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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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2)
중대가 주둔지로 이동하는 길은 헌병과 경찰, 그리고 국적이 다양한 자경대원들의 고생길이기도 했다. 울음은 그들이 저지하는 인파 사이에서 전염병처럼 번진다. 들리는 모든 소리는 극도로 고양된 감정 이외의 어떤 의미도 아니었다.
“중령님! 중령니임!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수고하셨어요!”
“여러분! 여기! 흐윽, 여기 좀 봐주세요!”
“한겨울 중령! 손 좀! 손 좀 잡아봅시다!”
이러한 부름엔 남녀노소가 없었다. 국적도 가리지 않았다. 눈물을 닦느라 얼굴이 엉망인 사람들. 다만 남성은 중장년이 다수였다. 청년층은 지속적으로 소모되었기 때문이다.
겨울은 사람들의 복색이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시대가 마구 뒤섞여있는 느낌이네.’
일부는 난민들 특유의 허름함이 남아있었으되, 나머지 다수에게서는 떠날 때와 달라진 말끔함이 돋보인다. 개중 가장 이색적인 이들은 복고풍의 패션이었다. 고전적인 느낌의 정장 및 허리를 조인 A라인과 H라인의 가을 코트들. 종말 이후의 세계에서도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20세기 중반의 미국 풍경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 외엔 활동성이 높아 생존주의적인 복장들, 그리고 21세기의 평범한 의복들이 높은 비율로 섞여있었다. 익숙하기에 돋보이지 않을 뿐.
주둔지에 도착한 후, 짐을 풀 때 찾아온 민완기는 겨울의 감상을 듣고 빙그레 웃었다.
“뜯어보면 재미있는 현상이지요.”
“그런가요?”
“본토에서 시작된 유행입니다만, 저는 시발점을 크게 두 가지로 봅니다. 첫 번째는 종교적 보수주의의 확산이고, 두 번째는 가장 위대한 세대에 대한 향수지요.”
“가장 위대한 세대(The greatest generation)?”
“대공황과 2차 대전을 이겨내고 세계 최강대국의 기틀을 닦은 이들 말입니다. 지금 이 시대와는 나름의 공통분모가 있지요. 우리 또한 그들처럼 이겨내리라……같은 의미의 복고인 겁니다. 아,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디자이너들의 발상이겠지요. 현 시점에서는 그냥 다들 입으니까 나도 입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겠습니다. 유행이란 원래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여기까지 말한 그는 웃음을 지우고 몸가짐을 차분히 하더니, 겨울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겨우 돌아오셨군요.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당신이 이룬 모든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염치없는 말씀이지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조용히 젖어있던 장연철도 뒤따랐다.
“잘 돌아, 흑, 돌아오셨습니다. 무엇보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겨울이 그들을 만류했다.
“이러지 마세요. 두 분이 아니었으면 나가있는 내내 여기가 큰 걱정거리였을 거예요.”
허리를 편 민완기가 다시 한 번 웃는다.
“지금도 걱정거리는 걱정거리지요. 이리저리 다루는 재미는 있습니다만.”
“안 바뀌셨네요. 그런 점은.”
가볍게 고개를 저은 겨울이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건 그렇고, 여긴 좀 거창하네요. 과분할 정도예요.”
일개 장교의 집무실 치고 상당히 넓은 공간이었다. 배치는 햇빛을 등지고 업무를 보도록 이루어졌으며, 동쪽으로 낸 창밖으로는 탁 트인 연병장이 자리했다. 창틀이 두꺼운 느낌이라 유리를 툭툭 두드려보면, 방탄유리 특유의 둔탁한 반향이 돌아왔다. 3층 높이에서는 꽤 먼 곳까지 내다보였다.
‘그때 본 그 위치인데.’
이미 한참 지난 기억이지만, 겨울은 이 주둔지의 입지를 지도상에서 본 적이 있었다. 중국계 거류구의 마약을 단속하던 날, 오코너 치안감을 만나던 자리에서였다. 독립중대 창설 구상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착수되었다고 봐야 한다.
부대가 대대규모로 확장된다고 하더라도 한 개 중대의 주둔지는 여전히 여기일 터. 대대본부까지 들이기에 충분히 넓다.
장연철이 눈이 부은 채로 코를 훌쩍이며 어딘가 민완기 같은 소리를 했다.
“킁. 이만큼 보이는 게 있어야 이상한 사람들을 다루기도 쉬울 겁니다. 무엇보다 이제 이 기지에서 가장 높은 분이 되실 텐데, 이 정도 구색은 갖춰놔야죠.”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다들 벌써 알고 있나 봐요?”
“어떤 거 말씀이십니까?”
“내가 이 기지의 다음 책임자라는 거.”
“아아.”
젊은 쪽의 부장이 열심히 긍정한다.
“군정청에서 일하다보면 모를 수가 없습니다. 작은 대장님께서 오시기 전부터 인계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이젠 저나 민 부장님이나 9급 대우를 받고 있고, 또 딱히 비밀도 아니었고…….”
