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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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유예 (10)
“딸이 있습니까?”
점잖은 레인저의 질문. 그린베레가 모난 얼굴로 답했다.
“아마도.”
“아마도라뇨?”
“난 딸이라고 생각하는데 걔는 아니거든.”
“그거 유감입니다.”
“별 수 없지. 내가 생각해도 난 아버지 노릇을 할 놈이 못 돼. 결혼했나?”
“마음에 둔 사람은 있습니다.”
“하지 마.”
다소 무례한 말이었으나 레인저는 딱히 불쾌해하지 않았다.
흥. 롱 대위는 코웃음을 치고 적게 남은 잔을 흔들었다.
“못할 짓이야. 남편과 아버지가 되려면 좆같은 군인 노릇을 때려 쳐야 해. 공군이나 해군처럼 물러 터진 샌님들이면 또 모르지. 하지만 넌 레인저잖아? 안 될 거야 아마. 우리 그린베레보다는 한참 모자라지만, 결국 니들도 아주 좆같은 놈들이니까. 마누라가 바짓가랑이 붙잡고 늘어져도 결국 좆같은 전우들과 좆같은 적들이 있는 개좆같은 전장으로 돌아오고 말겠지.”
“방역전쟁이 끝나면 전역해서 그 사람과 함께 농장이나 운영할까 합니다.”
“헛소리. 얼마 못가 이혼하거나, 이혼은 면하더라도 생활비 부쳐주는 노예 신세가 될 걸? 애초에 이 전쟁이 끝나기나 할지 의문이기도 하고.”
겨울은 총기를 손질하며 듣고 있었다.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무기 관리에 소홀하면 대가를 치르게 된다. 결정적인 순간의 격발불량은 생사를 가르는 사고였다. 사각사각. 양치질을 닮은 소리. 브러쉬로 분해된 노리쇠를 문지른다. 강중유에 약간의 탄매가 녹아나왔다. 간단한 손질이라 차개 핀을 뽑진 않았다.
눈으로는 대위를 보았다. 완고한 얼굴이 상처에 덮인 딱지 같았다. 두껍다. 그에게 묻는다.
“그래서 대위는 결혼을 후회해요?”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딸이 밉습니까?”
“…….”
“만약 과거로 돌아가서 낳을지 안 낳을지 결정할 수 있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거예요?”
“…….”
겨울이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우리 아버지가 당신 같았으면 좋았을 텐데.”
허. 대위가 어처구니없어 했으나, 소년으로서는 솔직한 감상이었다. 아무리 서툴러도 애정만 있으면 된다. 결국 어긋나 서로를 미워하게 될지라도, 처음부터 없었던 것보다는 낫다.
“술맛 떨어지는 이야기는 여기까지 합시다.”
불쾌하다는 듯이 어린 상급자를 힐끔거리며, 그린베레는 새로운 화제를 꺼냈다.
“그동안 잡아 죽인 변종 새끼들은 어땠습니까?”
“어떻다니, 무슨 말이죠?”
“거 왜, 특별한 뭔가가 있으면 서로 털어놔보자 이겁니다. 위에서도 알려주지 않는 사항이 꽤 많은 모양이던데, 현장에서 뛰는 사람들끼리라도 정보를 공유해야죠. 아는 게 힘이라고,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좀비들을 조져버리려면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부하들을 향해 빽 내질렀다.
“새끼들아! 내일 못 일어나는 놈은 버리고 간다! 엉덩이 간수 잘 해! 비상 걸렸을 때 비틀거리는 놈은 똥구멍에다가 총알을 박아줄 테다!”
알파 팀원들은 어둡게 웃는 걸로 대답을 대신한다. 결원이 제법 많아 보였다.
갑자기 개 짖는 소리가 섞였다. 레인저 대원들 쪽에서 나오는 한 마디. 아니 웬 개새끼가 있어? 말이 험한 것 치고 한 명이 슬그머니 일어나 기웃거리는 품이 우습다. 주머니마다 손을 넣은 끝에 초코바를 꺼냈다. 다른 대원이 지적한다. 미친 새꺄. 개는 초콜릿 먹으면 뒤져.
“특별한 무언가라.”
팔머 중위가 회상에 잠긴다.
“그러고 보니 유난히 실패작들과 자주 마주쳤습니다. 어린놈들도 마찬가지고요. 특히 어린 것들은 죄다 벗고 있었는데, 저만 경험한 건 아니겠죠.”
