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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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렇게 말씀드리는 건 어떨까요? 저는 제 사람들도 믿을 수 없다고.”
“선생 스스로 능력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과대평가는 그만 두세요. 「겨울동맹」은 이제 막 만들어졌어요. 원래 있던 사람들이 저를 인정한 것도 겨우 오늘인데요.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새롭게 받을 예정인데, 일탈하는 사람 없을 거라고 어떻게 장담하겠어요?”
“…….”
“「삼합회」의 규약이 무겁다고 하셨죠? 제가 알기로 그 규약에 이런 내용도 있는 걸로 아는데요. 「입문 후 후회하거나 탄식하는 자는 죽음으로 죄를 갚는다.」……죽을 사람 많이 나오겠네요. 조직의 서열 확립을 위해 이걸 악용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대화가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자 아이링의 평정이 뒤틀리고 있었다. 줄곧 머금고 있던 미소가 많이 엷어졌다.
“규약을 따르지 않는 자를 엄히 벌하는 건 지도자의 의무잖아요. 한 선생께서도 당연히 하셔야 할 일이고요. 일벌백계는 조직의 규율을 바로잡는 기초랍니다.”
“전체를 위한 불가피한 희생이라는 게, 있긴 있을 거예요. 하지만 불평 좀 했다고 죽이다니……그건 제 방식이 아니에요. 당장은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도 상관없어요. 적이 되지만 않는다면, 능력껏 끌고 나갈 겁니다. 그러다보면 믿음도 생기겠죠. 대충 죽여서 겁주는 식으로 만드는 가짜 믿음 말고, 공동체에 대한 진짜 신뢰 말이에요.”
“가짜라니……지금 우리 회를 모욕하시는 건가요?”
「생존감각」이 반응했다. 증강현실의 붉은 경고. 위협수준은 낮았다. 당장 칼부림을 벌이려는 게 아니다. 언젠가 구체화될지 모르는, 막연한 살의를 품었다는 뜻이었다. 그렇겠지. 얼굴이 아무리 예뻐도, 결국 범죄조직에 속한 여자니까.
경고의 색이 옅어졌다. 그녀가 자신을 다스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아직 설득할 생각인가보다.
“미국은 난민 살리기에 관심이 없어요. 그들이 진정 우리를 인간으로 생각했다면, 지금 이런 대화 자체가 필요하지 않았을 거예요. 이 캠프에 치안과 질서, 희망이 있었을 테니까요.”
숨을 고르고서, 다시 말하는 그녀.
“지금 손에 넣은 명성과 지위가 자랑스러우신가요? 선생은 가축에 지나지 않아요. 품종이 좋을 뿐. 겨우 그걸로, 언제까지 사육사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요? 그들이 더 나은 품종을 찾으면 선생은 버려질 거예요.”
협박 참 잘한다. 겨울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숫자가 곧 힘이고, 뭉쳐야 겨우 살아남을 시대에요. 가장 강력한 조직의 일원이 되세요. 어려울 때 받은 도움을 평생 기억할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돕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평생 기억하겠죠. 우리는 우리가 아닌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냉혹해질 수 있습니다.”
그녀가 요구했다.
“이제 대답을 주세요.”
압력이 대단하다. 그녀의 기세도 강하지만, 대화를 듣고 화가 난 호위들이 더 강했다. 소년을 무섭게 쏘아본다. 시선이 칼날 같다. 「전투감각」, 「생존감각」, 「통찰」의 연동. 위협성 평가. 각자가 상당한 실력자들이었다. 총기를 휴대한 겨울이 두려워할 필요는 없었지만.
소년은 조용히 말했다.
“사실 저는 종속보단 동맹이 마음에 듭니다.”
“그렇게 어설픈 유대로는 서로에게 도움 될 게 없어요. 우리는 「흑사회」의 주도권을 잃어버릴 것이고, 선생은 대국인들의 힘을 얻지 못할 테니까요. 무엇보다 동맹은 대등한 세력 사이에서 맺는 관계잖아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노약자, 부녀자, 고아 투성이인 「겨울동맹」이 아니라, 선생 한 사람 뿐인걸요. 격이 맞지 않아요.”
