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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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의 골짜기 (4)
주일의 오후가 저물녘으로 향할 즈음, 마음이 병든 병사들의 휴식처에 뚱땅거리는 음악이 흘렀다. 대형 TV에서 나오는 어린이 프로그램의 배경음악이었다. 해맑게 웃는 아기 태양의 햇살 아래, 머리에 안테나를 단 사인사색의 인형들이 연초록빛 평화로운 동산에서 아무 걱정 없이 뛰어노는 내용. 일부러 틀어놓은 것은 아니고, 채널을 돌리던 사병들의 선택이었다. 아무래도 현실 가득한 뉴스나 좀비 학살 영화 따위에 비해 낫다고 느낀 모양이다.
「친구들, 이제 헤어질 시간이에요.」
“아이 싫어! 싫어!”
호흡을 맞춘 병사들이 배를 잡고 웃는다. 그러다 아스라이 들리는 총성에 경기를 일으켰다. 갑작스레 찾아온 정적 속에서 리모컨을 잡은 병사가 볼륨을 키웠다. 조금 시끄러워질 때까지.
겨울을 끼고 둥글게 앉은 멤버는 남녀를 불문하고 음담패설에 여념이 없었다. 원래는 각자의 고민을 털어놓는 자리였으나 어느새 이렇게 되어버렸다.
“내 경험에 의하면 이름이 메건인 여자는 침대 매너가 끝내줄 확률이 높아.”
“뭐래, 병신이. 니 인생의 메건이 대체 몇 명이었는데?”
“네 명……아니, 다섯 명.”
“미친.”
동명이인이 많을 정도로 경험이 풍부하다는 허세였다. 야유를 보낸 사병이 거울을 가리킨다.
“가서 니 얼굴 보면 정신이 들 거다, 작은 맥스.”
“작은? 내 키가 너보다 한 뼘은 더 큰데?”
“그렇지. 키는 크지.”
잠시 고민한 맥스가 웃음소리에 발끈했다. 몇 없는 여성 사병들이 특히 더 크게 웃었다. 개중 하나가 박수를 치며 말하기를 “맞아, 정말로 작지.” 란다. 맥스의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안 작아! 그리고 난 테크니션이라고!”
“오,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걸 내게도 느끼게 해줬으면 좋겠지만 말이야.”
여성 사병이 덧붙이는 말에 다시 한 번 날카로운 웃음이 번졌다. 아무래도 장교 앞에서 떳떳할 이야기는 아니었으나, 이미 장교들이 섞여 있는데다, 현역으로든 예비역으로든 다시 싸우게 될 가능성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집단이었다. 조만간 민간인이 될 사람들.
겨울은 이런 대화가 불가항력이라고 생각했다. 바깥세상의 관객들이 그렇듯이. 동물원 원숭이들의 멍한 눈과 신경질적인 자위행위를 보는 느낌이었다.
“한 소령. 잠시 괜찮겠습니까?”
군종신부의 부름이었다. 계급은 겨울과 같은 소령. 아쉬워하는 사병과 소수의 장교들에게 양해를 구한 겨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장선 신부는 겨울을 군종장교 숙소에 들였다. 힌두교 군종장교가 경례와 함께 스쳐지나갔다. 흩어진 200만 가운데 힌두교 신자들도 있었기 때문에 만약에 대비해서 파견된 것인데, 유감스럽게도 구조된 인원 중엔 신자가 없어 군종장교들 중에선 가장 여유로운 사람이라고 들었다. 당연히 그것은 우울한 여유였다.
방에 들어선 신부가 비품함을 열어놓고 묻는다.
“차? 아니면 커피?”
“차로 부탁드립니다.”
눈 밑이 거뭇한 군종신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반에 술도 있었으나 겨울에게는 권하지 않는다. 술이 들어가도 좋을 용건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신부가 우려낸 찻물은 떫고 쓴 맛이 났다. 찻잎부터 좋은 품질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차는 대화의 도구였다. 말을 찾느라 목이 멜 때, 혹은 상대를 배려할 때 마실 시간으로 충분했다.