실패작이라는 표현에서 이미 겨울과 비슷한 「통찰」을 공유하고 있었다. 레인저 소속이라도 계급이 중위라 열람 가능한 정보에 제한이 있을 텐데, 결국 생각할 줄 아는 현장 지휘관들이라면 비슷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멀쩡한 놈들이 동쪽으로 가서 그렇겠지 뭐.”
역시나 그린베레도 마찬가지. 순서를 겨울에게 돌린다.
“멍청한 책상물림이랑 똥별들이 우리를 못 믿어서 이것저것 감추나본데, 솔직히 아니꼽습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있건만……. 소령님은 계급이 있으니 하나라도 더 알고 있을 거 아닙니까? 계급이 아니더라도 성과에 어울리는 경험이 있을 거고.”
겨울이 보건서비스 부대의 캠벨 박사에게 기대했던 바와 같았다. 어느 지휘관이든 정보수집에 대한 욕심이 있게 마련. 여기에 더해 겨울 개인에 대한 호승심도 엿보인다. 대체 이놈은 뭐가 특별해서 그렇게 전적이 화려한가. 인생 망쳐가며 군인 노릇하는 나보다도 더.
“글쎄요. 나라고 기밀에 대한 접근이 자유로운 건 아닌데다, 질문의 범위가 너무 넓은데요? 내가 아는 대부분은 당신들도 예상하고 있을 거라고 보는데, 특별히 확인이 필요하거나, 영 모르겠다 싶은 걸 말해 봐요.”
겨울의 말에 중위와 대위의 시선이 교차한다. 당연히 대위가 먼저였다.
“아까 잠깐 언급하신 험프백 말입니다. 그거 뭐하는 새끼 같습니까?”
“…….”
“항상 그렇습니다. 당장 날 쏘는 적보다는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르는 적이 더 신경 쓰이죠. 다른 특수변종들은 어떤 놈들인지 다 알지만 험프백 그 놈은 모든 정보가 기밀이니 짜증이 치밉니다. 기밀이라고 해도 돌아가는 꼴 보면 짐작은 갑니다만,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이니까요.”
“마주친 적 있어요?”
“팀원 하나가 멀리서 봤다고는 하는데 접촉을 유지하진 못했습니다. 흔적은 요란하더군요. 숲이었지만 주변에 멀쩡한 나무가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바닥까지 파헤쳐놨고요.”
“짐작하는 것부터 들어볼까요?”
“밥차라고 봅니다. 그것도 먹이는 놈들 겁나 빨리 성장시키는. 아니면 지금까지 본 것들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두꺼운 눈썹 아래에 확신이 있었다. 겨울이 끄덕였다.
“개인적으로 동의해요. 위에서 기밀로 지정한 이유도 알 만 하고요. 대부분의 병사들은, 그리고 시민들은 계속해서 죽이다보면 언젠간 끝이 날 거라고 믿잖아요. 애를 낳는다고 해도 성체가 되기까지 이십년은 걸릴 테고. 그런데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유체를 성체까지 키워내는 특수변종이 있다고 해봐요. 사기가 아주 뚝뚝 떨어질걸요. 시민들도 우울해할 거고.”
개인적으로, 라는 단서에 그린베레가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레인저 장교 또한 같은 의견이었다.
“맞습니다. 특수변종 치고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 건 단순히 숫자가 적어서가 아니라 전투기능이 없어서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치중대를 후방에 두고 보호하는 건 상식이잖습니까.”
“어이, 괴물 새끼들이 상식적으로 행동하는 것부터가 문제야.”
“나무를 괜히 갉아놓는 건 아닐 테고, 아마도 소화시키겠죠. 전 바퀴가 자주 보이는 것도 신경 쓰입니다. 이것들이 다원화된 보급체계를 구성한 게 아닌가 의심스럽습니다.”
“그것들이 벌레를 키워서 먹는다고?”
“아니겠습니까? 험프백의 능력이 짐작대로라고 한다면, 그걸 평범한 변종들에게 먹이는 것도 문제입니다. 조로증 걸린 놈들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올 테니 말입니다. 그건 그것대로 잡아먹어서 처리하는 방법도 있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숫자를 늘리기엔 불리한 방식입니다.”
