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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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섬 (15)
「지난 해, 미국은 멸망의 기로에 놓여있었습니다. 이는 역병의 상륙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그 전에 이미 무너지고 있었던 우리의 경제를 두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곱씹을 시간을 주고 본격적으로 고조되는 해명.
「붕괴의 물결은 바다 건너의 모든 땅으로부터 밀려왔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그 어떤 상품도 저편으로부터는 살 수 없게 되었고, 우리가 생산한 그 어떤 상품도 저편으로는 팔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갈 곳을 잃은 화물들은 적체되었습니다. 원료 공급이 끊긴 공장들은 가동을 중지했습니다. 판로가 사라진 농가는 대출을 상환할 수 없었고, 대금을 받지 못한 기업들은 파산의 위기에 직면했으며, 그로인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실직자가 될 처지였습니다. 은행들은 지급불능 직전의 위기였지요. 한시적인 비상계엄과 하루하루 쌓여가는 행정명령들만이 우리 경제의 산소 호흡기였습니다. 기존의 경제체제는……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 대목에서 언급하는 시점의 국제무역은 완전히 마비된 상태였다. 차라리 지금이 더 나아진 면도 있다. 혼란을 극복한 소수의 국가들과 제한적인 교역이 이루어지는 까닭이다. 대표적으로 러시아. 그곳으로부터 들여오는 각종 자원, 특히 희토류가 아니었다면 북미의 자체적인 생산량으로는 많이 힘들었을 것이란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농장이 사라진 건 아니었습니다. 공장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수입을 대체할 뛰어난 기술도, 역경을 이겨내려는 시민들의 의지도 그대로였습니다. 해외의 원자재를 들여오진 못하게 되었을지언정, 신께서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종류의 자원으로 이 땅을 축복하셨지요. 이번에 거둔 승리로 증명되었듯이, 이 나라엔 위기를 극복할 저력이 있었습니다. 다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를 몰랐을 뿐입니다.」
「고쳐 말씀드립니다. 이 나라엔 위기를 극복할 저력이 있었지만, 그 힘은 무수한 내적 이해관계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지폐가 폐지로 변하기 전에 새로운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는 점은 모두가 공감했으나, 어떤 질서를 만들 것인가에 대해서는 각자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두려워했습니다. 누군가는 재무제표상의 구멍을 감수하고, 누군가는 손실과 무관하게 제조와 고용을 유지하며, 누군가는 대가를 받지 않고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했습니다. 오직 정부의 신용만을 믿고서요. 비록 이것이 새로운 경제 질서가 확립될 때까지의 단기적인 조치에 불과할지라도, 당장 손해를 보는 입장에선 실감이 다를 문제였지요. 일부는 기꺼이 받아들였으되 다른 일부는 아니었습니다.」
「후자에 속하는 이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혹시 새롭게 만들어지는 질서로부터 의도적으로 배제되는 것은 아닐까? 정부의 조치가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공공을 위한 희생보다는 자력구제를 추구하는 편이 더 확실한 투자 아닌가? 어차피 무너질 체제, 돈에 아직 가치가 있을 때 식량과 물자를 쌓아두고, 험지에 요새 같은 피난처를 건설하고, 사병을 고용하여 생존과 안전을 확보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을 이기심의 발로로만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래, 저는 그들과 줄곧 정치적으로 대립해 왔으니까요. 십 수 년에 걸쳐 단 한 번도 세금을 내지 않은 기업들, 그러면서도 막대한 성과급을 받았던 경영인들, 조세를 회피할 목적으로만 자선재단을 운영해온 자산가들은 정부의 배척을 경계할 이유가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제겐 그들의 협력이 절실했지요. 한 사람 한 사람의 경제적 영향력이 평범한 미국 시민 수십만 명을 능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 각각의 일탈은 마른 숲에 떨어진 불씨와 같을 것이었습니다.」
「강제 압류 및 국가 주도의 재분배까지 고려해보았습니다만, 불가능한 선택지였지요. 그들은 어쨌든 법을 준수해 왔습니다. 그런데도 일방적으로 권리를 침해하는 건 미국의 정신에 맞지 않을뿐더러, 초법적인 조치가 낳을 무법적인 혼란도 우려되었습니다. 저는 미국의 대통령이며 헌법의 첫 번째 수호자입니다. 저 스스로 법을 어기면서 다른 사람에게만 질서를 요구할 순 없는 것입니다. 이는 즉 그들의 무장과 투쟁을 정당화합니다.」
겨울은 이 말에 녹아있는 정서를 이해했다.
‘부당한 정부에 무력으로 저항할 권리…….’
미국 보수진영의 입장에서, 시민들의 총기휴대는 저항권의 상징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경우 공화당과의 연정 역시 꿈속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자칫하면 내전이었다.
