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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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진 양지 (10)
도일 중사가 소리쳤다.
“Sir! 돌아오십시오! 얼른!”
시작될 공격을 직감한 것이다. 거수자 집단의 격한 움직임은 여러 몸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정신 같았다. 지휘권자인 그는 말릴 틈도 없이 명령했다.
“사격! 죽기 싫으면 다 죽여! 클레이모어! 5번, 6번! 격발!”
“아직 안 됩니다!”
위치가 높아 시야도 넓은 저격수가 막았으나, 늦었다. 한 쌍의 산탄지뢰가 폭발하며 1,400개의 쇠구슬이 전방을 휩쓸었다. 살상범위 내의 모든 육체가 갈기갈기 찢어진다. 그러나 핏빛 안개가 가라앉았을 때, 드러난 참상은 예상을 밑돌았다.
“뭐야?”
중사가 경악했다. 거수자 집단이 한 덩어리처럼 보였던 건 착시에 불과했다. 처음엔 그랬을지언정, 슬금슬금 다가오는 와중에 앞뒤가 분리되었던 것이다. 뒤는 오히려 물러났다. 훨씬 더 많은 숫자의 발소리, 광기와 광신의 웅성거림, 불안한 후방, 그리고 전대미문의 특수변종을 상대하는 데에서 느끼는 두려움. 이것들이 베테랑의 감각을 교란했다.
에스더의 목적은 방어력을 소진시키는 것이었다. 남은 거수자들이 야생동물처럼 흩어졌다. 사람이 사람을 다루는 태도가 아니다. 증오의 합리화였다.
“중보병! 교회로!”
겨울의 지시는 외마디로 충분했다. 당장 급한 불을 깨달은 예비대는 지시를 받기도 전에 움직이고 있었다. 기어코 숨어든 유체를 사살하고, 물린 신도들을 처리하기 위하여.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면, 단 10분만으로도…….’
다 죽일 수 있다. 겨울은 혐오감을 느꼈다. 박태선이 죽도록 내버려두고 싶다.
그러나 그럴 순 없었다. 말했듯이, 종말의 향방이 달린 문제였다.
“지원 병력 투입 통보! 도착예정시간(ETA), 앞으로 약 7분!”
슈라이버가 전하는 통신. 얼마나 밀어 넣을지는 몰라도, 결국 비밀유지고 뭐고 확실한 수습부터 선택한 것이다. 늦은 조지지만, 까마득한 윗선의 결정 치곤 굉장히 빨랐다고 봐야 했다.
진입로가 썰물 빠지듯 비어버리는 순간, 어느 골목에서 던져진 것인지, 하늘에서 피막을 펼친 산성아기들이 날아들었다. 지붕을 스치는 저공비행. 비거리가 짧아도 너무 짧았다. 병사들에게 머리 숙이라고 경고할 틈조차 없을 지경.
타타탕! 겨울의 연속 사격에 세 아기가 찢어진다. 미숙아임에도 위력은 만만찮다. 확 퍼지는 강산성의 분무(噴霧). 후두둑 쏟아지는 소나기는 덤이었다. 어느 쪽이든, 관성과 바람을 타고 일방으로 뿌려졌다. Fuck! 뒤집어쓴 경비대원들이 기겁을 하여 몸을 털어냈다. 보호의의 내산성 코팅에도 불구하고, 전신에서 독한 연기가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1시 방향! 지붕 위!”
방어진지 2층의 저격수가 급작사격을 가한 직후 바짝 엎드렸다. 이쪽의 기세가 주춤한 찰나에 가해지기 시작한 저편의 제압사격. 총성은 메아리치는 먼 천둥 같았다. 소구경 화기가 아니다. 적어도 50구경 이상의 묵직한 연사였다.
‘중기관총?’
