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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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의 골짜기 (14)
협상은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꾸준히 엉망진창이 되었다.
헌트가 겨울에게 묻는다.
“소령. 저쪽 통역이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거 맞습니까? 표정 보니까 과장이 섞여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데. 영어 실력도 훌륭하다고는 못하겠고.”
같은 의문을 품었는지 주위에서 몇 사람인가의 시선이 이쪽을 향한다. 겨울이야 수준 높은 「중국어」 능력이 있으니 상장의 말을 곧바로 알아듣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다. 화면 속 협상단장 그린을 포함해 현장 대책본부 사람들과 국방부, 백악관에 이르기까지 통역에 의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겨울은 굳이 자신에게 확인할 필요가 있는가 싶었다.
“보시면 대체로 일치하는 걸 알 수 있지 않은가요?”
손가락으로 가리킨 화면 하단의 텍스트 상자엔, 미국 측 중국어 전문가들이 별도의 장소에서 실시간으로 타이핑하는 번역문이 출력되고 있었다. 양용빈 상장 측, 중국군 통역병의 말실수와 오역에 붉은 줄을 긋고는 있으나 대체로 사소한 것들. 맥락상의 큰 차이는 없다. 다만 통역병의 어조가 다소 감정적이고 강렬하여 상장의 온유한 음성과 괴리감이 느껴지긴 했다.
헌트가 펜으로 머리를 긁으며 신경질적인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의심스러워서 말입니다. 마음 놓고 믿을 수가 있어야지.”
“…….”
미국 측 전문가들도 사람이다. 믿고 싶은 것을 믿기 쉽고, 분노하고 싶어서 분노하기 쉬운 사람들. 헌트는 그들의 혐오와 격앙된 감정을 경계하고 있었다.
‘왜곡이 있어도 그대로 받아들일까봐…….’
지나친 걱정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상황.
“아무튼 소령이 듣기에도 이상은 없다 이거지요?”
“네.”
“사이코 새끼가 저 같은 놈들만 모아놨군. 아랫것들을 흔들어보기도 힘들겠어. 이건 무슨 이슬람 극단주의자들도 아니고…….”
겨울은 헌트의 노트북을 엿보았다. 상장과 통역병만이 아니라, 발전소 벽을 뚫고 집어넣은 카메라를 통해 중국군 장교들과 병사들의 감정 분석이 진행 중이었다. 포착된 얼굴에 여러 개의 점이 찍히고, 각 점이 서로 연결되어 여러 감정들의 퍼센티지를 도출했다.
여기에 전문가들의 견해가 더해진다. 그들의 대화, 적외선 영상에 찍힌 체온의 변화, 걸음걸이의 양상과 그 밖의 사소한 행동들로부터 유추 가능한 심리에 대하여.
선택의 폭은 좁았다.
랭글리로 연결된 모니터 속에서 신임 CIA 국장이 발언했다.
[각지의 소요가 급격히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미 여섯 개 주에서 비상사태를 선포했으나, 우리가 감시중인 과격 불온단체들의 움직임을 감안할 때 앞으로 하루 이틀 이내에 미국 전역이 같은 수순을 밟게 될 겁니다. 무장한 시민들과 군경 사이에 유혈충돌이 빚어지겠지요. 그럼 각하의 정권은 끝장입니다. 수사국과 협조하여 온갖 핑계로 주모자들을 체포하거나 억류하고는 있으나 큰 효과는 없을 겁니다.]
CIA의 작전영역이 해외라고는 하나, 미국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감시는 예전부터 유명했다. 이를 토대로 핏빛 내일을 예언한 그는 빠른 행동을 촉구했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습니다. 이번 사태를 최대한 신속하게 마무리 짓지 않으면 계엄령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게 될 겁니다. 시민들의 압력을 언제까지 버티실 수 있겠습니까?]
대통령의 질문.
[국장의 제안은 뭐요?]
[죽여야 합니다. 최대한 신속하게. 아무리 늦어도, 오늘 밤이 지나가기 전에는.]
[…….]
