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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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끝 (13)
대체 뭘 준비해두었으려나.
거목이 우거진 숲은 사실 트릭스터에게도 불리한 환경이다. 전파의 도달범위가 축소되는 까닭. 그러므로 준비된 함정의 일부는 직접적인 통제 없이도 위협적인 종류일 것이다.
다양한 가능성들이 겨울의 「통찰」을 스치는 사이, 위성단말기가 새로운 신호를 포착했다.
“소령님. 골든 이글에서 데이비드 액추얼을 찾습니다.”
모랄레스의 말에 겨울이 고개를 기울였다. 생소한 호출부호다.
“골든 이글?”
“어…….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칼 빈슨, 칼 빈슨이랍니다. 항모전단이군요. 추가적인 지원에 관해 통보할 사항이 있다는데요?”
전투를 끝내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들어온 연락이었다. 아무래도 마리골드, 혹은 그 윗선에서 고공에 무인기를 띄워놓고 교전과정을 지켜본 모양. 이는 단지 겨울이라서가 아닐 것이었다. 프레벤티브 스캘핑 작전의 중요도를 감안하면, 모든 보고가 실시간으로 백악관까지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 예컨대 작전명 넵튠 스피어, 파키스탄에서 빈 라덴을 사살할 때도, 미국 대통령이 참모들과 함께 실시간으로 전투현황을 지켜봤었으니까.
너무 위험해 보였던 걸까?
당사자인 겨울에겐 치명적인 공세가 아니었으나, 지켜보는 입장에선 많이 달랐을 것 같다. 고작 다섯 명이서 특수변종이 포함된 수백 개체의 포위공격을 받은 셈이니까. 이번 작전에 참가한 임무부대들은 무서운 속도로 소모되고 있다. 그만큼 많은 숫자를 구출하긴 했어도, 단기간에 회복이 불가능한 정예 병력의 손실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요청하지도 않은 지원 강화는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고작 다섯 명에게 공격헬기 편대가 붙는 것만 해도 대단한 건데…….’
아무튼 준다는데 사양할 필요는 없다.
통신을 받아보니, 진입 시간에 맞춰 호위함들이 순항 미사일(토마호크)을 날려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설마 오폭 가능성을 감수하겠다는 건가? 매복한 변종집단 규모가 클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잠시 고민하는 겨울이었으나, 이어지는 통보가 우려를 불식시켰다.
“골든 이글, 특수목적탄이라면 정확히 어떤 종류인지?”
[채프(Chaff) 탄두와 흑연 필라멘트 탄두다. 데이비드의 이동경로를 제외한 모든 범위에서 트릭스터의 통신을 억제하고, 그 외의 능력 또한 저하시킬 수 있을 것이다.]
채프는 알루미늄 박막을 뿌려 전파를 산란시키는 수단이었다. 즉 숲에 얼마나 많은 숫자가 숨어있든 트릭스터의 신호를 받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뜻. 또한 전파가 주 시야인 트릭스터는 채프의 영향권에서 장님이나 다름없게 될 것이었다. 숲의 어둠을 맨눈으로 헤아리긴 어렵다.
필라멘트 탄두는 낯설다. 거미줄 같은 흑연 섬유를 뿌려, 트릭스터가 어디를 가더라도 몸에 휘감기게 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로써 생체전기를 공격수단으로 쓰긴 어렵게 된다. 채찍처럼 휘두르는 팔이라던가. 옆에서 듣던 모랄레스는 기가 막힌 표정이었다.
“토마호크를 여섯 발이나……. 고맙긴 하지만, 차라리 그 값의 절반이라도 저희들에게 나눠주면 정말 목숨 걸고 싸울 텐데 말입니다. Damn, 천만 달러면 평생을 일해도 못 벌 돈인데.”
다른 대원들이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재블린)을 쏘면서 “이야, 저기 20만 달러가 날아간다!”라고 소리치는 사람들다운 농담.
미국 정부도 악에 받친 느낌이다. 예산 걱정도 많을 텐데, 값비싼 무기체계를 아낌없이 써버린다. 하기야 인류의 존망이 걸린 국면이자, 쓰기를 망설이다가 쓸 사람이 없어질 위기이긴 하다. 이 작전으로 구원받을 무수한 인명은 그 이상의 가치이고.
교신을 마친 뒤, 겨울은 달이 없는 새벽을 기다렸다.
시간과 함께 별자리가 흘렀다. 간헐적으로 괴성과 비명이 이어지던 밤이 난데없는 굉음에 흔들린다. 노이즈 메이커가 작동된 것. 공격헬기 편대가 접근중이라는 의미였다.
