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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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들 (6)
수렵물을 해체하는 작업은 물가에서 이루어졌다.
가죽을 벗기고, 혈관과 힘줄을 분리하고, 피를 씻고, 뼈를 발라내는 과정. 긁어낸 내장은 별도의 용기에 모아둔다. 영양섭취의 균형을 위해서였다.
Ooh, Jeez. 지켜보던 인원들이 가볍게 신음했다. 검붉게 물컹거리는 내장을 영 보기 힘들어하는 사병도 있었다. 불꽃놀이를 보고 총격전을 연상하는 것과 같은 증상.
랭포드 대위는 가급적 많은 인원이 해체작업을 지켜보도록 했다. 보고 배우라는 것이 명분이었지만, 진의는 따로 있었다. 지휘관으로서 병사들의 정신 상태에 신경 쓰는 건 당연한 일. 무언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보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솔선수범은 눈에 띌수록 좋다는 게 대위의 지론이었고.
최종적으로 140킬로그램의 고기가 나왔다. 여기에 민가에서 얻은 식용유나 밀가루, 설탕 같은 것들을 더하면, 중대 전체가 이틀을 먹고도 남는 양질의 식량을 확보한 셈.
점심을 먹고 여섯 시간 가량 휴식을 취한 겨울은, 저녁식사 후에 랭포드의 호출을 받았다.
일몰이 지났으나, 임시 지휘본부는 의외로 어둡지 않았다. 민가에서 가져온 태양광 패널로 전기를 얻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라고 놀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낮에는 수고가 많았어. 솔직히 많은 기대는 없었는데, 큰 걱정을 덜었군.”
새벽나절에 비해 여유를 얻은 랭포드가 결정사항을 전했다.
“소대장들과 논의해본 결과 자네 의견을 수용하기로 했네. 여기서 며칠 머물러야 한다는 점이 부담스럽지만……. 유바 시티까지 남은 거리를 감안하면 지금은 천천히 서둘러야 할 때겠지(Make haste slowly). 해리스 대위도 결국 배가 고파서 그 지경이 되었던 것이니까.”
해리스 대위.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다. 식량 문제로 갈등을 빚은 끝에 민간인을 살상하고, 산타 마가리타 호수까지 생존자들을 쫓아왔던 사람. 아마도 변종들에게 죽었을 것이다.
국방부는 이 사건을 은폐하지 않았다. 지금은 겨울이 치른 전투 가운데 가장 유명해졌다. 여러 의미에서 극적이었으므로. 그날 태어난 아기가 전미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일단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해두고 싶어서 자네를 불렀어. 당사자의 판단이 중요하니까. 앞으로 5일간 매일 100 킬로그램을 비축할 수 있겠나? 다소 무리한 요구 같지만, 그 이하라면 여기서 체류하는 의미가 퇴색해버리니 말이야.”
순수하게 육류만으로 미군 급양기준열량 3200kcal을 채우자면 한 사람당 한 끼에 4백 그램은 먹어야 한다. 중대 병력에 겨울 일행을 더한 숫자가 여든이니, 랭포드 대위가 말한 100 킬로그램은 약간의 여분을 더한 하루치 식량이었다.
유바 시티로 가는 도중에도 숙영지 인근에서 사냥이 가능하겠으나, 대위는 추가보급이 없는 상황을 가정하는 듯 했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게 지휘관의 본분이었다.
겨울은 정자세로 답했다.
“지형을 숙지한 뒤에는 그 두 배 이상도 가능합니다.”
대위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번에야말로 믿겠다고 해야겠는데, 향후 계획을 수립하는 데 영향을 미칠 사안이다 보니 확인해두지 않을 수 없군. 그렇게 판단한 근거가 있나?”
“네. 이미 들으셨겠지만 이 지역은 변종의 영향을 적게 받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넓은 산과 숲이면 사슴만 해도 수백 마리를 넘어야 정상이고요. 아직 녀석들이 다니는 길목을 잘 모르는 것뿐이죠. 큰 무리 하나만 잘 찾아내면 하루 만에 닷새 치 목표를 채울 수도 있습니다.”
“닷새 치를 하루에?”
흥미로워하는 대위에게 겨울이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렇게 여유가 생긴 후엔 식용 가능한 버섯이나 식물도 채집해 두려고 합니다. 시간을 아끼느라 오늘은 그냥 오긴 했으나, 돌아오는 길에도 드문드문 있었습니다. 흔하면서도 독초와 헷갈리지 않는 것들이요.”
