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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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섭, 캠프 로버츠 (3)
일본인 수용구역. 그 중에서도 「주길회(스미요시카이)」의 경계. 지키는 사람은 전과 같았다. 우연의 일치일까, 인력이 부족한 걸까. 겨울은 후자의 가능성을 기억해두기로 했다.
“너, 전의 그 조……한국인이군.”
겨울이 누군지, 이미 아는 눈치다. 습관적으로 나오던 조센징을 꿀꺽 삼키는 일본인.
“네. 전에 한 번 뵈었었죠.”
“무슨 용건이지?”
“마약 문제로, 카이쵸(會長)님을 뵐 수 있을까 해서.”
“오야붕(親分)을?
그는 조심스럽게 겨울을 살폈다. 정확하게는 소년이 지닌 무기들을. 연방군 장교로서, 겨울은 캠프 내 무기 휴대가 자유로웠다.
그렇다고 빼앗을 수도 없는 노릇. 고민하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하겠다. 잠시 기다려라.”
“그러죠.”
겨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 걸리진 않았다. 다이스케라고 했던가? 쿠시나다 세츠나를 데리고 사라졌던 남자. 그는 발이 빠른 편이었다. 부리나케 다녀와서, 자기 형님에게 작은 말을 속닥거렸다. 이윽고, 파수꾼 중 형님 쪽이 겨울에게 손짓했다.
“만나보겠다고 하신다. 따라와라.”
뒤따르니, 얼마 안 가 많은 수가 들러붙었다. 호위인지 포위인지 애매한 자들. 사실 후자에 가깝다. 기를 누르려고 눈을 부라린다. 겨울은 그저 만들어진 미소만 보여주었다.
따라가는 사이, 보이는 풍경은 일본인 구역의 적나라한 실태였다.
여기저기 페트병으로 만든 쥐덫이 놓여있다. 어느 하나는 쥐가 갇혀 발광하고 있었다. 누군가, 주인보다 먼저 낚아챘다. 어린 아이는 분노한 주인을 피해 달아나면서, 쥐를 산채로 물어뜯었다. 뛰어가는 발자국을 따라 쥐의 내장과 피가 뚝뚝 떨어졌다.
모퉁이엔 약에 취한 사람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메스암페타민은 복용자의 허기를 쫓아준다. 그래서 역병 창궐 이전, 북한에서도 인기가 좋은 마약이었다.
일부러 더 구부려놓은 길을 따라 도착한 천막.
「神州不滅」
(신의 땅-일본-은 멸망하지 않는다.)
적갈색 글씨가 눈에 띄었다. 말라붙은 피의 색이다. 천막 가운데 글씨를 걸어놓고, 그 아래 웃통 벗은 남자가 앉아있었다. 상반신이 흉터와 문신으로 가득했다. 인상적으로 두꺼운 근육.
“한, 겨, 울.”
그는 겨울의 이름을 또박또박 발음했다. 일본인에겐 어렵다.
“앉아라.”
자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래봐야 맨바닥, 천 한 장 깔아두었을 뿐이지만. 겨울은 사양하지 않았다. 그 뒤, 무장한 남자들이 좌우로 줄지어 앉았다. 일찍이 「다물진흥회」가 그랬듯이. 목적 또한 같을 것이다. 열심히들 노려본다.
야쿠자 두목도 한동안 바라보기만 했다. 소년을 관찰하듯이. 그러다가 툭 던지는 말.
“술?”
“사양하겠습니다.”
“대범해도, 아직은 어린가.”
미리 이야기가 있었던 것처럼, 별다른 지시 없이 상이 나왔다. 술을 사양했더니 물과 고기만 올렸다. 잘 구워진 고기는 크기가 컸다. 어쩌면 시궁쥐일지도. 겨울이 고개를 기울였다.
“놀랍네요. 이건 무슨 고기인가요?”
좌우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가 잔뜩이었다. 주길회장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돼지다.”
그럴 수도. 가능성은 있었다. 미군에 뭔가 상납하고, 대가로 받은 것이라면. 그래도 어딘가 미심쩍다. 냉장 체인이 없어진 지금, 신선한 돼지고기는 지나치게 귀한 식량이었다. 겨울은 식기에 손을 대지 않았다. 주길회장은 겨울에 대한 평가를 고쳤다.
