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211)
00210
=========================================================================
#생존자들 (13)
소방차가 차고를 반쯤 빠져나왔을 때, 겨울이 픽업트럭 전면에서 팔을 흔들었다.
“잠깐만요. 모두 멈춰 봐요.”
이제 막 힘을 쓰려던 소대원들이 의아해했다. 최선임인 모랄레스가 나섰다.
“왜 그러십니까?”
“비효율적이란 생각이 들어서요.”
그러면서 주유소가 있을 방향을 가리키는 겨울.
“먼저 저기부터 들렀다 오죠. 혹시 정비소를 겸한다면 배터리가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거리는 고작 한 블록이었다. 태양광 패널이 달린 건물이 코앞이긴 했으나, 인버터에서 전선을 끌어오는 시간과 번거로움을 감안하면 겨울의 말이 타당했다.
“흠. 알겠습니다. 어이, 에일! 웨슬리! 연결 끊어!”
맥주(Ale)라 불린 일병의 본명은 알레한드로. 이름 앞을 떼어다 별명을 지은 경우였다. 영어가 어눌해서 놀림을 자주 받는데, 귀찮아하면서도 정말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지휘를 맡은 임시 소대의 분위기에 유의할 수밖에 없는 겨울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견인기가 풀렸다. 트럭을 운전하던 병사가 안도했다. 차축이 휘어질까봐 걱정했다고.
소방차의 체급이 체급이라 있을 법 했다. 당장 큰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지만. 겨울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누구 차가 더 힘이 센지 겨뤄보는 자리였지.’
그 단순한 싸움에 열광하던 관중들을 기억한다. 언제인가의 종말, 상대는 워싱턴 DC에서 조우한 무장 집단이었다. 내장도 외장도 괴물처럼 개조된 차량들이 아스팔트 조각을 쳐올리며 용트림을 해댔었다. 보닛에 매달려 흔들리던 해골 십자가가 지금도 선명했다. 그 외에 운전대를 잡고 악을 쓰던 운전수의 하얀 문신 또한 인상적이었다. 분위기는 험악했으나 나름 평화적인 타협을 위해 시작된 경기였다. 상품은 서로가 보유한 식량과 약품, 혹은 노예들이었고.
그때는 감염이 워낙 순식간에 확산되었으므로 문명의 유산이 풍부했다. 남은 물자를 써버리기보다 인류가 사라지는 속도가 더 빨랐던 세계. 그러므로 희망을 잃은 생존자들은 지난 시대의 무덤을 파헤치는 야만인 집단이 되었다.
이번 세계는 그 꼴이 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최후의 종말이 찾아올 가능성은 아직 희박하다고 생각하는 겨울이다. 허나 없지는 않으니,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해두어야 할 것이었다. 다만, 심란하지 않을 만큼 평온했으면. 소년의 소박한 바램이었다. 사후의 유일한 미련이나마 오랫동안 곱씹을 여유가 있기를.
주유소는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작은 은행과 마주보는 위치였다. 뒤쪽엔 라디오 방송사가 있었다. 돌아본 병사들 가운데 하나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마트 점원으로 일할 적에 곧잘 듣던 채널이라고. 이 말에 불현듯, 겨울은 피쿼드 호에서 듣던 라디오 방송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대통령이 새로운 담화를 발표했을 것인데. 봉쇄선 현황은 어떨까. 또 미국 정부는 지금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찾았습니다! 잔뜩 있습니다! 휘유, 연료 안정제도 박스채로 쌓여있는데요?”
유리창을 닦고 실내를 들여다본 병사들이 소리 죽여 환호한다. 태풍의 영향인지 천장에서 물이 샌 흔적이 있으나, 배터리의 대부분은 보관상태가 양호했다. 누액 방지 테이프도 떼지 않은 신품들이었다. 연료안정제 또한 마찬가지. 겨울이 지시했다.
“트럭 배터리부터 갈아요. 완전히 방전되었던 물건이라 시원치 않던데.”
“Yes sir.”
별 것 아닌데도 다들 밝게 굴었다. 이들 또한 좌절과 싸우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사소한 즐거움이라도 좋다. 겨울은 사무실 앞의 자판기를 뜯었다. 쇠지레를 콱 꽂고 확 비틀자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단숨에 열린다. 콜라뿐이었다. 유통기한이 반년쯤 지난 것들. 어지간해서는 상하지 않으나, 혹시 몰라 몇 개쯤 겨울이 먼저 맛을 봤다. 「생존감각」이 잠잠했다.
