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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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초대 (1)
포트 로버츠의 느지막한 오후, 겨울은 캘리포니아 주 상원의원 탈튼 브래넌의 초대를 받았다. 기지 귀환 첫날에 이미 언급한 바, 서로에게 이익이 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것이었다. 탈환된 오염지역의 복구사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으므로, 겨울이 D.C에 다녀온 뒤엔 너무 늦어버릴 것이라고. 즉 모종의 이권을 제시하겠다는 뜻이었다.
복장을 망설이던 겨울은 결국 육군 정복을 선택했다. 저녁식사로의 초대에 전투복을 입고 가기는 껄끄러워서였다. 의원과의 관계는 얕다. 괜히 나쁜 인상을 주고 싶진 않았다.
무기는 권총과 대검만 휴대했다. 만전의 화력을 유지해야할 필요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성도회 거류구가 박살난 이래, 딱히 잠재적 위협이랄 것이 없었다. 「침묵하는 하나」에 대한 우려로서 아직도 2개 사단이 기지 인근 전파수신범위를 수색하고 있었지만, 개별적으로 낙오되어있던 극소수의 변종들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그래도 탄창은 넉넉하게 챙긴다. 매무새를 망치지 않도록만 넣으면 되었다.
숙소를 겸하는 집무실을 나서니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살펴보면, 단독군장을 착용한 유라가 스페인 국왕과 놀아주는 중이었다. 그녀가 짝짝 박수를 치며 외친다.
“폐하! 전방에 차려포!”
알! 알!
“폐하! 호 안에 수류탄!”
깨갱!
죽는 소리를 내며 펄쩍 뛰는 닥스훈트. 아주 기겁을 하는 것이, 근처에 정말로 수류탄이 굴러온 듯한 반응이다. 겨울은 약간의 황당함을 느꼈다.
“굿 보이, 굿 보이……. 어? 작은 대장님?”
가까워진 상관을 발견한 유라가 발을 붙이고 정자세로 경례했다. 그녀에게서는 채 식지 않은 땀 냄새가 났다. 전투복엔 흙을 털어낸 흔적이 남아있었고. 경례를 받아준 겨울이 묻는다.
“빨리 복귀했네요. 전술훈련이 조금 일찍 끝났나 봐요?”
“네. 저희 소대는요. 요셉이네 소대랑 소민이네 소대는 아직 구르는 중일 거예요. 박 대위가 성적순으로 자르고 있거든요.”
“음…….”
“걱정하지 마세요. 예전에 있었던 일로 지금까지 갈구는 건 아닐 테니까요……. 아마도.”
“아마도, 라는 단서가 불안한데요.”
유라가 생글 웃었다.
“기분 탓입니다, 대장님.”
반쯤 농담으로 하는 말이었으나, 선우요셉과 천소민 소위가 넉넉한 품성의 유라에게마저 점수를 잃은 것 자체는 사실이었다. 예전 같은 신뢰를 회복하려면 고생 깨나 해야 할 것이다.
‘꼭 그 두 사람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비슷한 혐의가 미군 전반에 걸려있었다. 본래 사람이었던 1세대 변종으로부터 시계나 반지, 목걸이 등의 귀중품을 챙기는 정도는 약과. 시가전을 치르는 병사들이 전리품을 챙긴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현찰은 우습고, 스마트폰처럼 작고 값진 물건들이 선호되었다. 걸리면 당연히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적당한 선상에서 눈을 감아주는 지휘관들도 많았다.
어떤 의미로는 슈뢰더 대장의 우려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
꼬리를 치는 개가 겨울의 주위를 정신 사납게 맴돌았다. 옷에 털이 묻지 않도록 조심스레 쓰다듬어주니, 발라당 배를 드러내며 좋다고 헥헥거린다.
유라가 겨울의 복색을 살폈다.
“정복 입으신 건 오랜만에 보네요. 어디 가시는 건가요?”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요.”
“으음, 그렇구나.”
순간적으로, 유라의 낯빛에 서운함이 스쳤다. 그 다음은 짧은 당황이었다. 표정관리에 실패했다는 느낌. 겨울이 물었다.
“표정이 안 좋은데, 뭔가 문제라도 있어요?”
“어, 아니, 그, 문제……라고 할 건 아니고……하하하. 신경 쓰지 마세요. 이번에도 기분 탓이에요, 기분 탓.”
