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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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들 (12)
구조된 인원들은 밤새도록 잠을 설쳤다.
“탄약을 주십시오. 탄약, 탄약 없이는 잠을 못자겠습니다. 제발…….”
자다 말고 당직 장교를 찾는 이들의 공통된 요청이었다. 겨울의 순번에도 두 사람이 찾아왔다. 충혈 된 눈으로 헐떡이는 모습들이 애처로웠다. 그러나 절대로 불가하다는 게 랭포드 대위의 방침이었다. 사고를 우려한 탓이다.
“이라크 전쟁 최고의 저격수도 그런 사고로 죽었지. 전역 이후의 일이긴 하지만.”
아침부터 겨울과 독대한 대위의 말이었다.
“크리스 카일 상사 말씀이시군요.”
이 유명한 사건은 겨울도 여러 차례 들었다. 범인은 전직 해병인 에디 레이 러스. 이라크 전쟁 참전용사였다. 러스는 철조망 바깥(Outside the wire), 위험한 전장으로 나갔던 적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증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을 받았다.
하물며 간밤에 구조된 인원들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대위가 긍정하며 손가락으로 머리를 빗는다.
“탄약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고. 줘봐야 오히려 역효과일 수도 있어.”
테이블 위에 펼쳐진 수첩에는 몇 줄에 걸쳐 날짜와 숫자가 적혀있었다. 중대의 탄약 보유 현황이다. 소총탄은 어제오늘 4,847발에서 4,703발로 감소했다. 간밤에 144발을 써버린 것. 숫자로는 아직 넉넉해 보이지만, 이제 한 사람 앞에 탄창 두 개를 채워주지 못한다. 실제로는 병사마다 이제 마흔아홉 발을 보유했다.
재분배 과정에서 대략 800발을 남겨둔 셈. 이는 중대 차원의 여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균등하게 나눠준다고 끝날 일이 아닌걸.’
모든 병사들이 동시에 교전하는 상황은 곧잘 없다. 예컨대 방어선을 구축했을 때, 특정 방면에 적이 집중되는 경우 즉시 탄약을 몰아줘야 한다. 잔탄이 마흔아홉이면 패닉에 빠진 병사가 10초 이내에 쏴버릴 양이었다. 탄창 가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지휘관이 병력이든 탄약이든 항상 여분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였다.
“탄약고를 채우느라 추가로 두 발씩 걷었네. 다들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짓더군.”
랭포드 대위의 농담에 겨울이 쓴웃음을 만들었다. 그가 말한 탄약고의 정체는 통제실 벽에 걸린 두 개의 등산 가방이었다. 전투가 일어날 때마다 중대원들로부터 각출하여 채우는 가방이다. 개인이 휴대 가능한 탄약고라니 대단하지 않은가.
“일단 어제 전투부터 되새김질해보지. 소모한 총탄보다 죽인 변종의 수가 훨씬 더 많아. 이런 전투라면 앞으로 서른 번은 더 치를 수 있을 거야.”
또다시 냉소적인 농담이다.
그는 컴퓨터로 간밤의 전투기록을 재생했다. 출처는 기동대원들의 헬멧 카메라. 겨울의 몫도 있었다. 정찰과 정보획득 목적으로 다른 병사로부터 양도받은 것이다.
본래 숙박 장부나 기록하던 낡은 컴퓨터는 고화질 동영상 재생을 버거워했다. 작은 모니터엔 번인(Burn-In)으로 인한 잔상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분석에 지장이 클 정도는 아니었다.
대위는 겨울의 돌파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싶어 했다.
“이런 식의 전투는 기존의 교범에 전혀 없었던 것이니까. 적의 밀도가 얼마나 감소해야 자네가 뚫고 지나갈 수 있는지를 알아둬야겠지. 그래야 제대로 된 화력지원도 가능할 테고.”
