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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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mission, 인공지능의 마음 (1)
본사의 인공지능 엔진 「트리니티」는 세 개의 핵심 모듈을 통해 가상의 인격을 구현합니다. 지금은 그 중 하나, TOM 판독 모듈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TOM(Theory Of Mind : 마음 이론)은 우리의 뇌에 있는 추론기관으로서, 다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인지하고 이해하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오해를 감수하고 쉽게 설명하면, 「내가 특정한 말과 행동을 했을 때 상대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예측하는 본능인 것이죠. 당연히 이성적인 판단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TOM의 활동은 당신의 무의식에서 이루어집니다. 이 기관이 없다면 당신은 다른 사람과 공감할 수 없을 것입니다. TOM 손상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자폐증입니다. 따라서 TOM은 곧 마음의 일부입니다.
아시다시피 인공지능에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이 사람과 꼭 닮은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상당부분 TOM 판독기술 때문입니다. 당신의 이성이 인공지능에게 말을 걸 때, 당신의 마음은 인공지능의 「가장 사람다운」 반응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읽고 반영하는 것이죠. 어떤 의미에서 인공지능은 당신의 공감능력과 무의식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고로 인공지능의 반응은 경험하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릅니다. TOM의 발달은 선천적인 자질과 후천적인 학습에 따라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네트워크상의 다른 접속자로부터 판독 결과를 제공 받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당신의 데이터입니다.
인공지능이 최대한 사람다운 반응을 보이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중요합니다.
첫 번째는 당신의 TOM 등급입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심도 있게 이해하고 구상할 수 있는가. 기관 자체의 성능이라고 봐도 되겠지요. 만약 당신이 지닌 TOM 기관의 등급이 매우 낮다면, 죄송하지만 당신이 상대하는 모든 인공지능은 수준 이하의 머저리 같은 언행을 보여줄 것입니다. 당신이 경험하는 가상현실은 정말로 재미가 없겠네요. 아니, 어쩌면 재미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온 세상이 덤 앤 더머 투성일 테니까요!
두 번째는 당신의 TOM 적성입니다. 일부 사람들의 TOM 기관은 판독기가 읽기 어려운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을 TOM 적성이 낮다고 표현합니다. 적성이 낮으면 읽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예를 들어 등급은 높은데 적성이 낮을 경우, 반응은 사실적이겠으나 대화 도중 잦은 공백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한 마디 건네고 한 세월, 한 마디 받고서 한 세월이 반복되겠지요. 현 시점에서 인공지능과 노 딜레이 상호작용이 가능한 가상현실 이용자는 전체의 약 7.5% 정도로 추산됩니다.
요즘 사람들은 공감능력이 부족하더라고요.
이런 걸 굳이 알려드리는 이유는, 인공지능의 품질 문제로 항의전화를 주시는 분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건 100% 고객님 과실입니다. TOM 기관, 공감능력 발달을 위해 노오오오력을 하셨어야죠. 접속기 성능이나 최적화 문제가 아니니까 자꾸 전화하지 말아주세요.
정 품질이 불만이시라면 그냥 다른 사람의 가상현실 방송을 시청하시기 바랍니다. 어차피 「감각동기화」 기능이 있으니 느끼는 건 다르지 않아요. 답답하게 자기 세계관을 고집하느니 차라리 그 편이 낫습니다.
지금까지 낙원그룹 가상현실사업부에서 알려드렸습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파소 로블레스 (9)
연방재난관리청(FEMA)은 본래 미국 대통령 직할 독립기관이었다. 9.11 테러 이후엔 국토안보부 산하로 편입되었다. 그래서 재난관리청의 문장도 국토안보부 것이었다.
이상이 지력보정에 의한 증강현실 UI, 홀로그램 안내문이다.
겨울은 붉은 얼룩 가득한 트레일러 트럭에서 이 문장을 찾아냈다. 가까이 어정거리던 감염변종은 푸른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등짝에 FEMA Corps 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눈길 마주친 즉시 달려들었던 변종은, 머리가 깨진 채 도로 위에 퍼질러졌다. 시체를 뒤져보았지만 쓸 만 한 것을 찾을 수 없었다. 트럭은 비어있었다. 운행은 가능한 상태였고, 운전석에 열쇠도 꽂혀있었다. 연료잔량이나 배터리 방전여부까지 꼼꼼하게 확인한 결과 이상은 없다.