말끝을 흐리는 연철 앞에서 겨울은 책상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완공 이후 적어도 수개월은 비어있었을 실내엔 한 더께의 먼지가 쌓여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어딘가에 손을 올릴 때마다 명도가 다른 자국이 남는다. 겨울은 둥실 떠서 반짝이는 먼지들을 보다가,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들어오자 책상 양쪽 빈 공간에 걸린 네 개의 깃발이 흔들렸다. 성조기, 군기, 군정청기, 그리고 열세 개의 별이 찍힌 명예훈장 수훈기. 방문자를 조심스럽게 만들 분위기였다.
손끝으로 책상을 쓸던 겨울이 어깨를 으쓱였다.
“비슷한 말을 한 사람이 있었어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보이는 게 있어야 사람들 다루기도 쉽다는 거요. 최근……은 아니고, 샌프란시스코에 있을 때였네요.”
샌프란시스코라는 단어에 연철이 강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민완기 또한 오, 하며 흥미진진한 반응을 보였다. 그곳에서 보낸 시간은 겨울의 행적 가운데 감춰진 부분이 많은 유일한 구간이었기 때문이다.
연철이 몰두하여 몸울 기울여왔다.
“그게 누구였습니까?”
“옛 중국 해군의 장군인데……. 사람이 사람을 부러워하는 순간에 위아래가 갈리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권력자는 사치스럽게 먹고 호화롭게 낭비해야 한다던가요? 노력으로는 극복하지 못할 격차를 느끼게 해서 결국은 체념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그러면 내게 매달릴 것이라고. 정확하진 않은데, 대충 이런 내용이었네요.”
“허…….”
시에루 중장에 대한 회상을 듣고 젊은 부장이 떫어 하는 사이, 장년의 끝자락인 부장은 무척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체념도 좋지요. 만나면 말이 잘 통할 것 같군요.”
“아마 죽었을 거예요.”
“저런.”
민완기가 혀를 차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표현이 껄끄럽긴 하나 대체로 맞는 말입니다. 상대에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면 더더욱 그렇고요. 기왕 만들어진 믿음은 이용하는 편이 유익합니다.”
“믿음?”
“오면서 보셨잖습니까. 열광하는 사람들을. 그게 바로 믿음이 탄생하는 과정입니다.”
“…….”
“전에 말씀드렸지요. 정치와 종교는 근본이 같다고. 저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중령 한겨울은 더 이상 자기들과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보다 우월한, 사람의 한계를 넘어선 무언가입니다.”
“실제론 그렇지 않은데요.”
“저들도 머리로는 그걸 압니다. 하지만 사람을 지배하는 건 매양 감성이지요. 극히 일부의 예외만이 거기에 이성의 고삐를 채웁니다. 천재이거나, 노력가거나, 정신적인 기형아거나.”
지난날의 교수는 강단에 서던 버릇대로 냉소했다.
“일단 한 번 믿기 시작하면 생각도 믿음을 따라갑니다. 어지간한 일을 겪지 않는 한 편향은 계속해서 작동하고요……. 다행히, 현재 이 도시엔 오직 하나의 믿음만이 있습니다. 이 믿음 앞에선 보수와 진보의 구분조차 없습니다. 그러니 대장님께선 그저 그들이 믿는 대로 보여주시면 됩니다. 그것만으로도 다들 제 입장을 삼가며 존경을 표할 겁니다.”
겨울은 대답 대신 곤란한 미소를 만들어 보였다. 이를 본 민완기도 같은 얼굴이 된다.
“작은 대장님도 여전하시군요.”
“아직 어려서 그럴지도 모르죠.”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장연철이 한숨을 쉬었다.
“어휴. 민 부장님은 이런 면만 빼면 참 좋은 분이신데.”
정작 이렇게 말하는 스스로가 조금씩 닮아간다는 사실은 눈치 채지 못한 모양이다. 어쨌든 마냥 긍정적이거나 마냥 회의적일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정말 도시가 되었네요.”
민완기의 말에 섞여있던 표현을 꺼내오는 겨울. 여기서 보기에도 그렇다. 창밖의 풍경은 문자 그대로 군사기지를 낀 도시였다. 애초에 미국의 군사거점이라는 게 주거지와 상점가, 중고등학교 및 대학 캠퍼스 등을 포함하여 보통의 도시나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지만.
구획구분을 보면 역병 이전에 군용 시설이었던 부지에는 더 이상 난민들이 거주하지 않는 듯 했다. 거류구가 보다 확실히 분화된 것이다.
‘난민을 받았던 건 어디까지나 임시조치였으니까. 앞으로를 감안하면 이게 맞지.’
캠프 시절의 포트 로버츠는 연대 규모를 수용하는 훈련시설이었다.
연철이 뿌듯해했다.
“저걸 꼭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대장님 덕분에 이렇게 커졌다고. 다들 잘 살고 있다고. 요즘은 인구가 너무 늘어서 골치가 아프기도 합니다만.”
“인구가 늘어요?”
