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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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가 시드는 계절 (9)
고건철 회장은 거짓을 혐오한다. 같은 맥락에서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도 썩 좋아하지 않았다. 고로 중요한 논의란 매양 실제로 사람을 만나는 약속이었다.
“저어…….”
오늘의 방문객은 회장의 눈치를 살피며 가을을 곁눈질했다.
“저 아가씨……아니, 저 분은 내보내지 않으시는 겁니까?”
객이 들면서 회장이 모두 나가라고 했으나, 가을은 시립한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예전부터 항상 예외였고, 비서가 된 지금은 더더욱 그러했기 때문. 회장이 가을을 곁에 두는 이유를 감안하면 당연한 것이었다. 폭군은 그녀에게 폭정의 당위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회장이 손짓했다.
“내 측근이오. 인사 나누시오.”
“아.”
나직한 탄성. 가을의 격을 고민하며 음습한 기대를 비추던 손님이 빠르게 낯빛을 바꾸었다. 그는 나이차에 개의치 않고 허리를 숙였다.
“이 만남에서 제게 직접 소개해주시는 걸 보니 정말 중요한 분이신가 보군요. 하하하! 처음 뵙겠습니다. 미래한국국민당 대표 방, 호, 재! 의원입니다. 너무 아름다우셔서 초면에 눈길을 빼앗긴 점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만남, 제게, 그리고 직접. 여기에 은근한 강세가 들어간 말. 이것이 의식적이었든 무의식적이었든 뜻하는 바는 같았다. 그저 교활함과 거만함의 차이일 뿐. 가을이 마주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대표님. 비서인 한가을입니다.”
“…….”
정치인은 잠시 웃는 얼굴로 침묵했다. 회장과 가을 사이를 순간적으로 왕복하는 시선. 가을이 보기엔 그의 속이 뻔했다. 겨우 비서? 자신을 일개 비서와 같은 선상에서 취급하는 것인가, 아니면 가을에게 비서라는 직위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것인가? 를 고민하는 느낌.
고건철이 말했다.
“지금은 비서지만 나중에는 다를 거요.”
“역시 그랬군요.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끄덕끄덕. 정치인은 이제 기분이 좋아 보인다. 그러나 그것도 한 꺼풀의 연기였다. 가을은 웃느라 가늘어진 그의 눈에서 색이 바뀐 의혹을 읽었다. 대체 이 여자는 정체가 뭘까. 단순한 애인인가? 아니면 숨겨둔 자식? 오늘은 중요한 자리다. 아무나 부르진 않았을 것이다. 폭군은 하나 뿐인 딸과 사이가 나쁘기로 유명한데, 어쩌면 혜성과 낙원의 후계구도가…….
여기까지 헤아리기에 무리가 없는 건 애초부터 가을이 동생만큼이나 타인의 속내에 예민했을 뿐더러, 또한 가을의 직무가 평범한 비서를 넘어서는 탓이기도 했다. 특정 분야에서는 심복 중의 심복이라는 특수비서 강영일보다도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을 지경. 따라서 뱀 같은 사내는 가끔씩 아기를 질투하는 사냥개처럼 보였다. 독사이며 맹견인 그는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다.
어쨌든, 고건철 회장이 거짓말을 한 건 아니다.
정치인이 이번엔 다른 우려를 드러냈다.
“헌데 회장님께선 전보다 더 편찮아 보이십니다. 치료는 받고 계십니까?”
쿨럭. 하필이면 지금 나오는 기침. 순간적으로 치미는 화를 억누르며, 폭군이 사나운 평정으로 대꾸했다.
“전신재생을 받고 있소. 만약의 경우를 위해 복제체도 만드는 중이고. 그러니 계약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 없소.”
“이런……. 저는 진심으로 걱정스러워서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아무튼 전신재생이라……그 정도면 안심이군요. 어련히 관리하실 텐데 괜한 걱정이었나 봅니다.”
“설령 내가 오늘 죽더라도 당신은 거래의 대가를 받게 될 거요.”
“허허허.”
정치인들이 난처하다는 듯이 웃는다. 아까부터 웃는 얼굴뿐이었다.
가을은 기침으로 흔들리는 회장의 어깨를 가만히 눌러주었다. 한때 겨울이었던 몸은 실제로도 죽어가고 있었다. 전신재생 이상으로 무너지는 속도가 빠를 만큼. 주치의는 피멍도 많고 두려움도 많았다. 새로운 복제체가 완성되기까지 견디시려거든 이제부터 하루에 16시간의 세포재생시술을 받으셔야 한다고. 그것도 최소로 잡은 수치라고.
그러나 남을 믿지 않는 회장이 업무시간을 줄이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심인성 질환임에도 약물복용마저 거부하는 상황.
“물건은?”
회장의 물음에 방호재 의원은 망설임 가득한 동작으로 저장매체를 꺼냈다.
“여기 있습니다.”
“정확도는 어떤 것 같소?”
“아, 그것이……제가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고 자부하는데도, 추출한 결과를 보니 흐릿한 구석이 꽤 되더군요. 말씀하신대로 추가 편집 없는 원본으로 가져오긴 했습니다만…….”
“그거면 충분하오.”
“혹시 몰라서 기록을 검토한 제 소견서도 첨부해놨습니다. 회의 전체를 정확하게 기억하진 못하더라도, 대체로 어떤 내용이었다는 것쯤은 남아있으니 말입니다. 기억을 보실 때 참고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고맙군. 대표의 성의를 기억해 두리다.”
“하하. 별말씀을요.”
무언의 지시에 따라 가을이 저장매체를 회수했다. 이런 거래가 처음은 아니었다. 방호재 의원은 모르는 듯 하지만. 욕심이 많은 이는 그밖에도 있다는 말이다.