“어떻습니까? 먹을 만하십니까?”
기대감에 찬 질문. 겨울은 대답 대신 푸른 캔을 여럿 던져줬다. 병사들이 유쾌하게 웃는다.
“김빠진 맥주랑 미지근한 콜라는 취급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사양하지 않는 모랄레스였다. 하나씩 먹고 난 나머지는 짐칸에 실었다. 시원하게 만들어 돌리면 중대 전체에게 뜻밖의 선물이 될 것이다. 랭포드 대위도 말했듯이, 삶과 죽음의 차이가 가끔은 한 스푼의 아이스크림이었다.
그것이 물리세계의 관객 일부에겐 섹스일 것이고.
겨울은 그들을 경멸하지 않는다.
뜻밖의 수확이 있었다. 두 대의 소형 유조차였다. 평소엔 기나긴 도로 한복판에 멈춰선 차량들에게 찾아가 바가지를 씌웠을 것이다. 수송량이 각각 4.500리터에 불과했으나, 이 정도면 험비 아흔 대를 꽉 채우고도 남을 양이다.
이 시점에서 베이커 중대의 선택지가 많이 늘어난 셈이었다.
‘가는 길에 버려진 장갑차라도 한 대 있으면 좋겠네. 전차면 더 좋고.’
겨울이 사치스러운 생각을 했다. 연비가 나빠서 그렇지, 장갑차나 전차의 위력은 절대적이었다. 포탄이 없어도 그렇다. 포트 로버츠의 미어캣은 변종집단을 무자비하게 밟아 죽였다. 1,500마력 엔진과 높은 신뢰성이 그런 짓을 가능케 했다. 소음이 부담스럽긴 한데, 그건 그것 나름대로 이용할 방법이 있었다. 비포장도로나 야지를 극복하기 좋다는 장점도 있다. 적어도 평원지대를 지나가는 동안에는 아주 유용할 것이었다.
미군 전차의 급유량이 1,900리터였던가. 그렇게 채우면 400킬로미터 이상을 움직인다.
주유기와 씨름하던 병사들이 지하 저유고에서 직접 기름을 뽑아냈다. 대량으로 저장되어 있었으므로 보존 상태도 양호했다. 어차피 첨가제도 잔뜩 확보한 마당이었다.
의견이 분분했다. 두 대 모두 디젤로 채울 것인가, 한 대는 가솔린을 담을 것인가. 어쨌든 지금 확보한 차량은 전부 디젤엔진이다. 추후에도 차량을 선별한다면 픽업트럭 종류가 우선이었다. 이런 차에 가솔린을 넣었다간 엔진이 작살날 것이다.
겨울이 논쟁을 끝냈다.
“우리가 지금 대륙을 횡단하려는 건 아니잖아요? 디젤은 한 대로도 충분해요. 새로운 차종을 확보한다면 가솔린이 필요할 거고요. 기갑차량이라거나.”
향수를 넣어도 돌아간다는 전차 엔진이지만 디젤과는 호환되지 않았다. 추가로 확보할 다른 차량이 반드시 디젤엔진일 거란 보장도 없었다. 러시아에는 휘발유와 디젤을 함께 쓰는 군용기가 있다던데, 무슨 수로 그런 물건을 만들었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소방차와 구급차는 배터리를 교체하니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식량 확보는 양만 따진다면 예상을 상회했다. 한 블록 내에 세 개의 제과점이 있었는데, 여기서 확보한 밀가루만 해도 중대 병력이 보름을 먹고 남을 정도였다. 다만 병사들은 무척이나 역겨워했다. 한 곳에서 꽤 많은 벌레가 나왔기 때문이다. 어지간해서는 벌레 먹지 않는 밀가루라지만,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시간이 길어지니 이렇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우욱. 이거 먹어도 되는 겁니까?”
“비상식량이라고 생각해요. 배고파서 죽을 지경이면 어쩌겠어요. 사람이나 변종을 뜯어 먹는 것보다는 낫겠죠.”
에이프릴 퍼시픽을 회상하는 겨울의 말에 더욱 거북해하는 병사들이었다.