아스파라거스, 검은 겨자, 살구버섯 등. 기술보정 없이도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는 것들. 여름이 오기 전이라 종류가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느 하나라도 군락지를 찾는다면, 주식을 보조할 양으로는 충분할 것이었다. 영양균형을 맞추는 것이 목적이니까.
아직 습득하지 않은 기술, 「채집」이 있다면 훨씬 더 수월해질 터.
그러나 계륵이었다. 지금만이 아니라, 이제까지 거쳐 온 모든 종말에서. 시간 대비 획득열량을 기준으로 채집은 사냥을 능가하지 못한다. 「추적」처럼 범용성이 있지도 않았다. 우선순위가 낮다보니 익힌 횟수가 적다. 「재능이익」이 거의 없다는 뜻이었다.
결국 갈수록 손을 대지 않게 되는 기술.
이것만이 아니다. 「재능이익」은 성장 방향을 고착화시킨다. 가끔씩 겨울은 다른 가능성들이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같이 생존이 절박할 때 습득하긴 어려운 것들. 사후보험 전체를 통틀어, 부유하지 않은 가입자의 세계는, 어떤 의미로든 투쟁의 연속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가.”
대위가 짧은 한숨을 쉬었다.
“힘들겠지만 최선을 다해주게. 굶어 죽을 염려를 덜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지금쯤 중대원들 정신상태가 말이 아니었을 거야. 혹시 봤나? 식사가 기대 이상이어서 그런지, 먹을 때만큼은 얼굴들이 밝더군. 안심하긴 이르지만서도.”
오늘 밤이 고비다. 기지를 벗어나 처음으로 맞이하는 밤. 육체적 위기를 넘긴 뒤에 비로소 찾아오는 정신적 위기. 기지 함락 당시 동료를 잃지 않은 병사가 없으니, 자살자가 나올 가능성이 있었다. 물론 사람의 목숨은 모질다. 누구 하나라도 쉽게 죽는 이가 없다.
그러나 최초의 한 명은 많은 것을 달라지게 만든다.
비록 그것이 작은 가능성일지라도 지휘관으로선 경계해야 마땅하다.
“지금 술을 배급하기는 좀 그렇고……. 아이스크림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이스크림? 혼잣말 같은 중얼거림에 겨울이 고개를 기울이자, 대위가 희미하게 웃는다.
“모르는 모양이군. 하긴 자네는 들을 기회가 없었겠지. 정식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그의 말이 이어졌다.
“2차 대전 때 이야기야. 항공모함 렉싱턴이 어뢰에 피격 당했을 때, 침몰하는 와중에도 병사들은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었다고 해. 배가 가라앉으면 이거 다 버리지 않겠느냐고. 그날 하루 200명 이상의 승조원이 죽었어. 다들 아이스크림을 퍼먹으며 두려움을 견뎌냈던 거야.”
정작 그렇게 먹고 나서는, 물에 빠진 뒤 무척이나 후회했다고.
“새삼스럽지만 사람 사는 게 참 단순하지 않나? 작은 즐거움이라도 남아있는 사람은 쉽게 죽음을 생각하지 않아. 사랑하는 누군가라도 좋고, 때로는 아이스크림 같은 거라도 상관없지.”
그래서였을 것이다. 대위는 낮 시간에 소대별로 돌아가며 천렵(川獵)을 하도록 했다. 실은 그냥 몸을 씻고 물놀이나 하라는 뜻이었다. 위생관리가 그만큼 중요한 일이기도 하고.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체취를 없애둘 필요가 있었다. 하는 동안 혹여 물 아래로 이상한 게 흘러올까봐, 철조망을 잘라다 상류와 하류 방향에 걸어두었다.
겨울은 깊게 공감했다.
“대위님은 그런 게 있으십니까?”
“기지에 편지를 두고 나와서 아쉬워. 그런데 차라리 잘 된 걸지도 몰라.”
지금 보면 울 것 같거든. 대위 역시 동료를 잃은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책임감으로 견딜 뿐.
“시간이 남을 때 중대원들에게 승마술을 가르치겠습니다. 나름대로 색다르고 즐거운 경험이 되겠죠. 최소한 타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을 하기 어려울 겁니다.”
「교습」은 가르치려는 기술 등급이 높을 때 더욱 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그 덕을 본다면 중대 전원의 기초를 단기간에 닦아줄 수 있을 것이다.