이어 제트 엔진의 소음이 뒤섞였다. 서쪽 하늘에서 다가오는 광점들이 보인다. 퍼엉, 펑. 별빛 천구 아래 여섯 발의 미사일이 동시다발적으로 깨졌다. 희미한 백색 섬유가 광범위하게 흩어지고, 자그마한 낙하산에 매달려 바람을 타는 다수의 탄자들로부터 은빛 가루가 분수처럼 뿌려지는 광경. 근 2톤의 알루미늄 분말은 정해진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살포될 것이다.
변종들의 변이에 대응하는 인간의 지혜.
“가죠. 이렇게까지 도와주는데, 이 기회에 사냥을 끝내버리자고요.”
출발 직전 산탄지뢰들을 폭파시켰다. 자그마한 쇠구슬 수천 개가 충격파와 더불어 넓은 전면을 휩쓸었다. 도사리고 있던 역병들이 끔찍한 비명을 지른다. 거기에 대고 고속유탄발사기의 잔탄을 모조리 퍼붓는 알레한드로. 탄약을 남기고 갈 순 없었다.
겨울이 고삐를 측면으로 틀었다.
“우회합니다. 놈들이 공백을 메우려고 할 거예요.”
초연 섞인 바람결에 짙은 악취가 밀려온다. 포위망에 생긴 구멍을 막으려는 움직임들. 그러나 그로 인해 오히려 주변의 밀도가 낮아질 터. 반원을 그리며 움직인 겨울이 손을 들어올렸다. 엄폐물 삼은 덤불 너머, 우르르 모여드는 변종들이 모여들었다. 규모가 상당하다.
혹시 저 가운데 사냥개가 있을지도 모른다.
저 많은 수를 다 쏴죽일 필요는 없다. 구울과 사냥개를 사살하면, 트릭스터의 장악력만으로는 섬세함이 떨어질 수밖에. 한편으로 자신 있게 쫓아올 정도는 남겨둬야 한다. 최종국면에서 교활한 것들이 살상범위에 들어오게끔.
구울은 멀리서도 유달리 창백하지만, 문제는 사냥개, 스토커는 일반적인 변종과 외견상 차이가 적다. 멀리서 다수에 뒤섞여있으니 냄새 맡는 품도 구분이 안 되고.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겨울이 문득 바람 불어오는 방향을 응시한다.
두두둑!
순간적인 조준사격. 사나운 밤을 경계하여 날아올랐던 새가 즉사했다. 명중탄이 세 발이었으므로 적잖은 피와 깃털이 뿌려진다. 그 냄새를 바람이 확산시키는 순간, 변종 무리에서 몇 놈이 즉시 방향을 꺾었다. 그럼 그렇지. 겨울이 그 소요를 겨누어, 한 호흡에 방아쇠 일곱 번을 당겼다. 마지막으로 구울의 미간에 한 발을 꽂는다. 회백색 시체의 고개가 확 꺾어졌다.
“이제 달려요!”
Hooah! 노이즈 메이커의 메아리 속에서는 목소리를 줄일 필요가 없었다. 길라잡이를 모두 잃고 모든 방향으로 엇갈리는 무리를 등진 채 질주하는 다섯 기병. 생존자가 있을 곳으로부터 미묘하게 어긋난 진로를 잡는다. 그쪽이야말로 함정의 중심일 테니까.
갇혀주기야 할 것이다. 예정된 시간, 예정된 위치에서. 그 때까지는 이리저리 흩어놓고,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숨바꼭질을 벌여야겠지.
끼에에에엑!
곳곳에서 숨어있던 괴물들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체계적이지 못하다. 겨울이 전방을 쓸어버리는 사이, 쾅쾅쾅쾅! 묵직한 총성의 연쇄가 흉곽을 조인다. 대원들이 부무장으로 휴대한 자동 샷 건(AA-12)이다. 한 때 조안나가 여객선에 들고 들어갔던 바로 그 무기. 완전자동으로 갈겨대는 산탄 서른두 발은 근거리 교전에서 재앙에 가깝다. 좌우에서 육박하던 변종들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무릎에 맞으면 관절이 박살나고, 복부에 맞으면 내장까지 파열된다.
위?
전신이 저릿거릴 정도로 강렬한 경고. 겨울이 급격히 기수를 트는 순간, 전방의 수관(樹冠), 무성한 가지와 불투명한 잎사귀들의 장막 위쪽으로부터, 자그마한 몸뚱이들이 농익은 열매처럼 떨어져 내렸다.
