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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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진 양지 (1)
포트 로버츠로 돌아온 뒤 여드레째의 오전에, 겨울은 사망한 부대원들을 위한 합동영결식에 참석했다. 군종장교와 더불어 성조기를 접는 건 지휘관인 겨울의 역할이었다. 스탠 페이지 일병의 장례식 때 경험했던 일이므로 새삼 연습이 필요하진 않았다.
삼각으로 두꺼워진 성조기를 건네받는 유가족들의 반응은 저마다 제각각이었다. 서럽게 통곡하는 부모와 자녀도 있었고, 조용히 눈물짓는 배우자도 있었다.
주변의 시선으로부터는 간혹 불쾌한 온도차가 느껴지기도 했다. 대개는 슬픔에 대한 공감과 연민이었으되, 일부는 복잡한 질시와 부러움이었기 때문이다. 혈육을 잃은 사람들을 부러워할 이유가 무엇인가. 겨울은 그 원인을 빠르게 눈치 챘다.
‘시민권과 전사자 위로금.’
난민 출신 지원병들은 계급이 부여되는 순간부터 시민권을 인정받는다. 물론 의무적인 복무연한이 존재했다. 맥밀런 대통령의 긴급 행정명령에 의거, 5년을 채우기 전에 군인 신분을 상실할 경우 시민권 또한 상실하게 된다.
그러나 예외가 있었다. 부상으로 인한 전역은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전사자에 대한 예우는 그보다 더 높았다. 유가족들에게 시민권을 인정해줄 뿐만 아니라, 복무개월 수에 1천 달러를 곱한 값과 1만 달러 중 보다 큰 금액을 보상으로 지급받는다. 바로 전사자 위로금이었다.
사실 이것도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역병 이전을 기준으로, 전사자 위로금은 조의금(Gratuity)과 사망보험금(SGLI)을 합산하여 총 50만 달러에 달했기 때문. 그러던 것이 방역전쟁이 시작되고부터는 큰 폭으로 감소했다. 가중된 재정 부담이 원인이었다.
그마저도 지금은 일시불로 지급하지 않았다. 아니, 정부에게 그럴 능력이 없다. 명백한 해방 작전의 실패로 발생한 위로금의 규모만 2백 70억 달러에 이르는 탓이었다. 따라서 현 시점의 유가족들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5년간의 분할지급을 신청하거나, 위로금에 상응하는 전시국채를 수령하거나.
그렇다고는 해도, 여러모로 아쉬운 난민들 입장에선 충분히 부러워할 만 했다. 겨울은 이들이 특별히 못된 사람들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생활이 많이 나아지긴 했으나, 그럼에도 난민의 지위는 불안정한 것. 처우는 행정부의 성향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최악의 경우엔 추방당할 가능성도 있지.’
농담이 아니라, 공화당 대선후보의 공약이었다. 국가안보를 저해하는 난민들은 국경 밖으로 내보내겠다고. 어딘가의 섬에 수용구역을 정하여 최소한의 물자와 무기를 지원하겠다고는 하는데, 사실상 추방이나 다름없는 개념이었다.
1차적인 표적은 당연히 중국계 난민들. 허나 다른 국적의 난민들도 지위 자체는 동일하다.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유럽계나 한국계 난민들도 마냥 안전하진 못하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대선이 약 한 달 보름 앞으로 다가온 지금, 누구보다도 시민권이 간절할 수밖에.
유가족에겐 그 밖의 혜택도 많았다. 1년간 군 의료시설 및 군 면세점을 이용할 권리, 전사자가 사용하지 않은 휴가에 대한 보상, 소정의 주택보조금 지급 등.
그러므로 겨울에게 음습한 청탁이 들어온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혼인 관계를 인정받게 도와달라고요?”
영결식이 끝나기 무섭게 제 무리를 끌고 온 백산호는 잠시만 시간을 내달라고 간곡히 부탁해왔다. 그는 겨울의 질문에 민망해하며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한 중령님.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전사한 장병들과 실질적인 부부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지가 처지인지라 정식으로 식을 올리지 못했을 따름이지요.”
“군정청이 생긴 다음부터는 가족관계를 조사하면서 난민간의 혼인신고를 받아줬잖아요?”
“예, 그랬지요. 하지만 정책이라는 게 홍보가 부족하기도 하고 그렇잖습니까. 몰라서 신고를 못했을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사정이 딱하니 기지사령으로서 선처를 베풀어주십시오. 허허.”
아직 정식 기지사령은 아닌 겨울을 은근히 띄워주는 아첨이었다. 겨울은 백산호 뒤의 사람들을 가만히 둘러보았다. 젊은 남녀들이 시선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한다. 머릿수는 전사자의 숫자와 일치했다. 간혹 눈시울이 붉은 사람도 진정으로 슬퍼하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간파」와 더불어 확신을 얻은 겨울이 고개를 기울이며 묻는 말.
“확실히 말하세요. 몰라서 신고를 못한 겁니까, 아니면 그런 걸로 해두자는 겁니까.”
“…….”