“제가 그걸 만회할 정도로 노력한다면?”
“겸손하지 못하시네요. 한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어요.”
“그런가요. 그럼 돌아가세요.”
겨울이 대화를 놓는다. 미련 없이. 아이링은 세게 얻어맞은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요?”
“굉장히 무례하셨습니다. 소저의 말씀을 요약하면 이거죠. 「일단 굴복해라. 하는 거 봐서, 가족으로 대우해주겠다.」 그 약속을 보증할만한 담보가, 실질적으로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인데. 그래서 믿지 못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이번엔 협박을 하셨잖아요. 너희가 계속 한국인으로만 남아있으면 결국 짓밟히고 말거라고.”
“저는 단지 그게 현실이라고 드린 말씀이었을 뿐이에요!”
“그럼 더 질이 나쁘네요. 무의식중에 깔보고 있다는 뜻이니까.”
미인이 입술을 깨물었다. 속상한 표정이다. 덩치 큰 어깨들에게서 느껴지는 살의도 급격한 상승곡선을 그렸다. 당장이라도 칼부림을 낼 것 같지만, 아이링이 내젓는 손길에 가라앉는다. 천막의 원래 주인들이 굉장히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눈에 띄는 두 사람. 박진석과 이유라.
진석은 자기 주위로 조용히 사람을 모았다. 전투력을 기대할 수 있는 면면이다.
유라는 덜덜 떨면서도 과도 하나 엉덩이 아래 깔고 앉았다. 훌륭한 감투정신이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릴게요.”
손가락을 하나 세워 보이며, 입을 여는 겨울.
“저는 능력이 있어요. 사육사들에게 버림 받을 일 자체가 없도록 만들 거라고요. 적어도 제가 있는 한, 아무도 「겨울동맹」을 얕볼 수 없을 걸요? 오만하다고 말씀하시려면 일단 저를 능가해보세요. 아니면 죽여보시든가.”
탤런트 어드밴티지를 있는 대로 받고 있는 플레이어를 누가 능가한담.
“정말 자신감 넘치시는군요.”
“단지 그게 현실이라고 드린 말씀이었을 뿐인데요.”
아이링이 조금 전 했던 말 그대로다. 돌려받은 아이링은 말문이 막혔다. 무릎 위에 두 주먹 모아 쥐고 한숨을 내쉬는 그녀. 잠시 후 한 번 더 내쉬고, 시차를 두어 몇 번을 더 내쉬었다. 몸을 몇 번 움찔거리는 품이 당장이라도 일어나 나갈 것 같았지만, 끝끝내 자리를 터는 일은 없었다.
몇 번 달싹이던 입술에서 겨우 나오는 말.
“외부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실 텐데요. 정보라던가…….”
구차하다. 예상범위 이내였다.
“애써 찾아와주신 덕분에 그 걱정은 덜겠네요. 「흑사회」의 다른 가족들도 소저의 방문을 알고 있을 거 아녜요? 제가 「삼합회」에 협력하지 않는 대가로 정보쯤은 내주지 않을까요?”
“큭…….”
그녀는 다시 한참을 입 다물고 있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할 정도로. 그러나 지켜보는 이들에겐, 아무래도 숨 막히는 침묵이었다. 그들을 향해 한 번 웃어줄까 하다가 말았다. 동맹원들의 경외를 사기는 좋겠는데, 앞에 둔 여자에겐 필요 이상의 도발이 될 것이었다.
“그렇다면 마지막 제안이에요.”
아이링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약속을 보증할 담보가 필요하다면, 저는 어떠신가요.”
웃으면 안 되는데, 겨울은 무심코 쓴웃음을 지었다. 비웃음이 아니다. 시청자 퀘스트가 무지하게 쇄도했기 때문이었다. 보이는 퀘스트마다 섹스로 시작해서 제발 좀 섹스로 끝났다. 읽지 않은 메시지 수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아. 이것 참…….