“으악! 뭡니까 저건!”
누구 비명인지 분간도 안 간다. 말 한 필은 거의 넘어질 뻔했다.
깨액! 끼익끼익! 애앵애애앵!
징그럽게 울면서 떨어져 죽는 것들의 정체는, 노란 농포가 똥똥한 역병의 아기들이었다. 전에 본 것과는 어딘가 조금씩 달라진 형상. 수십 미터를 추락하여 퍼억 퍽 부서질 때마다 강산성의 체액이 폭발한다. 퍼진 자리마다 땅이 타들어가며 자글자글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둔탁하고 질퍽한 추락이 줄줄이 이어졌다.
겨울이 눈가를 살짝 찡그린다.
이거였구나. 상황을 감안해도 어쩐지 숫자가 적다 싶었는데, 노리던 게 이거였어.
쓰러진 나무를 돌아가야 할 상황에 정지된 기동. 기동대원들이 측후방에서 밀려드는 것들을 떼로 사살하는 사이, 겨울은 수류탄을 연속으로 「투척」했다. 맹렬하게 치솟아 전방의 높은 연속선, 불투명한 수관을 후려치는 네 번의 폭발. 터질 때마다 어린 괴물들이 단말마의 비명을 내질렀다. 그 아래로 유례없이 걸쭉한 산성비가 쏟아져 내렸다.
그 밀도가 썩 높지는 않다. 그러나 면적을 감안하면 무시 못 할 숫자였다.
단순히 숫자만 많은 매복이라면 차라리 대비한 범주인데.
Reload! 재장전중이니 엄호해달라는 외침. 그러나 거의 동시에 탄창을 비운 병사들에게 화력공백이 생긴다. 총성이 잦아든 만큼 역병이 가까워졌다. 어지러워진 손들이 시간을 끌었다. 고삐를 잡아채기도 늦다. 말 위에서 드러누운 겨울이 뒤집어진 시야에 대고 연사를 퍼부었다. 철컥! 약실이 비었다. 재장전에 반 호흡. 다음 10초간 열일곱 개의 머리에 구멍이 났다.
“전방으로!”
앞장서서 박차를 가하는 겨울. 한 차례 해로운 비가 내린 땅을 지나, 수관이 엷어지는 길을 따라 달린다. 자연히 잦아지는 방향전환과 느려지는 속도. 이는 또한 교활한 변종이 예견한 경로일 것이었다. 벗어나기 위해서는 수시로 수류탄이 필요했다. 그러고도 쓰러진 거목에 여러 차례 가로막힌다.
“에일! 유탄!”
짧은 명령과 손짓에 알레한드로가 대각선으로 유탄발사기를 조준했다. 신경질적인 연사에 인공강우가 쏟아진다. 그 아래에서 달려오던 시체들이 녹아내렸다. 그러나 파편을 피한 하나가 인마를 향해 낙하한다. 터지기 직전인 유아, 짧은 다리를 낚아채 확 던지는 겨울. 목표였던 구울은 날렵하게 몸을 낮췄고, 그 뒤에 머물던 일반 변종 셋이 허공에서 파열하는 액상의 죽음을 뒤집어썼다. 꺄아아아아악! 감염된 절규 중에서도 특히 끔찍한 불협화음이었다.
두두둑! 두두두둑!
가지가 성긴 자리라고 안전한 게 아니다. 수령 수백 년의 고목에 붙은 살덩이들, 더러운 열매들이 정교한 사격에 꿰뚫린다. 죽죽 새는 과즙은 풀이 죽은 폭발이었다.
“수류탄 잔량 확인해요!”
겨울의 외침에 이어지는 보고들. 다섯, 넷, 다섯, 일곱. 일반적인 교전이라면 충분하고도 남았을, 안장 가방에 그득 담아온 폭발물이 벌써부터 바닥을 드러내는 중이다. 유탄사수인 알레한드로는 탄창을 채울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달려온 길은 8자의 형상이었다. 이미 개척한 길을 트랙처럼 달리는 것으로 시간을 끌 요량이다. 공격헬기 편대와 합류할 때까지.
전방의 무수한 거목들 사이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일어난다. 50미터. 바람의 방해를 받지 않을 때, 그럼블의 후각이 인간을 감지하는 범위다.
“엎드려!”
겨울의 외마디 외침에 반사적으로 낮아지는 병사들. 그 위로 강속구가 지나갔다.