“겉에 따로 표시해놔요. 일단은 가지고 가고, 나중에 상황을 봐서 버리던가 하자고요.”
밀가루 포대를 체로 걸러내기에 약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가열취식으로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아무튼 비상식량이다. 차량을 추가로 얻지 못했다면 그냥 두고 떠났을 것이었다. 영양 이상으로 먹는 사람들의 심리를 고려해야 한다.
지금 본 것을 비밀로 하라는 지시는 내리지도 않았다. 어차피 지켜지지 않을 비밀일 테니까.
마을에서 유일한 식료품 상점은 부패의 도가니였다. 바퀴가 특히 많아, 병사들이 감히 진입하지 못했다. 그래도 겨울이 혼자 들어가겠다니 책임감으로 나서는 몇몇이 있었다.
진열대 안쪽에서 특이한 흔적을 발견했다. 벌레들이 눌려 죽은 무수한 자국들 가운데, 유난히 깨끗한 자리가 보였다. 펑퍼짐한 무언가가 거기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처럼.
‘그러고 보면 이것도 낯선 현상이었는데.’
여러 번 경험하긴 했으나, 아직 이유를 모르겠다. 과거의 종말엔 없었던 현상.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바퀴벌레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단순히 분위기 조성을 위한 변경사항일까……? 아니, 그럴 가능성은 낮다. 이제껏 이유 없는 변화는 드물었다.
처음엔 사소하게 여겼다. 그러나 자꾸 눈에 띄니 마음에 걸린다.
지금도 절반의 바퀴가 사람을 피하는 반면, 나머지 절반은 겁도 없이 눈앞으로 날아들었다. 손으로 쳐내도 잠깐이다. 맹목적으로 날고 기어서 병사들이 기겁했다. 무슨 차이일까.
“중위님! 여길 꼭 수색하셔야겠습니까?”
겨울은 선반과 바닥을 쭉 훑었다. 어두운 실내였으나, 한 줌의 빛으로 충분한 시야였다. 병사들의 랜턴 빛 닿지 않는 자리도 선명하게 보인다.
많은 병들이 깨져있다. 허전한 설탕 봉지들은 이빨로 물어뜯은 흔적들이 역력했다. 그럼에도 아직 멀쩡한 봉인이 많았다. 주로 식초나, 독한 소스 종류였다. 시험 삼아 몇 놈이 핥아보고 질색을 했을 풍경이 그려진다. 주류 코너도 꽤나 멀쩡했다. 소금은 절반쯤 사라졌다.
챙길 것을 챙겨 식초와 알콜로 소독했다. 병사들이 설레설레 고개를 젓는다.
이 시점에서 민가 수색은 무리였다. 수송중량이 한계에 달했다. 마지막으로 중심가 아래의 보건소(Medical center)에 들렸다. 약품에도 유통기한이 있었으나, 비타민제와 영양제, 항생제만큼은 충분한 양을 확보할 수 있었다.
“기동대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은 차량을 끌고 먼저 복귀해요. 오늘은 꽤 멀리까지 나가봐야 할 것 같네요. 대위님께는 늦어도 EENT까지 복귀하겠다고 전해드리고요.”
이렇게 지시하는 겨울은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병사들로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거리에 자그마한 경비행기 하나가 지나가는 중이었다. 희미한 비행운이 이어진다.
‘뭐지? 이 지역에 저런 게 날아다닐 이유가 없는데…….’
조금 혼란스럽다. 한 때 사라졌다가 부활한 전선통제기도 아니고, 라운델(Roundel : 군용기 국적 식별 마크)조차 없는 민간기였다. 봄날의 햇볕 아래 백색 도장(塗裝)이 빛난다.
마을 남쪽의 다리까지 차량 대열을 호위한 겨울은, 즉시 기수를 동쪽으로 돌렸다. 이는 중대가 나아갈 길의 선행정찰인 동시에, 생존자들의 흔적을 찾는 임무였다. 조금 전 목격한 경비행기도 무척 신경 쓰였다. 방역전선 인근 공역에 허가 없이 진입했다간 즉각 격추당한다.
설마 방공망이 작동하지 않을 만큼 엉망진창인건 아닐 테고.
겨울을 선두로 다섯 기병이 해가 떠오른 지평을 향해 달렸다.
