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349)
00346
=========================================================================
#그늘진 양지 (13)
하루, 날짜가 바뀐 난민구역은 아침부터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성도회 거류구에서 뭔가 말썽이 있었다는 소문 탓. 그래서 겨울은 사소하고 일상적인 행사를 무시하지 못했다. 일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얼굴을 내비쳐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편이 좋다. 불확실한 불안이 확대 재생산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바로 오늘부터 포트 로버츠에 더해질 다양한 이목을 의식해서라도.
어차피 얼마간의 진실이 알려질 테지만, 공식발표 전까진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옳은 처신이었다. 정부가 어디쯤에서 선을 그을지 모르는 까닭이다. 비밀유지서약도 문제였고.
신호와 함께 울려 퍼지는 총성들이 겨울의 사색을 깼다.
사격장의 사로마다 들어가 있는 건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한 중학생들이었다. 각각 한 명씩의 조교가 붙어 지도하는 중. 뒤쪽으로 고등부 학생들이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도 눈에 띈다. 국적 별로 분류된 난민구역의 아이들이었다.
텍사스 커리큘럼.
사격과 생존기술 교육을 정규 교과과정에 편입한 건 작년 이맘때의 텍사스가 처음이었다. 그것이 뉴멕시코, 애리조나, 네바다 등 방역전선에 면한 여러 주로 확산되다가, 올해 중순부터는 미국 전역에서 대동소이한 정책이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 불만이 제기되는 지역도 있었으나, 그 정도는 결코 강하지 않았다. 미국총기협회의 전성기였다. 민주당은 불편한 침묵, 혹은 불가피한 동의로 시대적 변화를 받아들였다.
타앙!
간헐적인 총성은 크기가 작았다.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조금씩 움츠러드는 십대 초중반의 학생들은, 그러나 작은 체구로도 소총의 반동을 무리 없이 받아냈다. 기량이 뛰어나거나 훈련이 잘 되어있어서가 아니다. 지급된 탄환이 그만큼 저위력(22LR)이었기 때문이다. 살상력을 비교하자면, 통상적인 소총탄의 10분의 1쯤. 반동도 당연히 약했다.
그러나 결코 방심해선 안 된다. 가장 약하고 가장 값싼 탄환은 또한 미국에서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탄환이기도 했으니.
“총구는 전방! 총구는 전방!”
교관으로 자원한 한별이 각 사로를 돌아다니며 날카롭게 소리친다. 학생들이라고 부드럽게 대해주는 일은 없었다. 하사 계급장을 단 그녀는 아낌없이 화를 내고 쉴 새 없이 윽박질렀다. 사고를 예방하려는 것도 있지만, 일부러 심리적인 압박감을 주려는 의도도 있었다.
‘단순히 총을 쏘는 요령만 가르치려는 게 아니니까.’
수업의 목적상, 긴장감이 팽팽하게 당겨진 상태를 경험하도록 해줘야 한다. 겨울은 언젠가 유라에게도 비슷한 방식의, 그러나 강도는 훨씬 더 높은 훈련을 시켜주었었다.
“이거 참……. 원래는 저희가 해야 할 역할인데…….”
여전히 자경단장인 안제중의 조심스러운 아쉬움이었다. 정책에 따르면 사격수업 감독은 해당 지역의 경찰의 관할. 고로 이곳 포트 로버츠에서는 헤이랜드 보안관이 담당한다. 공인된 치안보조조직으로서 난민 거류구 자경단에도 보조할 자격이 있었으되, 보안관은 자경단 인력을 차출하는 대신 군부대의 협력을 요청했다.
“제중 단장님이나 다른 단원들을 못 믿어서가 아닙니다.”
달래는 겨울의 말.
“오늘은 조금 특별한 날이니까요. 남은 쿼터에선 자경단이 필요할 거예요.”
“예에, 뭐…….”
제중이 겨울의 기분을 살핀다.
“그런데 작은 대장님, 뭔가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
이게 몇 번째더라. 겨울은 아침나절부터 지금까지 받은 비슷한 질문의 횟수를 헤아려보았다. 표정 관리를 한다고 하는데, 어제의 여운이 다 가려지지는 않는 모양. 그래도 대개의 사람들은 별 기미를 모르고 넘어간다. 제중은 눈치가 빠른 축에 들었다.
“혹시 어제 그, 성도회 거류구에서…….”
“단장님.”
겨울이 그의 말을 잘랐다.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는 조만간 모두가 알게 될 겁니다. 그때까지는 굳이 알려고 하지 마세요. 아랫사람들도 단속해주시고요. 이상한 소문이 돌지 않게끔……. 부탁드려도 되겠죠?”
