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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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크라멘토 (12)
“수백만……음, 수백만……. 그 정도 금액은 나 혼자서도 마련할 수 있어요. 우선 좋은 조건으로 빌려줄 업체를 하나 알고-”
여기서의 업체는 정보국과 연결된 피자 프랜차이즈를 의미한다.
‘액수가 꽤 크긴 해도 꼭 CIA 자체 예산으로 내어줄 필요는 없으니 말이야.’
정보국에게도 적잖은 정치적, 행정적 영향력이 있다. 최근 들어 입지가 다소 좁아지긴 했으나, 난민지원예산과 관련하여 장난을 치기엔 충분할 터.
이는 난민지도자라는 겨울의 특수성이며, 정보국 스스로는 큰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 생색은 생색대로 내고 약점은 약점대로 만들어놓을 상책이었다.
그들은 물론 그냥 주는 돈이라고 하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갚아야 할 게 분명하다.
“또 개인적으로 도와달라고 부탁할 사람도 있고-”
이는 주웨이를 염두에 둔 말이었다.
“마지막으로……내 사재를 털어도 백만 달러는 될 거예요.”
“백만…….”
아연해하는 천 소위를 위해 겨울이 부연한다.
“당연히 월급 받아서 모은 돈은 아니고요.”
“그럼 어떻게?”
“전에 샌프란시스코에 가있을 때 봉쇄선 사령부에서 협조요청을 하나 받았어요. 수송능력은 한정되어 있는데 시민들이 보내는 선물이 너무 많아서 보관할 곳이 없다고. 그러니 위임처분에 동의해주겠느냐고. 계약서가 같이 왔길래 서명해서 돌려보냈었죠.”
강요받은 게 아니라는 내용으로 음성도 녹음해줬지만, 지금껏 공개되지 않은 걸 보면 큰 말썽은 없었던 모양이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방역전선으로의 선물 발송을 자제해달라는 내용 본 적 있어요?”
“어, 예.”
“나 때문이에요. 아마도.”
“…….”
“아무튼 그게 아직 입금은 안 됐는데, 각 주마다 여러 물류센터에서 밀려있을 정도라고 했었으니까 적어도 백만 달러는 넘겠구나 싶어요. 처분이 오래 걸리는 걸 보면 지금도 뭔가 계속 오는 모양이고. 그 왜, 하지 말래도 신경 안 쓰는 사람들 많잖아요……. 선우 소위, 뭔가 할 말 있으면 해요.”
그런 기색이었다. 선우요셉이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지금 하신 말씀들이 사실입니까?”
“뭐가요? 내가 거짓말 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전부 다 가능해요.”
“가능하냐 불가능하냐가 아니라……음, 정말로 그렇게 하실 거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은행을 터는 것보단 낫잖아요?”
“…….”
어쩐지 두 사람 다 동요하는 분위기였다. 겨울은 어조를 한층 더 냉정하게 바꾸었다.
“이해를 못 하겠네요. 허점이 너무 많아서 어디부터 지적해야할지 모르겠다고요. 나중에 텅 빈 금고가 발견되면 가장 먼저 누가 의심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당연히 우리잖아요. 주둔지가 여기였으니까.”
한 박자 쉬고 이어가는 말.
“설마 변종들이 돈을 가져갈 리는 없고……. 고립되어있던 민간인 생존자들이 미래를 위해 굉장한 용기를 냈을 가능성도 없고. 당장 살기도 급급한 마당에……. 아니면 뭐, 무장 강도가 봉쇄선을 넘어왔겠어요? 경찰보다 변종을 상대하기 쉬울 것 같아서?”
조용한 두 사람에게 새롭게 드는 의혹.
“레인저에게 뒤집어씌우려는 건 아니었다고 믿을게요.”
그러나 십중팔구는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겨울의 임무부대에게 주 의사당을 인계해준 부대가 바로 레인저였으니, 확실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 한 책임소재는 불분명해질 수밖에.
‘내 이름 때문에라도 더더욱 그렇겠지.’
겨울의 이미지가 깎이면 겨울만 손해를 보는 게 아니다. 공보처가 왜 그리 열을 올리겠는가. 전시채권 판매량은 물론이거니와 조안나가 염려하던 불씨들도 영향을 받을 것이었다.
바보가 아닌 한 두 소위 역시 여기까지 계산했으리라.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다. 공화당 대선주자 입장에선 겨울이 정치적으로 무척 거슬릴 것이다. 후보 개인의 속마음이야 어쨌든, 난민지원 축소를 반대하는 여론의 가장 큰 이유가 겨울이었으니까. 만약 그가 백악관을 차지할 경우, 털린 금고는 아주 좋은 명분이 된다. 반드시 겨울을 깎아내릴 필요도 없었다.
「난민 병사들은 소령의 기대를 배신했다.」
같은 식으로, 대중이 인식하는 겨울을 난민과 분리시키면 그만이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예산을 아끼는 동시에 전쟁영웅은 전쟁영웅대로 이용할 수 있게 되므로.
“게다가.”
겨울이 다시 지적한다.