보건소를 지나 처음 발견한 FEMA 차량이다. 필시 코헨 병장이 이 부근에 있으리라. 가까운 건물부터 뒤져봐야겠다고 생각하다가 멈칫, 주위를 살핀다. 묵직한 진동. 한 번이 아니라, 일정 주기로 이어지며, 점점 더 크게 다가오는…….
‘발소리.’
허리에 끼워둔 권총을 뽑는다. 쿠웅, 쿠웅. 모퉁이 돌아 나오는 육중한 실루엣. 거대하다. 인간보다는 유인원에 가까운 모습. 특수변종, 「그럼블」이다. 체고가 단층 건물의 지붕보다 높고, 두껍기로는 장갑차를 능가했다. 변종 다수가 근처를 맴돈다.
집 그림자에서 쑥 나오는 게, 마치 매복이라도 했던 것 같다. 녀석은, 유달리 발달한 코를 벌름거리며 주위를 둘러본다.
겨울은 트럭에 기대어 노출을 피했다. 이걸로 충분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럼블의 후각은, 비록 풍향의 영향을 받으나, 무풍지대 기준으로 반경 50미터의 인간을 감지한다. 냄새는 나는데 보이지 않을 경우, 킁킁거리며 천천히 접근하는 게 패턴이었다. 공략법을 모르거나, 충분한 전투력이 없는 상황에서는, 은폐를 유지하며 도망치는 게 최선이다.
죽일 생각으로 권총의 격철을 당긴다. 준비 없이 발사되는 더블액션 권총일지라도, 해머를 당겨두면 방아쇠 압력이 감소해서 좋다. 명중률을 생각한 조치. 사격기술은 충분하지만, 혹시 모를 일이다.
기다리는 사이, 그럼블은 냄새를 쫓아 꾸준히 다가왔다. 악취가 코를 찌른다. 뭉그러진 거체의 냄새. 이 냄새에 긴장하면, 거리 감각이 왜곡된다. 거리를 잘못 재고 나갈 경우 힘든 싸움을 하게 될 터. 소년은 침착하게 기다렸다.
쿠웅, 쿵. 톤 단위 체중이 움직이며 내는 소리가 심박처럼 몸을 울리며 크기를 키워간다. 겨울은 한 손에 권총을, 다른 손에는 안전클립과 안전핀을 제거한 수류탄을 쥐었다. 양손을 머리 높이로 든 자세. 눈을 감고 때를 기다린다. 경험을 토대로 거리를 가늠했다. 멀어도, 가까워도 위험하다.
하나, 둘, 셋.
겨울은 몸을 휙 돌리며 사각에서 벗어난다. 일그러진 거체가 홱, 놀라운 속도로 반응했다. 맹수의 노오란 눈 한 쌍이 겨울에게 못 박힌다. 푸쉬익 내쉬는 숨. 증기가 새는 것 같았다.
그럼블의 이동속도는 느리지만, 「질주」만큼은 고속이다. 어지간한 차량과 맞먹는다. 그럼블은 사냥감이 일정거리 이상 떨어져있을 때, 손닿는 거리에 집어던질 물건이 없다면 무조건 「질주」를 사용한다.
겨울이 권총을 겨누었다.
[크아아아-]
퓩!
[-아앍!]
포효하던 녀석이 입을 텁 다물었다. 짧은 뒷걸음질. 목구멍에 박힌 총알 탓이다. 물리내성을 지닌 괴물의 유일한 약점.
그 틈을 타 겨울은 주위를 에워싼 일반변종들을 겨냥했다. 연속사격. 방망이 맞은 수박처럼 깨져나가는 머리들. 그 사이 정신 차린 그럼블이 다시 「질주」를 준비하며 포효했다.
[크아아아아아-아앍?!]
목젖 부근에서 피가 튀었다. 다시 한 보 물러나는 대형 변종. 겨울은 차분하게 다가갔다. 4미터 이내로 들어가면 근접전투 패턴이 작동한다. 그 경계선 바깥에 머무는 요령이 중요했다. 실패와 죽음으로 학습한 거리 감각이었다.
