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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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진 양지 (9)
거수자의 숫자는 점점 더 불어났다. 표정은 각양각색. 꿈을 꾸는듯 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황홀해하거나, 혼란스러워하거나……. 이들의 정체는 교회를 가로막은 광신도들이 알려주었다. 어쩐지 찬송가가 흐트러지는가 싶더니, 노래가 그치고 등 뒤의 누군가가 고함을 질렀다.
“저, 저거! 이단이다! 천벌 받을 이단 새끼들이 몰려왔다!”
뭐? 겨울이 당황하는 사이, 전면에서도 반응이 돌아왔다. 외침을 듣고 꿈에서 깬 듯한 느낌의 사내는, 역병에 파 먹힌 얼굴을 끔찍한 분노로 일그러뜨렸다.
“누가 누구더러 이단이래! 이 개 같은 사이비들! 박태선이가 무슨 재림예수야! 사기꾼이지!”
“뭐가 어째?”
격분한 광신도들이 저주를 쏟아냈다.
“기적을 보고도 믿지 않는 불신자들! 은총을 받고도 고마운 줄 모르는 배은망덕한 놈들!”
“더 늦기 전에 회개해라! 천년왕국이! 주님의 뜻으로 목사님의 나라가 온다!”
“교언으로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자 은전 서른 닢을 쥐고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서로 간에 비난이 격해졌다. 비등하는 공기가 심상치 않아, 경비대원들이 바짝 긴장했다. 거수자 무리가 변종집단이 아니라면 함부로 무력을 행사할 수 없다. 그들을 통제하는 것이 본인들의 임무이거니와, 저들은 어쨌든 사람의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가.
타타탕!
겨울이 하늘에 대고 삼점사를 당겼다.
“닥쳐! 양쪽 모두 입 다물어!”
강하게 외쳐 봐도, 뒤따르는 정적은 길지 못했다. 종교적인 분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순교는 천국으로 가는 지름길. 그러므로 총성 따위가 무슨 위협이랴. 교회를 지키는 광신도들부터 다시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하하하! 하하하하하!”
거수자 가운데 한 사람이 날카롭게 웃었다. 이질적인 희열이 시선을 그러모은다. 두 눈이 풀린 이 여성은, 한 손으로 머리를 쥔 채, 비틀거리는 몸을 가누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알겠어……! 이 목소리는 천사님의 계시야!”
“미친년!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발끈하는 광신도들에게 여성이 부들부들 떨리는 비웃음을 지어보였다.
“들리지 않아?……들리지 않아? 아하. 잘못된 믿음을 지닌 사람들에겐 들리지 않는 거로구나……. 하하하! 이렇게 예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니……. 박태선이야말로 적그리스도라고! 그를 죽여야만!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다고!”
그녀의 주위에 동조가 번졌다. 나도 들린다고. 나도 그 목소리가 들린다고. 그들은 꿈과 현실의 경계에 선 사람들처럼 보였다. 겨울이야 내막을 짐작하지만, 실체를 모르고 보면 더할 나위 없는 광증 그 자체였다. 광신도들에겐 그 이상의 징조였고.
“마귀다! 마귀가 저놈들에게 속삭인다!”
경악과 분노, 공포가 뒤섞인 손가락질.
“감히 누굴 죽인다는 거야!”
“저놈들에게 사탄의 영이 깃들었어! 막아! 반드시 막아! 목사님을 지켜!”
“영적전쟁이다! 공중의 권세는 하나님의 집을 침범하지 못한다!”
일촉즉발의 순간 재차 총성이 울려 퍼졌다. 말을 알아듣진 못해도, 이곳을 담당하며 기른 눈치로 성난 군중의 폭발을 직감한 도일 중사가 경고사격 명령을 내린 것이다. 여러 사선의 삼점사가 흙과 벽을 부수며 사람을 물러나게 만들었다. 누군가에겐 긴 생채기가 생겼다. 아슬아슬하게 튄 도탄 때문이었다.
“젠장! 하마터면 죄다 눈 뒤집힐 뻔 했군.”
파리해진 도일 중사가 겨울에게 확성기를 던졌다.
“Sir! 저 치들 좀 어떻게 눌러주십쇼! 이대로 가면 전부 사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라도!”
“알았으니까 경계 흐트러뜨리지 말아요! 어수선한 사이에 뭔가 기어들어올 수도 있으니까!”
당부한 겨울은 먼저 광신도들부터 진정시키기로 했다.
“여러분! 제가 누군지는 아실 겁니다! 우리의 임무는 ㅂ……교회를 지키는 것입니다! 이곳은 우리에게 맡기고 안으로 들어가세요! 여러분께서 여기에 계시면 오히려 더 막기 어렵습니다!”
