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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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의 골짜기 (13)
협상단 일부가 겨울을 찾아왔다. 단장 릴리아나 그린은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겨울에겐 단장의 연령이 뜻밖이었다. 좀 더 노련하고 원숙한 인물일 줄 알았는데.
이를 눈치 챘는지 그린이 한쪽 입꼬리를 희미하게 끌어올렸다.
“놀라신 것 같군요.”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예상보다 무척 젊으셔서.”
“Oh. 기분 나쁘긴요. 젊어 보인다는 말을 싫어할 사람은 없죠.”
저는 실제로도 젊지만요. 그녀는 시늉에 불과한 미소를 지운다.
“사실 저도 제가 선발된 게 의외였습니다. 위에선 그 인간이 저를 은근히 무시했으면 하더군요. 일반적으로 그런 꼴통들의 우월감은 다리 사이에 붙어있으니까요.”
함께 온 남성 중 하나가 그린에게 눈치를 주며, 굳은 표정으로 헛기침을 했다. 그는 상기된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는 중이다. 회담을 앞두고 긴장했는지 어깨가 굉장히 뻣뻣해보였다.
“이걸로 땀 좀 닦으세요.”
겨울이 손수건을 내밀자 남자는 허둥거리며 받아들었다. 감사인사를 하려는 듯 입을 열었으나, 잠긴 목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아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이분, 협상장에 가셔도 괜찮을까요?”
못미더워하는 겨울에게 그린이 고저 없이 대답했다.
“안심하세요. 소령님 앞이라서 긴장하신 거니까. 현장에선 문제없을 거예요.”
“…….”
그녀의 태도로 보아 부하로 위장한 상급자인 모양이다. 상하관계를 떠나 제법 친근해보였다.
젖은 손수건을 돌려받은 겨울이 그린에게 말했다.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양용빈 상장은 상대가 여자라고 무시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린은 순순히 끄덕인다.
“제 생각도 그렇답니다. 다만 우리가 뻔한 수작을 부린다고 생각하길 바랄 뿐이죠. 얕보기 시작하면 경계심도 허물어질 테니. 이게 과연 득일지 실일지는 의문이지만…….”
그리고 그녀는 찾아온 이유를 내밀었다.
“한 번 훑어보시겠습니까?”
겨울은 페어 스트라이크 작전 보고서를 받아들었다. 표지에 찍힌 인쇄일자가 오늘임에도 불구하고, 두꺼운 문서의 페이지들은 손닿는 가장자리가 많이 상해있었다. 클립이 꽂힌 장마다 꼼꼼한 밑줄과 메모가 보였다.
누군가 그린에게 귓속말을 전한다. 1시간 40분 남았다. 끄덕인 그녀가 겨울에게 말했다.
“우리가 가진 양용빈 상장에 대한 최신정보는 소령님의 진술밖에 없습니다. 아무래도 장관급 인사다보니 CIA나 DIA 같은 곳에도 관련 정보가 있긴 한데, 양용빈이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이해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더군요. 중국 장성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파벌도 없는 사람이고.”
“파벌이 없다고요?”
다소의 놀라움을 담아 반문하는 겨울. 중국에서 파벌이 중요한 건 깡패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시에루 중장도 자신의 울타리를 그렇게 강조하지 않았던가. 그녀가 말하기를, 중국은 개개인을 돌보기엔 지나치게 거대한 울타리였다. 각자가 살 길을 따로 찾아야 할 만큼.
그린이 애매하게 긍정했다.
“예. 본래 태자당의 1세대이긴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과거의 동지들과 척을 진 것으로 추정된답니다. 그가 육군 사령원이 된 것은 각 파벌의 중도적인 합의였던 것 같고요. 취임 이후엔 사람을 쓰는 데 파벌을 가리지 않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추정된다. 그리고 합의였던 것 같다. 어느 쪽도 확실한 내용은 아니었다.
“아무튼 그래서 마지막으로 확인하러 온 겁니다. 보고서에 무언가 빠진 것은 없는지, 상장의 표정과 어조, 몸짓은 어땠는지……. 공식 보고서에 집어넣기엔 부적절하거나 모자란 것들 말이죠. 그밖에 참고할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좋습니다.”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배를 쓸어내렸다. 겉보기보다 부담감이 많이 무거운 모양이었다.