겨울이 동의했다. 바깥에서부터 깎아내듯이 쳐내야 할 때보다는 관통하는 돌격의 살상효율이 훨씬 더 높다. 후방에 도사린 머리 좋은 놈들을 찾아 죽이기에도 좋았다. 새벽의 전투에선 구울을 빠르게 사살한 덕분에 무리의 행동이 더욱 무질서해졌다.
사실 꽤 위험한 방식이었다. 겨울은 항상 병사들의 사선 앞을 달려야 한다.
반시간 가량 의견교환이 이루어졌다. 교전을 회피하는 게 최선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럴 능력도 충분했다. 최소한 평야지대에서는 먼저 보고 먼저 피하는 게 가능하다. 변종집단을 먼저 발견한 기동대가 엉뚱한 방향으로 유인할 수도 있었다. 대원들의 숙련도가 쌓일 경우, 겨울은 말에 탄 채로 누웠다가 일어나는 요령을 가르칠 작정이었다. 풍향에 유의한다면, 갈대밭 같은 곳에서는 변종집단이 가까운 거리를 지나가더라도 들키지 않을 것이다.
다만 구조를 위해 불가피한 교전을 치러야 할 경우가 문제였다.
“이렇게 떠들고는 있어도, 솔직히 우리가 다른 부대를 구원할 처지는 못 돼.”
길게 한숨을 쉬는 랭포드. 탈모가 호전될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무시하고 지나갈 순 없습니다. 중대원들이 죄책감을 견디지 못할 테니까요. 가뜩이나 출신 부대가 달라서 아직도 서로 어색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양심의 가책이 심해지면 부대가 아예 분해되어 버릴까봐 걱정스럽습니다.”
겨울의 지적. 죄책감 역시 전투피로를 낳는다고.
‘분대나 소대 단위로 이탈해버릴지도 몰라.’
과연 그것을 탈영이라 부를 수 있을까?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군인의 의무이자 권리였다. 가뜩이나 랭포드 대위는 직속상관조차 아니지 않은가. 겨울에 대한 믿음 또한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미군이 전우를 버려서는 안 된다. 파소 로블레스 이후의 마커트 대위가 사병들에게 얼마나 무시당했는지를 떠올려야 할 때였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들어온 사람은 에스카밀라 소위였다.
“대위님. 장례식 준비가 끝났습니다.”
전사자 수만큼의 관을 짜고 땅을 파놓았다는 말이다. 그녀의 소대는 이른 아침부터 목공소에서 땀을 흘렸다. 겨울은 작업에 투입된 병사들의 심리상태가 신경 쓰였다. 에스카밀라 소위가 어련히 관리하고 있겠지만. 랭포드가 고개를 끄덕인다.
“……수고했어. 바로 가지. 경계 병력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 중에서 참석을 희망하는 사람은, 08시까지 무장을 갖추고 성당으로 오라고 전달하게.”
“알겠습니다.”
에스카밀라 소위가 경례를 붙이고 나갔다. 랭포드 대위가 중얼거린다. 군목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군종병(Chaplain’s Assistant)이나마 있으면 참 좋겠는데, 하고.
전사자들로부터 회수한 군번줄엔 그들이 믿는 종교가 상징으로 새겨져 있었다. 신앙이 없는 한 명을 제외하면 모두가 기독교 계통의 신자들이었다. 가톨릭은 어쩔 수 없으나. 만인이 사제인 개신교는 군종병이 장례식을 진행해도 괜찮을 것이었다.
지금은 간단한 기도문을 읽고 끝낼 요량이다. 병사들을 위로하기 위한 행사. 랭포드는 새벽 내내 쓰고 지운 종이 한 장을 챙겼다. 그 옆의 성서엔 여러 개의 책갈피가 꽂혀 있었다.
버려진 성당에 병력이 집결했다. 이들에게 무장을 지시한 것은 만약을 대비한 조치였다.