“대범하지도 못하군.”
“신중한 거죠.”
그러자 피식 웃는다.
“그 신중한 사람이 여긴 뭐 하러 왔을까. 정말로 마약 때문인가?”
“네.”
두목은 술시중을 받았다. 덧니를 제외하면 아주 예쁜 여자가, 술을 따라주었다. 주둥이 넓은 잔이 연거푸 비워진다. 술기운 섞인 긴 한숨을 내쉬고, 야쿠자 두목이 물었다.
“마약을 사겠다는 거냐, 아니면 팔겠다는 거냐.”
“둘 다 아니에요.”
“그럼?”
“마약 파는 한국인과 중국인들, 그들이 상품을 입수하는 방법, 그리고 유통경로에 대해 알고 싶어서요.”
“알면?”
“청소하려고요.”
여기까지 아주 조용한 문답이었다. 두목은 잔을 내려놓았다.
“타다아츠 료헤이(忠渥良平). 「스미요시카이」의 주인이다.”
“아시겠지만, 한겨울입니다. 「겨울동맹」의 대표를 맡게 됐습니다.”
“대표라. 애매한 호칭이군.”
료헤이는 손가락으로 빈 잔을 두드렸다.
“청소한다는 건……죽이겠다는 뜻인가?”
“다른 방법이 없다면요.”
“이 바닥에서 다른 방법 같은 건 없다. 죽느냐, 죽이느냐. 둘 중 하나지.”
“그건 당신 같은 야쿠자나 할 생각이고요.”
시끄러워졌다. 분분히 부엌칼, 나이프 따위를 꺼내드는 행동대원(組員)들. 움직이지는 않고 그 자리에서 흉흉하게 휘두른다. 거친 욕설은 덤. 겨울 혼자 생각하길, 하여간, 어딜 가나 하는 짓들이 비슷하다. 실제로 싸울 것도 아니면서, 겉으로만 내보이는 허세들. 두목이 그들을 진정시켰다. 묵묵하다. 겉멋이라 쳐도, 막리지 운운하던 미친놈보다 백배 나았다.
료헤이가 말했다.
“정보에도 값이 있는 법. 그냥은 알려줄 수 없지.”
“값을 어떻게 치를까요?”
“죽여라.”
낮게 으르렁대는 소리.
“시나징(支那人 : 중국인)들이 우리를 핍박할 때, 너희 조센징들도 합세하여 기승을 부렸다. 약쟁이들은 그 중에서도 가장 악질이었다. 지금도 괴롭히고 있지. 불쌍하고 굶주린 일본인들은 가진 거 다 내놓고 약을 받아온다. 줄 게 없으면 딸과 아내까지 내주면서 말이야. 사실, 여자들 스스로도 그러고 있다만.”
야쿠자는 두 눈에 불이 붙어 있었다.
“약속해라. 죽이겠다고. 아는 걸 모두 알려주마.”
“차도살인(借刀殺人)에는 관심 없습니다.”
정보가 확실하단 보증도 없는데 약속은 무슨 약속. 겨울이 자리를 털었다. 부산하게 일어서는 사람들. 출구를 막는다. 그 시점에서 겨울은 이미 권총 그립을 붙잡고 있었다. 야쿠자들은 몸을 떨면서 얼굴만 험악했다. 비킬 생각은 없어 보인다. 깡패에게 기대하기 어려운 배짱. 이들도 그동안 고초를 겪었다는 증거였다.
등 뒤에서 료헤이가 말한다.
“앉아라.”
겨울이 차분하게 답했다.
“못 막을 걸요?”
“그래, 못 막지. 그래도 다 죽여서 뚫어야 할 거다.”
“죽일 수 없을까봐요?”
“손해잖나.”
아무리 무기 휴대가 가능해도, 대량으로 죽이면 당연히 부담이 된다. 적어도 캠프 사령관과는 마찰이 생길 터. 겨울은 잠시 생각하고서, 권총 놓고 도로 앉았다.
“내놔요.”
겨울이 쏘아붙였다.
“난 내 사람들이 약 먹고 미치는 게 보기 싫을 뿐이에요. 정신 나간 사람들하곤 어떤 식으로든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아는 게 있다면 내놔요. 일이 어떻게 돌아가든 당신들이 손해 볼 건 없을 테니까. 싸움 나면 구경이나 하시고요. 말했죠? 필요하면 죽입니다.”