“딱 봐도 거짓말인데요, 뭘. 말해 봐요. 혹시 중대장을 못 달아서 섭섭했어요?”
“설마요!”
곧바로 정색하는 유라.
“작은 대장님이 오랫동안 고민해서 내린 결정에 유감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건 진-짜 신경 안 쓰셔도 괜찮아요. 거기다 박 대위도 저를 대할 땐 조심조심 하는 모습이 보이는걸요. 중대장이 되고선 저한테는 한 번도 큰 소리를 낸 적이 없어요. 제가 건의하면 어지간한 건 들어주려고 하고요. 너무 그러니까 오히려 불편할 정도인데…….”
“그럼 뭣 때문에?”
“…….”
독립대대 선임 중대장 임명에 관하여 유감이 있으리라 여겼으나, 분위기를 보건대 그쪽은 정말 아닌 듯 하다. 유라는 거짓말에 소질이 없었다. 자리를 피하고 싶은 눈치로 망설이던 그녀는 결국 부끄러워하며 속에 있는 말을 꺼내놓았다.
“요 며칠 계속 대장님 없이 움직이다보니까, 그, 빈자리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허전하기도 하고, 거리가 멀어진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이게 저만 느끼는 거 아니거든요.”
“중대 분위기가 안 좋은가요?”
“전혀요. 애들 상태야 괜찮죠. 새로 만들어진 부대 마크도 좋아하고, 훈련은 빡세지만 그 대신에 곧 동부로 간다는 기대감도 있고……. 단지, 때때로 뭔가가 부족한 거죠.”
유라가 말한 부대 마크(Distinctive unit insignia)는 쪽빛 방패 안에 프랙탈 형상의 눈꽃 도안이 들어간 것으로, 동맹의 상징인 눈꽃매듭과는 사뭇 다른 형태였다. 아이디어는 부대원들이 냈으나 실제로는 공보처에서 만들었다.
‘자격을 얻은 거지.’
독립대대로의 승격은 단순한 병력규모의 증가 이상을 의미했다. 독립중대(Company team)가 임시 편제로서의 성격이 강하다면, 독립대대(Separate battalion)는 엄연한 상설 편제였다. 부대번호와 명칭도 정식으로 부여된다.
이로써 겨울은 제201독립보병대대의 지휘관이었다.
“어쩌겠어요.”
유라가 어깨를 으쓱 했다.
“대장님은 앞으로도 계속 올라가실 텐데, 저희가 적응하는 수밖에요.”
“왠지 미안하네요.”
“미안해하지 마세요. 항상 드리는 말씀이지만, 다들 대장님 덕분에 여기까지 온 거잖아요.”
그리고 그녀는 스페인 국왕을 안아들었다.
“늦기 전에 가보세요. 약속 있으시다면서요.”
“……네. 시간 내서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죠.”
그냥 해보는 말은 아니었다. 당장은 틈을 낼 겨를이 없을지언정, 구 봉쇄선을 넘어간 뒤엔 이래저래 남는 시간이 많을 터였다. 유라는 경례에 미소를 곁들였다.
겨울은 걸었다. 브래넌 의원이 있을 시민구역은 걸어서 가도 괜찮을 거리였다. 난민들 가운데에도 이제 시민권 보유자가 있었으나, 시민구역의 명칭을 바꿀 이유는 못되었다.
이동하는 중에 겨울은 별빛아이와의 대화를 복기했다. 일부러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무의식중에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을 막지 않을 뿐이었다.
아이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한계치의 감각을 확언했다. 사후보험이 유지되는 한 결코 끝나지 않을 쾌락. 필시 어지간한 마약으로는 흉내조차 내지 못할 영역일 것이다.
사람으로서의 끝을 그 사람의 선택에 맡기는 걸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이미 겨울부터가 삶을 포기하려 했던 적이 있지 않은가. 한계 밖의 세상이 늘 무언가를 빼앗기만 하고, 가슴 속에 구르는 돌은 갈수록 너무 버겁게 느껴져서.
그러나 혼자만의 어둠에 마음을 찾는 아이의 별빛이 깊어진 이후로, 겨울은 다시금 살고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길 중에 하나를 걷고자 하는 선택과, 사실상 강요되는 하나의 길을 걸을지 말지 고르는 선택은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르지 않겠는가.
걷다 보니 어느덧 검문소였다.