산성 변종들이 그럼블의 다리를 기어오르는 광경이 보인다. 어깨를 타고 넘어서, 굵은 팔을 지나 스스로 ‘장전’되는 것. 투척 패턴과 산성 변종의 시너지였다.
그러나 어설프다.
두두두둑!
또 한 번 던지려는 찰나에 이루어진 겨울의 조준사격. 투사체로 잡혀있던 녀석은 물론이거니와, 반대 쪽 어깨에 있던 녀석, 다리를 기어오르던 녀석들의 농포가 연속으로 터져나간다. 산성 체액에 흠뻑 젖은 대형 변종이 괴성을 내질렀다. 그 순간에 이미 대물저격총을 겨냥한 겨울이었으나, 기습적으로 뚝 떨어지는 생체 폭탄들을 먼저 쳐내야 했다. 타앙! 탕! 비대한 몸통에 비해 자그마한 머리 한 쌍이 사라졌다. 머리가 없으니 터지는 타이밍이 어긋난다. 철갑고폭탄에 관통당한 충격으로 비껴나간 몸뚱이들이 뒤늦게 팽창했다.
크아아아!
포효를 마친 괴물이 전속력으로 쫓아온다. 온갖 나무에 부딪히고, 그 외의 장애물을 뭉개버리면서. 몸 절반이 지글거리는 와중이었다. 겨울이 원격 신관이 달린 TNT 바(폭탄)를 집어던졌다. 멀쩡한 놈이라면 모를까, 외피에 문제가 생긴 지금은 통할 가능성이 높다.
달칵. 스위치를 누르자 숲이 번뜩인다. 중심을 잃은 거체가 요란하게 나뒹굴었다. 가속도 그대로 굴러서 도랑에 처박힌다. 죽지 않았어도 여유는 벌었다.
정해진 길을 달리는 걸 파악했는지 변종들의 밀도가 높아졌다. 시계를 본 겨울이 마침내 헬기 편대와 합류할 지점으로 기수를 돌렸다. 겨울이 대원들을 격려한다.
“조금만 더 버텨요! 이제 금방이니까!”
“저기! 트릭스터 아닙니까?!”
소리친 슐츠가 10시 방향으로 연사를 긁는다. 기형적인 실루엣이 휙 지나갔다. 실타래 같은 것이 잔뜩 엉겨 붙어 기괴한 느낌이었다.
얼마 달리지 않아 탁 트인 하늘이 다가왔다. 어쨌든 트릭스터 또한 기병대를 공터로 밀어 넣을 계획이었던 것 같다. 산성비를 피하려는 인간들은 어쩔 수 없이 나무 없는 곳을 찾아가리라고. 들키지 않을 거리를 둔 또 다른 매복이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주면, 날 감염시키고 싶은 욕심도 들겠지.’
겨울 이상으로 우수한 숙주는 없다. 지나간 종말들, 사망한 후의 경과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불가피하게 감염으로 죽은 겨울의 몸은 특히 더 강력한 괴물이 되곤 했다.
트인 하늘 아래 서는 즉시, 안장에서 신호탄 발사기를 뽑아 새벽의 중심을 향해 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적외선 조명은 예정대로 도착했다는 신호였다. 혹시나 헬기가 한발 앞서 등장하면 곤란하기에 정한 약속이다.
“여기서 버팁니다! 앞으로 30초!”
겨울의 외침에 병사들의 사선이 사방으로 벌어진다.
“Fuck! 더럽게 많군! Frag out!”
모랄레스가 남아있는 수류탄을 모조리 투척했다. 수십 개의 그림자가 쓰러지고, 어둠의 저편으로부터 그 이상이 몰려들었다. 흩어져 느슨하던 포위가 빠르게 두꺼워지는 과정. 바로 뛰쳐나오지 않는 행태가 사냥감 주변을 도는 늑대 떼처럼 영리했다. 축차 투입으로 소모하기보다는, 실패할 가능성이 없어졌을 때 동시에 들이쳐서 끝내려는 것 같다.
떨어진 위치의 생존자들은 이미 관심 밖일 것이다. 나중에 쫓아가서 죽이면 그만이니까.
마침내 변종의 물결이 범람하는 순간.
이제까지와는 다른, 거센 바람이 밀려왔다.
울창한 삼림의 작은 공백지대, 가로세로 채 100미터가 되지 않는 범위에 네 대의 공격헬기가 출현했다. 아파치 편대의 정지비행은 복좌로 앉은 파일럿들이 보일 만큼 고도가 낮았다. 트릭스터의 등장 이래 이런 식의 저공비행은 없었던 일. 역병의 범람이 멈칫거린다. 이는 곧 교활한 변종들의 혼란이었다.