그런 게 에스더에게 있을 리가……. 제5실험실의 총기보관함엔 개인화기가 있었을 뿐인데. 혼란스러운 겨울은 회피 도중의 힐끗 스치는 광경에서 괴물이 된 소녀의 무장을 확인했다. 그것은 무인포탑에서 억지로 뜯어낸 듯한 중기관총이었다. 전기적으로만 작동하는 트리거는 그녀에게 아무런 장애도 되지 않았다. 그것을 쌍으로 갈겨대는 중.
위협적인 사선 몇 가닥이 겨울을 스쳤다. 퍽 하는 충격에 구르고 보니 보호의 한쪽이 터진 상태였다. 출혈은 없었으되 통증은 있다. 멍이 든 것처럼 욱신거렸다. 의외로 정확한 조준이었다. 견착 같은 것도 없이.
“미친! 화염방사기는 아껴!”
느닷없이 뿜어진 불길. 중사가 부하를 윽박지른다. 화력공백을 틈타 뛰어들던 거수자 셋을 불태웠을 뿐이었다. 명백한 낭비였다. 휴대 가능한 화염방사기의 연료량은 고작 십 수 초 분량에 불과하다. 중보병용도 채 30초가 되지 못한다.
캠벨은 어디다 두고 나온 걸까. 에스더는 단신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더는 방패가 되지 않으리라 판단했을 터. 벌써 목을 꺾었을지도 모른다.
중기관총 사격에 억눌린 경비대원들 사이에서, 겨울이 위장된 유개진지(有蓋陣地) 엄폐물에 의지하여 반격했다. 그러나 소총탄의 위력으론 부족했다. 에스더는 사소한 부상을 무시했다. 꼭두각시들이 방어선을 삼키면 그녀의 승리였다.
“저격수! 대물저격총!”
부서지는 콘크리트 파편 사이에서 쏠 엄두도 못 내던 저격수가 예비 무기 가운데 하나를 집어던졌다.
“탄종은 철갑고폭탄입니다!”
트릭스터 사냥 때도 써봤다. 겨울은 길이 48인치(121센티)의 강력한 화기를 낚아챘다. 뒤이어 던져진 예비 탄창 세 개도 한 손으로 받아낸다.
“엄호하겠습니다! 래리! 유탄!”
투투투퉁! 소총수와 기관총 사수들이 틈을 만들고, 유탄사수가 두 방향에 네 발의 고폭탄을 꽂아 넣었다. 초탄과 차탄은 역시 에스더를 겨냥했다. 터지는 찰나에 웅크리는 괴물 소녀. 겨울의 시력으로는 튀는 피가 선명하다. 그 순간, 바로 그 상처를 조준하여 방아쇠를 당겼다. 철갑고폭탄은 벗겨진 살 아래로 파고들어 근육에서 폭발할 것이다.
쾅쾅쾅!
중기관총과 맞먹는 위력인지라 총구의 발사화염도 엄청나다. 먼지로 가려진 풍경 너머에서 멀고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허나 그 직후에 거센 보복사격이 쏟아졌다. 애초에 겨울도 치명타까진 기대하지 않았다. 경비대원 하나가 욕설을 중얼거렸다.
“무인포탑은 왜 아직도 먹통이야!”
사정을 알면서 나오는 불평이다. 이 거류구에 배치된 병력은 본디 원격 보안체계를 보완하는 역할이었다. 이 시스템의 구성요소들은 대부분 수동조작이 불가능했다. 탈취 우려 탓이었겠으나, 당장은 아쉽기 짝이 없었다. 조금만 더 신경을 썼다면…….
비밀엄수 측면에서, 경비인력을 무작정 늘리기도 곤란했을 것이다. 각 기관의 관할권 문제도 있었겠고.
도일 중사가 부하를 구박했다. 엄살 피우지 말라고.
“이제 4분 남았다! 조금만 더 버티면 지원군이 온다! 이대로만 해!”
각 진지는 에스더에게 홀린 사람들을 그럭저럭 잘 막아내고 있었다. 에스더의 제압사격에 억눌렸어도 이쪽의 화력이 비무장 거수자들을 막아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아무리 신체능력이 변종에 필적한다 하나, 평범한 변종집단 수준으로는 자동화기의 방어선을 뚫지 못한다.
