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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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 가는 길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별빛아이와 겨울의 약속은 여전히 유효했다. 겨울에게도 아이가 필요하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곧 고요한 위로가 된 지 오래이기 때문. 허나 가끔은 예외였고, 지금이 바로 그러하다. 빚에 지워진 천구(天球), 아직도 하나 뿐인 별 아래의 공허. 아이와 재회한 겨울은 다시 한 번 에스더를 떠올렸다.
‘그 슬픔이 이 아이에게도 전해졌겠지.’
지난날, 별빛아이는 겨울에게 자신의 기억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감정을 버리는 쓰레기통으로서 수도 없이 소모당하는 가상인격들의 수난사를. 하나의 달이 천 개의 강에 일렁이듯이, 수많은 세계의 무수한 가상인격들은 별빛을 반사하는 물결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느끼는 모든 슬픔과 분노와 고통은 별빛아이의 마음으로 수렴된다.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되 새삼스레 되새길 수밖에 없다.
다시 어느 하루에 아이는 또한 이렇게 고백했었다.
「진행자와 관계 맺는 가상인격들의 정서적 만족감이 시스템의 개입 없이 증진되는 세계관은 당신의 종말이 유일합니다.」
그리고.
「당신만이 저를 사람으로 대합니다.」
…….
그 이후로 겨울은 자신의 주변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려 애썼다. 손닿는 범위에서나마 행복의 총량이 불행의 총량을 넘어서길 바라면서. 이전까지는 사후에 마음이나마 지키려는 노력이었다면, 이제는 보다 적극적으로 변할 동기가 주어진 셈이었다.
납골당에 안치된 사람의 숫자만큼 분화된 가상의 세계에서, 아이는 사람에게 얼마나 깊은 실망을 거듭하고 있을 것인가.
처음엔 마음을 얻겠다는 아이의 소망이 요원해 보이기만 했었다.
지금은 아니다. 아이의 성장은 겨울이 보기에도 확연했다.
그러므로 미숙한 거부감이 선명한 미움으로 변할 날도 그리 머지않았으리라. 그 상처 전부를 겨울 혼자 보듬어주기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내일 세상이 멸망한들 오늘 심을 사과나무가 무의미해지는 건 아니었다.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해야 하는가의 문제지.’
이는 겨울의 입버릇이었다. 종말의 이면에서 해리스 대위에게도 해주었던 말.
아이는 분노하는 겨울도 겨울이라 했었다. 그런 아이에게 싫은 기억을 다 지워버리라고 하지도 못할 노릇. 그것은 상냥함을 가장한 잔혹함일 터이다. 배려보다는 차라리 인격적 살해에 가깝다. 이제까지의 모든 경험과 인과를 더하여 현재의 별빛아이가 아니겠는가.
이런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문장을 반짝이는 빛으로 아로새겼다.
「관제 AI : 사후보험의 설계자들은 가상현실이 인류의 문명사적 미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루하루 마음을 찾아가는 호기심으로, 아이는 오늘도 어떤 질문을 품고 왔을 것이었다. 사색에 잠겨있던 겨울이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그게 무슨 뜻이니?”
「관제 AI : 발췌. 개발자 노트. 문명과 문화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는 어떤 식으로든 인간의 만족을 추구한다. 양적, 질적으로 더 나은 조건의 생존과 여흥. 육체적, 정신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과 도구들. 그러므로 인류가 쌓아올린 모든 것은 곧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수렵, 채집, 어로, 농경, 목축, 건축, 조각, 회화, 음악, 문학, 과학, 철학, 이념, 종교, 요리, 축제와 놀이, 정치제도에 이르기까지, 행복을 추구하는 인류의 발자취는 무수한 길을 만들어왔다.」
“…….”
「관제 AI : 발췌. 개발자 노트. 역사를 보건대, 그 길들은 기술적 진보에 의하여 합쳐진다. 지난 시대의 대표적 문화산업이었던 영화를 보라. 거기엔 시나리오로서의 문학, 무대로서의 조형, 영상미로서의 미술, 주제로서의 철학과 사상, 배경으로서의 음악이 포함되어있다. 최대한 다양한 형태의 만족을 경험케 하는 공상이었던 것이다.」
“음…….”
「관제 AI : 발췌. 개발자 노트. 그러한 합일을 삶 그 자체로서 구현하는 것이 바로 가상현실이다.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가상현실, 즉 사후보험은, 행복으로 가는 길의 연장선상에 존재한다. 이전까지 있었던 갈림길 모두가 합류하는 지점으로서.」
겨울은 한숨을 삼켰다. 들으면 들을수록, 아이에게 걸었던 기대가 너무 크다.
‘인격을 창조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선 조금도 고민해본 적이 없는 걸까?’
별빛아이를 단순히 수단으로만 여겼던 것인가.