그러나 사정을 모르는 제안자, 여인으로서는 모멸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반응이다. 그녀가 터지기 전 겨울이 먼저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비웃으려는 건 결코 아니었어요. 그래도 이상한 점이 있네요.”
“뭐가요.”
“왜 그렇게까지 하세요?”
대답이 없다.
“「흑사회」의 주도권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어차피 같은 민족 사이에서 대표만 바뀌는 일이잖아요. 다른 조직이 맹주가 된다고 해도, 나중을 기약하면 그만 아닌가요?”
여전히 대답이 없다.
“아니면 나중을 기약하지 못할 이유가 있으시던가.”
“……질이 나쁘시군요. 답을 아는 질문은 그만두세요.”
마침내 나온 대꾸에 겨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못할 짓 많이 하셨나보네요. 같은 「흑사회」 형제들이라고 하시더니.”
그것도 보복을 걱정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그만하라고 말씀드렸어요.”
“에이, 그런 표정 지으실 것 없어요. 우리 한국인들도 그러는데요 뭐. 같은 민족이고 뭐고 죽이고 빼앗으려고 혈안이 되어있거든요. 모르긴 몰라도 중국인 분들보다 훨씬 더 심할걸요?”
소년은 담백한 어조로 말한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사람에게 필요한 건 사람이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고. 나가서 위험을 무릅쓰기보다는……아무래도 다른 사람에게서 뺏는 게 편했겠죠. 이해해요. 사기치고 등쳐먹기 좋은 건 언제나 같은 민족이잖아요. 소저께서도 한몫 하셨을 것 같은데, 그런 분과 맺어지고 싶지 않네요.”
당신 같은 여자는 줘도 안 받겠다는 말. 이 이상의 모욕이 여자에게 또 있을까? 곧바로 머리를 거치지 않은 반발이 튀어나왔다.
“전 반대했어요.”
“아니라고는 안하시네요?”
한 번 평정이 깨지니 이쪽의 함정에 계속해서 빠진다.
이제 아이링이 겨울을 보는 두 눈에 독기가 서렸다. 조금 젖어있다. 가냘픈 어깨가 가늘게 경련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겨울은 동요하지 않는다. 알아낸 것이 많아 만족스러웠다. 덧붙여, 이 대담으로 얻어낸 별의 수도 만족스러웠다.
“가겠어요.”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서는 「삼합회」의 간부. 돌아서려다가 멈칫, 소년을 노려본다.
“당신, 후회하게 될 거예요.”
“그거 그냥 한 번 해보시는 말씀인가요, 아니면 「삼합회」 전권대리인의 선전포고인가요?”
시스템은 공정하다. 능력 없는 여자가 아니니, 적정 등급의 「통찰」과 「생존감각」 정도는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플레이어의 감정과 생각에 반응한다. 그리고 기술등급으로 평가할 때 소년의 전투능력이 월등하니, 감지한 위협의 수준이 무척이나 높을 것이었다.
과연, 움찔 움츠러드는 가녀린 육체. 후환을 남기지 않기 위해, 그녀부터 죽여 놓고 「삼합회」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의도를, 충분히 읽었을 것이다. 그녀는 말을 더듬었다.
“……해 본 말이었어요.”
굴욕을 감수하고 사는 쪽을 택한다. 그러고서, 결국 참고 참았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정말 성격 나쁘시네요. 굳이 그렇게 무의미한 추궁을 하셔야 했나요?”
무의미하다면 무의미하다. 그녀가 거짓말 하지 말라는 법 없으니까. 그러나 소년에게 남을 희롱하는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점을 해명한다.
“그렇게 보였다면 유감이네요. 경고였는데.”
“경고?”
“우리가 서로 싸워서 좋을 것 없고, 싸우게 되면 그냥은 당하지 않겠다는 경고죠. 혹시나 소저께서, 감정에 휩쓸려 말을 잘못 전하실까봐……그런 일 없기를 바라며 드린 거고요. 무슨 악감정이 있어서 조롱하겠어요? 앞일이 어찌 될지 모르는데요.”
“…….”