“손을 잡자고 한다면?”
“때가 아니에요. 중국인들이 서로 싸울 때, 정신 나간 한국인들 밟아놓고 고려해보죠. 당신들이 제정신인지도 알아봐야겠고.”
료헤이가 웃음을 터트렸다.
“국적은 상관없다는 뜻이군. 좋다. 네 전적이 있으니 믿겠다.”
전적이라는 건, 극우 미치광이들에게서 소녀 하나 구해온 걸 뜻할 터.
그는 사람을 불렀다. 잠시 후 남녀 한 쌍이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자리에 어울리지 않았다. 료헤이는 그들을 불러 귓가에 뭐라고 속삭였다. 달달 떨던 한 쌍이 고개 끄덕이더니, 가지고 있던 가방에서 깨끗한 종이와 필기도구, 그리고 그림 몇 장을 꺼냈다. 자리에 앉아서 종이에 그림을 베끼기 시작했다.
“만화 그리던 연놈들인데 손재주는 좋다.”
료헤이가 말했다.
“다른 놈들이 약을 어디서 캐내는지는 모른다. 판로도 마찬가지. 아는 건 사람뿐이니,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 그려서 주는 게 낫겠지.”
“미리 준비하셨나 봐요.”
“항쟁이 또 언제 있을지 모르니까. 싸울 때 누굴 먼저 죽여야 할지, 꼬붕(子分)들에게 미리 알려주려니 이 방법이 가장 좋았다.”
확실히. 겨울은 남녀의 가방 안에 들었을 내용물이 궁금해졌다. 「겨울동맹」 사람들의 몽타주도 있을까? 보는 사람 족족 그려놓고 정보를 추가하는 식이었다면 가능성이 있었다.
조용한 시간이 흘렀다.
“다 된 모양이군.”
남녀가 눈치를 보자 야쿠자 두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쌍 중 남자 쪽이 겨울에게 다가왔다. 바들바들 떨면서, 종이뭉치를 내밀었다. 겨울의 소문이 험하게 난 탓일까. 잘 모르는 사람들은 소년을 사이코패스 살인마, 피에 미친 인간백정으로 여겼다. 어린놈이 제대로 미쳤다고.
공포도 자산이었다. 겨울은 그리 생각하며 받은 그림들을 살펴보았다.
“괜찮네요.”
몇몇은 지나가며 본 얼굴들이다. 일부는 여백에 정보가 적혀있다. 목격된 장소, 일자, 행동 등. 소속 조직과 이름도 간혹 보였다.
“결국 식사는 손대지 않는 건가?”
“실례. 배부르게 먹고 다니거든요.”
“유감이군.”
떠나려는 겨울에게 야쿠자 두목이 말했다.
“다음에 볼 땐 날 민족지도자라고 생각해라.”
이에 대한 겨울의 대답.
“하는 거 봐서요.”
겨울이 지나치게 무례한 것 같아도, 먼저 무례한 건 야쿠자 쪽이었다. 아무리 어리다지만 한 조직을 대표하는 겨울이, 먼저, 직접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경칭을 생략했으니까. 의(義)를 강조하는 야쿠자 세계에선 대놓고 던지는 모욕이었다.
‘어차피 자기미화를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으니.’
야쿠자는 의, 흑사회는 협. 범죄조직마다 그럴듯한 미덕을 강조한다. 그거라도 강조하지 않으면, 범죄자 집단에 규율이 생길 리가 있나.
료헤이로서는 체면관리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야쿠자가 민족지도자를 운운하는 건가…….’
난리 나기 전에, 일본인들에게 마약을 팔던 게 료헤이 그 자신이었을 터.
그래도 통할지 모른다. 일본인들 사이에선. 재해가 터졌을 때 자위대보다 먼저 오는 게 야쿠자라는 말이 있다. 범죄집단이 이미지 관리에 그만큼 철저하다는 뜻이며, 일본 관료제가 그만큼 경직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때, 가까워지는 인기척. 다수다.
“저어……시, 실례합니다. 한겨울님 되십니까?”