잠깐이나마 그렇게 생각한 겨울이었다.
“2시 방향! 대전차지뢰!”
“뭐?”
“40미터 거리! 1층 모퉁이! 지뢰를 가진 놈이 있습니다!”
갑자기 무슨 지뢰? 도일 중사가 황당해했으나, 겨울도 그 대원이 본 것을 확인했다. 그럼블은 물론이고 전차조차 폭압으로 파괴하는 대형 지뢰. 그것을 품은 거수자가 엄폐물을 활용하며 달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폭탄을 품고 자폭하려는 테러리스트처럼.
‘대체 어떻게?’
어떻게 지뢰를 얻었지? 지뢰지대가 있다곤 해도, 철저하게 위장된 상태일 텐데?
의문 이전에 본능적으로 지뢰를 겨누었던 겨울은, 조준을 고쳐 꼭두각시의 무릎을 쏘았다. 지뢰를 놓치도록. 떨어져 구르는 지뢰가 폭발하지 않기를 바라며. 터졌다간 시야가 차단된다. 폭발의 여파가 가라앉기까지, 이쪽의 화력은 눈이 멀고 만다.
그러나 화약을 무식하게 채운 쇳덩이는 14킬로그램에 달하는 무게였다. 낙하 충격이 기어코 신관을 작동시켰다.
콰르릉!
파편 섞인 검은 폭풍이 교회 앞까지 밀려왔다. 일렁이는 불길 사이로 다다다닥 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내부에 무인포탑과 그 외의 격리수단들을 품은 건물이었던 모양. 하기야 최후방어선 앞에 쓸 데 없는 장애물을 둘 이유가 없다. 안에선 불길이 탄약을 굽는 중일 것이다. 뜨겁고, 초연(硝煙) 짙고, 불투명한 바람이 불었다.
밭은기침을 하는 경비대원들 사이에서, 겨울은 몸을 가누며 깨달았다.
‘냄새……인가. 그 능력마저 갖췄다고…….’
새크라멘토에서, 야음을 틈타 스토커가 침입한 적이 있다. 후각이 강화된 변종은 지뢰밭을 뚫고 들어왔었다. 화약을 찾도록 훈련된 쥐처럼, 냄새로 지뢰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냈던 것. 에스더의 경우, 꺼내는 위험은 넋이 나간 타인에게 전가할 수 있다.
꼭 에스더가 아니더라도, 유체 가운데 하나의 코가 예민하다면 가능한 일.
유감이다. 지뢰 아래에 해체 방지용 압력신관이라도 깔았다면 좋았으련만.
다행히 에스더의 중기관총 사격은 끊겼다. 보이지 않아도 쏠 법 한데, 탄약이 바닥난 것일까? 그리 긴 사격이 아니지 않았나? 겨울의 뇌리에 의혹이 스쳤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도일 중사는 곧바로 최선의 판단을 내렸다.
“젠장! 클레이모어! 3번 격발! 4번 대기!”
앞이 보이지 않으니 넓은 범위를 갈아버려야 한다. 또 다른 지뢰의 폭발 우려를 감수하고서라도. 시야가 조금이라도 개선되기까지, 적아의 간격은 몇 미터나 사라질지 모를 노릇이었다. 그러나 격발기를 달칵거린 경비대원이 다급하게 보고했다.
“반응 없음! 선이 끊어졌나봅니다!”
“그럼 4번 당겨! 안 되면 2번! 1번순으로!”
연기 속에서 고독한 뜀박질이 달려왔다.
“엄폐! 모두 엎드려!”
뛰는 소리를 포착한 겨울의 날카로운 경고로부터, 고작 1초. 발이 덜덜덜 떨렸다. 지축의 진동은 내장까지 흔들었다.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터진 대전차지뢰였다. 겨울은 온 몸에서 후드득 거리는 파편의 부딪힘을 느꼈다. 이 구역, 원격조작 가능한 대전차지뢰를 얼마나 묻어두었을까. 혹시나 광신도들 사이에서 특수변종이 생길 경우에 대한 대비였을 것이다. 거꾸로 이용당하고 있지만.