[데이비드 액추얼. 수고했다. 지금부터는 해머 폴이 교전하겠다. 파편이 튈지도 모르니 자세를 낮추도록. 손 놓고 구경만 해도 좋다.]
무전을 들은 대원들은, 극도의 긴장감으로 손을 떨고 숨을 몰아쉬면서도 반가움을 지우고 아니꼬움을 드러냈다. 새끼들, 잘난 척 쩌네. 겨울이 무전기에 대고 경고했다.
“해머 폴! 그럼블에 주의해라! 체액이 산성인 변종을 투척한다!”
[산성……? 입감했다. 그 전에 뭉개버리겠다.]
직후 어떤 대화도 불가능해졌다. 헬기 편대가 쏟아내는 고폭탄 사격이 그 외의 모든 소리를 소거해버린 탓. 겨울은 엑셀과 함께 누웠고, 대원들도 각자의 말을 눕힌 뒤 바싹 엎드렸다. 수류탄에 필적하는 폭발이 초당 40번씩 번뜩인다.
그 와중에 가냘프게 들리는 괴성. 그럼블이다. 초토화되는 숲과 박살난 육편을 짓밟고 튀어나오는 괴물을 향해, 헬기 두 대가 거의 동시에 미사일을 발사했다. 140센티 두께의 철판을 관통하는 과잉 화력이 베타 등급의 물리 내성을 간단하게 짓이겨버린다.
배후에서 트릭스터가 튀어나왔다. 그럼블을 방패로 접근한 모양. 우거진 나무가 자폭의 장애물이라고 여긴 듯 하다. 바바바박 터지는 기관포의 사선이 팔다리를 훑었으나, 기어코 불가시의 충격파를 터트리는 괴물.
헬기 편대가 한순간 비틀거렸다. 사격이 끊어지고, 고도가 1미터쯤 떨어진다.
단지 그뿐.
회로마다 강제방전장치를 떡칠한 공격헬기들은 수 초 사이에 정상화되었다. 마리골드가 작정하고 보낸 실험기들이었다.
[언제까지 당하고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냐. 이 등신 새끼들아.]
또 한 차례의 충격파가 해머 폴 편대를 흔들었다. 또 다른 트릭스터의 자폭.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흩어지는 변종들을 향해 로켓 포화가 쏟아졌다. 헬기 넷이 싣고 온 로켓은 300발에 달했다. 폭발의 연속선이 숲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알레한드로가 들리지 않는 함성을 지른다.
‘아직도 남아있는 트릭스터가 있어.’
겨울은 변종들의 움직임을 읽었다. 머리가 아예 없어졌다면 몰살에 개의치 않고 달려들어야 정상이다. 지금은 혼란스러울지언정 어떻게든 뒤로 빠지는 중. 움직임을 보건대 복수는 아닐 것이다. 침묵하는 하나는 예외로 두어야겠지만.
끝도 없이 이어지던 포화가 잦아들었다.
[지원임무 종료. 데이비드 액추얼, 해머 폴은 이제 빠지겠다. 건투를 빈다.]
“해머 폴, 훌륭한 지원에 감사한다.”
답례를 보낸 겨울이 바로 추격에 나섰다.
아무래도 살아남은 트릭스터가 정상은 아닌 듯, 모든 채널에 걸쳐 단말마가 묻어나는 잡음이 요란하다. 신호가 강해지는 방향을 쫓은 결과, 1300년 수령의 세쿼이아 앞에서 적은 무리에게 부축 받는 특수변종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달려드는 일반 변종들을 사살한 겨울이 대원들에게 묻는다.
“저거 죽이고 싶은 사람 있어요?”
서로 시선을 교환하던 대원들 가운데, 알레한드로가 나선다.
“제가 해도 됩니까?”
“그럼요.”
라틴계의 일병이 무력화된 트릭스터를 향해 조준선을 정렬했다.
“내가 이 대사를 꼭 한 번 해보고 싶었지. Yi-pee-ki-yay, motherfucker.”
생애 최후의 절규를 내뱉는 괴물을 향해, 병사는 탄창 하나를 모조리 비워버렸다.
============================ 작품 후기 ============================
원래 지난 주 금요일에 썼던 분량인데, 네이버와 연재일을 맞추기 위해 오늘 올리게 됐네요.
오늘 내로 한 편 더 올리게 될 것 같으니 Q&A는 다음 편에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