“……벌레 새끼들이 사람 무서운 줄 모르는 게 이상하긴 하지.”
보통의 바퀴라면 사람을 피해 달아나야 정상이었다. 겨울은 포인트 레예스 스테이션의 제과점을 떠올렸다. 바퀴가 유난히 많았고, 펑퍼짐한 자국이 있었다. 아직까지 발견된 바 없는 또 다른 특수변종의 정황일 확률이 높다.
“너무 비관할 필요는 없어요. 여기까지 생각이 같은 걸 보면 두 사람도 오는 길에 미성체 집단을 많이 상대한 것 같은데, 맞나요?”
겨울이 묻자 수긍하는 두 사람.
“좀 더 시간을 끌었다면 위험했을 것 같긴 해요. 변종에겐 대사억제 능력이 있잖아요. 끊임없이 늘어나는 성체가 대사억제로 잠들어 있다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경우엔……. 지금의 봉쇄선으로는 도저히 못 막을 규모였을지도 몰라요.”
롱 대위가 마른세수를 했다. 대사억제에 돌입한 개체는 먹거나 마시지 않고 몇 년을 버틸 수 있으니, 공군이 남미에서 올라오는 루트를 차단한들 언젠가 헤아리는 것조차 무의미한 규모의 무리가 출현했을 거라는 소리였다.
그밖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었다.
“제가 특이한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운을 띄우는 팔머 중위에게, 겨울이 총기손질을 마무리하며 되물었다.
“특이한 것?”
“변종이 변종을 물더군요.”
“도태된 개체를 잡아먹는 건 아니었고요?”
“단순히 물기만 했습니다. 딱히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말입니다. 단순히 단일개체의 이상 행동일지, 혹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지 한참을 고민했습니다만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혹시 두 분은 같은 걸 본 적 없으십니까?”
난 없는데. 그린베레가 말했고, 겨울은 생각에 잠겼다.
“감염시키는 것일지도.”
불현 듯 던진 말에 대위가 반응한다.
“뭐 덜 감염된 놈이라도 있을까봐 다시 문답니까?”
“그런 건 아니고, 어떤 특질을 전파하는 과정일 수는 있지 않겠어요?”
“특질?”
“전부터 이상하게 여기던 게 있어요. 트릭스터와 처음으로 싸웠을 때, 거기가 아타스카데로 주립 정신병원이었는데, 이 괴물이 직접 영향을 미치는 건 태아 변종들뿐이었거든요.”
“그 전투기록은 저도 봤습니다.”
“시가지에 많았던 성체 변종들이 나타나지 않았던 건, 트릭스터가 부를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전파를 감지하는 능력……기관은 새로 태어난 세대에게만 있었을 가능성이 높죠. 하지만 지금은 어떤지 봐요. 아주 넓은 범위에서 조직적으로 움직이잖아요.”
“으음……. 그러니까, 특수변종까지는 못 되더라도……어느 정도 개량된 특성은 재감염을 통해 확산될 수 있다 이겁니까?”
“팔머 중위 말을 듣고 지금 막 떠올린 것일 뿐이지만요. 변종들이 그러는 모습을 실제로 본 적도 없고요. 어쩌면 이게 험프백의 또 다른 능력일 수도 있죠. 확실한 건 없어요.”
“이 괴물들은 참 알면 알수록 좆같군요.”
“다 쏴서 죽일 순 있잖아요.”
허. 다시 한 번 기가 막힌 얼굴로 겨울을 보는 대위. 아까부터 같은 잔을 흔들고만 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은 그린베레. 작전이 사실상 끝났어도 마냥 방심하진 않는다. 술 냄새는 날지언정 취한 사람의 언동은 아니었다.
마침내는 남은 술을 바닥에 주욱 쏟아버린다.
“맞습니다. 다 쏴서 죽일 겁니다.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기도 하고.”
“…….”
“죽이고 또 죽여서 고 계집애가 무서울 일 없게 하겠습니다. 마누라야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니지만. 흠, 그래도 사람은 아닌 놈들이라 죽일 때 부담이 덜해서 낫군요.”
팔머 중위가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그렇습니까? 전 아직도 꺼림칙할 때가 많습니다. 역병의 피해자들 아닙니까.”
“그놈들 머리통을 쪼개본 적 있나?”
“……일부러 그러진 않습니다.”