“다른 수용시설에서 보낸 숫자가 많습니다. 아시아계를 여기다 다 몰아넣으려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덕분에 이산가족? 어, 이렇게 표현하니까 이상한데, 아무튼 헤어져있던 가족이나 친척들이 만나기도 했고요.”
“그런 사람들이 꽤 있었나보죠?”
“예, 뭐. 한국에서 사람들 대피시킬 때 워낙 혼란스러웠으니까요. 여태껏 배타고 살다가 온 사람들 중에서도 좀 있고 그렇습니다.”
“아, 해상난민들.”
겨울은 납득했다. 미국이 서해안을 회복했으니, 선상생활을 하던 난민들도 이제 뭍으로 올라올 시점이었다. 그들을 위한 캠프를 따로 만들기보다는 기존의 시설에 수용할 방침인가보다.
“다시 하는 말인데, 두 분 참 힘드셨겠어요.”
겨울의 말에 연철이 민망해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장님께 그런 말을 듣기는 좀…….”
민완기가 안경을 고쳐 쓴다.
“새로 오는 사람들이야 흩어놓으면 그만이었습니다. 사람은 무대에 따라 바뀌는 법이지요.”
“…….”
이번에도 역시 비슷한 말을 한 사람이 있었으나, 겨울은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전부터 신경 쓰이던 것을 확인한다. 창문 밖 먼 저편의 십자가를 가리키면서.
“저 구획, 혹시 순복음 성도회인가요?”
“엇. 어떻게 아셨습니까?”
“교회가 중심에 있고, 이상할 정도로 고립되어 있어서요.”
겨울의 말처럼 해당 구획은 진입로가 하나로 제한되어있었고, 그 길목을 철조망과 검문소가 차단하는 형태였다.
물론 다른 거류구도 철조망으로 구역을 구분하고 검문소로 출입을 통제한다. 유사시에 격리와 검역을 실시해야 하는 까닭. 그러나 진입로는 다양하게 마련이었으며, 구역간의 규모 면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저 사람들, 지금까지 말썽이 없었다는 게 신기하네요.”
겨울은 아직 자신을 붙들던 황보 에스더의 기이함을 기억한다. 소녀가 말하던 박태선 목사의 기적에 대해서도. 그러나 진석을 통해 듣기로는 외부활동이 극도로 줄어, 아예 없는 수준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광신도가 선교를 삼가는 것만큼 이상한 징후도 없겠지만, 어쨌든 그것이 말썽은 아니다.
‘그 이상의 뭔가가 있었다면 당연히 내게도 전해졌겠고.’
민완기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전과 달리 알이 멀쩡한 된 안경을 쓰고 있으나, 그럼에도 그의 시력으로는 겨울과 같은 거리를 보기 어려운 탓이었다.
“군정청에도 종교적인 이유로 일정 선의 자치를 요청했다고 들었습니다. 사이비 중엔 스스로 고립을 원하게 되는 부류도 있게 마련이지요. 특히 드러내기엔 떳떳치 못한 관행이 정착되면……대표적으로 교주에 대한 성상납이라든가, 여하간 그런 경우일수록 더욱 남의 눈을 경계하게 되는 법 아니겠습니까?”
일리 있는 관측이었으되 겨울의 우려와는 간극이 있다.
‘어차피 조만간인가…….’
광신도들의 구역 안에 무엇이 있든, 래플린 준장의 업무와 권한을 승계하고 나면 보다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었다.
“흠, 사실 이런 말씀을 드리려고 온 게 아닌데 말입니다.”
민완기가 말했다.
“동맹에서 환영식을 준비해놨습니다.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참석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때 어디선가 와- 소리가 들려온다. 중대원들은 지금 제대로 된 해후의 와중일 것이다. 어디를 가도 환영 받는 분위기였으나, 그럼에도 소외되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었다.
“환영행사면……음, 입양아 출신들이 신경 쓰이네요.”
장연철은 겨울의 말을 조금 느리게 알아들었다.
“어, 혹시 그 분들이 부대에서도 겉돌고 그랬습니까?”
“그런 건 아니지만, 여기선 반겨줄 사람이 마땅히 없을 테니까요. 언어적인 문제도 있고.”
“아하.”
“혹시 시민구역에 플레먼스 선생님이 남아 계실까요?”
“거기까지는 잘…….”
파소 로블레스에서 처음 만난 그녀, 아말리아 플레먼스는 공립학교의 아동문제 담당자였으며, 갈 곳 없는 무국적자들을 겨울에게 부탁한 사람이기도 했다. 이타적인 성격인데다 이미 인연이 있는 사이이니, 외로운 병사들에겐 좋은 말상대가 되어줄 것이다.
명목상 본토탈환이 완료되었어도, 시민구역 거주자들이 벌써 기지를 떠나진 않았을 듯 했다. 교전은 많은 도시에서 현재진행형이었으므로.
“번거롭더라도 장 부장님께서 한 번 알아봐주세요. 만약 아직 안 떠나셨으면, 우리 쪽 환영식에 참석해주시길 바란다고 전해주시고요.”
“예! 바로 가보겠습니다.”
연철은 겨울의 지시를 기쁘게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