애써 박태선 목사의 이름을 삼켰는데도 에스더에게 홀린 거수자들의 분노가 치솟는다. 겨울은 그들의 살의를 민감하게 느꼈다. 더욱이 더 큰 「위협성」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까부터 통신을 맡은 슈라이버의 안색이 빠르게 나빠지는 중이었다.
세 번째 경고사격이 이루어졌다. 이번엔 한쪽 방향으로만. 효과는 앞서보다 적을 것이다. 총성을 등진 겨울이 소리를 높인다.
“들어가요! 빨리! 차라리 안에서 문을 잠그라고요!”
광신도들과 거수자들이 앞뒤에서 달려들면 방어선이고 뭐고 없어진다. 그 와중에 시작될 추가 재감염은 또 어떤가. 그 외의 공격에도 극도로 취약해질 것이었다.
합리적으로 보이는 제안, 그리고 겨울의 명성이 광신도들을 밀어냈다.
그만큼 거수자들이 전진했다. 사격과 유탄에 주춤거리면서도, 점점 더 대담하게. 이에 따라 광신도들도 멈춰 섰다. 「사탄의 권세」 앞에서 물러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일까.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만 같은 긴장감 속에 슈라이버의 보고가 들어왔다.
“여기만 개판이 아닙니다.”
통제요원은 주위를 살피며 낮은 소리로 빠르게 보고했다.
“비슷한 방식으로 두 개 팀이 뚫렸고, 포위를 벗어난 타겟은 위치가 확실치 않습니다. 방해전파 강도가 베타 트릭스터 이상이라 드론 지원도 불가능하답니다.”
“항공정찰이나 감시위성은?”
“항공은 직접 교신이 불가능해서 시차가 있고, 위성은 상공 진입까지 약 2분 남았습니다. 연기도 문제고요. 흩어진 유체(幼體)들을 추적하느라 병력이 낭비되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 2분은 길다. 겨울은 점점 더 늘어나는 검은 연기들을 보았다. 화염방사기만이 원인은 아닌듯 하다. 돌이켜보면 포트 로버츠가 캠프였던 시절, 기지를 공격한 트릭스터는 안전한 철수를 위하여 주변에 불을 질렀었다. 그 이후로도 하늘의 감시를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였다. 트릭스터 다수의 경험을 축적한 에스더라면 당연히 생각할 것이었다.
‘유체 가운데 애크리드의 특성을 보유한 개체가 있을지도.’
인 화합물은 방화에도 적합하다. 애크리드가 전선에서는 삽시간에 도태된 특수변종이지만, 캠벨 정도의 위치에서 연구용 샘플을 얻기란 어렵지 않았을 터. 무전으로 확인한 산성아기, 눈이 없어도 겨울을 포착한 미숙아를 보건대, 에스더는 인간의 기술과 광기어린 천재성이 빚어낸 모겔론스의 결정체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녀의 뇌리에 복수밖에 없는 것이 차라리 다행이다.
유체들이 밖으로 탈출하려는 기미를 보였다면, 웨스트 지부장이든 대통령이든 극단적인 결정을 망설이지 않았을 테니까. 유체 중에 제2의 에스더가 없으란 법 있는가.
어쩌면 에스더도 여기까지 짐작하기에 유체를 내보내지 않는 것일 수 있었다.
거수자들과의 간격이 줄어든다. 심적인 한계선은 10미터 가량이었다. 일반인을 상대로도, 21피트(약 6.4미터)부터는 육탄전이 사격전을 능가하기 시작한다. 거리는 곧 방어력이었다. 가까워질수록, 충돌이 빚어졌을 때 순식간에 돌파당하고 만다. 하물며 감염된 군중이 상대임에야. 중화기와 산탄지뢰가 없었다면 이미 치명적이었다.
도일 중사는 예비대 삼은 중보병 쪽을 힐끗거렸다. 미련이다. 죽이기 전에 힘으로 밀어내봐야 시간을 벌 따름이었다.
“거류구 전체를 소각한다는 말은 안 나왔어요?”
겨울의 질문에 슈라이버가 부인했다.
“다행히 유체들의 이동은 안쪽으로 집중되고 있습니다. 거류구 외곽에 1개 연대가 배치되어 있기도 하고요. 적어도 생물학적 오염 유출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목사를 정말로 죽이고 싶은 모양입니다.”
확인은 여기까지. 다른 걸 물을 여유는 없었다.
“계속 통신 맡아요.”
자리에서 일어선 겨울이 확성기 스위치를 눌렀다.
“에스더! 에스더!”
분명히 근처에 있다. 정황이 그렇고, 감각은 확신이었다.
“듣고 있다는 거 다 압니다! 멈춰요! 이 사람들을 다 죽일 작정입니까?!”