겨울은 바다 위에서 열렸던 회담을 회상했다.
“처음엔 굉장히 부드럽고 온화한 태도였어요.”
“권위가 느껴졌습니까?”
“아뇨. 제복을 입지 않았다면 군인으로 보이지도 않았을 겁니다.”
“다리가 아프군요. 잠깐 앉으시죠.”
겨울에게 의자를 권한 그린이 바싹 붙어 앉아서 펜을 들었다.
“보고서에 기록된 대화가 얼마나 정확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기에 겨울이 대답하기도 전에 차분하게 덧붙이는 그녀.
“소령님을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사람의 기억이라는 게 흐려지고 왜곡되기 십상이니 말입니다. 하물며 꽤나 긴 회의에 대한 기록입니다. 얼마간의 부정확함은 불가피했겠죠.”
그러나 겨울이 보기에 그녀는 의심하고 있었다. 보고서의 신뢰성은 호손의 기적 문제와 연결되기에. 그러므로 의심은 차라리 사무적인 배려에 가까웠다. 겨울의 처지라면 누구든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이해. 이것 없이는 정확한 진술도 없다. 경험으로 얻은 지혜일 것이다.
겨울은 눈으로 서면을 훑으며 대답했다.
“완벽하진 못해도 대부분은 정확할 겁니다. 기억력엔 꽤 자신이 있거든요.”
실제로 좋은 기억력인 동시에 「암기」 보정이기도 하다.
‘지금은 지워진 곳이 많은 보정이지만, 피쿼드호로 복귀한 직후엔 아니었으니까.’
낮은 등급으로 인한 보정 지연, 즉 「암기」된 내용이 떠오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보고서 작성에 방해가 되지 않았다. 기억의 오류를 교정하고 여백을 채워주는 보정. 따라서 보고서는 한없이 사실에 가깝다. 정보관계자의 눈으로 겨울을 살피던 그린이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좋습니다. 그럼 상장이 어느 시점까지 부드러웠습니까? 혹시 마지막까지 똑같던가요?”
“그렇진 않습니다.”
“여기서 짚어주시겠습니까?”
펜을 넘겨받은 겨울이 대화록에 감정의 구간을 표시했다.
“흠. 그저 살기 위해 살아가는 삶의 비참함이라. 여기서 감정이 한 번 튀었다 이거군요.”
그린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겨울의 어깨 너머에서, 아까까지만 해도 식은땀 범벅이던 남자가 겨울의 손에 들린 보고서를 뚫어져라 보는 중이었다. 집중하기 시작한 남자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바뀌었다. 그린이 질문을 더했다.
“이 말을 할 때의 상장은 어땠지요?”
“허탈한 느낌이 들었어요. 웃는데도 울고 싶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고.”
사라진 조국에 대한 인지부조화. 알면서도 스스로를 속이는 유형인가. 중얼거린 그린이 한쪽 눈을 찡그렸다. 겨울도 그 기분을 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거짓말만큼 견고한 것도 드물다.
그린과 상급자는 핵미사일 발사를 알릴 때의 상장이 유쾌해보였다는 진술을 듣고 다시금 절제된 불쾌감을 드러냈다.
상담에 가까운 의견교환이 얼마나 더 이어졌을까.
“하아.”
시계를 본 그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말해줄 것이 없어진 시점이라, 그리고 정해진 시간이 다가오고 있기에 협상단 사람들이 떠날 채비를 한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많은 도움이 됐어요.”
겨울은 그녀가 청하는 악수를 받았다.
“모두 무사히 돌아오시길 바랄게요.”
“…….”
협상단 중 누구도 성공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저 양용빈 상장의 샘플이 진짜일 가능성, 차라리 영에 수렴할 그 희박한 확률을 무시할 수 없어서, 그리고 인질들의 생명이 걸려있기에, 폭발하는 여론에 떠밀리듯 실패할 것이 확실한 협상에 나설 뿐.
떠난 그들은 곧 화면 속에서 나타났다. 그들을 태운 장갑차량 앞뒤로 호위 목적의 험비가 붙는다. 분할된 화면은 차량 대열의 이동을 하늘과 땅의 여러 각도에서 비추었다. 발전소에서 나온 중국군 병력이 협상단을 맞이했다. 놀랍게도 양용빈 상장이 몸소 마중을 나왔다.