“그동안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줘서 고마웠습니다.”
“별말씀을. 기왕 구해낸 사람들이 제대로 살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이었는데요.”
딱히 대단하거나 어려운 일을 한 것도 아니고. 겨울의 말에 신부는 피곤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태도는 군인보다는 성직자에 가까웠다. 겨울도 군인보다는 성직자를 대하는 예의로서 접하기로 했다. 그러기를 바라는 눈치였기에.
“한 소령. 이런 질문이 실례인줄은 알지만, 묻겠습니다. 혹시 가톨릭 신앙을 가질 생각은 없습니까?”
찻잔을 내려놓은 겨울이 고개를 기울였다.
“아직은 없습니다. 그리고 실례인줄 아시면서도 물어보시는 이유가 궁금하네요.”
뜸을 들이던 군종신부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개인적인 질문은 아니었습니다.”
“개인적이지 않다는 말씀은…….”
“뉴욕 교황청의 의사입니다.”
뉴욕 교황청? 겨울의 표정을 읽은 신부가 천천히 끄덕였다.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은 내용이니 당분간 혼자만 알고 있으십시오. 봉쇄선 동쪽에선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긴 하지만……전대 교황 성하께선 지난 4월 27일에 선종하셨습니다. 로마가 죽음의 해일에 휩쓸린 날이지요.”
“…….”
“그날 이탈리아 정부는 수도 로마를 포함해, 시칠리아와 사르데냐를 제외한 본토 전역을 완전히 포기한다고 선언했습니다. 바티칸으로 구조대가 파견되었지만 성하께선 탈출을 거부하셨습니다. 모두를 구할 수 없다면, 남겨질 성도들과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하시겠다고……. 그래서 성하를 위해 준비된 헬기는 평신도들을 태우고 돌아왔습니다. 모두 아이들이었지요.”
“유감입니다.”
“슬픈 일이지만, 옳은 결정을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다음 교황님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미 선출되셨습니다.”
“벌써요?”
“역병이 알프스 산맥을 넘은 시점에서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으니까요.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콘클라베 역사상 가장 빠른 선출이었지만 말입니다. 망명 교황청의 중심지로 성 패트릭 대성당이 지정된 것도 사전에 결정된 사안이었습니다.”
타당한 이야기다. 뉴욕은 미국의 정치적 중심지와 가깝다. 지역과 민심 안정 차원에서 미국 정부도 환영했을 것이고. 그러나 아직 겨울에게 건넨 권고와는 간극이 남아있었다.
차를 마시고 살짝 인상을 찌푸린 신부가 그 간극을 메운다.
“다만 신도와 사제들 사이에 불신과 회의가 팽배한 지금, 뉴욕 교황청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전대 성하의 죽음이 미칠 영향을 짐작하기도 어렵고요……. 혹시 미국 성전(聖戰) 기사단(American Order of Crusaders)이나 그리스도의 민병대(Christ’s Posse Comitatus)에 대해서 들어봤습니까?”
“어느 쪽이든 처음 듣습니다.”
그러나 이름만 들어도 그 성향을 알겠다.
“그럴 겁니다. 최근 신구교를 가리지 않고 남부 교계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비인가 단체들입니다. 세상에 죄인이 넘쳐 심판의 홍수가 시작된 것이니 그 죄인들을 주님의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만……실상은 혐오범죄의 온상입니다. 주로 동성애자와 다른 종교의 신자들, 무엇보다 중국계 이민자 및 그 후손들이 큰 피해를 보는 중입니다.”
“이단이네요.”
“예. 교황 성하께서는 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죄악들을 막고 싶어 하시지만, 동시에 이런 시기의 대대적인 이단지정과 파문이 돌이키지 못할 분열을 불러오지 않을까 우려하고 계십니다. 사제들 사이에서조차 교황청의 권위와 정통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마당이라서……. 그들이 근거 없는 예언을 내세우기도 하고…….”
예언?
“예언이라면 혹시 성 말라키의 예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겨울의 질문은 군종신부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걸 알고 있습니까?”
“예.”