[산 채로 잡아서 법정에 세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 전미의 분노가 법정으로 집중될 테니까요. 눈이 돌아간 시민들은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겁니다. 그 시점에서 모겔론스 샘플은 부차적인 문제가 됩니다. 잃었으면 잃은 대로 좋습니다. 저 테러리스트가 그만큼 더 나쁜 놈이 될 뿐입니다. 그렇게 여론을 몰아가면 됩니다. 최소한, 당분간은 말입니다. 그 사이에 우리는 군사적인 성과를 통한 반전을 꾀할 수 있겠지요.]
결국은 도박이었다. 샘플이 진짜였을 경우, 혹은 진위를 알 수 없게 되어버렸을 경우 대통령에겐 다양한 의미에서 정치적 부채가 될 수밖에 없었다. 흥분이 가라앉은 후에도, 앙금이 남은 이들은 대통령을 곱게 보지 않을 것이다. 사라진 샘플은 좋은 핑계였다.
권력 욕심이 많은 정치인들에게도.
본토탈환이 시민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 영향이 어느 정도일지는 불확실하고…….
‘무엇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이지.’
다른 지역에서의 작전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로저스 소장의 합동임무부대는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을까. 겨울에겐 미래를 셈하는데 필요한 정보들이 없었다.
대통령이 담담하게 묻는다.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고자 인류의 미래를 포기하라는 거요?]
상장을 생포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에 대해선 논하지 않는다.
[미국이 인류의 미래입니다.]
정보국장의 태도는 정중했다.
[어차피 협상은 희박한 확률입니다. 만에 하나 저 작자가 가진 샘플이 진짜이고, 또 기적적으로 협상이 성공한다고 가정하겠습니다. 대체 어느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겠습니까? 저 미친놈들이 제시한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일 순 없는 노릇 아닙니까? 조건을 조율하다보면 계절이 바뀌어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결과란 어떤 식으로든 굴욕적인 타협이겠고, 각하의 정치생명이 위태로워집니다. 비단 각하만의 이야기가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또한 협상기간 내내 내용을 공개하라는 압력이 있을 게 뻔했다. 하면 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 대로 부담이 있을 것이었다.
[사실 각하께서도 이미 고민하시는 바일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다른 사람의 의견으로 듣는 건 또 다른 느낌이겠지요. 결단을 내리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국장의 말은 표면적으로 대통령을 향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대책본부의 다른 구성원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맥밀런 대통령의 담담한 태도 또한 같은 맥락이었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으면 모두가 합의하는 현실이 된다. 겨울이 읽기엔 그랬다.
다들 알고 있지 않느냐.
지금도 몸을 사리는 이들이 있었다. 정치적인 처세술이었다.
모든 부담을 짊어지기로 한 대통령이 고위관계자들의 침묵을 환기했다.
[만약 타격대를 들여보낸다면 인질을 무사히 구출할 수 있겠소? 그들을 안전하게 구출한다면 소요를 진정시키는 데에 큰 도움이 될 텐데.]
[……새로운 계획이 있습니다.]
백악관 상황실, 대통령과 같은 공간에서 다른 모니터를 할당받은 특수전사령부 부사령관의 발언이었다.
[새로운 계획?]
대통령이 묻고, 역시 같은 상황실에 있는 안보보좌관, 합참의장, 국무장관, 국방장관, 부통령 등의 쟁쟁한 인물들이 시선을 모았다.
[예. 다소 과격하지만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됩니다.]
그리고 그 계획은 정말로 과격했다.
‘발전소를 아예 붕괴시키겠다니…….’
겨울은 아연함을 느꼈다. 전체를 무너뜨릴 작정은 아니었다. 다만 인질이 있는 장소를 물리적으로 차단하고 적을 분산, 고립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내부 관측을 통해 적의 배치와 순찰경로, 인질들의 추정위치, 폭발물 설치지점 등을 확인했습니다. 놈들 역시 유사시 건물을 통째로 무너뜨릴 심산이었겠습니다만……화면에 강조된 지점을 먼저 폭파시키면 나중에 추가 폭발이 일어나더라도 충격이 전달되지 않게 됩니다.]