아랫사람, 그리고 부탁이라는 단어를 살짝 강조한다. 제중이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나름의 허영이 있었다. 그것을 채워주면 동기부여로 충분하다. 작은 욕심을 감당할 작은 능력도 있다. 민완기의 평이었다. 만년과장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책상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제중이 음성을 낮추었다.
“으허, 물론이죠. 비밀, 비밀이군요. 실망하시는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태연함을 가장하여, 주변이 들으란 듯이 목소리를 키웠다.
“저기! 보이십니까? 9번 사로에 있는 녀석! 정말 잘 쏘지 않습니까?”
“소질은 있어 보이네요. 아는 아이인가요?”
“자경단에서 같이 일하는 친구의 아들입니다. 장래희망이 군인이라더군요. 나중에 진짜로 입대하면 한 번 눈여겨 봐주십시오. 성격도 제 아버지를 닮았다면 제법 괜찮을 겁니다.”
일부러 돌려놓은 말 치고는 본인의 잇속이었다. 겨울은 모르는 척 대답했다.
“기억해두죠. 단장님의 안목이니.”
제중이 흡족함을 애써 감추었다. 참 쓸모없는 대화 같지만, 해둬야 할 일. 제중은 스스로 권위를 세우지 못하는 유형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겨울은, 값싸게 표현하면 자리를 빛내는 역할이었다.
일부 학부모들도 곧잘 이 자리를 힐끗거렸다. 각자의 자녀가 겨울의 눈에 들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속된 말로, 줄을 잡는다고. 사실 전(前) 독립중대, 현 알파 중대 내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도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어디까지나 지나가다가, 의도치 않은 우연으로.
“빡친석이가 올라가는 속도 봐라. 우린 기가 막히게 좋은 라인을 탄 거야. 이 줄만 꽉 잡고 있으면 우리도 쭉쭉 올라갈 거라니까?”
겨울은 병사들의 그런 인식을 나쁘게 여기지 않았다. 욕심 없는 사람은 드물지 않겠는가. 그로써 보다 적극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또 더욱 자발적으로 명령에 복종할 테니 부대 운영 면에서도 긍정적인 요소였다. 겨울을 비롯한 장교들이 중심을 잃지만 않는다면.
그러나 여기서 느끼는 바, 학부모들의 욕심은 색채가 달랐다.
‘자녀를 도구로 여기는 듯한…….’
입대는 시민권 획득을 동반한다. 그리고 자녀가 미국 시민이 되면 부모가 얻을 이득도 많았다. 영주권을 얻기 쉬워질뿐더러, 군인가족으로서 얻는 혜택도 있다. 백산호가 언급한 전사자 위로금도 그 중 하나였다.
즉 자녀에게 가장 좋은 길이라서가 아니라, 본인들을 위해 군인이 되기를 강요하는 부모들.
물론 일부일 것이다. 일부지만, 겨울 입장에선 민감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멀리서, 사격을 끝내고 혼나는 아이의 훌쩍임이 들렸다.
“너 이리 와봐. 엄마가 급하게 쏘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옆집 창현이는 열 발 쏴서 열 발이 다 맞았는데 넌 이게 뭐니? 이래가지고 AB 아너(성적 표창)나 받을 수 있겠어? 응? 한겨울 중령님처럼 되려면 A 아너를 받아도 모자랄 텐데!”
겨울은 한숨을 내쉬었다. 심란함이 더해졌다. 보정을 받아도 작고 희미한 소리를, 마음이 마음이라 신경을 쓰게 된다. 슬쩍 쳐다보면, 소총을 반납하여 빈 손인 아이가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만 해요, 혜영 엄마. 다른 나라 사람들 보는데 창피하지도 않아요? 방송국 카메라도 있잖아요. 오늘이 1쿼터 첫 수업인데, 혜영이 정도면 잘 쏜 거지 뭘. 우리 두중인 아예 옆 사로 표적에다 대고 쐈다는데.”
그래도 말리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 ‘혜영 엄마’는 그제야 흰 눈으로 보는 주변을 의식했다. 우는 아이를 데리고 슬쩍 빠진다.
난민구역의 교육은 국적을 구분한다. 그럼에도 이 자리에 여러 국적의 학생들이 모인 것은 관계당국의 의향이었다. 방송국 인력이 파견된 것도 같은 맥락이었고. 어제의 교전에 관한 공식 입장을 발표하기까지의 짧은 시간을 버는 연막의 하나인 것이다. 아울러 난민지원정책의 효용성을 광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제2, 제3의 한겨울이 나올 수도 있다는 암시.