[어서 오시오. 빈객을 맞이할 준비가 서툴러서 미안하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장군. 설마 직접 나오실 줄은 몰랐네요.]
전파에 실려 스피커로 나오는 그린의 음성은 직접 들었던 것과 많이 달랐다.
동네 할아버지처럼 늙은 상장은 겨울이 기억하는 바로 그 온화함으로 답했다.
[당신들은 날 어떻게 해볼 능력이 없지 않소.]
샘플을 가지고 나온 것도 아니고, 인질들도 안에 있는 마당에. 생략된 말은 들을 것도 없었다. 심지어 협상단의 몸수색조차 하지 않는다. 사실 상장 또한 영상과 기록이 남기를 원할 것이었다. 이는 그가 수행하는 전쟁이었다.
협상은 발전소 밖에 설치된 천막에서 진행되었다. 원래 주둔하던 독립중대의 흔적. 그린의 정장 단추에 달린 카메라가 양용빈 상장을 비춘다.
[자, 서로에게 여유가 많지 않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무엇을 준비해오셨소?]
상장의 질문에 그린은 같은 질문을 돌려주었다.
[그러는 장군께선 무엇을 바라십니까?]
[내가 무엇을 바라느냐…….]
생각에 잠기는 상장의 모습. 겨울은 그것이 과연 꾸며진 모습일까 의심했다. 협상의 목적이 도발인 이상 합리적인 요구를 준비했을 리가 없었다.
‘어쩌면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나왔을지도 모르지.’
미친 사람을 합리로 잴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이성적으로 미친 사람이긴 하지만.
[우선은 영토를 할양받고 싶군.]
[어디를 원하시는지?]
[콜로라도와 와이오밍, 네브라스카의 접경지대가 좋겠군. 콜로라도 방면에 풍력발전단지가 두 개 있을 텐데, 그 일대를 다 넘겨줬으면 싶소. 가로 세로 100킬로미터의 선을 그읍시다. 아, 미리 말해두겠는데, 내가 요구하는 지금 이 시점에서 그 땅에 있는 모든 것이 그대로 넘어와야 하오.]
이에 백악관을 보여주는 화면 속에서 대통령이 보좌관의 귓속말을 듣고 얼굴을 찌푸렸다. 그 내용은 겨울 가까이에 앉은 헌트의 냉소로 알 수 있었다.
“핵 테러리스트가 핵미사일을 내놓으라는군.”
약간의 시차를 두고 상황실 정면의 대형화면에 발전소 인근의 농장과 황무지들이 투사되었다. 밀밭 사이로 난 비포장도로 옆에 뜬금없이 탄도탄 사일로가 박혀있다. 겨울에게도 익숙한 경치다. 이미 사라진 세계에서 그 근방을 방랑한 적이 있으므로.
사실 미국의 탄도탄 배치가 매양 이런 식이었고, 양용빈 상장이 요구한 땅은 본토에서 핵 사일로가 가장 많이 분포하는 곳이었다.
상장은 계속해서 불가능한 요구들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워싱턴 D.C의 마이어 기지도 할양받아야겠소. 아무래도 억지력 없는 평화라는 게 오래가진 못하는 법인지라. 추후 귀국의 본토탈환이 끝나거든 샌디에이고의 항만과 배후지대를 내어주시오. 파나마 지역을 확보할 경우엔 운하도 우리가 받아야겠소. 남북으로 30킬로미터요. 주둔지를 내어줄 테니 방어책임은 귀국이 지시오. 항만과 운하 이용료로 다른 비용을 대신하도록 합시다. 여기에 귀국 내 통행의 자유를 허가하고 중국 난민들의 신변을 양도해준다면 충분하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시오?]
협상을 파행으로 몰아가려는 의도가 지나치게 노골적이었다.
그러나 그린은 침착하게 대답한다.
[그렇군요. 긍정적으로 검토하지요.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 선행되어야 할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라……. 그게 뭐요?]
[샘플.]
그린이 말에 공백을 두어 강조했다.
[당신이 지니고 있는 모겔론스의 원형들이 진짜라는 것을 증명해보십시오.]