건물을 무너뜨리려면 폭발력이 정확하게 배치되어있어야 하며, 폭발하는 시간 또한 중요하다. 폭파공학이 따로 있는 이유였다. 공병대의 계산일 것이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또한 적이 설치한 폭발물은 다 터지지도 않을 겁니다. 사진을 보시죠. EMP 대책으로서 적의 폭발물은 격발기와 유선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차피 전파사용이 제한적인 실내다보니 다른 방법이 없었겠지요. 여기, 바닥에 희미하게 빛나는 선이 보이십니까? 은박으로 감아놓은 전선입니다. 이 부분, 그리고 이 부분은 우리 쪽에서 폭파시킬 때 확실하게 끊어집니다.]
[적 생존자가 기폭 시킬 수도 있잖소.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서 별도의 타이머를 부착해놓았을지도 모르고……. 일정 시간마다 수동으로 초기화하는 방식으로 말이오. 내 걱정이 지나친 거요? 그런 건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인가?]
[아닙니다, 각하. 충분히 타당한 지적이십니다. 하지만 공격이 개시되는 시점에서, 인질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범위 내엔 적 생존자가 없을 겁니다. 외벽이 뚫리는 순간 해당 구역을 전차 주포로 저격할 거니까요.]
겨울에겐 저격이라는 표현이 어색했다. 그러나 적이 예상하지 못한 원거리에서의 공격이니, 부사령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일반적인 포탄은 못쓰겠고……벌집탄을 쓰려나?’
벌집탄은 전차 주포로 쏘는 산탄의 은어였다. 포탄 안에 무수한 텅스텐 알갱이, 혹은 자그마한 화살(플레셰트)들이 꽉 차있어 벌집 같다는 의미로. 개중엔 제식명이 벌집(Beehive)인 물건도 있다고 들었다.
최근엔 샌 아르도 유전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목격했었다. 2,200발의 산탄을 담아 쏘는 단 한 발로 일백에 가까운 변종집단을 붕괴시키는 위력. 그것은 한 개 중대의 일제사격에 필적한다.
[그리고 타이머는…….]
특수전 부사령관이 말끝을 흐린다.
[적 수괴의 생포여부와 함께 운에 맡겨야 합니다.]
대통령이 마른세수를 했다.
[여기서 운이라…….]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게 최선입니다. 폭파와 동시에 중장비를 투입하겠습니다. 운이 따라준다면 늦지 않게 통로를 개척하고 폭발물을 해체할 수 있겠지요.]
양용빈 상장은 여차하면 자살할 작정이거나, 부하에게 자신을 사살하라고 명령해두었을 것이다. 이미 다 이루었으니까.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일 터.
겨울만의 확신이 아니었다.
특수전 부사령관은 보험을 들어두었다.
[타격대원들이 자백제와 녹음기를 지참하고 있습니다. 주목표가 부상을 입을 경우, 현장지휘관의 판단 하에 후송보다 진술 녹취를 우선시하도록 명령해두었습니다.]
녹음기는 통신장비나 전투장비와 달리 전자기 충격파에서 보호하기가 쉽다. 반드시 노출시킬 필요가 없으니까. 필요한 질문도 거기에 들어있을 것이다. 타격대에 중국어 회화가 가능한 대원이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운이 좋을 때의 이야기겠지.]
대통령이 미소 같지 않은 미소를 짓는다. 시선이 멀다. 겨울은 그가 어떤 화면을 보고 있을지 알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협상단은 양용빈 상장과 무의미한 평행선을 그리는 중이었기에. 협상단은 더 이상 양보할 수가 없고, 상장은 조금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
협상단 측에서 기어코 언성을 높였다. 그 소리를 겨울도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을 들은 맥밀런 대통령이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시간을 끌어봐야 좋을 게 없겠군. 허가하리다.]
[알겠습니다. 협상단이 철수한 다음 상황을 봐서 작전을 개시하겠습니다.]