회장은 정치인과 잠시 실속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다른 목적은 없고, 다만 위정자에게 신뢰와 안심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거래가 목적이라면 회장에게도 이런 일이 가능했다.
“그럼 살펴가시오.”
작별을 고하는 회장에게 입법부 고위관계자가 상체를 직각으로 꺾는다.
“곧 다시 뵙겠습니다. 이 나라를 위해서라도 꼭 건강해지셔야 합니다, 회장님.”
문 밖에선 특수비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방 의원이 이곳에 온 것 자체가 비밀이었으므로, 배웅엔 국정원 요원 출신인 비서의 능력이 요긴했다. 여기에 낙원을 인수한 혜성그룹이 사후보험을 위탁 관리하고, 다시 사후보험이 무인 교통관리체계를 위탁 관리하므로, 도로에 즐비한 폐쇄회로는 걱정할 거리가 아닐 것이었다.
불편하게 가래 끓는 소리를 내던 폭군이 가을에게 묻는다.
“저것이 왜 나와 거래하는지 짐작할 수 있겠나?”
“……가만히 있으면 아주 오랫동안 가장 아래일 거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요.”
“이미 대부분의 잡것들보다는 위인데도?”
“욕심엔 끝이 없으니까요. 가지고 있는 건 보이지 않는 거겠죠.”
“그래, 그렇지. 사람에겐 언제나 더 큰 이익이 필요하지.”
회장이 감정을 드러냈다. 옅은 만족감. 약간의 초조함. 이유는 가을이었다. 곁에 두기로 한 이유가 이런 것들을 보여주고자 함이었으니.
“재생해라. 먼젓번과 비교해봐야겠다.”
가을은 그의 지시에 따라 콘솔에 저장매체를 끼우고 데이터를 복사했다. 같은 폴더엔 이미 많은 파일들이 존재했다. 방호재보다 앞서 거래를 튼 모 정치인의 기억들이었다. 각각의 파일마다 회의의 명칭이 붙어있었다. 경제개혁위원회, 사후보험 보안위원회, 국방정책위원회, 국가비전 2070 검토위원회에 이르기까지…….
외부의 매체에 기억의 사본을 만드는 기술은 신뢰도를 의심받기 쉬웠다. 사람의 기억이란 제멋대로 왜곡되거나 지워지기 십상이었으므로.
오늘 이후로는 하나의 회의 당 두 개의 파일이 생길 것이다. 같은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의 대조가 가능해진다는 뜻.
여기서도 운영체제는 트리니티 엔진이었다. 가을은 증강현실로 무언의 명령어를 전송했다. 홀로그램이 떴다. 같은 시간에 교차하는 두 개의 기억이 하나의 회의로 복원되어 흐르기 시작했다. 방 의원 이외의 거래로 벌써 한 번 보았던 내용이지만, 전보다 깨진 곳이 적을 뿐더러 더욱 정확할 것이었다.
…….
「위원 E : 뭐 어때요? 우리는 백년 후에도 여전히 존재할 텐데요.」
…….
「위원 A : #%327떫꼸으로, 기존 구상안의 별빛 헤게모니는 순조롭게 구축되고 있습니다. 주요 국가들의 지속적인 견제에도 불구하고 사후보험 가상화폐인 별이 사실상의 기축통화에 봹띗?괃 중이란 뜻이죠. 작년 岳?뙦tOfr?를 기준으로 전 세계 금융상품의 17%, 무역거래총량의 9%가 다른 화폐를 거치지 않고 오직 별 지급요청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간접적인 거래까지 감안하면 훨씬 더 엄청나지요.」
「위원 D : 아직은 방심하면 안 됩니다. 미국도 미국이지만 중국의 압력이 대단해요. 위기감을 느끼는가봅니다. 걂찻긁?4? 가다간 바로 옆에 패권국가가 등장할 판이니까요.」
「위원 C : 그래봐야 지들이 뭘 어쩌겠습니까? 무역보복을 하자니 자기만 손해고, 전쟁을 하려면 같이 망하는 길밖에 없는데. 그쪽에서 뭐라고 뺅슷NULL 공갈밖에 더 됩니까?」
「위원 B : 핵만 아니면 재래식 전력도 우리보다 나을 게 없을 건데…….」
「위원 C : 우리가 원체 돈이 많아야지요. 하하.」
「위원 E : 국민들이 희생당할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민의에 의해 선출된 우리가 살아남고, 또 사후보험의 핵심인 트리니티 엔진 코어도 무사할 테니 전쟁을 驗愿 두려워하기만 할 필요는 없겠지요. 외교적으로 지금보다 강하게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원 B : 으음,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트리니티 엔진 격납고가 몇 메가톤까지 견디도록 설계되었죠?」
「위원 A : 艱⌹NULL톤 지저폭발로 3회요.」
…….
「위원 A : 그래도 선진국입네 하는 나라들이 중진국 이하 그룹을 포섭하려는 움직임은 경계해야 마땅합니다. 낮은 확률이지만 자칫 국가비전 전체가 무너질 수 있어요.」
「위원 C : 저는 뭐……. 별 걱정 안 되는군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유럽연합에 이르기까지, 각자 자기네가 주도권을 잡으려고 애쓰잖습니까. 안 될 겁니다, 아마.」
「위원 D : 그동안의 투자가 드디어 빛을 보는 거지요.」
「위원 E : 예, 맞아요. 우리나라가 얼마나 오랫동안 손해를 봤는지.」
「위원 D : 세계 최고의 인공지능이 있는데도 왜 자동화에 고삐를 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