그리고 세 번째, 네 번째의 폭발과 후폭풍이 뒤를 이었다. 설마 또 터질까? 틈을 노리던 중사가 이어지는 정적에 이를 악물었다.
“화염방사기!”
사수가 보이지 않는 저편으로 불을 뿜었으나, 한 발 늦었다.
“비켜어어어어!”
쾅! 겨울의 반사적인 사격이 연기를 뚫고 튀어나온 에스더의 무릎을 깨부쉈다. 철갑고폭탄이 연골을 으스러뜨린 것. 중심을 잃고 요란하게 구르는 몸은 파괴적인 관성이며 넘치는 중량감이었다. 소녀는 구르던 기세로 일어나, 불편한 다리로 방어선을 돌파했다. 몸 일부에 불이 붙어있는데, 고통조차 잊은 듯이.
“망할! 수류탄!”
도일 중사가 외치기 전에 겨울은 이미 안전핀을 뽑은 상태였다. 그러나 던지는 방향이 달랐다. 에스더를 뒤따라, 전파에 홀린 사람들이 달려드는 것을 느꼈기 때문. 에스더가 자기보다 앞세우지 않은 건, 줄어든 숫자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함인 듯 하다. 병력을 여기에 붙잡아두려고.
‘박태선 목사에게 도달할 때까지만 시간을 벌면 되니까!’
수류탄이 연달아 폭발하는 사이, 겨울은 에스더의 발목을 노렸다. 이 상황에 그저 살리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 외의 부위는 너무나 두꺼웠다. 중기관총 철갑탄조차 한 뼘 파고들고 그치는, 변질된 육체. 종양처럼 부푼 등은 경추와 머리를 가렸다. 고로 망설일 여지는 없었다.
쾅! 철컥! 쾅쾅쾅!
탄창을 교체하고 연사에 가깝게 쐈는데도,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 필사적인 기세로 나아간다. 속도만 느려졌을 따름. 불붙고 피 흘리는 에스더가 달려가는 모습은 차라리 처절한 몸부림에 가까웠다.
“바아악태서어어언! 나와아아아아!”
입구를 막고 있던 중보병 다섯은 중기관총을 난사하는 에스더의 충돌을 감당하지 못했다. 비스듬히 치고 지나가는 모습이 마치 교통사고를 보는 듯 했다. 다만, 그래도 잠깐은 에스더의 발을 묶었다. 그 사이에 겨울은 다시 다섯 발 들이 한 탄창을 비웠다. 특수변종이 된 소녀의 출혈과 비틀거림이 더욱 심해졌다.
“여긴 맡기겠습니다! 여유가 생기면 바로 지원 보내요!”
탄창을 보충한 겨울이 도일 중사에게 뒤를 부탁했다. 여전히 전방에 적의 기미가 있으니 방어선을 방치하기 어렵다. 임무는 둘째 치고, 일단 살아야 할 것 아닌가.
빠르게 달려 지나치는 교회 입구엔 아직 숨이 붙어있는 광신도가 있었다. 널린 시체들 사이에 주저앉아,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는 남자가.
“마귀야……. 내 머릿속에서 나가라……!”
재감염의 징후. 헐떡이는 그의 부상은 중보병 예비대의 소행인 듯 했다.
교회로 돌입한 겨울은 가장 먼저 몸부터 굴렸다. 퍼억! 날아든 사람이 문틀에 부딪혀 핏덩이가 되었다. 아니, 던져지기 전에 이미 피투성이였을지도. 재감염을 피해 이 시점까지 살아남은 광신도들은, 그들만의 재림예수를 지키고자 목숨을 버리는 중이었다.
그들 사이에서 에스더가 포효했다.
“그래애! 니들도오! 어어차피! 죽을 목수움! 그냐앙! 지그음! 여기서어! 끝내애!”
쾅! 겨울의 총구가 번쩍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