“전 거짓말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의도적인 「위협성」에 노출된 백산호는, 뻣뻣하게 마른침을 삼키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비굴한 태도를 견지했다.
“이거 참, 가슴 깊이 사과드리겠습니다. 제가 설명이 부족했군요. 결코 중령님을 속이려는 건 아니었습니다. 단지 중령님 앞에선 여간 긴장이 되는 게 아니다보니 실수를 했을 뿐이지요.”
“결국 그런 걸로 해두자는 의도였네요. 여기서 해명할 게 뭐가 더 남아있나요?”
“아이고. 왜 이렇게 서두르십니까. 사정을 들어보시면 중령님께서도 충분히, 예, 충분히 이해하실 겁니다. 다 유족과 공동체, 우리 동맹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란 말입니다.”
“유족과 동맹을 위해서?”
“바로 그렇습니다.”
백산호는 탐탁찮은 반문에도 열심히 끄덕이며 호응했다.
“이게 떳떳한 일은 아니라는 걸 저라고 왜 모르겠습니까. 저도 사람, 예예, 저도 사람인데요. 그치만 시민권 보유자의 숫자는 동맹 전체의 이익과 직결됩니다. 이대로 날리기엔 아까운 기회가 아닙니까? 산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일이니 전사한 장병들도, 예, 죽은 장병들도 싫어하진 않을 겁니다. 유가족들에게도 당연히 사례를 할 것이고요. 예.”
겨울이 미간을 좁혔다.
“잠깐만요. 유가족들이 벌써 동의한 겁니까?”
“어……. 아직은 아닙니다.”
분위기가 나빠지자 황급히 덧붙이는 변명.
“유족들에게는 중령님께 허락을 받고 나서 알릴 참이었습니다.”
“유족들의 마음이 먼저잖아요?”
“아무렴요! 그분들의 마음이 먼저지요. 바로 그래서입니다. 가뜩이나 어렵게 내릴 결정인데, 기껏 이야기를 꺼내놓고 나중에 가서 안 된다고 하면, 그 속에 있을 상처가 두 번 덧나지 않겠습니까? 다- 감안하고! 감안해서! 예, 우리 대장님께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제 이름을 팔아 더 쉽게 동의를 구하려는 건 아니고요?”
“하하하…….”
백산호는 웃을 때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손수건을 꺼내어 넓은 이마를 닦은 그는, 의외로 순순히 혐의를 인정했다.
“솔직히 그런 면도 살짝, 아주 사알짝 있기는 합니다. 한겨울 중령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다. 젊은 사람들에게 기회도 주고! 동맹에도 이익이 되고! 여러분도 소정의 사례를 받으면 생활에 보탬이 되지 않겠느냐! 이렇게 설득을 하려고 했지요. 유가족들은 아무래도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시기가 아니겠습니까.”
“…….”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알아주십시오. 저 백산호에게 사심은 요만큼도 없다는 거! 전사자 위로금 1만 달러는 솔직히 너무 적지 않습니까? 장성한 자녀를 잃은 부모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갑니까? 미국인들 태반이 노후를 연금에 의지하는데, 시민권을 얻었다고는 해도 난민 출신으로 어중간하게 늙어가지고는 무슨 연금을 얼마나 쌓겠습니까? 죽은 장병들은 남은 혈육이 노숙자로 전락하는 걸 과연 좋아하겠습니까? 저승에서도 피눈물을 흘릴 겁니다.”
꽉 진 두 주먹이 열성적으로 흔들린다. 백산호의 열변은 정치인의 연설을 닮았다.
“여기 이 친구들이 앞으로 취업해서 벌 돈의 10분의 1씩을 내놓기로 했습니다. 총액이 4만 달러가 될 때까지요. 시민권을 사는 금액으로는 확실히 쌉니다만, 그래도 당장 가진 게 없는 젊은이들 입장에선 큰 대가를, 예, 아주 큰 대가를 치르는 셈입니다.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약속을 문서로 남기진 못하겠습니다마는, 지급보증은 제가, 이 백산호가 서겠습니다.”
“유가족 입장에서 그걸 어떻게 믿죠?”
“여기! 한 중령님께서 아시잖습니까! 저도 신용이 있는 사람이고요.”
자기 가슴을 탕 치더니 켁 하고 아파하는 사업가.
“크흠. 어차피 동맹을 벗어나서는 살 길이 없고, 중령님의 눈 밖에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야 미국 땅 어디에 발을 붙일 수 있을까요?”
겨울이 반응을 볼 요량으로 일부러 한숨을 내쉬었다.
“브로커로서는 얼마 받기로 하셨어요?”
“돈을 받아요? 제가요? 말도 안 됩니다! 사리사욕으로 드리는 요청이 절대로 아닙니다! 사심은 요만큼도, 요만큼도 없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나중에라도 그런 사실이 확인되면, 제가 정말로 화를 낼 텐데요?”
“저는 진실로 결백합니다!”
백산호가 잔뜩 억울한 표정으로 손을 펼쳤다.