“놀랍군요. 신자도 아니면서 아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어쩌다보니 접할 기회가 있었거든요.”
얼버무리는 겨울. 세상의 끝을 여러 차례 경험하는 동안 온갖 예언과 종교적 광기를 경험했다. 성인이 남겼다고 전해지는 예언은 그 중에서도 유명한 축에 들었고. 그 예언은 최후의 교황을 언급한다. 겨울은 그 구절을 기억하고 있었다.
「마지막 박해의 시대에 로마 사람 베드로가 신성한 로마 교회를 다스리고 있을 것인데, 그는 무수한 환난들 사이에서 그의 양떼를 보살필 것이며, 그 뒤 일곱 언덕의 도시는 무너질 것이고 사람들은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일곱 언덕의 도시는 로마를 말한다. 흔들리는 사람들이 믿기 좋은 내용이었다.
공교롭게도 전대 교황은 이탈리아인의 혈통이며, 본받은 성인의 풀 네임엔 피에트로가 들어간다. 피에트로는 베드로의 변형이었다. 즉 로마 사람 베드로라고 끼워 맞추기 충분하다.
“그 사람들은 선종하신 전 교황님께서 마지막 교황이었다고 생각하나보죠?”
겨울이 묻자 군종장교가 쓴웃음을 짓는다.
“한심한 노릇입니다. 결국은 교황청의 권위를 부정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봅니다. 제멋대로 날뛰고 싶은 것 아니겠습니까.”
교황청의 망명이 공공연한 비밀이라더니, 이미 알 사람은 다 아는 모양이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네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일 겁니다. 물론 한 소령이 지푸라기라는 뜻은 아닙니다. 지금은 어느 쪽도 아니지만, 만약 당신이 믿음의 형제가 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신과 다른 편에 서기를 망설이게 될 겁니다.”
생각하던 겨울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지, 신부는 가벼운 아쉬움만 드러냈다.
“그렇습니까.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했는데…….”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왜 그렇습니까?”
“이번 작전이 성공하면 그런 사람들도 많이 진정될 거고, 실패하면 제가 어떻게 행동하든 큰 의미가 없을 것 같거든요. 그 시점에선 제가 죽어있을지도 모르고요.”
결국 본토 탈환 여부가 관건이다. 불안과 공포가 지금 이상으로 부풀어 오른다면 현 정권의 유능함으로도 대처하지 못할 것이었다.
“중국계 시민들의 피해가 어느 정도입니까?”
방송은 일단 걸러져서 나온다. 조안나는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다. 정보국에게 묻기는 애매하다. 군인이면서 동시에 성직자인 군종신부라면 별도의 연락망이 있을 법도 했다. 당장 지금도 교황청의 의사를 타진하지 않았는가.
새로 묻는 겨울 앞에서 군종신부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정확한 피해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 정도인가요?”
“예. 경찰의 과잉진압은 더 이상 문제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지역사회가 인종범죄를 조직적으로 모의하고 은폐한 정황까지 있으니까요.”
정황이라 함은 완전히 적발하지 못했다는 뜻. 증거가 없거나, 있어도 정치적인 장벽에 부딪혔을 공산이 있었다. 차라리 묻는 게 나을 거라는 판단.
“요즘 중국계 시민들이 신변안전을 위해 한국어 한두 마디를 꼭 배워둔다고 합니다. 반면 적극적으로 민병대에 가담하는 한국계 시민들도 많다더군요. 그들의 표현에 따르면 피아식별을 위해서랍니다.”
신부가 160만의 무게로 탄식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장병들을 잃었습니다.”
2차 대전 인명손실의 네 배. 남북전쟁에 비해서도 두 배 반을 넘는다. 미국은 지금까지 이 정도의 손실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이성을 잃는 사람들이 늘어도 어쩔 수 없다. 아니, 아직 이 정도에 불과한 것을 기적이라고 평해야 할지도.
이번 작전은 마지막 분수령이 될 것이다.
‘실패하더라도 당장 망하지는 않겠지만…….’
기적적인 승리를 바랄 순 있을지언정, 세계관 내에서 사람다움을 찾기는 어려워질 테니까.
