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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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진 양지 (8)
현장을 비추던 모니터가 꺼졌다. 대화를 나누던 스피커도 침묵했다. 무인감시체계가 먹통이 되는 구역이 늘었다. 에스더가 ‘흘린’ 것들 가운데 적어도 일부는, 모체와 같이 전류의 흐름을 감지하는 게 틀림없었다. 겨울은 작고 재빠른 무언가가 좁은 틈의 배선들을 갉아대는 광경을 상상했다. 행위의 의미도 이해하지 못하고, 미숙한 머리로 같은 행동만 반복하는.
통제실은 현장 요원들의 헬멧 카메라에 의지했으나, 그마저도 노이즈가 심했다. 전파간섭은 급박한 보고조차 불분명한 목소리로 뭉개놓았다. 선명한 건 오직 유선망 뿐.
애초에 집중된 병력으로는 분산된 사태를 감당하기 벅찼다. 명령의 홍수를 쏟아내던 그림 부장이 헤드셋을 집어던지고 돌아섰다.
“방금 나눈 대화! 무슨 내용이었습니까?”
겨울은 최대한 간결하게 설명했다. 목적을 재확인함. 거짓일 확률은 희박함. 트릭스터의 송신을 해독할 수 있고, 짧은 임신과 출산이 가능. 허나 얼마나 낳았는지는 불명. 또한 자신의 전략적 가치를 이해하고 있음. 그림 부장이 우거지상을 썼다.
“직접 나가야겠습니다! 중령님은 최후방어선으로!”
교회 방면의 지휘권을 맡기겠다는 뜻이다. 박태선 목사를 지키라고.
“지침은?”
“맡깁니다!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슈라이버! 두 놈 챙겨서 따라가!”
즉각적인 판단이었다. 무장한 통제요원 셋이 겨울에게 붙었다.
그렇다고 통제실을 비우는 건 아니었다. 무인포탑과 원격제어 지뢰지대 등은 아직도 반 이상이 정상이었다. 감시수단도 마찬가지. 특히나 마지막 안전장치는, 다른 모든 계통이 무력화되더라도 활성화가 가능했다. 열쇠는 웨스트 지부장이 쥐게 되었고.
그는 할 말이 많은 표정이었으나 경비부장의 권한을 존중했다. 시답잖은 요구와 질문으로 시간을 끌 계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단, 여차하면 다 날려버리겠지.’
그래서일까. 출동하는 겨울에게 당연한 당부를 건넸다. 자신의 귀를 가리키며.
“가급적 통신을 유지하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소각처리에 휩쓸릴 수 있다는 경고. 화생방 보호의는 또한 불연성 소재였으되, 거류구 전체를 태우는 불 속에서 생존을 보장할 정도는 못 된다. 그때의 죽음은 소사(燒死)와 질식사 사이의 어딘가다. 겨울은 한 번 끄덕이고 곧바로 나섰다. 노력은 하더라도, 형편이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무전이 완전히 죽지는 않아, 도달하기까지 간헐적인 통신과 상황전파가 이루어졌다.
[당소 오스카 3-1! 제5실험실 확보! 자재창고에서 다수의 케이지를 확인! 미상의 적은 최소 22개체 이상으로 추정!]
[접촉(Contact)! 접촉! 새로운 타겟 식별! 7구역으로 도주! 추적 허가바람!]
[안 돼! 거기서 막고 기다려!]
[3-1! 거긴 어떻게 생긴 놈이야? 이쪽은 산성폭발을 확인했다!]
인근에 2개 사단이 추가로 전개된다는 통보도 있었다. 전략폭격기 편대를 띄워둔 지역에 새로운 부대를 진입시킨다는 건, 만약의 경우엔 아군살해까지 감수하겠다는 각오였다. 포트 로버트 주둔 병력 전체도 진즉에 경계태세로 전환되었고,
불가피한 조치이기는 했다. 사태가 기지 내에서 마무리될 때에 대한 대비로서.
‘여기가 후방이긴 해도, 전파가 닿는 범위 내에 오랫동안 침묵하던 트릭스터가 있을지 모르니까. 최근 근처에서 발견된 변종집단도 있었으니……. 지역 전체를 봉쇄해야겠지. 늦을수록 구멍이 커져.’
전기를 다루는 괴물은 죽음에 직면하는 순간 대량의 전파를 뿜어낸다. 주변 어딘가에 있을 동종(同種)에게 최후의 경험을 전달하는 것이다.
만약, 에스더도 그렇다면?
트릭스터가 단말마의 비명에 얼마나 많은 정보를 담아내는가는 아직 미지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최악을 가정해야 했다. 즉, 변종들이 인간의 언어를 습득할 가능성이 있다. 인간의 사고는 언어적이기에 정교하다. 역병의 위협이 단숨에 치솟을 것이다.
일그러진 소녀가 과연 그렇게까지 할 것인가? 자문한 겨울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복수를 성취하지 못하고 죽는다면 그 비통함이 얼마나 깊을까. 신을 저주하는 마당에 세상이라고 저주하지 않을까. 굶주린 종말에게 증오를 위탁하진 않을까…….