「그래서 제안한 게 바로 『그리스의 섬』입니다.」
다시 한 번 언급된 논란의 원인. 그러나 배경을 알고 나서 듣는 느낌은 아까와 달랐다. 메리웨더 상사는 팔짱을 낀 채로 주변을 잊었다. 낯빛은 여전히 무거웠으되 분노는 한 발 물러나고 신중한 기다림이 자리 잡았다. 차별에 익숙할 시크교도는 수염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완전히 경도된 포스터 중위도 있었다.
「정부의 정책에 협조하고 추가자금을 제공하는 대가로, 저는 그들에게 규격 외의 특권을 보장해주겠노라 약속했습니다. 방주의 탑승권 말입니다.」
「이 계획 덕분에, 그들의 적극적인 협력 덕분에……우리의 가장 뛰어난 석학들은 미국의 경제를 재구축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골든타임이었다고 해도 좋겠군요. 그 결과는 국민 여러분께서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맥도날드에서는 여전히 빅 맥을 팝니다. 일을 하면 돈을 받을 수 있고, 마트에서는 돈을 주고 물건을 살 수 있지요. 상품의 다양성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물가는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전화와 인터넷이 살아있으며, 우리의 장병들에겐 충분한 양의 무기가 공급되었습니다. 이재민이 수천만에 이르는데도 빈부격차는 오히려 소폭 감소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두 개의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잠시 숨을 돌리는 틈에 어디선가 들려오는 박수 소리. 대통령이 그 방향을 바라보자 화면도 따라서 움직였다. 언론 관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기립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의 직무와 이 자리의 성격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으나, 그는 십 수 초간 꿋꿋이 혼자만의 갈채를 보냈다. 주변에서는 간혹 눈살을 찌푸리기도 하고,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다만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카메라가 다시 정면을 향했다. Thank you. 감사를 표한 대통령이 본론으로 돌아갔다.
「그리고……이 계획으로 말미암아 수백개소의 격오지에 비밀 보급거점들이 건설되었습니다. 원자로를 탑재한 비행선이라도 영구적으로 떠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으니까요. 패트릭 헨리 급이 공군의 공중포대로 전용된 지금, 그 거점들은 시민들을 위한 대피시설로 재활용될 것입니다. 언젠가는 만들었어야 할 인프라지요.」
결과론적인 변명이었다. 허나 계획의 당위성을 역설한 지금은 비난을 받을 여지가 적었다. 아무튼 대통령은 시민들과 함께 죽을 각오였던 것이다.
‘거짓이 없을 때의 이야기지만.’
유능함과 진실함은 별개의 미덕이다. 대통령의 행적으로 미루어 사실일 가능성이 높으나, 겨울 개인의 판단이자 「통찰」에 지나지 않았다. 같은 생각을 했는지, 피부가 검은 선임상사는 못내 미심쩍어하면서도 어깨의 힘이 빠져있었다. 한숨과 더불어 누그러진 말이 흘러나온다.
“지금까지 한 말들이 전부 다 진짜라면 좋겠습니다만…….”
다른 둘은 사견을 보태지 않았다. 지금으로선 뭐라고 단정 짓기 이르다.
「한 가지 더. 『그리스의 섬』을 위한 예산은 불투명하게 운영되었습니다.」
「쉽게 말해 이중장부를 작성했다는 뜻입니다. 필요한 것 이상의 자금을 요구했고, 동일한 예산항목을 중복으로 집행했으며, 발생한 차액은 시크릿 서비스의 세탁을 거쳐 이재민 구호 예산 및 국방성금으로 들어갔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내일 자로 재무부의 감사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진위를 가려야 할 테니까요.」
「아울러 이 계획의 후원자들에겐 사죄의 뜻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말씀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비록 대의를 위해서였다고는 하나, 저는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하여 당신들을 기만하고 위법적인 손실을 끼쳤습니다. 당신들 또한 제가 지켜야 할 국민의 한 사람인데도 말입니다.」
겨울은 맥밀런 대통령의 진중한 모습으로부터 기이한 이질감을 느꼈다. 하느니만 못한 말들이 아닌가. 언뜻 들으면 대통령 자신을 위한 얕은 언변인데, 의도에 따라서는 『그리스의 섬』의 수혜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깊은 배려일 가능성이 있었다. 속 읽기에 능한 겨울의 직감은 뒤쪽으로 기운다. 「통찰」과 연동된 「간파」가 높은 확률로 그 뒤를 따랐다.
‘맞아. 이 정도의 정치공방이면 자금을 댄 사람들의 정보도 곧 밝혀지겠지.’
자칫 시민들의 폭력적인 분노가 그들을 겨냥할 지도 모를 상황. 짐작이 맞다는 전제 하에, 대통령은 계획의 후원자들에게 바보처럼 속은 악당의 이미지를 씌울 작정이었다. 시민들은, 물론 좋게 보지는 않겠으나, 적어도 과격한 집단행동에 돌입하진 않을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중성자탄과 독소 건이 남았군요.」
대통령이 힘없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핵미사일에 대해서는……정말이지, 근거 없는 비방입니다.」
“내 이럴 줄 알았어.”