능선을 넘어가자 뜬금없이 한 무리의 알파카들이 스쳐지나간다. 인근 목장에서 기르던 것들이 용케 살아남은 모양이었다. 기괴하게 생긴 털 뭉치들은 사람에 놀라 사방으로 달아났다. 그동안 사람이었던 괴물들에게 많이 쫓겼을 것이었다. 괜찮은 식량이지만 지금은 무시하기로 했다. 위치를 알았으니 나중에라도 흔적을 쫓으면 된다.
진로는 호수를 만나 꺾어졌다. 댐을 방기할 때 수문을 열어놓고 떠났는지, 수위가 무척 낮았다. 물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계속해서 나아간다.
크워어어-!
무리에서 낙오되었거나, 혹은 감염되어 나중에 깨어난 놈인가 보다. 연쇄추돌의 현장에서 깡마른 변종 하나가 툭 튀어나오기에, 겨울은 감속 없이 가격하고 지나갔다. 목이 두 바퀴 돌아간 녀석이 뒤따르는 말발굽에 채였다.
“으악 시발! 지져스!”
화들짝 놀라는 말. 기절초풍한 기동대원이 낙마를 겨우 면한다. 승마 실력이 조금 더 나았다면 펄쩍 뛰어서 피했을 텐데, 「교습」 효율이 아무리 높아도 아직은 이 정도가 한계였다.
1킬로미터 정도의 계곡을 통과하자 작은 분지가 나타난다. 본래는 이 분지를 통과하여 북서쪽으로 크게 돌아, 1번 주도를 따라 남하하여 복귀할 예정이었다. 임시 거점 기준으로 동쪽과 북쪽 길 가운데 어느 쪽이 안전한지 확인하고자.
그러나 이 순간, 가까운 산간에서 무수한 괴성이 메아리친다.
육안으로 확인되는 변종 집단은 아니었다. 아마도 수목에 가려져있을 터. 겨울이 보지 못하는 위치라면 놈들도 이쪽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소리를 지르는 걸 보면 별개의 사냥감을 쫓는 중일 확률이 높았다. 과연 그 사냥감이 야생동물일까?
아침에 장례식을 치른 시점에서 안일하게 생각하긴 어렵다.
============================ 작품 후기 ============================
#Q&A
Q. 카르피스님 : @봉쇄선 이야기를 들으니 마지노선이 생각나네요. 마지노선의 최후처럼 봉쇄선도…설마…?
A. 설마, 하는 불안감을 가지고 지켜보시는 편이 재밌으실 겁니다.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하하.
Q. 플라잉도리님 : @요새 채팅창의 출현이 뜸하군요~!! 언제쯤 출현할까요? ㅎㅎ
A. 간간이 나오던 철부지급 에피소드를 끝낼 때까지는 채팅창도 계속 이어질 겁니다. 다만 이곳 뿐만 아니라 다른 플랫폼에서도 채팅 파트에 강한 반감을 보이시는 분들이 많아서 자주 넣기가 꺼려지네요.
Q. Epsilon00님 : @(전략) 아 그리고 궁금한게 있는데요. 미국은 동쪽은 대서양, 서쪽은 태평양으로 바다가 있는데 봉쇄선 너머 워싱턴쪽도 해양에서 오는 변종들때문에 위험하지 않나요? 그리고 나라에 따라서 출현하는 변종이 조금씩 다르다고 앞에서 나왔었나요? 만약 그렇다면 미국이 양 대양이랑 접하고 있는 만큼 대서양쪽 변종과 태평양쪽 변종이 차이가 있을것 같은데 군 상부는 이걸 인지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A. 대서양 봉쇄선은 아직 잘 버텨주고 있습니다. 북미 동부는 안전합니다. 시민 여러분께서는 안심하시고 생업에 종사…는 농담입니다. 🙂
특수변종은 환경과 저항에 따른 적응의 차이이기도 하기에, 지역마다 새로운 특수변종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직 멸망하지 않은 국가가 그래도 꽤 있으므로 미국 정부도 관련 정보를 축적해놓은 상태입니다.
현 시점에서 미국이 해외의 변종 유입을 성공적으로 차단하고 있습니다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불안해하며 보시는 편이 재밌으실 겁니다.
Q. 노블레스버퍼님 : @월요일 좋아! 월요일좋아~ 그 러시아 얘긴 감동적이었음… 부인이랑 애까지있는 양반이 ㅠㅠ
A. 안타까운 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