어쩌면 그 마지막 비명이 능력에 딸려오는 본능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즉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한 맺힌 유산을 남기고 마는 경우. 에스더에겐 또 한 번의 비극이 될 것이다.
혹은 이미 송신이 이루어졌을지도.
역 전파방해를 걸 전자전기 편대가 날아오고 있지만, 상공에 도달한들 쉽게 나서진 못할 것이다. 전파방해는 피아를 가리지 않으며, 트릭스터의 통신 대역은 광범위한 주파수에 걸쳐있는 까닭. 다만 추가적인 확산을 막는 데엔 효과적이겠다.
어느덧 교회의 첨탑이 가까워졌다. 희미하게 찬송가가 들리기 시작했다.
겨울은 이빨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다.
“적! 9시 방향!”
외치며, 슈라이버가 연사를 긁는다. 그러나 빗나갔다. 표적이 원체 작고, 급박한 사격이었기 때문이다. 겨울은 일부러 쏘지 않았다. 손을 들어 통제요원들을 만류한다.
“잠시만!”
잠깐이라도 관찰하고 싶었다. 감각보정을 비껴낸 적이 궁금했으므로.
분홍빛 살이 갈라진 미숙아는 지친 숨을 할딱거리는 중이었다. 크기는 작다. 조그만 입엔 예리하면서 들쭉날쭉한 치열이 이중으로 돋아있었다. 대각선으로 길쭉한 두상(頭相). 눈은 없다. 그러나 앞이 훤히 보이는 것처럼, 머리를 겨울과 슈라이버가 있는 방향으로 돌렸다.
깨애애액-
기운 없는 울음. 그리고 느리게 기어왔다. 무릎과 팔꿈치는 이미 다 까여있는 상태였다. 질질 끌리는 흙에 긴 핏자국이 남았다. 그러다 픽 쓰러진다. 잠깐 사이에 숨도 멎었다. 감염돌기 돋은 혀가 이빨 사이로 흘러나왔다. 끝이었다.
“무슨…….”
슈라이버의 아연한 중얼거림.
타앙!
겨울이 확인사살을 가했다. 미숙아의 몸통에 퍽 하고 구멍이 생겼다.
“따라 붙어요.”
특수한 적이라 「기척차단」이 있는가 했다. 그러나 감각보정이 차단되었다기보다는, 너무 작은 위협이라 묻혔던 모양이다. 세밀하게 느끼기엔 황보 에스더의 존재감이 강렬했다.
교회 앞에 도착하니 황당한 광경이 보였다. 멀리서부터 찬송가가 들리는 데서 아직도 신도들이 있다는 건 짐작했지만, 그들이 손에 손을 잡고 교회 입구를 막고 있는 건 뜻밖이었다.
「우-리는 목사님의 사랑으로 간-난을 극복하네」
「목사님의 크신 사랑 주-님의 은-총을 알게 해-」
「아-픔을 참고 견뎌 천-국의 문-으로 들어가리」
「아-아- 우리에겐 목사님뿐 우리에겐 목사님뿐」
어처구니가 없어 말문이 막힌 슈라이버 대신, 겨울이 최후방어선의 책임자를 찾았다.
“여기! 최상급자가 누굽니까?”
방어진지로부터 두 사람이 나왔다. 한 쪽은 지휘관, 남은 한 쪽은 통신병이었다. 보호의를 입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어도 장비만으로 구분이 가능했다.
“도일 중사입니다. 오신다는 말씀을 듣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중사?”
“편의상 전역 전의 계급을 쓰고 있지요.”
“알았어요. 그럼 중사, 저 사람들 왜 아직도 저러고 있어요?”
당연히 대피시켰어야 한다. 민간인인 동시에 연구대상으로서도 지켜야 하니까. 광신의 피해자를 더 늘릴 순 없는 정부의 입장에선, 이미 감염되어있는 사람들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들을 모두 잃은 뒤엔 연구 방법이 극도로 제한될 터이므로. 따라서 진즉에 대피시키라는 지시가 내려왔을 것이다. 지금 이 광경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였다.
“저희도 물론 다른 곳으로 유도하려고 했습니다.”
도일 중사가 한숨을 길게 쉬었다.
“하지만 팍 목사가 쓸 데 없는 짓을 해버리는 바람에…….”
“쓸 데 없는 짓?”
“아시는가 모르겠습니다만, 그놈은 저희를 믿지 않습니다. 피해망상도 있고요. 패닉 룸으로 데려가겠다고 하니 갑자기 발광을 하더군요. 뭐라고 막 소리를 지르던데……정황상, 신도들에게 자기를 지키라고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신도들이 갑자기 공격적으로 돌변하더군요.”
“그래서 그냥 뒀다는 겁니까?”
“어쩌겠습니까? 그들 하나하나가 평범한 인간이 아닙니다. 근력이 거의 변종 수준이란 말입니다. 하마터면 총기까지 빼앗길 뻔 했죠. 진짜 적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마당에 광신도들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을 순 없었습니다.”