“내가 예전부터 이런저런 머리를 많이 쪼개봤는데 말이야……. 아, 그런 눈으로 보진 말고. 나도 제정신으로 한 짓은 아니었어. 미칠 것 같았지. 몸에 폭탄 두른 광신도들, 민간인 학살하는 놈들, 애한테 대전차 로켓 들려주는 정신 나간 년들 머릿속엔 대체 뭐가 들었나. 궁금하잖아. 딱히 본다고 알 만 한 건 아니었는데도.”
그린베레가 습관처럼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이 변종 놈들은 달라. 아주 많이 달라. 그동안 보아왔던, 정상적인 것들하고 비교해서 말이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 사람이 아니야. 인격이라는 건 이 골통 안에.”
대위가 자신의 머리를 쿡쿡 찍어 보인다.
“여기, 머릿속에 있는 거잖나.”
“…….”
“레인저씩이나 되는 게 순진하게 굴기는. 그러다 죽어. 너만 죽으면 차라리 다행이겠지.”
그 뒤로도 토의 반 푸념 반인 대화가 늦게까지 이어졌다. 그 마지막에, 레인저가 말했다.
“얼른 본토 탈환이나 끝냈으면 좋겠군요.”
낙관적인 기대였다.
“죽도록 고생한 보람이 있어서 고가치 표적을 꽤 많이 잡아 죽였으니 말입니다. 조만간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겠죠. 분위기가 꽤 좋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우리는 사방이 육지인 러시아하곤 다르잖습니까. 어떻게든 파나마 지협까지만 내려가면 해상봉쇄도 더 쉬워질 테고, 지상에서의 방어 밀도도 굉장히 올라갈 테고……. 그때가 돼서 장기휴가가 나오면 그녀와 결혼할 겁니다.”
“하, 그만 두라니까.”
“대위님을 보니 더욱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미친.”
겨울은 희미하게 웃었다.
============================ 작품 후기 ============================
#Q&A
Q. 언리미티드원님 : @레인저 연대의 특징이 드러나는 일화가(…) 한바탕 소강상태. 러시아도 보여줬고… 미국 본토의 모겔론스 축출 여부에 따라 추운 땅으로 갈 수도 있겠네요 :3 우리 관제AI는 얼마나 동심을 찾았을까… 궁금해지네요. 아니, 어쩌면 동심을 만들어냈을지도?
A. 향후 전개에 관한 내용은 답변이 어렵습니다. ;_;
Q. 마지카르님 : @퇴근길에 읽다보니 미소가 지어지네요. 고맙습니다. 언제나 좋은 글 감사합니다.
A. 저야말로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Q. 플라잉도리님 : @호오 카톨릭에 대한 이해도가 깊으신데요 어디서 발췌해오신건가요? 신부님들 중에수도 신학을 깊게 공부하신분들에게서나 나올법한 말씀들이라.. 인상깊네요.. 항상 그렇듯 잘보고 갑니다.
A. 이런 걸 발췌하면 표절이 됩니다. 태양의 찬가에 대한 해석은 딱히 참고한 곳이 없고, 그 외에는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교황님의 말씀, 그리고 여러 신학자들의 견해를 읽어보았습니다. 논거가 되는 성경 구절들도 거기서 찾았고요. 전체적으로
소설의 주제에 맞게 재구성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만 욥이 가진 모든 것을 쳐내셨다, 라는 표현만큼은 교황님의 말씀에서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Q. 가르드헤임님 : @작품과 관계없지만 삿포로쪽의 조잔케이온천정도는 괜찮을겁니다. 후쿠오카에서 서울보다 후쿠오카에서 삿포로가 더 멀껄요?
A. 아, 후쿠시마 산 농수산물이 활발하게 유통된다는 게 더 걱정입니다. 조잔 케이온 온천이라…언젠가 가게 된다면 참고하겠습니다. 그런 날이 올지는 의문이네요. 전 아직 해외를 가본 적이 없는 미물입니다. 하하.
Q. 비누좀주워주세요님 : @요즘 대공전차로 활약하신다고 들었는데. 연재가 늦어지는 이유가 대공전차 일이바쁘신건가요?
A. 음, 글쎄요. 처음부터 주 3~5회 연재라고 말씀드린 이후, 추석연휴를 제외하면 주 3회 밑으로 연재한 적은 없는데…
힘들기는 합니다. 글쓰기만이 아니라 다른 사정들이 있기도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