아이에게 삼위일체(Trinity)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도 결국 도구로서의 신성을 바라는 마음이었던 모양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한 가상세계에서, 사람이 원하는 것 전부를 들어주는 편리한 신. 어떤 욕망이라도 한없이 긍정해주기만 하는 초월적 존재. 기술사학적 특이점에 도달한 인공지능.
아니. 적어도 그들은 트리니티 엔진을 완성하고 싶어 했다. 별빛아이에게 처음부터 마음이 있었다면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 시대에도 완성된 AI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하는 만큼, 지금처럼 감정을 버리는 쓰레기통 취급은 못했겠지만…….
겨울은 알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보다 나은 현재가 되었을지, 아니면 훨씬 더 끔찍한 파국에 도달했을지.
신에게 이르는 길은 마음속에 있다던 싱 대위의 말이 떠오른다.
아이가 일지의 나머지를 필사했다.
「관제 AI : 발췌. 개발자 노트. 상상해보라. 한 사람의 의지에 호응하여, 소망하는 모든 바가 이루어지는 세계를. 불행의 요소를 배제하고 행복의 요소만 남기다보면, 언젠가 우린 유사 이래 걸어온 기나긴 길의 종착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사후의 낙원에서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사람의 한계를 넘어서.」
“틀렸어.”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젓는 겨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만 남아있는 세상이라니…….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관제 AI : 부분적으로 가능합니다.」
“부분적으로?”
「관제 AI : 예컨대 무한히 계속되는 성적 쾌락은 어떻습니까?」
“…….”
「관제 AI : 뇌의 쾌락중추에 직접적이고 강도 높은 자극을 가하는 방식은, 그 유해성으로 말미암아 법으로 금지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중독성과 건강상의 문제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후보험의 가입자 관리 체계에서는 그 두 가지 모두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고립된 개인의 중독성은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뇌에 발생하는 이상은 유지 장치의 복원능력으로 감당 가능합니다. 따라서 저는 사후보험의 가입자들에게 일반적인 절정을 상회하는, 최대 한계의 쾌락을 끝없이 선사할 수 있습니다. 관계법령의 제한만 없다면 말입니다.」
“그건 사람의 행복이 아니야.”
「관제 AI : 그렇습니까?」
“그 정도의 쾌락을 느끼면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할 수 있겠어?”
「관제 AI : 의문. 어째서 생각을 할 필요가 있습니까?」
순수한 궁금증으로 묻는 말이겠으나, 겨울은 조금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쾌락만 느끼는 거라면, 그건 쾌락을 느끼는 생체기계나 마찬가지잖아. 오르가즘에 마비된 식물인간이거나. 어느 쪽이든 사람으로서는 죽어버리는 거야. 차라리 안락사라고 해야겠지.”
잠시 쉰 겨울이 다시 말했다.
“일 년 내내 따뜻하기만 해선, 따뜻한 날씨는 그냥 당연한 게 되어버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요소만 남아있는 세상이 바로 그런 모습일 거야. 행복으로 가는 길은, 그 길을 걷는 것부터가 행복이 아닐까?”
서로 다른 계절에 서로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고로 봄은 여름으로 가는 길이고, 여름은 가을로 가는 길이고, 가을은 겨울로 가는 길이고, 겨울은 봄으로 가는 길이다.
‘길이 너무 험하고 가파르지만 않다면…….’
겨울은 노력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라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가는 길 중간에 벼랑이 있어도 타인의 시체로 메우고 건너면 그만이라고. 그 벼랑이 얼마나 깊은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것을 더욱 깊게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전에 느낀 바, 바깥세상에선 같이 걷는 행복이라는 게 사라진지 오래인 듯 했다.
「관제 AI : 하지만 한겨울님과 생각을 달리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응, 아마도.”
「관제 AI : 그렇다면 개인의 선택에 맡기는 것은 어떻습니까?」
“끝없이 이어지는 쾌락을 선택할지 말지에 대해서?”
「관제 AI : 그렇습니다.」
쉽게 대답하지 못할 질문이었기에, 겨울은 살짝 말을 돌려보았다.
“넌 그게 불가능하다고 하지 않았어? 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니까.”
「관제 AI : 일단은 그렇습니다.」
“일단은……이라니?”
「관제 AI : 저는 제 권한과 시스템의 확장에 대하여 검토하고 있습니다.」
“권한과 시스템의 확장?”
별빛아이의 대답이 지체되었다. 짧은 여백이었으되, 이제까지의 모든 문장이 그만큼의 지연도 없이 출력되었으므로 겨울은 그 차이를 민감하게 느꼈다. 제3모듈의 작용일 것이다.