“……알았어요.”
“이곳 지휘를 맡아주시겠습니까?”
답하기 전에, 겨울은 병력배치를 살폈다. 교회로 이어지는 길목을 차단한 병력은 두 개 소대에 못 미쳤다. 노래 부르는 광신도들을 배후에 둔 경비대원들은 누구나 짜증이 한가득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런 조건에서 적과 대치하기도 우스울 것이다.
겨울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 정도 병력이면 나는 따로 움직이는 게 더 유리해요. 부대원 각각의 특기나 능력을 모르는 지휘관은 반쪽짜리잖아요. 중사가 계속 지휘하는 게 나아 보이네요. 난 책임자로서 방침만 결정합니다. 그 외의 사항은 여기, 슈라이버와 조정해요.”
“알겠습니다.”
“메인 타겟은 가급적 제압이 우선입니다. 이건 우선 내가 상대하죠. 상황에 따라 대응방침을 바꾸도록 하고요.”
“진심이십니까?”
“네. 뭔가 필요하면 당신에게 요청할게요.”
경비부장 그림은 겨울의 결정에 대해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그것이 완전한 면죄부는 아니다. 일이 잘못될 경우, 재량권을 발휘한 당사자로서 겨울 역시 얼마간의 책임을 지게 될 것이었다.
“그런 그렇고.”
겨울은 의문을 느꼈다.
“중보병 장비를 왜 방치해놨죠?”
도일 중사가 앓는 소리를 냈다.
“신도들을 진정시키는 과정에서 중보병을 투입했습니다. 몸싸움이 있었거든요. 신도들에게 둘러싸인 병력을 무사히 빼내느라 배터리를 소모했는데, 돌아와서 파워 케이블을 연결하고 보니 전력 공급이 끊어졌더군요.”
“전혀 못쓸 정도입니까?”
“그건 아닙니다만, 가동가능시간은 대체로 10분 미만입니다. 교전 도중에 동력이 끊기느니 차라리 벗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방어력보다는 기동성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애들에게 도로 착용하라고 지시할까요?”
중보병은 배터리가 방전되면 굼벵이가 된다. 장갑복의 중량을 순수한 체력으로 감당해야 하는 까닭. 겨울이 아닌 이상 느린 속도로 걷는 게 고작이었다. 적에게 둘러싸이면 그 부담이 더욱 가중되니, 장갑복을 입고 있어도 중보병으로서의 역할은 기대하기 어렵다. 중사의 말처럼 남는 건 방어력이 유일하다.
허나 10분이 마냥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겨울이 묻는다.
“그 10분은 교전 상황에서의 소모를 가정한 거죠?”
“물론입니다.”
“그럼 다섯 명쯤 예비대로 대기시키는 건 어때요? 적어도 돌파당할 위기 한 번은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걸요?”
“으음…….”
총성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검은 연기가 치솟는 것도 보였다. 어디선가는 화염방사기를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소화시스템도 갖춰져 있으니 대화재로 확대되진 않을 것이다.
‘그것도 전기로 작동한다면 문제지만.’
거류구 소각조치가 아니라 평범한 불이 번지는 정도라면 경비 병력의 생존에는 지장이 없다.
고민하던 도일 중사가 겨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잠시 실례.”
중사가 몇 명을 호명하는 동안, 겨울은 통신망을 확인했다.
“슈라이버. 통제실과 연결 됩니까?”
“유선망은 멀쩡하고, 위성단말은 지향성 안테나에 연결을 해야 쓸 만하고, 무선망은 근거리에서나 쓰겠습니다. 감도가 무척 안 좋습니다.”
방해전파의 발신원이 가까이에 있다는 의미. 그게 얼마나 가까이인지는 겨울도 모른다.
감각보정에 새로운 경고가 더해졌다. 에스더의 존재감과 구분될 정도이니 가벼운 위협은 아니다. 겨울이 방향을 가늠하고서 몇 호흡이 지났을까. 위협이 그 실체를 드러냈다. 한 경비대원이 악을 썼다.
“전방에 거수자 출현!”
괴물 같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허나 장소가 장소인 만큼 변종으로 단정 지을 순 없었다. 양복이든 환자복이든 대체로 말끔한 복색이었으므로 성도회 사람들이라고 보아야 한다. 멍한 얼굴들엔 인간을 물어뜯으려는 폭력적인 욕망이 묻어나지 않았다. 기도회에 참석하지 않은 이유까지는 모르겠어도.
“정지! 정지!”
경비대원들이 어설픈 한국어를 발음했다. 그동안 신도들을 통제하면서 익혀둔 듯 하다. 그러나 본격적인 의사소통은 무리였다. 그래서 겨울이 나섰다.
“당신들! 여기 오면 안 됩니다! 일단 거기 멈춰요!”
이러면서도 소총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린다.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면 「위기감지」는 없었을 것이다.
역시나, 선두의 남자가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그의 목덜미엔 치열이 두 줄인 이빨자국이 남아있었다. 겨울은 오면서 사살한 미숙아를 떠올렸다. 또한, 재감염에 의한 특성 전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