‘이동경로 상에 목장이 많으니까, 가는 길에 추가로 말을 확보하게 될지도 몰라.’
마상전투능력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승마보병이 한 개 소대만 되어도 전술적인 선택지가 많이 늘어날 터였다. 유바 시티에 도달하고 난 뒤를 대비하는 면도 있다. 그곳이라고 상황이 마냥 좋으리라는 법은 없으니. 보급 끊어진 수십만 명의 재집결지점 중 하나가 아닌가.
“이런 말을 꺼내려고 부른 건 아니었는데.”
대위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보존 식량을 만드는 건 문제가 없을까?”
“네. 핑크 솔트가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이걸 얻지 못했다면 소금을 아주 많이 써야 했을 겁니다. 고기에서 색과 탄력이 사라질 정도로요.”
직전에 먹는 즐거움이 중요하다는 대화를 나눈 참이었다. 순수하게 소금만 쳐서 만든 염장육은 하얀 돌덩어리처럼 변한다. 질감도 돌과 비슷했다. 물로 씻고 진득하게 끓여야 그나마 먹을 만하지만, 그 맛은 무엇을 기대하든 그 이하였다.
겨울이 말한 핑크 솔트는 아질산염을 함유한 소금이었다. 이것을 일반 소금과 섞으면, 비교적 적게 써도 식중독균이 증식하지 않는다. 특히 보톨리누스 균. 먹으면 죽는다고 봐야 한다.
이를 구한 장소는 역시나 목장이었다. 소와 말을 키우던 곳이라 있을 법 했다. 가족이 먹을 것을 직접 만드는 경우는 제법 흔했으니까. 일반 가정엔 드문 물건이다.
‘없었으면 야생 셀러리라도 찾아봐야 했겠지.’
셀러리 즙을 짜서 소금과 섞어 발효시키면 핑크 솔트의 대용품이 된다. 그마저도 없을 경우엔 시금치를 써도 좋고. 생존에 필요한 기초지식이었다.
물론 그랬다면 계획을 많이 수정해야 했을 것이다. 발효 소금을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리니까.
무엇보다 그런 식은 겨울에게도 직접 해본 경험이 없었다. 머리로 알고만 있을 뿐이지. 아질산염 또한 독성이 있어서 비율을 잘 맞춰야 하는데, 자신 없는 일이었다.
“염지와 건조시간을 단축하려고 고기를 작게 썰었습니다. 나중에 확보한 물량은 이동하는 도중에도 염지시킬 방법을 찾아야겠지만, 최소 사흘 먹을 양은 출발 전에 완성될 겁니다. 먹는 시점을 조절하는 방법도 있고요.”
어차피 길어도 보름가량만 상하지 않으면 된다.
대위가 재미있어했다.
“이것저것 다양하게도 아는군. 꼭 이런 상황을 대비해오기라도 한 것처럼. 혹시 모겔론스 사태 이전부터 생존주의자였나?”
“……그런 셈이죠.”
생존주의자. 취미로 재난 상황에 대비하고 관련 지식을 익히는 사람들. 미국에선 제법 흔하다. 이들이 즐겨 대비하는 재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좀비 아포칼립스였다.
그래서인지 민간인들 사이에선 감염변종을 좀비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정부는 싫어하지만.’
당국 입장에서 역병을 초자연적인 무언가로 묘사하는 분위기가 좋게 보일 리 없다. 인간의 사고는 언어적이다. 군인들의 단어 사용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이유였다.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해두고.”
대위가 화제를 바꾸었다.
“낮에 FBI 감독관과 면담을 했네. 전에 자네가 말했던 그 건에 관해서 말이야. 안 그래도 신경 쓰였는데, 깁슨 요원이 먼저 요청하더군.”
그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약간의 피로감을 드러냈다.
“거 참, 나 같은 사람 입장에선 다른 세상 일이 따로 없던걸. 정보국 내에 만들어진 사조직이라니…….”
“어디까지 들으셨습니까?”
“그녀도 정확한 사정은 말해주지 않았어. 기밀엄수가 요구된다던가. 그야 그렇겠지. 나는 일개 대위일 뿐이니까.”
그는 한숨과 함께 어조를 달리했다.