트릭스터는 다른 변종들에게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일까. 겨울은 산타 마가리타 호변에서 맞이했던 아침을 회상했다. 구울은 변종들로 하여금 급류에 뛰어들도록 만들었다. 살아있는 부유물들을 밟고서라도 거친 물살을 건너, 이쪽을 물어뜯고 싶어서.
고작 구울조차 그 정도의 지배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이후의 경험으로 미루어 트릭스터가 그 이상일 것은 자명하다.
에스더도 그 정도일까? 불완전한 감염 피해자들은 그래도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데?
“부탁합니다! 여기서 그만두세요! 더 큰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고요!”
슬금슬금 밀려오던 발걸음의 물결이 멎었다. 광신도들 사이에선 에스더가 누구냐는 숙덕거림이 흘러나온다. 더는 들어갈 생각도 없어보였다.
경비대원들이 불안하게 눈을 굴렸다. 정보국의 비수로서 전 세계의 어둠을 갈라 온 그들에게도, 이 진득한 광신과 역병의 늪은 생경한 두려움일 터였다.
잠시 후, 거수자들의 대열에서 자그마한 아이가 걸어 나왔다.
“쏘지 말아요!”
겨울의 말에 도일 중사가 끄덕였다. 방독면 보호경 안쪽으로 조금 보이는 얼굴이 땀으로 젖어있었다. 에스더의 어린 메신저는 긴장된 방어선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발을 멈췄다. 빤히 바라보았으므로, 겨울은 총구를 살짝 내리고 천천히 걸어 나갔다.
비참한 소녀의 입을 대신할 아이는, 역시 고통에 짓무른 모습이었다.
“내가, 나오지, 말라고, 했잖아요.”
그나마 발음은 에스더보다 또렷했다. 갸우뚱 하는 모습이, 말하는 아이가 에스더의 속마음까진 모르는 듯 했다. 그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들을 시키는 대로 전달만 할 따름.
“에스더. 이대로는 안 됩니다. 저 사람들 다 죽을 거예요. 결국 우리가 방아쇠를 당기겠지만, 피해자들을 사선으로 내몬 당신에게도 책임이 있단 말입니다. 모르겠어요?”
“중령님, 바보에요?”
말하는 아이가 무표정하게 웃음소리를 흉내 냈다. 하, 하, 하.
“저는요, 벌써, 많은, 사람들을, 죽였어요.”
병력 피해를 말하는 게 아니다. 지금껏 에스더로 인해 죽은 경비대원은 없었다. 중상자도 드물고, 경상자조차 이상할 정도로 드물었다.
“제가,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전도를 했다고, 생각하세요?”
“…….”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역병을, 옮겼다고, 생각하세요?”
감정의 공백이 유독 크게 느껴지는 말들이었다.
“아직, 죽지 않았을, 뿐이죠. 저 때문에, 죽는다는, 결과엔, 변함이, 없는걸요. 원래는, 안 죽었어도, 될, 사람들이, 저로 인해, 죽는 거라고요. 저는요, 끔찍한, 죄인이에요.”
“아뇨. 당신도 속은 거잖아요. 내게 성경 말씀을 적은 쪽지를 줄 때, 나를 해치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어요? 날 구원해주고 싶었던 거 아니에요?”
“하, 하…….”
명백한 조소였으나 겨울은 개의치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겠죠. 과실치사라고 할 순 있어도, 의도적인 살인이라고 할 순 없단 말예요. 하지만 여기서 저 사람들을 죽게 만들면, 그땐 진짜로 살인자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 여기서 물러나요. 마지막 순간까지 후회하고 싶지 않다면요.”
“하, 하, 하.”
에스더가 다시 웃었다.
“중령님. 저 사람들은요, 벌써, 죽은 목숨이에요. 저는요, 저 사람들을, 죽이는 게 아니라, 저 사람들도, 복수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거라고요. 만약에, 지금 당장, 제가 아는, 모든 진실을, 저 사람들의, 머릿속으로, 전달한다면, 어떻게, 반응할 것, 같으세요? 네?”
교회 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이 형제님이 미쳤나? 왜 사람을 물어?
상황은 돌아보지 않아도 뻔했다.
하, 하, 하. 에스더의 입이 말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같은 수법이, 두 번이나, 먹혔네요. 중령님은, 정말, 좋은, 분이세요.”
“에스더…….”
“마지막, 경고에요.”
전방 거수자들의 기세도 달라졌다. 머리를 감싸는 이가 많이 보인다.
“가만히, 계세요. 그러면, 죽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은, 건드리지, 않을게요. 하지만, 만약에, 끝까지, 막으려고 하시면, 그때는, 중령님을, 죽여서라도, 지나갈, 테니까요.”
에스더는 겨울의 한계 바깥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