 상황이 아닌데.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짓는 소년. 나도 참, 어지간히 그리운 모양이구나. 하고.
“다시 움직이죠.”
위에서 언제, 무슨 일로 두 사람을 찾을지 몰랐다. 시간은 아낄수록 좋을 것이다.
상층에서 하층의 통제구역에 이르기까지, 긴 계단을 내려오기 위해 멈춘 횟수는 단 한 번. 카메라의 차례가 돌아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미리 계산해둔 덕분이었다.
‘이번이 7초, 여길 지나서……다시 한 번 7초.’
달리는 내내 수시로 수첩과 시계를 보았다. 모든 움직임이 초 아래의 단위로 끊어져야 하기에. 폐쇄회로를 피하는 건 도미노처럼 느껴졌다. 카메라가 전환되는 순서를 따라 달리면, 노출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계속해서 연장되었다.
그러던 중, 끼긱- 하고, 불길하게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윽-!”
어딘가에서 누수가 되었던가. 바닥이 젖어있었고, 요원이 미끄러졌다. 요란하게 구르는 소리. 에이프릴 퍼시픽에서와 같이 그녀는 겨울의 후방을 맡았고, 속도의 차이도 있었으므로, 제 때 붙잡아주지 못했다. 관성으로 미끄러지며 돌아선 겨울은, 복도 저편의 카메라를 보았다.
거꾸로 달린다. 이곳의 광경이 상황실에 뜨기까지 앞으로 4초, 3초, 2초…….
측면의 선실 문을 열고, 인간을 넘어선 완력으로 요원을 확 끌어당겼다. 이미 조금 늦었다. 힘 조절을 할 겨를이 없어, 요원은 쭉 미끄러져 철제 캐비닛에 머리를 부딪혔다.
거세게 문을 닫은 겨울이 재빨리 조안나의 상태를 살폈다.
“앤! 괜찮아요?”
그녀는 머리를 감싸고 웅크린 채 길게 앓았다. 캐비닛 모서리에 핏자국이 남아있었다.
잠시 후, 신음을 삼키며 간신히 상체를 세우는 조안나였으나, 얼굴 위로 한 줄기 핏물이 길게 흘러내린다. 흔들리는 자세도 불안했다.
“어디 봐요.”
겨울이 상처를 살폈다. 손수건으로 피를 닦아내고 보니, 찢어진 건 이마 위쪽이었다. 살이 부어올랐다. 조만간 변색될 듯 하다.
‘뼈가 깨진 것 같진 않은데……. 혹시 뇌진탕인가?’
눈을 가늘게 뜬 조안나가 손을 젓는다.
“괜찮습니다. 시야가 정상이고, 현기증도 없어요.”
혹시 모를 일이다. 겨울은 랜턴을 켜서 그녀의 눈에 비춰보았다. 「응급처치」가 알려주는 지침이었다. 빛에 대한 과민반응 또한 뇌진탕의 징후 중 하나라고.
요원은 랜턴을 끌어내렸다.
“정말로 괜찮습니다. 그냥 아픈 것뿐이에요. 그보다 카메라 쪽은 어떻게 됐습니까?”
“조금 늦었어요. 아마 1초가량 화면에 노출되었을 거예요.”
“Fuck.”
자책하는 욕설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겨울이 조용히 말했다.
“진정해요. 그래봐야 여러 화면 중 하나잖아요? 고작 1초인걸요. 설마 그걸 봤을까요? 상황실도 철수 준비를 하느라 나름 바쁠 텐데요. 마음이 풀어져있을지도 모르고.”
“……그러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겠군요.”
나쁜 가능성을 우려하는 건 무의미하다. 지금으로선 어쩔 방법이 없기에.
그래도 후방에서 기습을 당하는 건 피해야 했다. 위치를 다른 선실로 옮겨, 혹시나 따라붙는 기척이 있는지 기다려 보는 두 사람. 조안나에게 휴식이 필요하기도 했다. 부상의 여파가 뒤늦게 나타날지도 모르므로. 머리를 다쳤을 땐 신중해야 한다.