성당 앞엔 작은 종탑과 약간의 초지가 있었다. 여기가 매장지다. 구덩이마다 관이 들어갔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부활이요 생명이신 우리의 주여. 여기 선한 싸움을 하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킨 자들이 천국의 문을 두드립니다. 주 안에서 죽는 자들에게 복이 있노라 하셨으니 이는 곧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옵니다. 의로우신 재판장께서 면류관을 쓴 이와 더불어 당신을 사모하는 모든 자들을 긍휼히 여기실 것을 믿습니다. 조국과 인류를 지키기 위한 전장에서 스러진 용사들에게, 당신께서 예비하신 처소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전우와의 이별과 환난에 고통 받는 저희에게도 자비와 위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기도가 깊어지는 동안 여기저기서 소리 죽인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장례식을 달가워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바로 오스본 병장이었다. 그가 직접 사살한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의 유언이 문제였다.
‘뉴욕에 있는 어머니께 시신을 보내달라……였던가.’
병장의 얼굴이 고통으로 물드는 이유였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소원이다. 그러나 괴물이 되기 전에 죽어야 할 상황에서 그런 것까지 생각할 겨를은 없었을 것이다.
관이 흙에 덮이는 동안 성당의 종은 울리지 않았다. 도열한 병사들이 하늘을 겨누어 세 번의 추모사격(Three-volley salute)을 하지도 않았다. 장례식은 살아있는 자들을 위한 행사였다.
“전 아론을 여기 두고 떠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두 눈이 충혈 된 오스본의 말이었다. 아론은 유언의 당사자다. 겨울이 병장을 다독였다.
“당신이 여기 남는다고 뭐가 달라지겠어요? 아론 이병이 당신마저 같이 죽기를 바랐을까요? 아뇨. 살아서 돌아가야 기회가 생깁니다.”
“젠장, 대체 무슨 기회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여기까지 돌아올 기회요.”
다수가 듣는 대화였다. 주변을 의식한 겨울은 단호하게 말했다.
“명백한 해방 작전이 실패했어도 봉쇄선이 무너진 건 아니에요. 네바다의 요새화된 사막과 산맥들이 쉽게 뚫릴 것 같지도 않고요. 긴 시간이 걸리겠지만, 결국 언젠가는 이곳까지 탈환할 수 있다고 믿어요. 그때까지 살아남아요. 아론을 뉴욕으로 직접 데려가라고요.”
“…….”
가볍게 하는 말은 아니었다. 정부체제가 오랫동안 효율적으로 작동한 세계관이라, 봉쇄선은 아주 철저하게 요새화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사거리에 둔 무수히 많은 벙커들. 철근 콘크리트를 있는 대로 때려 박아, 그럼블조차 쉽게 부수기 어려웠다.
봉쇄선을 소개하는 국방부 대변인은 이렇게 표현했다.
「뭐든지 X나 크고 X나 튼튼하면 지들이 뭘 어쩌겠습니까?」
미국 시민들은 공식석상의 거친 표현에 환호했다. 이때 겨울은 윈스턴 처칠을 떠올렸다. 2차 대전기 영국의 수상. 스물일곱 번째 종말을 시작하기 전 공부했던 지도자 중 하나. 불한당 같은 이미지가 시민의 지지를 얻는데 도움이 된 경우였다. 물론 연설에서 막말을 하진 않았으나, 어쨌든 맥락은 비슷하다.
겨울이 오스본의 어깨를 잡았다.
“최소한 어머니께 소식은 전해드려야죠. 아드님은 용감하게 싸웠다고.”
보통은 직속상관의 역할이다. 그러나 오스본의 중대장은 이미 죽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기운 내요.”
마지막으로 위로하는 말에 병장이 고개를 숙였다.
괜히 가깝게 서성이던 병사들도 분분히 흩어졌다. 그들 중에 명백한 해방 작전의 실패를 봉쇄선의 붕괴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던 수가 적지 않을 것이었다. 생각은 조금 바뀌었을까.