“오해하지 마세요. 전 아직도 동맹이라면 좋다고 생각해요. 혹시 생각이 바뀌신다면 언제든 다시 오세요. 기다리고 있을 테니.”
시간이 흐르지 않는 건가? 싶을 만큼 움직이지 않는 아이링.
굉장히 긴 한숨이, 그녀를 다시 움직이게 했다. 눈빛이 많이 누그러져있었다.
“뭔가 좀 억울한 기분이군요.”
“억울해하실 것 없어요. 서로 무례했으니 한 번씩 주고받았다 치고, 앞으로 묵은 감정 없는 걸로 해두는 게 어떨까요?”
이 말을 들은 미인은 표정이 엉망이었다. 온갖 감정이 한꺼번에 다 보인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실소였다. 굳이 시스템의 도움을 받을 것도 없이, 속 잘 읽는 소년은 그것이 그녀의 진짜 얼굴임을 알았다.
엉뚱한 생각이 든다.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털 나는데. 물론 생각만이다. 이걸 말하면 갈 데까지 가는 무례함이고, 성희롱이었다.
아이링의 힘없는 목소리.
“정말, 언변 하나는 엄청나시군요.”
“그러게요.”
가벼운 긍정에 아이링은 또 한 번 어이가 없다.
“제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요.”
“웃으세요. 삶이 잿빛이면 웃기라도 해야죠.”
그런다고 순순히 웃는 건 여자 하나였다. 남자 다섯은 꿋꿋이 험악한 표정이다.
“살펴가세요.”
“네. 건강하시길. 말씀하신 것처럼, 좋은 일로 다시 뵈었으면 좋겠네요.”
그들을 배웅하고 들어오자 사람들이 우 몰렸다. 대담의 경위가 궁금할 것이었다. 번거롭지만 한 번 설명해두는 게 낫겠지. 지도자로서의 위신도 더할 겸.
그럴 필요는 없었다.
“굉장했습니다.”
“중국어도 할 줄 아세요?”
“아직 말은 어렵지만 청해는 가능하지요. 작은 대장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민완기 부장이 생각 이상의 인재였다. 겨울의 호감을 얻어두려는 의도가 없지 않겠지만, 그가 쏟아내는 감탄은 대개 진심으로 보였다.
“설마 교섭에 그토록 능란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언변도 유창하시고. 상대의 허와 실을 아주 제대로 짚어내시더군요. 조마조마한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마지막에 상대를 달래서 보낸 것도 훌륭했습니다. 분위기를 확확 뒤집으며 대화의 주도권을 놓지 않으시는 게, 마치 숙련된 협상가를 보는 기분이었지요. 재능을 타고나신 것 같군요.”
“과찬이세요.”
대화에 열기가 더해질수록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점점 더 궁금해질 뿐이다. 뭔가 대단한 일이 일어났다는 거 같은데 영문을 모르겠다. 시선이 자연히 애처로워진다.
겨울이 민완기에게 부탁했다.
“기왕 들으셨다면 다른 분들께 저 대신 설명 좀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를 어용학자로 쓰기 좋겠다고 보았던 겨울의 안목이 정확했다. 단순히 사실을 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듣는 사람들의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괴벨스?
그 와중에 장연철이 머뭇거리며 다가왔다.
“무슨 일이세요?”
우물거리던 그가 말한다.
“저는 일본어를 할 줄 압니다.”
“……네?”
“그러니까…마, 말하기도 됩니다.”
“…….”
다른 사람들이 민완기를 중심으로 오오 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소년과 장연철 사이에만 기묘한 고요가 자리 잡는다. 뒤늦게 이불을 차고 싶어졌는지, 장연철의 얼굴이 벌개졌다.
“죄송합니다.”
“아니, 아니에요. 앞으로 기대할게요.”
위로가 되지 않았나보다. 그는 축 늘어진 채 슬금슬금 멀어졌다. 그렇게 안 봤는데, 허당끼가 있는 것 같다.
============================ 작품 후기 ============================
1. 다시 알려드립니다. 이 소설은 주 3~5회 연재입니다.
2. 지난 주에 그렇게 연참했으니까, 이제 수요일에 오려고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