장군이 즉각 어딘가로 연락을 취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사이 대통령은 얼굴을 감싼 채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 작품 후기 ==========
#Q&A
Q. Crysis2님 : @다른 작품도 나오면 무조건 찾아뵙겠습니다. 힝상 재밌는 글 고마워욧.
A. 다른 작품…와…왜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 걸까요. 까마득하네요.
Q. Hoch님 : @그냥 미친놈보단 이상한 신념을 가진놈이 더 무서운것같아요…
A.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상한 믿음, 극단주의적인 신념들을 멀리해야합니다. 요즘 사회에서 많이 보이지요?
Q. 에린의음유시인님 : @그건 그렇고 전작이나 본작이나 일반인의 눈엔 전부 정신병에 가까운 이타를 가진 걸로 보이는 캐릭터(저쪽은 그냥 호구, 이쪽은 실질적으로 사람에게 실망한 캐릭이란 차이는 있으려나)가 주인공인데 굳이 이런 캐릭을 설정하신 이유가 있나요? 성인급 인물이 아니어도 미쳐버린 세상에서도 남아있는 빛을 표현하는건 가능하지 않으셨을까 해서 질문드립니다. 일부러 세상을 더 끔찍하게 표현하시려고 그만큼 주인공을 선의 화신처럼 설정하신건가요?
A. 정신병…작중 인터미션에서 말했듯이, 변치 않는 사랑도 따지고보면 일종의 정신질환이지요. 전 그냥 사람의 긍정적인 가능성이 좋습니다.
Q. 교역마차님 : @저는 무엇보다도 상장의 부하들이 그를 왜 따르는지 궁금합니다. 상장 하나야 같이 죽자! 고 할수 있겠으나 그의 부하들은 아닐테니까요
A. 버로우타는거다님 : 교역마차님@ 겨울의 시각에서 보는 우리에게야 양용빈 상장이 악역이지 그 부하들에겐 조국이 멸망한 상황에서 그들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지도자가 상장일겁니다. 그들 입장에선 총구를 들이밀고 있는 미국이 악역이겠지요. 어떻게 보면 북쪽의 어느 동네 주민에게도 같은 방식의 논리가 적용될 수 있겠네요.
퉁구스카 : 비슷합니다. 작중에서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로 비유했습니다. 무엇보다 폐쇄된 공동체 내의 의사소통은 극단주의를 강화하기 쉽습니다. 일상생활에선 SNS나 배타적인 카페 등이 좋은 예가 되겠네요.
Q. 음란마귀F님 : @로맨스를 쓰던 반작용으로 작가님이 핵빌런을 등판시켰습니다. 모두 참회하고 솔로로 전향을..
A. 반작용 아니거든요! 솔로로 전향하는 건 유익한 일이지만요.
Q. Eeiko님 : @키스신 한번에 핵 테러리스트 한명이니까 겨울이 해피엔딩은 인류 99%사망일듯
A. 아니거든요(2)! 저는 지금 무척 억울하거든요!
Q. qgegegqe님 : @와 레이디 솔리테어 딱한번 나온 그이름을 기억하니는분도 있군요 쌀브의 중독성이 느껴지지않나요
A. 나중에 내용을 까먹어서 못 쓰게 될까봐 틈틈이 조금씩 읽어보고 있는데, 쓸 땐 못 느꼈던 문제점들이 보이더군요. 그리고…의외로 볼 만 했습니다.
Q. LucidDream님 : @이로서 상장이 카누잉 당할 확률이 솟구치는군요
A. 카누잉을 알고 계시다니…동심이 무척 깊으시네요.
Q. 십이국기님 : @이제와서, 정말 이제와서 여쭙습니다만 현실에 존재하는 피부병이라는 모겔론스와 이 소설의 좀비병이 이름이 같은건 원래 의도하신 거였나요?
A. 이름이 같은데 우연의 일치일 리가 없지요. 헤헤. 깊은 의미는 없습니다만 의도한 건 맞습니다.
Q. Deathandeath님 : @쭉 읽어봤는데, 작가님 성격은 겨울보단 가을을 닮은것 같습니다. 가을에 겨울을 살짝 첨가했달까…. !! 위대한 옛것의 레시피를 발견했다.
A. ?!…가을이 싫어하세요? 저랑 성격이 닮았다니…그럴 리가 없는데…제 레시피엔 폴로늄이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