“이미지도 문제죠. 안 그래도 난민에 대한 인식이 별로인 마당에 우리까지 도둑질로 걸려 봐요. 받을 지원도 못 받게 된다고요. 금액에 비해 위험부담이 너무 크지 않아요? 수백만 달러를 써서 광고를 해도 모자란데 수백만 달러짜리 폭탄을 끌어안겠다니……. 제정신으로 하는 제안인지 의심스럽네요.”
이어지는 힐난.
“재무부가 그렇게 만만한 곳도 아니에요. 전에 못 봤어요? 포트 로버츠의 거주구역이 완공되었을 때, 백산호 같은 사람이 땅 투기 한답시고 돈 가방 풀어놓으니까 곧바로 시크릿 서비스부터 찾아오는 거. 나야 나중에 민 부장님하고 통화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두 사람은 직접 봤을 거 아녜요? 봄이 지난 다음에야 거길 떠났으니.”
심지어 재무부는 자체적인 정보기관까지 보유하고 있다. 한국으로 따지면 국세청 아래에 국정원 비슷한 부서가 있는 격이었다.
“천 소위는 미국에서 몇 년 살았다고 들었는데, 맞아요?”
“네! 그렇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 안 해요? 은행에 큰 돈 넣어두지 말라고. 1만 달러만 넘겨도 재무부가 확인해서 귀찮아진다고.”
“몇 번 듣긴 했습니다.”
“큰돈이 오가면 무조건, 하다못해 자동차 한 대를 거래해도 딜러가 의무적으로 신고를 해야 하는 나라에요. 그런데 사업을 하고 농기계를 사요? 그게 가능해요? 돈세탁은 삼합회에게 맡길까요? 아무리 범죄자들이라도 지금 그럴 능력이 있을지 의문인데요.”
목이 울리도록 침을 삼킨 천 소위가 뭔가 결심한 듯 한 낯빛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입니다.”
“그래서라뇨?”
“쓰거나 옮기기 어렵기 때문에, 중대장님……아니, 작은 대장님께서 저희를 포기하거나 떠나시더라도 남아있을 자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상황에선 쓰기 까다로운 돈이라도 없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요. 최소한 생필품을 구입하는 푼돈으로는 쓸 만 할 겁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린지. 겨울이 눈을 살며시 찡그린다.
“점점 모르겠네요. 내가 왜 떠난다는 거예요?”
“처음부터 전부, 솔직하게 말씀드리지 않은 건 죄송합니다.”
그녀가 감추지 못하는 우울함으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돌아갈 날이 다가올수록 걱정스러웠습니다. 작은 대장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저희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포트 로버츠에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곳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저하고 여기 선우 소위가 대장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이제야 감이 잡힌다.
“……내가 질리기라도 할 거란 뜻인가요?”
“예. 보여드리기가 부끄럽습니다.”
“사람들에게 실망한 건 내가 아니라 당신들 같은데요?”
짧은 침묵이 있었다. 겨울은 반응을 기다리며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딱, 딱, 딱. 고개를 들 줄 모르는 천소민 대신 선우요셉 소위가 자세를 바로 한다.
“저는 중대장님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해?”
“예. 이해. 조금 전만 해도 그렇습니다. 제가 진심이냐고 여쭤봤던 건, 정말로 빚을 지거나 사재를 다 털어서까지 사람들을 도와주실 거냐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중대장님께선 눈치를 못 채시더군요. 그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 당황했습니다.”
소위는 한 호흡을 쉬고 물었다.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습니까? 그렇게까지 사람들을 돌봐주시는 건 어떤 이유가 있어서입니까? 개인적인 욕심은 전혀 없으십니까?”
“…….”
겨울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욕심을 냈을 것이다. 아주 많이. 종말을 한계까지 밀어낸 세계에서의 풍족하고 여유로운 삶. 이는 생전에 고단했을 뿐더러 사후마저 혹독한 이들이 누구나 바랄 법한 목표였다. 물리세계의 과거에 기초하여 재구성된 모든 세계에서, 사회가 유지되는 한 재화의 중요성은 현실과 같다. 욕망의 무게를 재는 눈금이다.
그러나 겨울에게는 이 세계의 부유함이 별 의미가 없었다.
‘아예 없으면 곤란하겠지만…….’
극복 가능한, 혹은 견딜만한 곤경이었다.
허나 이를 전달할 방법이 마땅찮다. 어설픈 설명은 상황연산 오류를 야기할 것이었다.
겨울의 고요는 오해를 사기에 좋았다. 선우요셉이 살짝 끄덕였다.
“저희는 불안해해야 정상입니다. 오히려, 중대장님께서 앞으로도 계속,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저희와 함께하실 거라고 믿거나……이런 문제에 대해 아예 고민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야말로 이상할 만큼 낙관적인 거라고 봅니다. 이 와중에 자기 생각만 하는 이기적인 인간들은 중대장님의 호의가 권리인줄 아는 놈들이고요. 이제 미국 어디를 가더라도 남부럽지 않게 성공할 분이 중대장님이신데……난민구역을 언제 떠나도 아쉬울 게 없는 분이신데 말입니다.”
잠시 생각한 겨울이 확인했다.