나이 지긋한 남성의 목소리. 말 거는 거리가 애매하게 멀었다. 나가는 겨울에게 붙어 눈 부라리는 구미잉(組員)들 탓. 가족으로 보이는 세 사람이 불안을 견디며 서 있었다. 겨울은 부모와 딸 중 딸 쪽을 알아보았다.
“네,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세츠나 양은 오랜만이네요.”
쿠시나다 세츠나. 잘 지낸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혈색은 나아졌고, 복색도 전보단 좋다. 표정이 어두울 뿐. 시선 마주치자 얼른 고개를 숙였다.
자식 나이에 비해 많이 늙은 부모가 허리를 굽힌다.
“일찍 찾아뵙지 못해 송구합니다. 딸아이를 구해주셨다지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겨울이 차분하게 답하려는 찰나, 성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아, 진짜! 아버지! 어머니! 내가 이러지 말라고 했잖아! 왜 죠센징한테 굽실거려!”
“음?”
돌아보면, 인상 일그러진 청년이다. 두툼하다. 성큼성큼 오더니 부모를 꽤 거칠게 다뤘다. 억지로 일으켜 세우고, 겨울을 노려보았다.
“인간쓰레기(にんげんのくず)야, 넌 뭘 잘했다고 인사를 받아?”
“…….”
겨울이 고개를 기울였다. 이 놈 뭐지? 가족인 모양인데, 한 핏줄 같지 않은 인상이다. 유전자 탓이 아니면 어지간히 잘못 지은 농사. 부모 중 어머니 쪽이 타일렀다.
“얘야. 이게 인간의 도리 아니냐. 도리를 잊은 사람들 사이에 저런 분이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니?”
“저런 분? 저런 부우운? 하, 진짜.”
그가 마구 소리 질렀다.
“엄마, 귓구멍 막혔어? 죠센징이라고! 죠! 센! 징! 반도 새끼들은 다 똑같다는 거 몰라? 씨발, 강도가 물건 훔쳐가서 대충 쓰고 돌려준 거라고! 다 헤진 물건 돌려받고! 고맙긴 뭐가 고마워! 쪽팔려서 진짜! 사람들 보기 창피하지도 않아?”
“저기요.”
인상 찌푸리는 겨울.
“저에게 고마워하실 필요는 없는데, 동생을 물건 취급하진 마시죠.”
“뭐?”
청년이 사납게 웃었다.
“저건 내 동생이 아냐. 그저 암퇘지일 뿐이지.”
세츠나가 슬픈 표정을 짓는다. 아랑곳없이, 청년은 동생의 심장에 비수 같은 언어를 마구 찔렀다.
“일본인으로서 최소한의 자긍심이 있다면, 잡혀갔을 때 자살을 했어야지! 더럽혀진 몸으로 어딜 다시 기어들어와! 그것도 죠센징 손을 잡고서! 일본인은 긍지로 사는 민족이다! 암퇘지! 아아, 암퇘지고 말고! 원수에게 몸 팔고 돌아온 여자는 암퇘지일 뿐!”
긍지는 개뿔이. 싸해지는 겨울의 시선. 적의에 비례하여 활성화된 「위협성」이, 당장 청년의 말문을 막았다.
파소 로블레스에서 손수건 챙겨 다녀야겠다 생각하고, 잊지 않아 다행이었다. 울고 있는 소녀에게 건넸다. 그리고.
콱!
명치 찔린 청년이 숨도 못 쉬고 쪼그라들었다. 부모의 짧은 비명. 그 위에 떨어지는 겨울의 조용한 목소리.
“아드님 교육에 신경 좀 쓰셔야겠네요. 인사는 잘 받았습니다. 실례할게요.”
긍지는 삶의 필수품이 아니다. 그보다는 사랑이다. 위로하고, 보듬고, 아픔을 나누고. 그러고도 살기 힘든 세상인데.
여기나, 현실이나.
겨울은 생각하며 걸었다.
============================ 작품 후기 ============================
1. 작중 어떤 표정이나 말투를 ‘만든다.’ 혹은 ‘만들었다.’고 표현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표현은 겨울에게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2. 제가 오늘 아주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산타할아버지가…허구의 인물이라고 하더라고요.
동심이 파괴되어 더 이상 소설을 쓰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동안 납골당의 어린 왕자를 사랑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4만년 뒤의 인류제국에서 다시 만나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