‘정말로 뚫리면……나도 얼마 못 가겠지.’
장례식이 끝난 뒤 겨울은 곧바로 기동대를 이끌고 나섰다. 1차적으로는 포인트 레예스 스테이션의 수색을 지원하고, 2차적으로는 최대한 먼 거리까지 정찰을 나가는 게 임무였다.
캐리어를 연결한 픽업트럭이 기동대의 뒤를 따랐다. 여기엔 3개 조(Team) 15명의 병력이 탑승했다. 모두가 겨울의 소대에서 차출된 병력이었다.
간밤에 요란했던 시가지는 놀라울 만큼 조용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마을 서쪽의 카운티 보안관 사무소였다. 갈색 벽돌과 나무로 지은 건물 전체에 담쟁이 넝쿨이 우거졌다. 쇠지레로 자물쇠를 끊고 들어간 무기고는 거의 대부분 비어있었다. 서부 해안에 역병이 돌기 시작했을 무렵, 보안관들 또한 최대로 무장한 채 출동했을 것이었다.
그래도 두 자루의 샷 건(산탄총)을 발견했다. 탄약은 25발들이 작은 상자로 세 개가 남아있었다. 추가로 바닥에서 약간의 권총탄을 주웠다. 급하게 챙기다가 흘린 것 같았다. 다행히 중대가 보유한 권총과 규격이 맞는 탄약이었다.
이 정도만 해도 큰 수확이다. 철컥. 방치되어있던 총기의 고장여부를 확인하던 모랄레스 상병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말 타고 쏘기에 좋겠습니다.”
기동대원들은 마상사격에서 정확성을 담보할 수 없었다.
보안관 사무소 바로 옆은 소방서였다. 흙먼지 가득한 차고의 유리창을 닦아내자, 안쪽에 나란히 주차된 구급차와 소방차가 보였다. 병사들의 얼굴에 기대감이 떠오른다. 이런 차량은 픽업트럭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디젤을 사용한다.
또한 연료 탱크가 대형이다. 한 번에 많이 채워놓은 연료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변질될 확률이 감소한다.
즉 차량이 작동하지 않는 경우에도 연료를 확보할 순 있을 것이다.
‘어차피 중심가에 주유소가 따로 있긴 하지만.’
어둠 속을 달리면서 보았던 풍경을 기억하는 겨울이었다. 아무리 사재기가 극성이었어도 저유고가 완전히 비어있진 않을 것이다. 파소 로블레스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다른 나라였다면 모를까, 미국은 세계 유수의 산유국이었다.
“마침 태양광 패널을 올린 건물이 있군요. 차량을 저기까지 견인하겠습니다.”
배터리를 살려보겠다는 말이다. 겨울의 허락을 구한 모랄레스 상병이 소방차의 견인기를 픽업트럭에 연결한다. 그러고도 병사들이 뒤쪽에 붙어서 밀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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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
구글 검색창에 처칠, 톰슨 기관단총을 입력하면 자동완성 검색어가 뜹니다.(…) 해당 이미지 중의 하나를 작품설정에 올려두겠습니다.
#Q&A
Q. svjk님 : @브로큰 애로우.. 참 무서운 전술이군여. 실제로 사용된적이 있는 전술인가요?
A. 전술이라기보다는 화력지원을 요청하는 방식 중 하나입니다. 적과 아군이 매우 가까운
상황을 뜻하는 데인저 클로즈(Danger Close)는 종종 있지만 브로큰 애로우는 꽤 드문 편입니다. 그래도 없진 않아요. 최근엔 시리아 내전에 파견되었던 러시아 특수작전군 소속 알렉산더 프로코렌코 중위가 요청해서 화제가 되었죠.
Alexander Prokhorenko로 검색하시면 관련 정보가 나옵니다. 사후에 러시아 연방 영웅장이 수여되었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