“결국 은행을 털자고 했던 건, 돈도 돈이지만 날 시험하려는 의도도 있었던 거네요?”
“죄송합니다.”
“나 참. 화 안 내고 영창도 안 보낼 테니까 두 사람 다 이제 좀 편하게 있어요. 의자 갖다가 앉아도 되고. 보기 되게 불편해요.”
하지만 소용없는 배려였다. 소위 둘은 꿋꿋이 부동자세였다. 그래도 긴장은 조금 풀린 듯 하다. 고비를 넘겼다는 느낌. 진석과 유라가 아무나 고른 건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 민 부장님이랑 비슷한 대화를 한 적이 있었네요.”
두 소대장의 표정을 본 겨울은, 그들을 위한 작은 미소를 만들었다.
“궁금해요?”
천 소위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무슨 내용이었습니까?”
“말 그대로 비슷했어요. 사람에 대해서 많이 냉소적이시더라고요. 다 거기서 거기라고. 이기적이고, 감정적이고, 한계가 분명하다고.”
“…….”
“그러면서 저한테 물어보시더라고요. 사람들을 믿고 싶으시냐고. 그때는 그냥 글쎄요, 하고 말았는데…….”
겨울이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만약 지금 같은 질문을 받게 되면, 다른 대답을 할 것 같아요.”
사람들이 보다 나은 모습일 수 있음을 믿고 싶다고. 재구성된 과거의 갈피에서, 예전엔 있었을지도 모를 가능성을 찾고 있노라고.
“어떤 계기라도 있었습니까?”
“별이요.”
“……별?”
“네. 요즘은 별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
뜬금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선우 소위 쪽은 우울한 부채감도 느껴진다. 본인보다 어린 중대장이 답답할 때 별이나 헤아린다고 여긴 걸까?
아무래도 좋은 착각이었다. 별빛아이의 성장에 대해서는 뭐라고도 하기 어려웠으니.
사람의 마음을 얻고 사람에 실망한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필연적인 슬픔이라도 조금은 덜어주고 싶다. 가능하다면 말이지만. 고작 별 하나의 약속이 이렇게 깊어질 줄이야.
겨울이 말했다.
“모자란 대답인거 알아요. 안심이 안 되죠? 객관적으로 봐도 난민들의 주지사보다는 미국 시민들의 하원의원이 나을 것 같고.”
“…….”
“내가 여러분을 버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고, 난민 지원정책도 확신이 안 서니까 보험 삼아 돈이라도 얼마 들고 있었으면 하는 심정은 이해하겠는데, 당신들을 위해서라도 안 됩니다. 나중에 그게 문제가 되면 난 내가 남고 싶어도 남기 힘들어진다고요.”
“……알겠습니다.”
“뭣보다 걱정이 너무 지나쳐요. 지금까지 싫은 티를 낸 적이 없을 텐데.”
“하지만……사람들에게 실망한 적이 없으십니까? 한 번도?”
천소민 소위의 물음이 겨울을 실소하게 했다. 만들거나 꾸미는 웃음이 아니었다.
“나보다 많이 실망한 사람은 드물 걸요? 이것도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아닙니다.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거의 반사적인 대답에서는 단단한 감정이 느껴졌다.
“뭐, 아무튼.”
겨울이 대화를 마무리 짓는다.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해두죠. 행동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을 것 같고. 선우요셉 소위, 천소민 소위. 혹시 아직 다른 용건이 있습니까?”
시선을 교환한 두 소위가 거의 동시에 아니라고 대답했다.
“좋아요. 그럼 구령 크게 붙여서 푸쉬 업 서른 번 하고 나가요. 벌은 그걸로 끝내죠.”
벌이라기보다는 다시 한 번의 배려다. 이번 일로 더는 문제 삼지 않겠다는 뜻. 어느 쪽이든 PT 1급이라 서른 번은 금방이었다. 정확하게 속도를 맞춘 두 사람은 호흡이 거의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경례했다.
그들이 나간 뒤에, 겨울은 서랍에서 편지 하나를 꺼냈다.
발신인도, 주소도, 우편번호도 적혀있지 않았으나 보낸 이를 특정하긴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겨울에게 사적인 편지가 오는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다. 즉 보통의 경로로 전달된 게 아니라는 뜻.
편지지에 뿌려진 향수는 주웨이의 것이었다.
서간은 간소했다. 전화번호 하나에 두어 줄의 문장 뿐. 이마저도 영어로 썼으므로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내용은 이러했다.
「제 번호입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그리고 저도 기다리겠습니다. 비록 제멋대로이지만, 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기분 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겨울은 두 번째 줄을 곤란하게 여겼다. 두 소위에겐 자신 있게 말했으나, 막상 도움이 필요할 때도 연락하기가 망설여지겠다고. 위험부담이 따른다 한들 CIA 쪽의 협력을 받는 게 더 편할 듯 하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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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측에서 원고 접수일정을 갑작스럽게 앞당기는 바람에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이번 편은 지난 새벽에 완성했으나 업로드 시간을 맞추려고 이제 올립니다.
댓글 답변은 다음 화로 미루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