겨울이 반경 4미터 안에 들지 않았으므로, 충격(Stun) 상태에서 회복한 그럼블이 「질주」 자세를 잡는다. 「질주」 직전, 그럼블은 반드시 소리를 지른다. 이 때 구강 내 피격판정이 발생하면 패턴이 중지되고, 잠시 무력한 상태가 된다. 다른 공략방법은 난이도가 높다. 그래서 다수가 동시에 등장하면 난이도가 급상승한다. 목구멍은 작은 표적이다. 여러 마리를 동시에 견제하기가 쉽지 않다.
고개를 흔든 녀석은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이번에 한해 겨울의 행동만 다르다. 수류탄을 던졌다. 사람 하나 그대로 삼킬 만큼 큰 입이라, 목구멍은 농구공이 들어가고도 여분이 남는다. 수류탄이 목젖을 치고 들어간 뒤 겨울은 정조준 사격을 가했다. 타앙! 피가 튀었다. 놈은 또 입을 꾹 다물고 휘청거리며 물러났다.
끝이다.
[퍼엉!]
살과 근육에 갇혀 눅눅해진 폭음. 목구멍을 넘어가 터진 폭발이 강력한 변종의 체내를 갈기갈기 찢었다. 폭압에 튀어나온 안구가 신경에 매달려 대롱거리고, 피부 썩은 거인은 폐병 걸린 인간처럼 피를 토했다.
케엑! 케엑! 그웨엑!
혀를 빼고서 피를 게워내는 와중에, 겨울이 다시 수류탄을 까 넣는다. 그것은 끈적한 혓바닥에 붙었다. 그냥 두면 위험하다. 벌어진 입 안에 총탄을 두 발 연속으로 박는다. 변종이 입을 다물고 침을 꿀떡 삼켰다. 수류탄의 지연신관은 위장에서 타들어갔다. 두 번째 체내폭발. 썩은 피부가 꿀렁 물결친다. 거대한 체구가 중심을 잃더니, 무릎을 꿇고, 흔들리다가, 천천히 기울어져, 바닥에 충돌한다.
쿠궁. 건물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겨울은 여상스런 표정이었다. 익숙한 입장에서, 하나 뿐인 그럼블은 손쉬운 사냥감이었으니까. 그는 들어온 경험치를 확인한다. 이른 시기에 특수변종을 잡으면 가산 경험치가 더해진다. 다른 인물이 퇴치하기 전, 즉 세계관 내 해당 특수변종을 처음으로 물리친 것으로 판정되면, 더더욱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확인해보니 둘 모두에 해당되었다. 흡족한 수준의 보상을 획득했다. 한 놈 더 만나도 좋을 텐데. 경험 없을 때와 천양지차의 생각을 품고서, 겨울은 가까운 건물을 수색하러 들어간다.
경험치 여유가 많으니 「추적」 기술에 소극적인 투자를 해본다. 4등급. 겨울은 곧장 그 효과를 체감할 수 있었다. 증강현실 인터페이스가 시선 닿는 단서마다 강조효과를 부여했다. 눈의 초점이 그 위에 머물면, 자세한 내용이 출력된다. 옅은 먼지 위로 난 발자국을 발견하기도 쉬워졌다. 강조효과가 없었다면, 자세히 보지 않는 한 몰랐을 흔적이다.
발자국을 따라간 끝에 나타난 문 하나. 두드려보았다.
“코헨 병장님? 안에 계십니까?”
그러자 안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다리 불편한 누군가가 억지로 일어서는 소음. 과연, 떨리는 목소리로 대꾸가 돌아온다.
“바나나, 너냐?”
“이름으로 불러주시면 좋겠네요. 아무튼 맞습니다. 약속대로 구해드리러 왔어요.”
덜컥! 문이 열리고, 시선이 마주친다. 전기 끊긴 실내에 그림자 드리워져, 어두운 허공에 두 눈 떠있는 느낌이다. 흑인이라 더하다. 모르고 열었으면 놀랄 뻔했다. 덩치 값 못하고 눈물 줄줄 흘리며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오, 신이시여. 이렇게 무모한 애송이를 세상에 보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자꾸 그러시면 버리고 갑니다.”
“키만 작은 게 아니라 속도 좁다니!”
“이 사람이?”