5분이 지나고, 10분이 흘렀다. 침묵으로 견디는 시간이 계속해서 길어진다.
누가 오려면 벌써 왔겠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시점에서, 요원이 총구를 늘어뜨렸다. 피와 땀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읊조리는 그녀.
“하아. 운이 좋았네요……. 신이시여, 감사드립니다.”
이동이 재개되었다. 제한구역은 아까부터 가까웠다.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뒤 고작 두 개의 카메라를 추가로 지나쳤을 뿐인데, 이제까지 지나친 것들과는 크기부터 다른, 원형의 압력 문이 나타났다. 잠금장치는 카드를 넣거나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방식.
문을 비추는 카메라의 차례가 넘어간 다음, 조안나가 품에서 ID 카드를 꺼내 잠금장치에 꽂았다. 전자음과 함께 문이 개방되었다. 겨울이 물었다.
“그건 어디서 났어요?”
“잠깐 빌렸습니다.”
주인은 모르지만. 그녀가 덧붙이는 말에 겨울은 가볍게 웃었다. 재빠르게 문 안으로 들어선 뒤, 만약을 대비해 걸쇠를 수동으로 밀어붙였다.
“알아도 소용없을 겁니다. 첫 번째 잠수함에 탑승해서 떠났으니까요. 수중전화가 여기까지 닿진 않을 테고……. 작전도 끝난 마당에 키 카드 분실을 신경 쓸 것 같지도 않습니다. 제한구역 쪽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카드를 여럿 빌려놨는데, 첫 번째부터 당첨이군요.”
문 안쪽엔 또 다른 문이 있었다. 측면으로는 보안실로 추정되는 장소가 보였다. 테이블 위로 폐쇄회로 화면들이 배치되어있고, 몇 개의 마이크와 용도 불명의 콘솔들이 존재했다. 비어있는 무기 거치대를 보건대 적잖은 무장병력이 대기했던 것 같다.
‘비밀구역의 감시체계를 위쪽의 상황실에 연결시켜둘 순 없었겠지. 거긴 인체실험 사실을 모르는 인원도 자주 드나드는 곳인걸.’
이렇게 생각한 겨울이 보안실 방향으로 고갯짓했다.
“여기서 안쪽 상황을 보고 들어가는 게 나을 것 같네요. 혹시 아직 살아있는 감염체가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조안나도 동의했다. 가능성은 낮지만, 인력이 철수한 뒤 구속되어있던 감염체가 풀려났을 수도 있었다.
============================ 작품 후기 ============================
#Q&A
Q. infe님 : @갑자기 생각난건데 이게임에서 엔딩을 본사람은 없는건가요?
A. 물론 있습니다. S 등급 가입자 위주로요. 막강한 현질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Q. 카르피스님 : @인격을 가진 지성체라면…HAL9000나 T-1000이런 녀석들도 포함되나요?
A. 제가 생각하기에 인간을 규정하는 건 사회성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조건은 공존 가능한 지성체여야 합니다. 그러니 예시로 든 녀석들은 훌륭한 인간이네요.
Q. 카이프님 : @회장님정도의 지갑이면 클리어하는데 얼마나 걸리나요?
A. 글쎄요. 거기까지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Q. 음란마귀F님 : @댓글 보여주는게 요즘 안보이네요. 물론 스토리 진행이 만족스럽긴 합니다만.
A. 이 챕터 지나고서 한 번 나옵니다.
Q. 음란마귀F님 : @언제나 제목이 내용을 반영한다고 하셨는데 검은 물 아래라면 오염된 만 아래의 잠수타턴 장정 핵잠수함이 거나하게 한 건 터트리거나 미국이 핵을 터트리겠군요. 설마 잠수함을 맥거핀으로 사용해서 막상 제 3국에게 격침되고 모두 헛다리만 짚고있었다면 서점가서 책 3권 사겠습니다.
A. 예상이 맞는지 틀리는지 말씀드리면 그건 그것대로 스포일러가 되겠네요. 답변은 앞으로 연재할 내용으로 대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