군종신부가 겨울을 배웅했다. 해가 넘어간 지평선은 밤에 삼켜지는 노을빛이었다. 험비에 탑승하기 전, 겨울이 위로를 남겼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 작전은 성공할 겁니다.”
신부가 황혼처럼 웃었다.
“그래야지요. 우리는 스스로를 충분히 도왔습니다.”
이는 겨울에게도 와 닿는 말이었다.
========== 작품 후기 ==========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사실 이 말은 오역이며, 가톨릭 교리와도 어긋난다고 합니다. 하느님께선 노력을 하는가 하지 않는가에 상관 없이 모든 사람을 돕는 분이시기 때문이라고…
본편의 말미는 소설적 허용이자, 신부가 저런 말을 할 정도의 상황이라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조회수
요즘 들어 조회수가 이상할 정도로 많이 늘었습니다. 연재를 시작한 이래 처음 보는 점유율이 나와서…이게 대체 왜 이러나, 왜 갑자기 늘었나 생각해봤는데…
늘기 시작한 시점에서 키스씬이 있었더군요.
…
독자님들…=_=
#Q&A
Q. 안돼임마님 : @올 하일 스칼로첸!!! 퉁구스카에 영광이 있으라!!!
A. 제게 영광 같은 거 없어도 되니까 스칼로첸은 안 됩니다.
Q. OneChance님 : @퉁구스카님 콩까지마요 ㅠㅠ 퉁구스카님 콩까지마요 ㅠㅠ
A. 저는 그저 황신의 가호를 바랐을 뿐입니다. 정말로요.
Q. 엘로아르l루l크란츠님 : @오늘이 카오스의 새로운 신 퉁구스카가 태어난 날인가… 불길하도다. 달 빛이 어둡고 밤에는 망자들이 배회한다. 오늘은 집안에 숨어 신들의 자비를 청해야만 하겠군.
A. 이 답변을 읽고 계신다면 불길한 날을 무사히 넘기셨다는 뜻이겠지요.
실망…
Q. qgegegqe님 : @게이가 번성하면 여자가 남는다라 제친구도 그런말을 하던데 저는 여자도 여자끼리 놀지 우리랑 안놀거라고 해줬죠
A. 현명하시군요. 친구분을 위하시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Q. 매실농축액2님 : @생신축하드립니다! 텍본하면 티카페라는 데가 본거지라는 데… 근데 거기가 여간 폐쇄적인게 아닌데다가, 요즘은 신규가입까지 막아놓으며 주도면밀하게 그들만의 리그를 이용해서 여러곳으로 퍼날라대니 잡아내기도 쉽지 않을 것 같네요
A. 노블레스는 보안 문제가 아니더라도 정액제라는 특성 때문에 더 노려지기 쉽더군요.
불법 사이트에서 어느 업로더가 하는 말을 봤는데, 긁으려면 일단 구매를 해야 하기 때문에 프리미엄보다는 노블레스가 더 좋다고 하더라고요.
Q. 불곰크왕님 : @텍본은 조아라 웹 시스템 문제입니다. 웹 생초짜에 불과한 저도 텍스트 카피가 가능할 정도로 개판입니다. 조아라측에서 독자를 특정하는 코드를 소설속에 감춰놓긴 하는데 이또한 제거가 가능해서;; 텍본때문에 손실이 크시다면 조심스레 다른 플랫폼으로 가는 것을 권합니다.
A. 핸드폰을 이용하면 별도의 툴 없이도 아주 손쉽게 긁을 수 있다는 걸 압니다. 이게 되는 건 조아라가 유일하지요. 정말 기본적인 문제인데 몇 년째 해결할 생각도 안 하고…하하.
그래도 노블레스 연재를 그만둘 생각은 없습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문제고요. 어쨌든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Q. thinksome님 : @작가님 텍본에 마음이 상하신거같아서 동심이 돌아오게끔 쿠폰을 준비해봤습니다. 그래서 손가락은 언제..12단하시는지..?
A. 12단?…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로맨스 관련된 내용인 것 같은데…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