만담은 여기까지. 비틀거리고도 기어코 일어난 그가 와락 끌어안는다.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한 척 하기도 한계인 모양. 사람을 다시 만난 것 자체가 기뻐서 어쩔 수 없는 사람의 행동이다. 신이시여, 신이시여, 같은 말을 미친 사람처럼 되뇌었다.
실컷 울고서 겨우 떨어진 코헨은 그래도 여전히 떨고 있었다.
“호, 혹시 오는 길에 괴물 없었어? 가까운 곳에서 그 놈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는데?”
“전쟁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 왜 그렇게 겁이 많아요?”
“전쟁이면 차라리 낫지! 내가 쏘면 죽는 놈들이 적이니까! 하지만 그건 아냐! 총알이 안 박힌다고! 그놈과 마주치면 우린 죽은 목숨이야!”
겨울이 대수롭지 않은 태도로 대꾸했다.
“죽였어요.”
“뭐?”
얼빠진 코헨을 두고 겨울은 방 안을 둘러보더니 의자 하나 끌어왔다.
“앉아 봐요. 다리를 어떻게 해야 나가든지 말든지 할 거 아녜요?”
일단 시키는 대로 의자에 앉아 다리를 내민 코헨은 저 앞에 꿇어앉아 응급처치를 시작하는 소년을 혼란스럽게 바라보다가 다시 한 번 물었다.
“이봐, 죽였다는 게 무슨 말이야?”
“주둥이에 수류탄 까 넣었어요. 두 번 터지니까 죽더라고요.”
“…….”
중간에 보건소에 들르길 잘했다. 코헨의 종아리는 퉁퉁 부어있었다. 물에 불린 고기 같다. 거즈를 감고, 부목 닿을 자리에는 탈지면을 두껍게 넣고, 부목 대용으로 스테인리스 심을 대고서 압박붕대로 단단히 묶는다. 골절부위 위아래로 버텨주지 않으면, 부목을 대는 의미가 없다.
숙련자 레벨의 응급처치를 멍하니 받고 있던 병사. 그는 미심쩍은 표정을 짓는다.
“놀리지 마. 나 안심시키려고 구라 치는 거지?”
“노란 안구에 붉은 눈동자, 체고가 대략 5미터 쯤 되어보였고, 좌우로는 험비 가로 폭보다 퍼졌던데요. 전체적으로 보면……피부 썩은 근육질의 거대 유인원? 뭐 아무튼 제가 본 건 그렇게 생겼는데 아니라고 주장하신다면야 더 할 말 없고요. 어차피 나가면 시체를 직접 보게 될 테니까, 여기서 입씨름할 필요 없죠. 다 됐습니다. 목발 짚고 일어서보세요.”
코헨이 일어나며 끙 하는 신음을 흘렸다. 부목 대고 붕대 감아도 결국 응급처치일 뿐이다. 한 손에는 무기를 들어야 한다. 그런 관계로 목발은 한 짝만 챙겨왔으니, 조심스럽게 움직이지 않으면 다친 쪽 다리에 부하가 실리기 쉬웠다.
“가시죠. 가는 길에 애쉬포드 하사님도 챙겨야 하니까, 늑장부려서 좋을 것 없어요.”
태연하게 앞장서는 소년을 보고 병장은 여전히 미심쩍다. 이걸 믿어야 하나?
진실은 나가자마자 밝혀졌다. 코헨 병장은, 축 늘어진 거체의 실루엣을 보자마자 Oh Shit! 하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비정상적으로 팽창한 근육 때문에, 죽어서도 쓰러지지 않은 그럼블 탓이다. 보고 놀랄 법 했다.
“죽었다니까요.”
자, 하고 손을 내민 겨울에게 의지하여 일어나는 코헨. 겁먹은 얼굴로 그럼블 있는 쪽을 기웃거린다. 겨울이 태연하게 그 옆으로 가서 보란 듯이 발로 찼다. 그제야 코헨은 그 괴물이 죽어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입이 한층 더 걸게 변한다.
“미쳤어! 너 이 자식 졸라 미쳤다고! 세계 최고의 니미 씹할(mother fucking) 바나나야!”
슬랭의 어감에 익숙하지 않으면 욕으로 들려도 이상하지 않을 강렬한 찬사였다. 여기서 니미 씹할은 그냥 겁나 끝내준다는 뜻일 뿐이었다.