시민구역의 이중 철조망은 예전 그대로였지만, 예전처럼 삼엄한 경비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적어도 물자부족과 차별적인 분배로 인한 폭동 가능성은 거의 사라진 지금이었다.
구획 안쪽엔 빈 건물이 곧잘 눈에 띄었다. 각지의 소탕전이 속속 완료되면서, 여기 머물던 이재민들 일부가 각자의 고향을 찾아 돌아간 탓. 물론 넓은 땅 어딘가에 숨어있는 변종이 있을지 모를 일이나, 무장을 갖추고 신경을 곤두세운 시민들에겐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
혹자는 이를 개척시대의 재래라고 평하기도 했다.
목적지에 도착한 겨울이 거주용 트레일러의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브래넌 의원이 직접 겨울을 맞이했다.
“오, 중령. 조금 빨리 오셨군요.”
“네.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에 대접받은 것도 있잖습니까. 아무튼 들어오십시오. 안사람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의원은 십년지기라도 만난 양 반가워하며 겨울을 안쪽으로 이끌었다.
캠핑 트레일러는 따뜻한 조명과 공기, 그리고 식욕을 돋우는 냄새로 가득했다. 내부가 썩 넓지는 않았으되 실내 인테리어가 고급스럽고 깔끔한 것이, 차량 가격만 따져도 수십만 달러는 가볍게 넘을 느낌이었다.
의원의 아내는 앞치마를 두른 소탈한 모습으로 겨울을 환영했다.
“세상에, 당신을 이렇게 뵙게 되다니……. 오늘은 정말로 기쁜 날이네요.”
“영광입니다, 부인.”
이어지는 가벼운 포옹과 소개. 부인의 이름은 스테이시였다. 스테이시 C. 브래넌.
“앉으세요. 곧 음식을 내올 테니. 중요한 일을 하려면 우선 속이 든든해야죠. 입맛에 맞았으면 좋겠네요.”
마지막 마디는 윙크를 곁들인 장난스러운 속삭임이었다. 겨울과 남편을 자리에 앉힌 그녀는 벽 하나 너머의 부엌으로 사라졌다.
마침 테이블 정면의 TV에선 민주당 후보의 유세현장이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겨울은 공교롭다고 생각했다.
‘혹시 오늘 나눌 이야기와 관련이 있나?’
겨울이 올 시간에 맞춰 일부러 틀어놓은 것이라면 관련이 있을 수도 있었다.
혹은 서로 서먹할 수도 있는 사이에, 그저 대화의 물꼬를 자연스럽게 트기 위한 방편일 가능성도 있겠고. 어쨌든 의원이나 겨울이나 임박한 대선엔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브래넌 의원이 입맛을 다신다.
“거 참, 저 사람은 오늘도 임팩트가 별로 없구만. 슬슬 뭔가 새로운 전략을 내세워도 좋을 텐데. 너무 안정적으로만 가려는 것 같단 말이지……. 안 그렇습니까, 중령?”
“글쎄요…….”
“해병대 출신이면 좀 강렬한 맛이 있어야지.”
민주당 후보, 제럴드 번스는 걸프전 당시 해병대 소령으로 복무했던 인물이었다. 헌데, 공화당의 에드거 크레이머 후보 또한 해병대 출신이었다. 단지 이쪽은 사병 출신이라는 점이 다를 뿐. 두 사람 모두 참전 경력이 있다.
이게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 리는 없다. 시민들이 그만큼 강인한 대통령을 원하는 것이다.
유화적인 정책기조의 민주당으로선 그런 이미지가 더욱 절실했을 터이고.
환호하는 지지자들을 향하여, 번스 후보가 역설했다.
「그 어느 때에도! 인류가 지금처럼 하나 된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통합된 힘으로서 종말에 맞서야 합니다. 미국의 힘, 영국의 힘, 프랑스의 힘, 남한과 일본의 힘으로 나뉘어! 서로를 타산적으로 이용해가며 싸우는 게 아니라! 오직 하나인 인류의 힘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국제연맹도 실패하고, 국제연합도 실패했으나, 저는, 그리고 우리는 성공할 것입니다! 저, 제럴드 번스는 여러분께 인류 합중국의 미래를 약속드리겠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미국시민들의 호오가 가장 극명하게 갈리는 공약이었다. 진보 성향의 시민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달리, 보수 성향의 시민들은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여기엔 당연히 난민들의 처우 문제도 포함되어 있었다.