[증명할 방법이 있겠소?]
[있습니다. 병원체 가운데 하나를 먼저 넘겨주시면 됩니다.]
[불가능한 요구를 하시는군.]
그린이 상장을 향해 상체를 기울이는지, 화면의 초점이 아래로 내려갔다.
[그렇습니까? 아시다시피 모겔론스는 공생 관계를 이루는 여러 병원체의 합병증입니다. 그 중 하나의 샘플만으로는 백신 개발이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다만 진위를 판별하는 정도는 가능하겠죠. 이 판단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본국은 어떠한 협상에도 응할 수 없습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다른 협상단의 카메라를 통해 그린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침착한 정도를 넘어서 입가에 엷은 미소마저 머금은 상태. 그러나 상장도 여유롭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렇게는 안 되겠군. 시역을 파괴할 수단을 마련하는 데엔 복합체의 구성요소 하나만으로도 큰 진전을 얻을지 모르니까.]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십시오, 장군.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말입니다. 본국이 보호 중인 중국의 시민들과, 중국인의 혈통을 이어받은 미국의 시민들……. 당신은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전혀 없습니까? 그들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장군의, 중국 인민해방군의 의무가 아니었나요?]
당연히 없을 것을 알지만, 이것은 영상이 공개되었을 때를 대비해 던지는 질문이었다.
[없소.]
아는지 모르는지, 상장의 답변은 가벼웠다.
[조국 수호를 위한 인민전쟁 교리의 기본 전제는 인민의 희생이지. 그것을 희생이라고 표현하기도 곤란하군. 당연한 의무니까. 조국을 지킬 의무는 중화인민 모두의 것이오. 나와 그들의 차이는 제복의 유무, 훈련의 유무, 무장의 유무일 뿐. 거기다 중국 인민의 혈통을 이어받은 미국 시민들이라……. 중국의 정신이 남아있지 않다면 그들은 그저 미국인일 뿐이오.]
그는 허리를 곧게 편 채로 깍지를 꼈다.
[그리고 무고한 민간인은 없지. 귀국의 장군이 도쿄를 불태우며 남긴 말이오.]
========== 작품 후기 ==========
#무고한 민간인은 없다
워낙 유명해서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이 말을 남긴 사람은 2차 세계대전 말 일본 본토공습을 지휘한 커티스 르메이 장군입니다.
작중 상장의 말과는 달리 저 발언이 이루어진 시점은 도쿄 대공습 이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양용빈 상장이 이를 몰라서 저렇게 말한 것도 아닙니다.
혹시나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하실 분들이 있을까봐 미리 말씀드립니다.
#Q&A
Q. 벌레님 : @현 대통령은 아마 일그만 하고 싶어할것 같은데? 그레이만은 암살 안하나? 주면 나라 망할것 같은데
A. 역시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이군요.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ㅠ
Q. 카르피스님 : @악의 세력이라뇨! 하일 스칼로첸은 진리! 솔로대원수에게 초콜릿을 준 레이디 솔리테어의 마음과도 같은 것입니다! 올 하일 스칼로첸!
A. 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말씀이신지…
Q. qgegegqe님 : @크로첸이 코파는건 쓰셨어도 거시기 긁는건 안쓰셨었죠 겨드랑이 긁적은 어떤가요
A. 다음부터 이런 질문엔 답변 안 드릴 겁니다. 진짜루. 진심으루…
Q. 노블레스버퍼님 : @이승만 신뢰도는 0%니까 작까님 신뢰도는 1%하면 되겠군요!
A. 3연타…이 소설엔 착한 독자가 없어…
Q. 코코는샤넬님 : http://sosull.com 혹시 이곳에 작가님 소설이 유료로 이용되는거 아시나요?
A. 저는 몰랐습니다. 출판사에서는 알고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일괄적으로 고소를 진행하고 있다는데, 한 번 문의해보겠습니다.
Q. 아으동동다리님 : @좀비들의 강화ㆍ변이가 저항이 있을때만 생긴단 건가요? 그럼 어디 조그만 섬나라가 변종 하나 없을때 일반좀비들에게만 멸망했다면 나중가도 일반좀비만 있단거군요?
A. 그렇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전파되지 않는 한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