“하지만 한 가지, 그들이 정부 승인 없이 무언가 대형 사고를 쳤다는 건 알려주더군.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이런 시국에 중앙정보국 씩이나 되는 기관이 통제에서 벗어나 있다는 뜻이니까. 군인으로선 탐탁찮아. 등 뒤가 불안하면 이길 싸움도 못 이기잖나. 괜히 불안해.”
그리고 중얼거린다. 당장은 살아서 복귀하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러운데, 라고.
“정보국 인원들은 앞으로도 자네랑 수사국 감독관 소관으로 남겨두려고 해. 혹시 뭔가 필요하다면 그때그때 말하도록. 가능한 한도 내에서 최대한 돕지.”
“감사합니다.”
“부른 용건은 여기까지야.”
랭포드가 자리에서 느릿하게 일어났다. 그도 슬슬 눈을 붙여야 할 시간이었다.
“가서 쉬기 전에 탤벗 요원을 만나보게. 자네의 그……위장?……아무튼 얼굴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더군.”
“아, 네.”
아무래도 대위가 직접 알아본 눈치였다. 기술자가 있다고 말했던 것을 잊지 않았던 모양.
이유도 알 만 했다. 머리로는 한겨울이라고 알고 있어도, 생긴 게 달라서는 병사들의 체감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분위기 일신에 도움이 될 것이다.
대위의 말에 따라 찾아가 보니, 탤벗이 준비한 것은 의외로 단순했다. 여느 가정집에 있을 법한 각종 세제의 혼합물.
“이게 뭔가 싶으시겠지만, 그래도 필요한 성분은 다 들어있습니다. 단지 농도가 낮아서 꽤 오래 씻으셔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같은 성분을 다른 용도로 쓰며 다른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세제를 섞어서 독가스를 만들고, 비료를 재료로 폭탄을 제조하지 않던가. 비료공장은 전시에 화약제조 플랜트로 전환된다.
씻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얼굴에 들어있던 염색이 빠졌다.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는 오랜만이었다.
============================ 작품 후기 ============================
#이벤트
전에 예고했던 것처럼, 1차 발송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합니다.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 가운데 한 분께 사인북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조건은 지난번과 같습니다. 추천이 댓글보다 적으면 안 됩니다. 🙂
필요 없는 분들은 꼭 말씀해주세요.
댓글이 너무 많을 경우엔 조기에 마감될 수 있습니다.
추가 – 4월 12일 오전 10시부로 마감하겠습니다.
#대검
대검은 大劍이 아니라 帶劍입니다. 허리에 차는 칼이라는 뜻이고, 총검의 다른 말입니다. 탈착이 가능하여 평소에는 단검처럼 씁니다. 작품설정에 이미지를 첨부해두도록 하겠습니다.
#사슴
작중에서 언급된 사냥터는 포인트 레예스 국립공원의 동남쪽 산간지대입니다. 여기 분포하는 사슴의 개체수는 정확한 사실을 확인한 게 아니라 다른 지역과의 비교를 통해 유추한 결과입니다.
작품설정에 캘리포니아 사슴 사냥구역 정보를 올려두겠습니다.
#아이스크림
미 해군은 2차 대전기에 해상 아이스크림 공장을 운영했습니다. 트레포일 급 1번함인 USS 트레포일이 그 배인데, 공장으로 개수된 이후엔 USS 쿼츠로 함명이 변경되었습니다.
#Q&A
Q. 후유카님 : 돼지도 잡식성이니 위험하지 않나요?
A. 네,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멧돼지가 아니라 야생화된 집돼지(Swine) 종류를 생각하고 썼는데, 달아주신 댓글을 보고 혹시나 싶어 찾아보니 이 녀석들도 안 되겠더군요. 확실치는 않지만요.
Q. 자드서란님 : @중간에 돼지배설물 추적하던 장면이 수정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A. 마저 수정했습니다. ㅠ
Q. LunarKarma님 : @엑셀은 앞으로도 반려동물로같이하면좋겠네요… 주인공보면 기동력이 보완되면좋을거같아서…매번부족해서아껴쓰는탄도좀 넉넉히 챙기고…
A. 엑셀에 대해선 이후의 전개에 만족하실 겁니다. 탄은…글쎄요.
Q. 플라잉도리님 : @아악… 3일굶었는데 누가 정말 맛있는 삼각김밥 하나 던져준 느낌이에요 ㅠㅠ 작가님 힘내세요~!
A. 조금 일찍 올렸다면 여기까지 보셨을 텐데.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