이제는 식상하지만, 각인을 위한 반복으로서는 의미가 있겠다.
안전이 제일이었으므로 사격이 끝나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기분도 안 좋으신데 욕보셨습니다.”
다음 일정으로 만난 민완기의 말에, 겨울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티가 나나요?”
“평소와는 확실히 달랐지요. 작은 대장님을 좀 안다 싶은 사람은 다들 눈치 챘을 겁니다. 박진석 대위도, 이유라 중위도 무슨 일인지 들은 게 있느냐고 묻더군요. 저로서는 두 사람도 모른다는 게 뜻밖이었습니다마는…….”
성도회 거류구에 투입되었던 건 래플린 준장 휘하의 기동타격대였다. 겨울의 독립대대에 속한 병력은 유사시에 대비하여 그 외의 길목을 차단했을 따름.
“아마 며칠 후에 방송으로 보실 수 있을 거예요.”
“흐음……. 며칠, 며칠이라…….”
민완기가 깍지를 꼈다.
“즉, 검열을 거쳐 제한된 정보만 공개된다는 뜻이군요. 이제 슬슬 안정기라고 생각하고 있었건만, 보도관제까지 필요한 사건이 있었다니 놀랍습니다.”
“너무 빠르신데요.”
“이 나이에 머리로 먹고 사는 입장 아니겠습니까.”
농담조로 말한 그는 겨울에게 마실 것을 권했다.
“차나 커피는 어떠십니까? 손님을 맞을 일이 많아 전보다 나은 물건들로 갖춰두었습니다. 기분전환으론 나쁘지 않을 겁니다.”
이런 기분에 커피라고 하니 앤이 만들어주던 카페 로얄이 떠오르는 겨울이었다. 문득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생각한 뒤에, 겨울은 다시 한 번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럼, 저는 커피로. 종류는 상관없어요.”
겨울이 끄덕이니 민완기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따라 일어서려는 겨울을 제지하면서.
“앉아계십시오. 이런 것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
나이든 부장이 문을 열자 묘령의 여성이 다가와 용건을 묻는다. 그녀는 커피를 대신 타주려고 했으나, 민완기 쪽에서 사양했다. 이 정도는 내가 하겠다고. 어쩐지 묘한 분위기였다.
이윽고, 쟁반에 잔 두 개와 각설탕 용기를 담아온 그에게 겨울이 물었다.
“아까 그 여성분은 일을 도와주시는 분인가요?”
“예. 겨울동맹도 이제는 법인이고, 사무도 그만큼 많아졌으니까요. 뭐, 본인에겐 다른 마음도 있는 모양이지만 말입니다.”
“다른 마음?”
“남자가 워낙 없다보니 저 같은 중늙은이에게도 나름의 상품가치가 있어 뵈는가보지요. 일단은 공무원으로서 안정된 수입도 있고, 또 작은 대장님의 측근이라는 완장도 있고.”
자신의 잔에 설탕을 잔뜩 집어넣으며, 민완기는 희미하게 웃었다.
“곤란한 일입니다. 곁에 아무도 두지 않으면 오히려 더 귀찮아지니…….”
말끝을 흐린 그가 어조를 바꾸었다.
“영양가 없는 이야기는 그만 두지요. 대장님께서 내키지 않으신다면 오늘은 그냥 쉬다가 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래도 되나요?”
“대장님이 없으실 때도 그럭저럭 돌아갔던 조직이 우리 동맹입니다. 주기적으로 보고를 받아주시는 것만으로도 자잘한 잡음들이 사라지니, 형식 그 자체가 실속인 경우라고 봐도 좋겠군요. 어지간히 큰 말썽이 생기지 않는 이상, 평소엔 그저 신경을 써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바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던 지난날의 말과 겹쳐진다.
“그보다, 어제의 사건 말씀입니다만, 자세한 내용은 비밀이라고 해도 한 가지는 확인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뭔가요?”
“우리에게 해가 될 만한 일입니까?”
겨울이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녜요. 다소 시끄러워지긴 하겠지만, 동맹 입장에서 나쁜 영향은 없을 거예요. 적어도 제가 생각하기로는…….”
“그렇습니까. 다행이군요.”
민완기가 잔을 기울였다. 안경에 하얀 김이 서렸다. 겨울도 커피에 설탕을 넣었다. 하나, 둘, 셋, 넷……. 오늘은 단 것이 입에 당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