포스터의 다 들리는 독백이었다. 상기된 채 주먹을 불끈 쥐는 참모의 모습은, 마치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응원하는 구단이 3루까지 꽉 채웠을 때를 보는 듯 했다.
「일단 사실인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중성자탄의 생산과 배치를 늘린 것……그리고 모겔론스 복합체가 방사능에 의해 파괴될 때 향정신성 독소를 방출한다는 점입니다.」
“……What?”
벙찐 소리를 내는 작전장교. 이는 비단 그만의 의문이 아니었다. 작년에 전술핵이 터졌던 도시에서 작전을 수행한 장병들은 독소의 존재여부를 헛소리로 치부하고 있었으므로. 그런데 대통령이 이를 인정한 것이다.
「먼저 이것부터 말씀드려야겠군요. 최초의 폭로로부터 오늘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 며칠의 시간이 걸린 것은, 독소에 관한 정보를 밝히기 전에 러시아 정부의 동의를 구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아시다시피, 그곳에선 방사능에 오염된 변종이 발견되곤 하지요.」
대비할 여유가 충분했음에도 기자회견이 늦다고 여겼던 겨울은 이제야 비로소 납득했다. 이런 세상에서도 소식은 국경을 넘고 바다를 건넌다. 미국에서 공개된 정보가 러시아 전선의 병사들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했던 것이다.
‘뉴스를 통해 봤을 때도 방사능 자체는 별 문제가 아니라고 봤는데…….’
변종도 생물은 생물이었다. DNA 수복능력이 아무리 강화되었더라도 치사량의 방사선을 뿜고 다닐 순 없는 노릇.
「러시아가 방역전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독소입니다. 방사능 오염에 적응한 특수변종……그쪽에서 부여한 코드네임으로는, 종류에 따라 리코라드카(Лихорадка), 혹은 체르노보그(Чернобог)라고 부릅니다만……이것들이 분포하는 장소에선 독소의 농도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더군요.」
「사람이 접하는 경우, 기준치 미만의 양은 별다른 작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임계점을 넘어가는 순간부터 무기력증과 우울증, 만성피로, 가벼운 환각 등을 호소하며, 치명적인 수준으로 노출되었을 땐 끝내 이성을 잃고 식인기호를 보이게 됩니다. 우리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샘플을 연구한 결과 그 외의 다른 작용은 없다고 합니다만……해독제는 개발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 정부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병력의 주기적인 교대에 힘쓰고 있지요. 죄송합니다. 질문은 조금 후에 받겠습니다.」
참지 못하고 손을 든 기자가 있었다. 그를 달랜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 정부는 러시아가 정보를 제공하기 전부터 독소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허나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러시아의 연구 자료가 훨씬 더 방대하고 정확했지요. 그 자료를 토대로, 우리는 핵공격시 발생하는 독소의 양과 환경에 대한 영향을 분석해왔습니다. 이것이 크레이머 후보가 언급했던 환경영향평가입니다.」
「봉쇄사령부가 새크라멘토에 병력을 투입한 것은, 해당 평가를 기준으로 폭심 인근의 잔류 독소 농도가 무의미한 수준까지 감소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흘러 흩어지거나 자연적으로 분해된 것이지요. 지금껏 어떤 피해도 발생하지 않은 게 증거입니다.」
「중성자탄의 증산 배치 또한 같은 연구가 근거입니다. 어쨌든 핵무기 중에서는 가장 안전한 탄종으로 밝혀졌으니까요. 허나 『그리스의 섬』과는 무관합니다. 그저 방역전선이 무너질 때를 대비한 최후의 수단으로서 준비했을 따름이지요. 생각해보십시오. 독소가 제트기류를 타고 퍼지는 마당에, 비행선에 탄 사람들이라고 안전하겠습니까? 패트릭 헨리 급은 성층권까지 올라갈 능력이 없습니다. 앞서 확인해드렸듯이, 영원히 비행할 능력도 없지요. 언젠가는 어딘가에 내려앉아야 합니다.」
「그간 독소에 관한 정보를 기밀에 부쳐왔던 이유는 경솔한 움직임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감염확산 문제에서 자유로운 핵무기가 있다는 식으로 알려지거나, 혹은 독소에 대해 과장된 공포가 퍼지거나……. 어느 쪽이든 바람직하지 않았고, 전자는 특별히 더 주의해야 했습니다. 연구는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누적된 독소가 생태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선 거의 모르는 거나 마찬가지지요.」
이로써 모든 해명을 끝낸 대통령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준비한 말씀은 여기까지입니다. 다만 여기서 개인적인 한 마디를 더한다면……저는, 그리고 본 정부는 시민들의 생명과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언제나 최선을 다해왔다는 것입니다. 이는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느냐를 떠나 달라지지 않을 사실이지요. 『다수로부터 하나로.』 세워진 뜻을 잊지 않는 한, 미국의 앞날은 언제나 굳건할 것입니다.」
이제 질문 받겠습니다. 그의 말에 기자들이 일제히 손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