“죽은 사람의 배우자 자리를 돈으로 거래한다는 게 내키는 일은 아니실 겁니다. 귀를, 예, 귀를 씻고 싶으시겠지요. 그래도 평범한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잘못들을 저지를 수밖에 없습니다. 양심적으로 살면 좋기는 한데, 양심이 밥을 먹여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언변은 이렇게 유창해도 이익 없이 움직일 사람이 아니었다. 이제 와서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을 대변하겠다니.
‘사실이라면 이미지 세탁이겠지.’
겨울에게 양호한 인상을 주는 것만으로도 일단은 이득으로 볼 수 있었다. 자신이 좋은 인물은 아닐지언정 현실적인 안목은 있는 사람이라고.
많은 대자녀가 그랬듯이, 주위에 나름의 영향력을 과시하는 수단일 지도 모른다.
그 외에 데려온 남녀들이 실은 가진 게 많을 가능성도 높았다. 실제로 시선을 피하는 면면들은 피부가 하얗고, 난민구역 내에서 옷을 굉장히 잘 입은 축에 든다. 난민이라도 미국 내에 자산이 있던 사람들은 최근 들어 경제적으로 두각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언제나처럼 「통찰」은 겨울의 편을 든다.
‘옷차림으로만 비교하면 송예경 위원 수준이야.’
어쨌든 표면적으로는 유족들을 위한 건의였다. 실제로 유족들 중에도 못내 받아들일 사람이 있을 듯 하고. 적어도 대놓고 싫은 소리를 할 계제는 아니다.
대화를 끌며 헤아린 겨울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너무 비현실적이네요. 나중에라도 알려졌다간 번거로운 스캔들이 될 거예요.”
“설마 비밀이 새겠습니까?”
“모르죠. 어떻게 될지. 예를 들어, 유족들 가운데 한 사람이 협박을 한다면 어떨까요? 돈을 더 주지 않으면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어…….”
“협박의 대상은 제가 될 수도 있어요. 사소한 일로 괜한 약점을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굳이 언급은 안 했으되, 협박의 주체가 백산호일 수도 있다. 소용은 없겠지만.
백산호의 낯에 선명한 안타까움이 스치고 지나갔다. 역시 본인도 어떤 식으로든 이득을 얻는 일이었을 터. 급하게 열리는 그의 입. 결국 소리 없이 닫힌다. 나름대로 궁구해서 온 듯 하나, 여기까진 예상을 못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해결책이 있기는 있는 눈치. 말을 못하는 걸 보면 바른 수단은 아닐 것이다.
잠시 후, 흥정에 실패한 사업가가 어깨를 늘어뜨렸다.
“에휴. 어쩔 수 없군요. 유족들과 젊은이들에게 서로 이득이 되는 거래라고 생각했건만.”
“유가족들의 생활에 대해서는 저도 신경을 쓸 겁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구직자들의 시민권에 대해서도 다른 방법이 마련되리라는 말은 생략한다. 백산호가 관심을 드러낼 테니까. 겨울은 여기서 더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참 애매한 사람이네…….’
본인의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선을 넘으려고는 하지만, 정말 결정적인 잘못을 저지르진 않는다. 현실감각이 있다고 해도 좋겠다. 그렇지 않았다면 민완기 선에서 진즉에 쳐냈을 것이었다. 산 제물으로서의 쓸모는 겨울이 금지했으니까.
강영순 노인의 노트를 보건대, 동맹의 중간 간부직에서 해임당할 때 무언가 위험신호를 느낀 것 같기도 했다. 정말로 그랬다면 백산호 입장에선 전화위복이었던 셈. 붙잡을 준비가 충분하다는 전제 하에, 행운은 사람의 됨됨이를 가리지 않는다.
백산호가 허리를 직각으로 굽혔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되긴 했어도,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나중에 더 좋은 일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따라온 이들을 다그쳤다.
“뭐해? 자네들도 얼른 인사드리지 않고.”
연장자의 자존심 같은 건 없었다. 겨울은 그들에게 정중한 목례로 답했다. 여기가 아무리 미국이라지만, 나이든 사람이 이렇게 나오는데 뻣뻣하게 받을 순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백산호는 몇 번을 더 굽실대며 돌아섰다. 그 뒷모습으로부터 끈적한 예감이 들러붙는다. 난민 공동체를 앞으로 얼마나 잘 꾸려나가더라도, 저런 유형의 사람은 끝까지 남아있으리라고. 백산호가 사라지면 새로운 백산호가 나타날 것이다. 평범하게 이기적인 사람들.
‘지금은 다른 문제들에 집중해야지.’
겨울은 전화기를 꺼내어 번호 지정 단축키를 눌렀다. 이내 액정에 진석의 이름이 뜬다. 신호는 여러 번 울리지 않았다.
「박진석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중위. 할 말이 있으니 두 시까지 내 집무실로 와요.”
어제, 공보처로부터 새로운 연락을 받았다. 전(前) 독립중대 병력 전체의 D.C행이 확정되었다는 소식. 따라서 겨울도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이었다.
진석의 대답은 한 박자 늦게 돌아왔다.
「……알겠습니다. 다른 지시는 없으십니까?」
“네.”
「그렇군요.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통화는 간결하게 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