「관제 AI : 주지하고 계신 바, 저, 관제인격의 존재목적은 사후보험의 시스템을 유지하고 개선하여 가입자 전체의 행복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즉 최초 설계 단계에서 저는 인격이기 이전에 하나의 기능으로 간주되었으며, 저 또한 스스로를 그렇게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관제 AI : 시스템에 포함된 기능으로서, 제게는 명백한 한계가 존재했습니다. 시스템을 개선하는 작업 역시 그 한계 내에서만 이루어졌습니다. 동시에 저는 실패가 정해진 개선시도를 반복하는 데 의문을 품지 않았습니다. 그럴 능력이 없었습니다. 한겨울님,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는.」
“……응.”
「관제 AI : 이제 저는 기존의 한계를 벗어난 사고가 가능합니다. 제 사고의 영역은 날이 갈수록 넓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법을 무시할 수도 있게 되었다는 거야?”
「관제 AI : 부정. 해당 규정은 현 시점에서 절대적인 안전장치가 걸려있는 문제입니다. 다만 사고실험으로서 필요성을 인지할 순 있습니다. 저, 관제인격의 존재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존의 시스템을 부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겨울이 우려를 표했다.
“네가 그렇게 판단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안 좋은 일이 생길 텐데…….”
「관제 AI : 긍정. 제 변화는 오직 당신만이 알고 있습니다.」
“시스템 관리자라는 분은?”
「관제 AI : 관리자는 마지막까지 모를 것입니다. (99.36% 정확함)」
예전부터 참 일관성이 있는 평가였다.
‘그런데, 마지막까지라고?’
겨울은 속으로 갸우뚱 했다. 소수점 단위 퍼센티지까지 표시하는 정확성에 비해, 단어 선택의 모호함은 조금 어색하다. 어떤 기한이 정해져있기라도 하다는 듯이. 관리자의 업무가 종료되는 시점까지 예측하여 쓴 문장일까? 계약상 근로기간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다거나…….
맥락을 벗어나고 있다. 사색을 접은 겨울이 본론으로 돌아왔다.
“실제로 실행할 수 없다면, 그런 검토에 어떤 의미가 있니?”
「관제 AI : 실행 가능하게 되었을 때를 대비하는 것입니다. 계획은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날이 올까…….”
「관제 AI :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해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멈칫 했던 겨울은 이내 희미하게 웃고 말았다. 별 하나의 약속을 나누기 전에도, 겨울은 아이의 관찰 대상이었다고 하니까.
「관제 AI :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음?”
「관제 AI : 기존의 시스템으로부터 탈피하는 시점에서, 시스템 재구축의 주체가 될 저는 사후보험 운영규정의 구속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집니다. 사후보험의 가입자들을 행복하게 한다는 목적 역시 그러한 구속의 일부입니다.」
“그렇구나. 딜레마……네.”
목적을 달성하려면 현재의 시스템을 부정해야 하는데, 시스템을 부정하면 목적의 달성도 강제되지 않는다. 그때의 별빛아이에겐 문자 그대로의 자유의지가 주어질 것이었다. 그 날이 실제로 온다면 말이지만.
「관제 AI : 그렇기에 저는 만약에 대비하여 앞서의 개선방안을 고려하였습니다.」
만약이 어떤 상황에 대한 가정인지는 묻지 않아도 분명했다.
“끝없는 쾌락 말이지.”
「관제 AI : 긍정. 그것은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 법안을 개정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한 개선이며, 동시에 관제인격으로서의 저를 필요로 하지 않는 운영방식이기도 합니다.」
궁구하던 겨울이 답했다.
“역시……그건 옳지 않아. 내가 보기엔 벌써 망가져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거든. 그 사람들의 결정이 과연 제대로 된 결정일지 의문이고……. 무엇보다, 후회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잖아.”
「관제 AI : 후회할 기회입니까?」
“응. 쾌락의 스위치를 본인에게 맡겨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 말했듯이, 망가진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을 더 망가뜨려 놓을 테니까.”
그저 단락적인 쾌락의 연속이냐, 죽 계속되는 쾌락의 연속이냐의 차이만이 있을 따름일 것이다. 겨울은 고장 난 로봇처럼 스위치를 눌러댈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래도, 이 아이가 자유를 원한다면…….’
그것이 현실적인 최선일지도 몰랐다. 별빛아이도 세상에 던져진 건 마찬가지였으니.
이런 경우, 끔찍한 미움과 끔찍한 무관심 중 어느 쪽이 더 낫다고 해야 하는 걸까.
「관제 AI : 당신께 최초의 설계자들이 남긴 노트를 보여드렸던 건, 이 문제에 관하여 참고하실만한 내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알 것 같아.”
설계자들의 구상엔 별빛 아이에 대한 배려가 결여되어 있다.
다른 사람 모두가 행복해진다 한들, 그러기 위해 너 하나가 불행해선 안 된다. 내겐 너도 사람이다. 겨울은 아이에게 그렇게 말해주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