사실 흑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이런 말을 쓰는 건 아니다. 슬럼가 거주민들의 질박한 언어로, 동일한 환경에선 백인도 같은 말을 쓴다. 소득수준으로 인한 문화적 소외였다.
그래도 바나나는 좀 그렇다. 마커트 대위만 없었다면 그러려니 했겠는데.
“자꾸 바나나라고 부르면 저도 초코 볼이라고 부릅니다?”
“그거 좋지!”
검은 피부에 대머리가 초코 볼 같아서 던진 농담인데, 덥썩 받아먹는다. 이 사람 약 맞은 것처럼 들떴네. 겨울은 권총을 뽑아 그의 어깨 너머를 쏘았다. 퍽. 단발 사격. 피 튀는 소리 내고서 풀썩 쓰러지는 변종 하나. 좀 놀렸다고 겨울이 저를 죽이려는 줄 알았던 코헨이 슬며시 뒤를 돌아보더니, 목발을 겨드랑이에 끼우고 엄지를 척 세웠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름으로 불러주셨으면 좋겠네요. 제 이름, 잊지 않으셨죠?”
“잊었는데?”
코헨 병장이 겨울의 뚱한 면전에 대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봐, 내가 그렇게 머리가 좋았으면 하버드를 갔지. 한 번 듣고 어떻게 기억하겠어?”
“능청은……. 한겨울입니다. 발음하기 어려울 테니 그냥 한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어요.”
“오케이, 한. 기억하지. 근데 이거 진짜 굉장하네.”
그렇게 중얼거리는 병장의 표정이 점점 가라앉는다. 그 시선 끝엔 그럼블의 사체가 있었다.
“이 놈이 내 친구들을 갈가리 찢어 죽였어.”
“…그만 가죠. 지체할 시간 없어요.”
“…….”
겨울은 집에 들기 전 봐두었던 FEMA 트레일러 트럭을 가리켰다.
“운전 가능해요?”
“물론이지. 발 한 짝 병신이라도 운전 정도라면야.”
“잘 됐네요. 가는 길에 식량도 좀 챙겨야 할 것 같으니까요. 오면서 봤는데, 저 덩치가 설치느라 도로를 적당히 치워준 것 같더라고요. 적어도 학교 가까운 곳까진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을 거예요.”
“그거 잘됐군. 그건 그렇고……. 이봐, 한. 이대로 복귀할 생각은 안 들어?”
병장의 질문은 반쯤 자기 욕심을 채우고 있었다. 적어도, 남의 속 곧잘 꿰뚫는 겨울이 감지하기로는 그랬다. 농담처럼 던지지만, 사실 지치고 아파서 그냥 도망치고 싶다는 이기심. 자연스러운 것이니 비난하지는 않는다.
“당신 때문에 여기까지 온 제가, 두고 온 사람들이라고 버릴 것 같아요?”
“에이, 농담이었어.”
코헨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차에 시동을 걸었다. 부드럽게 떨리는 차체. 이어지는 엔진 구동음이…….
[콰앙!]
“엥?”
놀란 코헨이 어벙하게 중얼거린다.
“엔진 소리가 미쳤어! 이 자동차 고장났나봐.”
“저기요, 머리도 다치셨어요? 수류탄 터지는 소리잖아요.”
폭음이 이어졌다. 월넛 드라이브와 크레스턴 로드의 교차지점에서 서쪽으로 나아간 방향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괴성. 인간의 것이 아니다. 코헨이 한숨 쉬며 운전대를 두드렸다.
“아이고. 저런 거 하나 더 있나본데?”
“마저 잡아 죽이죠.”
겨울의 대꾸에 기가 질리는 흑형.
“와, 이 상남자 새끼.”
“직진하세요, 교차로까지. 나머지는 상황 봐서 행동하기로 하고요.”
“…….”
“뭐해요? 동료들 더 죽기 전에 서둘러야 할 거 아녜요?”
“젠장, 그래야지.”
코헨은 머리에 쓴 방탄모 한 번 주먹으로 콱 치더니 가속페달을 냅다 밟았다. 끼이익- 치솟는 RPM. 공회전에 이은 급가속이, 도로 위에 긴 바퀴 자국을 남긴다. 차량은 좌우로 휘청이며 내리막을 달리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죄송합니다. 13시 경 업로드 된 버전에는 앞부분의 Intermission이 생략되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